6년 동안 변동이 많아서
6년 동안의 변동 사항을 고향 교회 교우들에게 알리고저 합니다.
고향을 떠나 온지는 65년! 대구 살림을 차린지는 57년이 조금 부족하고 대구 내려 올때 가족은 여섯살 맞딸과 네살 아들 그리고 처 네 사람이 였고 대구에서 하나님께서 2남 1녀의 자녀를 선물로 더 주셔서 3남 2녀의 자녀를 선물로 주셨는데 지금은 아들 딸 가족 다 포함 하면 26명의 대 가족을 이루고 있고 증손자 까지 보았습니다.
고향집에서 대구 내려 올 때 쌀 대두 두 말, 간장 댓병한병, 고추장 된장 국단지 하나를 가저 왔습니다.
군에서 8년 동안 저축한 돈이 3만여원이 있었는데 본가와 처가댁에 송아지 각 6000원을 두마리 사주고 또 처가족 중에 결혼을 하는데 밭 500평을 팔아야 되는데 평당 50원해서 25000원 송금해 주면 그 밭을 내 명의로 이전해 준다고 해서 수중에 있는 20000원을 송금하고 잔액은 봉급타서 송금 할려고 했는데 그뒤 아무 말 없어 있다가 50년이 지났는데 말이 없어 2015년도에 가서 이야기라도 해야 되겠다 싶어 이야기 하니 처음에는 딱 잡아 띠고 그런일 없다고 해서 그러면 결혼 하기전 하고 결혼뒤에 재산에 변동이 없었지 않았나 했드니 그때사 있어도 못 준다고 해서 포기 했는데 이사람도 목회를 수십년 한분인데 돈에 대해서 완전히 노예가 된 사람인데 나는 그돈 없어도 사는데 그 영혼이 불상합니다.
그때 우리교회 부근에 10000원이면 10자 13자 방 전세로 얻을수 있는데 있든 돈 사기 당하고 살림을 차린 집은 중동 변두리 큰 채도 아니고 대문에 붙은 방 한칸 월세 300원 그때 저의 봉급이 3.300원 겨울철 방안에 물 그릇에 살얼음이 얼 정도였는데 고생 많이 했습니다.
28년 만에 기도 응답
그후 이사를 17회 정도 다녔고 내집을 샀다가 팔기를 7회나 했는데 반야월에 23평 아파트에 15층 중 8층에 살다가 2016년 9월 20일 대현교회 가까운 대성유니드 29평 9층을 26300만원에 매입 거주하다가 23000만원에 전세놓고 2018년 3월10일 교회에서 가장가까운 봉덕동 한라하우젠트 34평 14층 32500만에 분양받아 거주하는데 저의 28년 동안 반야월에서 왕래하면서 저의 기도의 제목이 주의 전 가까운 곳에 이사하는 것이였는데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현대식 신축 아파트를 분양 받을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 감사 할 뿐입니다.
직선 거리는 150메타 정도, 도보로는 4분, 아파트 큰방 작은방 거실에서 보면 교회당이 정면으로 한눈에 보이는데 처음 분양 받은 아파트는 남향인데 교회당이 보이지 않고 전망이 좋지않아 1000만원 프리미엄 주고 교환했는데 서 남향이라 전망도 좋고 남구 일대와 두루공원 전망대가 한눈에 보이는데 방문하는 분들마다 전망이 좋다고합니다.
교회 가까운데만 정신을 두었는데 입주한지 1년이 되는데 시가가 동일 평수가 45000만원 - 46000만원에 매물이 나와있고 또 2017년 11월 30일 대성유니드 32평 25000만원 전세안고 50000만원 투자해서 3억에 매입한 아파트도 동일 평수가 33500-34500만원 거래되고있습니다.
군 연금을 받고 있는데 퇴직후 가창에 과수원 520평 260만원에 1982년도 구입해서 2015년10월 18000만원에 매매를 했고 청도 이서에 매실 503평 2005년도에 3700만원에 구입해서 2013년도에 6700만원에 매매했는데 과수원 2개 필지를 매매하니 아파트 한채 기금을 마련하였음/
대현교회를 섬기게 동기
대구로 이사온지 1년이 지난뒤 한집에 살든 대현교회 집사님이 사택이 비어 있는데 부대도 가깝고 하니 교회 사택으로 이사하면 어떠냐고 해서 사전에 답사를 해보니 교회당도 허술하고 내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고해서 많이 주저했으나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을 거역한 요나 생각이 나서 이사를 했는데 수도도 없어 대성중고 우물을 이용 하기도하고 아니면 이웃 수도를 구걸 하듯이 이용했는데 그때 둘째 딸이 출생한지 두달도 못되었는데 물이 제일 큰 문제 였습니다,
너무 곤란해서 집을 구하려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아이 셋이라고 하니 전부 거절해서 할수 없이 이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현재 섬기는 대현교회에 1963년 11월 27일 수요일 이사해서 무보수로 4년 10개월 (1963,11,27 -1968,10,3)을 봉사했습니다. .
