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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욱 선생님의 "호남" 특별 강의정리.
""우린 너무 몰랐다!""
https://m.youtube.com/watch?v=F7N9d3POpZc&feature=youtu.be
호남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기다려 주었고, 평등과 정의로 품어 주었으며 결정은 항상 옳았다.
호남의 역사는 민족의 국란위기 시에 항상 옳은 선택의 길로 나아가며, 주저없이 스스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며 뿌리를 지탱하였다.
마고 민족문화의 마지막 보루 호남이 무너지면 국가가 짓밟히며, 민족 자존이 뭉개저 내리고 피로 역사를 장식하였다.
■의(義)롭고 숭고(崇高)한 호남민족에 대한 오랜 역사적 질시(嫉視)가 곧 호남을 폄하 하고 폄훼하는 우둔한 이적 화하노비족 토착왜구 만연의 시대가 되었다.
고대 수만년 마고(媽古)문명의 (예맥족=마媽ㆍ환圜 조선朝鮮의 뿌리)민족 역사의 근원이자 뿌리이며, 민족과 문화, 역사와 자존, 정의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 "호남민의(民義)"에 대해서 특별 강연을 역사적 사료를 근거로 청중과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ㆍ도올의 가족사?
도올 선생의 조부께서 임오군란때 민비(명성황후)를 등에 없고 피신하였다.
이후 소란이 잠잠한 이후, 민비(명성황후)가 도올의 조부를 찾았다 한다.
감사의 표현으로 조부에게 "이곳(한양) 나의 곁에 가까이 있으면 해를 입을 수 있으니, 가장멀리 가있으라 하고 보낸 곳이 조선의 땅끝마을 전라도 해남 군수로 보낸다.
조부는 이후 영암군수, 흥양(고흥)군수를 역임하고 이후 중앙정부의 행정조직 의장격인 자리에 있다가 다시 고향 전라도 영암군, 해남군으로 내려와 정착하고 생을 마감하셨고 한다.
도올의 아버지께서 전라도에서 전라도 여자와 결혼한 후, 영암에서 도올의 형까지 낳고서 이후 조부의 돈 300원을 들고 한양으로 올라와 보성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ㆍ도올의 절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인연)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가까운 절친은 대만에서 같이유학 생활을 한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다.
정세현 장관의 부모는 (부)전라도 장수군, (모)전주시 이며, 일제의 피해를 피하고자 만주 북만주 흑룡강성 지역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시던 중 정세현 장관을 낳고, 얼마지나지 않아 일제가 망하자 아기였을때 다시 고향 호남 전주로 내려 오셨다고 한다.
ㆍ도올의 호남이란?
근래 특정(화하+왜구DNA) 지역민 태극기 부대들이 (일본,미국,이스라엘)외세와 민족 반역 범죄자인 친일부역 자들을 찬양하고 남북통일을 반대하며 역사를 더럽히는 현 실정을 개탄해 하시며, 진정으로 국민이 나아가야 할 역사의 방향을 호남의 역사에서 찾고 길을 물어야 한다는 특별 주제 "호남" 강의이다.
ㆍ호남가: 조손 왕손 이서구 지은 노래
ㆍ부용산: 벌교 부용산, 박기동 작사한 노래
ㆍ호남(전라도)의 세계사적 유산과 역사적 호남 정신의 세계사적 조명을 주제로한 특강.
ㆍ한국을 이끌어온 호남(전라도)의 "혼과 정신"을 역사적 사건 중심으로 설명하고, 참석자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강연식 토론 내용.
ㆍ도울... 호남(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를 위하여 살지않는다.
안중근 의사 사당을 1955년 전라도민은 장흥에 ‘해동사(海東祠)’세웠다.
당시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황해도 출신 안중근 의사를 전라도를 넘어 민족의 열사로서 호남에 사당을 지은 그러한 대의를 가진 마음의 호남사람들은 민족과 나라 그리고 인류애를 위하여 산다는 증명이다.
