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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놀러가면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입니다. 주로 성이라던가 전투 유적지 같은 곳에 가면 이렇게 각종 무기의 모형을 많이 전시해놓습니다. 참으로 다양한 무기의 형태인데 거의 창과 관련된 모형입니다. 아마 각종 창들의 명칭이라든가 모양을 다음과 같은 도화로 나열해놓은 것과 같겠죠. 위의 도화는 모두 창(槍)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만 사실 시대에 따라 창은 그 모양을 달리했습니다. 전투 양상에 따라 시대별로 가장 많이 쓰이던 창의 형태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었을테니까요. 그런 오랜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상용 무기로 자리를 잡은 것은 과(戈)였습니다. 고고학 발굴에서 나온 과의 형태입니다. 무엇과 닮은 것 같습니까? 추석이 되면 벌초를 할 텐데 그때 쓰는 낫과 많이 닮았죠? 깨끗하게 복원된 과를 보고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이 과에는 사용자로 보이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네요. 이런 금속 기물에 새겨진 것을 금문(金文)이라 하며, 이 시기에 문자가 많이 정형화 합니다. 새기지 않고 찍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계속 과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자면 오른쪽 부분이 자루를 다는 곳입니다. 홈을 파고 고정을 시킨 후 과에 난 세 개의 구멍에 끈을 넣어 자루에 단단히 매는 것입니다. 자루의 길이는 약 1.5~2m, 어쩜 그보다도 더 길었습니다. 옛날에는 전차를 타고 싸웠으며 『삼국지』처럼 필마단기로 싸우는 전투양상이 보편화된 것은 한나라 때 이후입니다. 전차에는 세 사람이 탑니다. 어자(御者)와 주장(主將), 그리고 거우(車右)가 타게 됩니다. 거우는 수레의 오른쪽, 그러니까 어자의 오른쪽에서 무기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주장은 왕이 출전하면 왕이 타기도 하고 다른 전차에는 서열에 따라 배정이 되겠습니다만 왼쪽에 타게 되겠죠. 시대에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높은 사람이 위치를 하게 되었는데 저 시대에는 왼쪽이 더 높은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주장의 지휘 하에 어자가 마차를 몰고 적진으로 돌진을 합니다. 적진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둘이 교차할 때 무기를 조작하는 거우가 과를 휘둘러 상대방의 가장 취약한 곳, 목을 노립니다. 서양의 기사가 긴 창으로 정면에서 마주 달려와 찌르는 형태와는 조금 다릅니다. 「창 과」(戈)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창 과」(戈)자는 청동 기물에 새긴 금문에서는 다른 모습을 띠기도 합니다. 청동기물에 새긴 글자는 장식성이 훨신 강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경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 과」(戈)의 또 다른 금문 그런데 적의 마차와 뒤엉키거나 아주 근거리에서 적과 맞부닥치는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요? 마주 달리지 않는 짧은 거리에서 자루가 긴 과를 휘두르면 원심력에 의해 베는 무기인 과는 효용성이 많이 떨어질 것입니다. 그때 쓰이는 무기가 바로 찌르기 전용 창인 모(矛)입니다. 발굴을 통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모의 각종 모습입니다. 특이한 것이 보이죠? 아랫 부분의 고리를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이 모라는 무기가 상용무기가 아니었으므로 끈을 꿰어 흔들리는 전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묶어놓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니까 적군의 전차와 서로 얽혔을 때는 이 모를 풀어서 상대를 먼저 "찌르는" 사람이 이기겠죠? 아마 이 모 가운데 가장 독특하고 유명한 것이 장팔사모(丈八蛇矛)일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와구관이란 곳에 있는 장비의 모습입니다. 동자가 들고 있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모양의 창끝이 장팔사모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장비가 장팔사모를 내지르며 용맹하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장팔사모라는 명칭은 1.8장 길이의 뱀 모양 찌르는 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끔찍하죠? 살상력을 극대화한 창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지간히 힘이 센 용사가 아니면 힘에 부쳐서 잘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장비 같은 힘센 장수에게나 어울릴 법한 무기라 할 수밖에요... 「창 모」(矛)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에서는 모(矛)자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베는 창인 과(戈)보다 늦게 생겨난 무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갑골문에는 사용을 하지 않을 때 전차에 묶어둘 끈을 꿰는 구멍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서쪽으로 오면 구멍보다는 끈을 연상시키는 획이 더 부각되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상, 아니 자연스런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과와 모를 하나로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 창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옛날부터 거의다 존재했다고 보면 됩니다. 시대적 요구와 기술력의 발달이 그것을 실현해야 모습을 드러내겠지만요... 이렇게 과와 모의 하이브리드 형 무기를 극(戟)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출토품의 모습입니다. 위는 모고 옆은 과인 무기입니다. 나무로 된 자루는 없고 금속으로 된 과와 모의 결합체만 있습니다. 자루를 끼운다면 다음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다음은 과(戈) 가 여러 갈래인 극(戟)입니다. 