그후에 고향교회 교우들도 몇분 다녀 같고 큰 누님은 와 보시고 다른 사람의 종 같아서 보기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시편 84편에 “주의 궁전에서 한날 서 천날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 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 는 채규백 장로님의 말씀에 감동받고 자존심 완전히 버리고 방 한간 사용 한것 외에 무보수로 봉사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례를 받아 봉사한 이상으로 이사한지 2년 반만에 1966년도 봄에 단돈 50,000원 가지고 325,000원 짜리 대지 32평 방 3개 한옥집을 억지로 사도록 해 주셨는데 그집을 판사람에게 14만원에 전세놓고 남어지 부족금은 상광 자형을 통해 사채로 충당을 했는데 그집이 1967년에는 70만원까지 집값이 상승했는데 하나님께서 무료로 봉사하니 몇 백배를 갚아 주셨는데 우리 교회 남자 교인 중에 제일 먼저 내집을 마련했는데 그집을 교회건축 헌금 받칠려고 팔았는데 1978년도에 680만원에 매매를 했는데 12년만에 내가 살고 집 값이 20배 이상 상승 했는데 그때당시 내 봉급 가지고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지금 까지도 하나님께서 집 사면 집값 오르고 땅 사면 땅값 오르고 손해 본 일이 없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줄 믿고 감사 감사 할것 밖에 없습니다.
그 당시 저의 군무지는 2군사령부 통신참모부 통신과에 근무하다가 병기참모부 행정실로 옮겼는데 2층
사무실에서 교회가 보였고 출퇴근 소요 시간은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아들 편
장 남 황선주 경북대 사범대학 사회학과 졸, 고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명예퇴직
며느리 김상경 대구대학특수교육학과 졸, 현재 대구대학 부속 광명중학교 교사로 재직
교회는 동신교회 서리 집사로 봉사
손녀 슬기 경북대학교 상대 경영 학과 졸업 반
손녀 시온 고등학교 2년 재학 중
차 남 황학주 경북대학교 법학대학 사법학과 졸업, 서울 LG 본사근무. 부산 연합철강 근무.
대구 삼성 자동차 근무 후 퇴직후. 북한 선교를 위해 활동하고 있음
며느리 류 미숙 영남대학교 국어 국문학과 졸. 여자 경찰로 18년 근무 하다가
운전면허 시험장이 교통안전과로 이전됨에 경찰에서 퇴직하고
현재 칠곡 면허 시험장과장근무.
교회는 동신교회 서리 집사로 봉사
손녀 지현 영대영문학과 4년 재학
손녀 성현 중학교 2년 재학 중
3 남 황해주 대구 보건 전문대학 치과기 학과 졸업. 현재 기아 자동차 방촌지점 근
며느리 김하영 왜관여고 졸, 현재 헤어 샾 미용실 운영
손녀 은혜 중학교 1년 재학 중.
손녀 지혜 초등학교5학년 재학 중 .
딸 편
맞사위 박종근 협성 상고 졸 직장에서 정년 퇴직
맞 딸 황인숙 대구여자예술고등학교 디자인과 졸. 대백 마트에서 옷가게 운영
대현교회 서리 집사로 봉사
외손자 박광훈 구미금호공과대학 산업 경영학 졸
외손부 이혜진 서울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
서울 러시앤캐시 외국계 은행 본사 근무중 직장 동료끼리 결혼
큰달 남매는 다 직장 동료 끼리 결혼
외손여 박성경 대구영진 전문대 컴퓨터 응용기계과 졸, 구미 삼성 전자 근무
외손서 김창한 구미대학 영어 영문학과 졸, 구미 삼성 전자근무,
(삼성전자에 근무중 외손녀와 결혼)
증손녀 김사랑 초등학교 1년 재학중.
증손녀 김소망 유치원생
둘째사위 김정환 경북대 전자공학과 졸. 동 대학원 졸. 동 대학 박사 과정 졸.
현재 공학 박사, 계명 문화대학교 교수
둘째딸 황성숙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피아노과 졸. 동대학 교육 대학원졸
계명대학 교육대학 박사 과정 졸. 현재 교육학 박사 계명 문화대학 겸임 교수
성서 내일 교회 권사로 장로로 봉사
외손자 김명신 계명대학 약학과 졸업. 현재약사로 약국 근무
외손여 김은지 공주교육대학 졸업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