당시 전쟁이후 여수ㆍ순천민중항쟁, 제주4.3의거등 우익의 탈을쓴 친일파가 득세한 시기인 1955년 전라도 장흥에 안중근 의사 사당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곧 호남(전라도)의 정신이다.
ㆍ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실제 3/4) 이나라 호남(전라도) 지방에 있으며, 호남(전라도)지방의 백제 이전의 구석기 시대 고인돌은 당시에 여러 왕들이 서로 민주적 사회를 바탕으로 유구한 문화전통과 정의를 지켜온 지금의 전라도 호남 지역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ㆍ호남(전라도) 사람들은 대의를 위하여 고난에 고난을 격의며 살아왔다.
ㆍ호남(전라도) 사람들이 없었다면 국가도 민주주의도 인권도 문화도 질밟히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ㆍ제주도는 이승만이 제주 지역민을 무차별 총칼로 탄압한 이후, 보다더 강경하게 친일경찰을 많이 주둔하여 감시하고자 하는 빌미를 마련하고자 전라도에서 분리하여 제주도로 행정구역을 승격시켰다.
ㆍ호남(전라도)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근대에 만도 호남의 동학혁명(운동), 호남 남하대토벌희생(義民척살), 호남 군산3.5독립만세운동, 호남지역 독립항쟁 희생(조선팔도에서 호남지역97.5% 희생차지), 호남지역 독립항거 건수(조선팔도에서 호남지역 92%차지), 호남 광주ㆍ나주 학생독립의거, 호남 여수ㆍ순천의거(친일독재 민중항쟁), 호남 제주4.3의거(친일독재 민중항쟁), 호남 광주5.18민주화운동(군사독재 민중항쟁) 등으로 인하여 수만명의 출중한 인재가 수십만명 죽어나갔다.
호남은 시급히 잃어버린 우수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것이 호남의 가장 앞선 목표이다.
ㆍ호남민들의 고난은 반드시 부활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ㆍ호남 여수ㆍ순천 민중항쟁 의거 희생자를 기리는 아픈이의 노래 "부용산"을 도올 김용옥 선냉님이 직접 부르며, 직접 새벽3시에 지은 시 "전라도" 를 읊으며 강의의 막을 내린다.
"부용산"은 호남 민의 여ㆍ순 민중항쟁 이후, 정의를 위해 희생한 호남인들을 어루먼저 주는 아픔을 자아낸 노래로 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시 "전라도"
가족의 고향인 호남지역에서 조부의 공적 비석을 찾느라 근처 해남 대흥사에서 하루밤 묵었다.
지친 몸을 추수리느라 커피를 마시고 카페인 때문인지 잠을 못잤다.
새벽 3시경에 시를 썼다. 제목은 "전라도" 전라도 정신은 역사의 자부심이며, 역사의 중심이자 미래로 가는 빛이다.
■시 제목: 전라도 [호남 전라도 정신]
지은이: 도올 김용옥(2019.4.18 기재 유튜브기재)
나의 전라도여 깨어나라 일어나라.
천년 묵은 때를 씼어내고 만년 전의 청춘으로 돌아가라.
진리를 향해 가슴을 열고 두려움 없이 전진하자.
단군 홍익인간의 가치를 실현키 위해, 이 민족 이 인류의 하나됨을 위해 끝까지 전진하자.
(해남)연정리 지석묘 들판에 산 허리에 달 널려있는 수만개의 고인돌, 그 고인돌에 새겨진 총록빛 빛 땀방울 무었을 말하는가!
공존과 평화와 단합인 이상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풀밭위에 펼쳐지고 있지 아니한가!
전라도여 그대는 평화의 상징, 예술의 상징, 고난의 상징, 부활의 상징, 인류가 고안한 그 어떤 선율보다도 심미적으로 고매한 판소리를 굿거리 장단을 무안히 자유로운 "시나위" 탁월함을 만들어낸 그대들이 아니던가!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주저케 만드는가?
우리의 전진을 가로 막는 어떠한 불의도 이제 우리앞에 무릎을 끓는다.