이 극은 호북성(湖北省) 수주(隨州)에서 출토된 증후(曾侯)의 을묘(乙墓)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렇게 과가 여럿이 달려서 장식성이 강한 무기는 실용적인 무기라기 보다는 주로 의식에서 쓰인 무기였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실제 증후의 옻칠을 한 관에서는 다음과 같은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여러 갈래의 과가 달린 극이 실제 전쟁보다는 주로 모종의 의식에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갈래를 가진 창을 서양에서는 삼지창이라고 합니다. 이런 삼지창은 우리나라의 포졸들도 사용하였고 서양에서는 해신(海神)인 포세이돈의 상징물처럼 여겨지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한편 위의 세 갈래 과를 가진 극을 방향을 돌려보면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이겠죠? 이런 의식용 다과극(多戈戟)을 나타낸 문자가 있습니다. 바로 「나 아」(我)자입니다. 「나 아」(我)자의 갑골문-금문-소전 의식(儀式)이란 것이 말하자면 일종의 동류 의식(意識)을 고취하는 행사지요. 오죽하면 동류의식을 강조하면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끼리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를 붙이기도 하겠습니까? 이렇게 의식을 통하여 남이 아닌 우리, 나를 나타내다 보니 이 글자에서 「나」라는 뜻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의식을 위해서 이렇게 비실용적인 의장용 무기를 만들었습니다만 보다 중요한 의식에서는 장식을 더 강화해야 했습니다. 저런 거창한 다극과에다가 다시 깃털이나 화려한 수술, 또는 멋진 양뿔 같은 소품을 써서 더욱 장식을 해야 했던 것이지요. 이런 무기를 나타낸 글자가 바로 「옳을 의」(義)자입니다. 「옳을 의」(義)자의 금문-금문대전-소전 다과극인 「아」(我)자 위에 깃털 장식 같기도 하고 양머리 같기도 한 장식을 하였습니다. 이런 국가적인 의식(儀式)은 언제나 옳은 것이지요. 그래서 원래 의식을 뜻하던 「옳을 의」(義)자는 그만 「옳다」는 뜻으로 쓰이고 원래의 뜻인 의식을 뜻하던 글자는 「거동 의」(儀)자로 바꾸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의식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한편 이런 극 형태의 무기는 중세의 서양에도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보통 이런 형태의 무기를 미늘창이라고 하지요. 미늘은 한번 들어가면 잘 빠지지 않게 끝을 낚시바늘처럼 구부린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베는 과가 위치할 부분에 보통 도끼 같은 것을 부착하죠. 지금도 바티칸에서 교황청을 지키는 수비대들은 저런 모양의 창을 들고 교대식을 합니다. 관광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서는 더이상 인명 살상용 실제 무기라기보다는 하나의 관광객 유치용 소품으로 전락해버렸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그리고 장비의 장팔사모 못지 않게 이 극의 달인이 역시 『삼국지』에 나오죠. 바로 방천화극(方天畵戟)의 달인 여포입니다. 방천화극의 모습은 위의 사진처럼 드라마에서 여포가 휘두르는 모의 한쪽에만 과가 달린 경우도 있고... 또 위의 그림처럼 모의 양쪽에 과가 달린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아래쪽 모양이 더 멋져보여서 그런지 아래쪽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창 극」(戟)자의 금문-금문대전 극 자도 갑골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늦게 출현하였나 봅니다. 아니면 제사에서 역할을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무기와 관련된 글자를 소개하려니 좀 끔찍한 설명도 나오지만 그래도 흥미는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창과 관련된 글자 중 빠뜨릴 수 없는 글자가 한 자 더 있습니다. 바로 「호반 무」(武)자입니다. 이 무(武)자는 당초 회의자로 생각되어 왔습니다만 수천 년을 잠자던 갑골문이 등장함에 따라 비로소 상형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니 제 위치를 찾은 것이지요. 홍콩 영화에서난 볼 수 있음직한 멋진 폼으로 각종 무기를 다루고 있네요. 중국에서 올림픽을 할 때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던 우슈입니다. 우슈는 한자로 「武術」이라고 표기하며 한국어로는 무술이라고 읽습니다. 우리가 우슈로 알고 있던 스포츠 종목이 무술이었다니요... 우슈 중에서 창을 가지고 멋진 연출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우슈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전문 양성 교육기관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열기를 조성한 인물로는 중국에서 전국 우슈대회를 5년 연속 제패한 후 배우로 전향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리롄제(李連杰)를 꼽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리샤오룽(李小龍)이 실제 무술로 영화계를 장악했다면 리롄제는 그냥 폼으로만 인기를 끈 것이지요. 무자의 옛 자체를 한번 보도록 할까요? 「호반 무」(武)자의 갑골문-금문-소전 발과 창을 그려놓은 것이 「호반 무」(武)자입니다. 회의자로 인식되어온 것은 창(戈)을 그치게(止)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무(武)자는 창을 짚고 행진을 하거나 위의 서진처럼 창을 가지고 멋진 퍼포먼스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리롄제처럼 완벽하게 연출을 해내면 다른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전 의사를 포기하겠죠. 반대로 헛점 투성이에 실수를 반복하면 반대로 도전의 의지가 생기게 되겠죠. 이렇게 무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의 도전 의지를 꺾어놓는 것이 이 「호반 무」(武)자자의 본뜻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아치를 양반(兩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양반은 문반(文班)과 무반(武班)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무반이라고 하지 않고 「호반」(虎班)이라고 할까요. 무(武)자가 일찍부터 왕의 이름으로 쓰여서 피휘를 하느라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동물 중에 가장 용맹하다고 하는 호랑이를 붙여서 「호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
첫댓글 국사 수업을 하다보면 고고학 유물에서 모,과,창, 검, 도 등을 구분하는 문제가 종종 생깁니다. 정말 실감나는 자료 설명입니다. 제가 예전에 수업을 이렇게 했더라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을 것이라는 뒤늦은 후회가 생기는군요. 좋은 자료 잘봤습니다.
공부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