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6.25 동란시기 학도병들이 아무런 군사훈련도 없이 전쟁터에 나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당시 구제 중학교나 실업학교에서는 교련수업이 있었고 그 내용은 70~80년대의 교련책과 유사하고 생각보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미군의 것을 번역하였겠지만 삽화나 도표는 다시 만들어 편집을 했다.
국방부 장관 이범석 차관 최용덕의 휘호가 있다.
그리고 육군 작전교육국장 강문봉(훗날 2군사령관이 되며 작전통으로 유명했으나 김창룡 암살과 연관되어 군을 떠남), 그리고 김희덕소령이 관여한 것 같다.
제식교련 부터 사격술예비훈련 각개전투 , 수류탄, 독도법, 수색, 병기취급법등 당시 육군의 병기본 훈련을 망라했고 학교를 다니는 청년이라면 학교에서 교관의 지도에 따라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 본다.
문제는 당시 중학교 (지금과 달리 14~19살) 고학년의 경우 숫자가 많지 않았을 것이고 전쟁이 나자 학도병으로 지원한 이들도 있었지만 현역으로 입대 병이나 장교가 되어 많은 희생을 치뤘고 농촌에서 징집된 청년들과 같은 훈련을 받다가 다른 방식으로 훈련을 받고 특별한 주특기나 계급을 받고 장기복무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당시 물자사정이 안좋아서인지 한지 비슷한 종이와 양지가 섞여서 인쇄가 되고 제본이 되었는데 한지 비슷한 종이는 인쇄가 약간 흐려도 오래갈 것 같고 양지는 진하긴 하지만 종이가 약한 것 같다.
혼란스럽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예비역 계급을 단 교관들이 있었기에 갑자기 벌어진 동란을 버티고 이겨나갈 수 있었다고 보며 청년들의 희생도 많았고 휴전 이후에도 군인의 길을 걸으며 이땅을 지켜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