(광주)무주 빛고을의 빛이 보성의 보석들을 비추일때, 아롱지는 찬란한 무지개 그 이름 "평화" 비극에 물들지 않는 영혼한 "청춘" 나의 전라도는 좌절을 모른다.
오직 사랑할 뿐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전라도여 깨어나라.
전라도여 전진하라.
전란도여 평화의 활 화산을 분출하라.
(티베트)곤륜산에서 (해남)두륜산으로 펼쳐지는 대맥을 한손에 휘어잡고 천공에 두글자를 새겨라.
그것은 바를 "정", 옳을 "의" "정의"
전라도는 이 민족(예맥) 정의의 보루, 정의의 기준, 여ㆍ순의 항거, (광주)금남로의 핏물은 오늘도 정의가 (해남 명량)울돌목이 되어 운다 운다 운다.
전라도여 영원하리라
전라도여 영원하리
전라도여 영원하리.
옮긴이: 반선 라파엘
※첨언: 이적 친일부역자들의 행정구역 개편
(서울 4.19혁명 시민에게 발포 명령자는 당시 법무장관 친일 반민족행위자 홍진기이며, 중앙일보 창업자이자 이건희 부인 홍라희와 중앙일보 홍석현회장의 아버지이다. 홍진기는 초대 한국은행장을 지내고 경기도 남이섬을 헐값에 매입하여 지금것 수입을 해외로 빼돌리고 있는 친일행위자 민병도를 반민족행위 처벌법 시행시 홍진기와 절친인 민병도를 석방하고 오히려 항일 민족주의자를 공격한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중앙일보는 현재까지 반민족행위자를 대변하고 일본을 위해 일하는 사이비에 준하는 언론정책을 거리낌 없이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제주4.3의거 폭력진압 주도자인 이승만과 경상도, 평안도 친일파 및 친일부역 서북청련단의 주도하에 제주도의 토지와 자산을 강제로 탐닉 하고자 제주도(과거 전라도)와 추자도(과거 완도군)를 호남에서 분리시킨 것과 함께, 이승만은 충청도 친일부역자등 모략 농간을 받아들여 호남의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을 호남에서 충청도로 행정구역 개편이라는 빌미를 만들어 편입시킨다.
당시 김구 수상의 후인들은 조선팔도의 올바른 역사에 근거 조선팔도의 행정개편을 검토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경상도 하동군, 남해군, 산청군, 사천시 등 진주 남강 줄기 남쪽은 호남, 남강 줄기 북쪽은 경상도로 개편을 준비했다.
(옛 고대국가는 국경선을 큰강줄기, 큰산맥을 기준으로 경계를지었다. 지금처럼 측량한 "잣대"로 "인구"숫자로 "거리"로 하지 않았다)
경상도 진주시 진주성(남강 북쪽)은 옛 신라의 영토로 경상도, 진주성 남강 건너편은 옛 백제 영토로서 호남에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려 했으나, 친일부역자가 조선팔도에서 가장 많은 수와 비율(91.5%)을 차지하는 영남(경상도) 친일부역자들 농간에 역사 근거의 행정구역 개편은 좌절 되었다.
또한 충청도의 금강 이남인 부여까지 호남으로 하는 행정개편을 검토하고 있었으나, 이 모두 충청도 친일부역자들 농간에 지금의 행정구역 개편이 된것이다.]
※첨언: 화하족 흉노(匈사람흉ㆍ奴노비노)?
역사와 민족 구분에 있어서? 하화 민족은 중국 장강(양쯔강)이남 키작은 순수 한족계 민족 지칭한다.
화하노비(남흉노)지칭?
진나라때 왕조(예맥 동이족)에 반혁 모반을 꾸몄으나 실패후, 온갖 도적질과 인신매매, 강간 등 범죄를 저질러 진나라 군대에 쫓기어 떠돌던 양쯔강 남쪽 반혁 반란 범죄무리를 남흉노로 지칭된 무리이다. (북방의 흉노와는 엄연히 다르게 구별된다)
화하족의 반혁 범죄집단 무리는 도망쳐 이곳 저곳 쫓기어 떠돌다 한반도 동이족에 귀의하여 한반도 동남쪽 경주에 신라를 세우다.
이또한 조선 동이족 왕조가 오갈되 없이 떠돌던 이들에게 신라라는 국호를 내려준다.
공자의 "동이열전" 및 "산해경", 사마천 "사기" 등등 여러 고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동이족인 북위 왕조 후손으로 공자와 사마천은 동이족 이다)
신라ㆍ당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 침략 전쟁이후, 신라는 제일 우선하여 자신들의 과거 역사기록등을 감추고 신라왕조 명분 쌓고자 백제, 고구려의 사서와 궁궐에 불을지르고 모든 역사사를 파기한다.
이러한 화하족 신라의 행위로 수만련 마고문명 예맥족(동이족)의 고대 역사서 "마고, 환국, 배달, 조선, 부여, 선비, 북위, 구려, 백제, 류국의 기록이 재가 되고 만것이다.
(당 역사서 등에 이에 대한 수많은 기록 보존)
35년 일제 강점기 왜구족 일본이 저지른 범죄보다, 하화족 신라가 당과 손잡고 저지른 배반과 고대 역사서와 문화재를 불태우고 파기한 반역죄, 당과 싸울때 백제와 고구려 등뒤에서 칼꽂은 범죄가 일본 보다 수만배 더욱크고 무겁다.
(일본이야 백제가 수백년을 문화도래와 지배한 나라 아닌가!)
신라 진평왕과 김춘추의 배신의 역사는,
고구려 연개소문을 찾아가 조아리며 신라와 함게 백제 침략을 요청하였으나 연개소문 단칼에 거절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일본에 찾아가 신라와 함게 일본이 백제 침략 하자며 요청하였으나 이도 단칼에 거절되었다.
신라 김춘추는 수나라 문황제에게 동일하게 백제를 침략하면 뒤에서 도모하겠다고 약조하며 백제 침략을 요청하였다.
수 문황제는 백제보다 고구려를 1차 선제 공격한다.
수나라가 패하자 고구려 후미 침략을 준비하던 신라는 수나라와 약조를 깨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신라의 약속 불이행으로 수나라가 패한다.
이후 수나라 양황제에게 또다시 신라 김춘추가 찾아가 조아리며 백제를 공격하면 후미에서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여 승리로 거둔후, 고구려 공격을 협력하여 후미에서 고구려 공격을 취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수나라 양황제는 2차 고구려를 선제 공격을 하였고, 이에 못마땅하고 고구려와 백제의 협력으로 신라를 후에 경격할 수 있다는 신라 조정의 의견에 수나라와의 약조를 깨고 2차 수ㆍ고구려전쟁에 지켜만 볼뿐 참여하지 않았다.
수나라가 망한후, 신라 김춘추는 또다시 고구려 연개소문, 일본 왕, 수 문제, 수 양제에 이어 5번째로 당 태종을 수차례 찾아가 조아리며 과거 수나라 문제, 양제 황제에게 약조하듯 백제 침략을 요청하였다.
이에 당 태종 이세민은 백제를 선제 공격하면 뿌리가 같은 고구려가 백제와 협력하여 당의 북방을 공격할 수 있다며, 선제적으로 고구려를 공격 하였으나 1차 고구려ㆍ당 전쟁은 당의 패배로 전쟁이 끝났다.
신라는 또다시 수나라와의 약조를 깨듯 당나라와의 약조를 깨고, 고구려 후미 공격을 미루다 전쟁은 당이 패하며 고구려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또다시 김춘추는 당 태종 이세민이 죽은후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당 고종에게 찾아가 또다시 6번째 같은 내용으로 백제 침략을 신라와 협력하여 공략을 요청한다.
김춘추는 수 문제, 수 양제, 당 태종이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백제를 선제 선제적 공략치 않고 고구려를 선제 공략한 전략적 실패라며, 신라가 제시한 선제 백제 침략을 하지 못하였기에 신라도 백제의 신라 공격이 예상됨에 고구려 후미 공격을 못한것이라며, 간사히 조아리고 당 고종을 수차에 찾아가 설득하여 결국 당이 급습 기벌포 침략으로 백제를 공략한 것이다.
결국 화하족 신라로 하여금 백제, 고구려가 망하게된 것이다.
백제는 해양제국으로서 해군이 지금의 일본, 류큐, 홍콩, 해남성, 광시장족성, 마닐라, 쿠알라룸푸르, 싱가폴, 하노이, 대만, 인도 안다만, 인도 본토, 아이누(북해도), 사할린 등에 진출되어 있어 다급히 백제 본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당ㆍ신라의 급습에 패하게 된것이다.
고구려 역시 신라와 당이 협력하여 백제를 침략하였다 하나, 그리 쉽게 백제가 수많은 제후국(일본, 류큐, 여러 ... 담로 국)을 거리린 나라가 패할거라 예견치 못한것이다.
당은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을 끝내고 신라마저 자동 당에 수복되어 모두 당의 영토로 확장한 것이다.
화하족 통일신라 라는 표기는 근대에 이나라 한국 역사에서 신라민 후손 친일부역자 후대 반역자(친일 이완용의 손자 이병도 등) 역사가들이 국정교과서 방식으로 사기적 표기일 뿐이다.
수ㆍ당나라 또한 북방 예맥족의 후손으로 한 뿌리이며 진정한 예맥 환국배달 조선의 진정한 적자를 가리기 위한 전쟁이지 민족이 다른 나라간 전쟁이 아니었다.
당시 같은 뿌리인 부여, 선비, 연, 돌궐, 거란, 말갈, 알타이, 타타르가 존재했으며 이후 발해가 등장한다.
결국 뿌리가 다른 (양자강 이남 순수 남중국 민족)하화족 신라의 이간질 배반행위로 같은 뿌리의 예맥(곰,범)민족간 진정한 적자가 누구냐를 놓고 싸운것이다.
전쟁이후 신라가 제일 우선하여 시행한 정책은 백제, 고구려 역사서를 불지르고 문화재를 탈취와 당에 모두넘긴 것이다.
화하족 신라의 이러한 역사서ㆍ사고를 파괴한 결과로 수만년 문화 역사와 고토 잃어버리고 뿌리의 기록을 불태우고 파과하며 거짓역사 기록으로 오늘날과 후대까지 고토와 역사가 단절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화족 신라 후손 고려시대 이인임, 조선시대 이인좌, 김성일, 원균, 대한제국 이완용, 박정희, 한국시대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까지 처절한 이적행위 반국가 부역자를 양산하고 국민에게 온갖 반민주 범죄, 군사내란, 경제파탄, 사이비역사, 사법적폐, 신라집중 경제주의, 민족자존/역사, 문화파괴 친일ㆍ친미를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역사른 바르게 기술하지 않고, 진실을 교육하지 않은 썩은 적폐 반민족행위가 처벌과 함께 단죄시키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된다.
화하족 그들은 지금도 그지역민 다수의 사람들로 이익을 위해 반민족행위 부역자 추종 찬양하는 그룹이 있는데 일베, 뉴라이트, 어버이연합, 어머니회, 박사모, 태극기부대, 기독교연합, 박정희 추모회, 하나회, 친일 일진회, 친일 지자회, 신천지, 양우회 등 곳곳에 숨쉬고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이며 그들 다수의 후손들 까지도 뒤를 이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화하 흉노족의 유전 DNA는 신라 왕족과 김춘추, 김유신, 김흠신, 고려 이인임(모반), 조선 이인좌(모반), 김성일, 이완용(친일 이적), 대한 박정희(친일 이적 모반), 전두환(친일 모반), 이명박(친일 사기), 김기춘(사법 적폐), 조희팔(사기), 조현천(군사 모반), 이만희(신천지), 다수의.. 주가조작(신라젠 등) ... 등 수많은 배신과 배반, 사기, 횡령, 경제파탄, 매국행위 등이 신라계에서 많이 유독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것과 인구10만명당 15대 강력범죄 "살인, 사기, 강간, 배임, 횡령, 밀수, 마약, 이적(매국), 금융(경제 자본거래법위반), 기술유출, 아동성행위영상물촬영유포, 탈세(세금), 사법적폐, 군사내란, 사이비종교(신천지), 역사왜곡, 매국이적, 공직인사부정청탁" 범죄 등 모두 타지역 추종을 불허 하는 넘사벽 전국1위를 차지하는 객관적 결과는 유전인자 DNA와 대대로 가족력 학습 효과와 폐쇄적 멘탈리즘에서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시민이 친일행위 부역자(이적:적을이롭게하는행위)를 숭상하고 추앙하고 영웅시되는 하화족 신라계, 유전적으로도 일본이 동일한 유전 DNA 인자가 자리잡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증거가 뒷받침 된다(조선 징비록, 난중일기5권, 동이전, 산해경, 사기, 당고서, 일본사기, 신채호).
1차 화하족 유전에 2차 왜구족(혼슈) 유전이 추가 결합된 결과이다. (자신도 모르게 예맥족 조선보다 왜구족에 마음이 끌리고 가슴과 행동이 앞서 땡기는 것은 지역민의 오랜 학습 효과와 유전DNA의 결합 결성체 이다)
중국 양쯔강 이남 화하민족의 특징은 키가 왜구(일본 혼슈인)인 처럼 작으며 자연스레 이야기 할때 급하고 큰소리로 떠들듯이 시끄럽고 과시욕이 많으며 분열주의적 성향과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무한히 엎드려 조아린다는 것과, 국가ㆍ문화ㆍ규범ㆍ공동체에 대한 인지가 미약하고 사회 공감능력 부족과 강대국 침략국에 대한 항거가 미약한 것과 스스로 중국내 강력한 국가를 옹립해 본적이 없다.
(제주도 관광객중 주변에서 소란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다수가 중국 양쯔강 이남 하화족과 한국의 낙동강 상류 신라민으로서 쉽게 구분이 된다)
역사와 문화적으로 화하족은 중국 역사상 대국 왕조를 세운적 없이 남방지역의 하층민 계급으로 이뤄저 왔다.
중국의 일본과의 전쟁중에도 양쯔강 이남 하화족은 황하강 북쪽 예맥(동이)족과는 다르게 항일전쟁 치루지 않고 영토를 내주고, 난징 대학살까지 처참희 압살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고위층 일부는 대만과 말레이시아로 도망 피신한다.
황하강 북쪽 동이족(카자흐,타타르,사하,알타이,만주,몽골,조선) 과는 체구와 체형에서 확연히 드러나며 현재 중국 인구비율 90%이상 차지하고 대다수 주거지가 황하강 이남과 양쯔강 이남에 집중되어 있다.
화하족과 왜구족(일본 혼슈인)은 체구와 체형이 유사하며 근친 상혼이 많은 것도 유사하다.
서양에서 부르는 중국민족 베이징 원인은? 실제 양자강 이남지역의 하화족(바른명칭)을 지칭한다.
중국인들중 이야기할때 자연스럽게 무례하게 큰소리로 싸우거나 소리지르며 경박하게 이야기하듯 하는 사람들이 유전적 중국 양쯔강 이남 고유 한족이라 부르는 하화족을 지칭한다.
(황하강 북쪽 동이족은 만주, 한반도 동이족과 구별되지 않는다)
한반도에 화하족(남흉노)의 흉노 난민들이 이주한 신라계가 이와 동일한 유전 인자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에는 마고문명의 예맥족(동이족)과 양쯔강 이남문명 화하족이(화하원인)이 함게공존하고 있는것이다.
결과적으로 한반도 조선팔도에서 신라계(화하족) 경상북도가 가장 키와 체형이 왜소하고 다음으로 경상남도 이다.
조선 일본침략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왜구가 오랜기간 경상도에 집중 군 기지화 하고 장기간 주둔 원인도 한목 한다.(조선 징비록)
결과적으로 한반도에는 백의민족(예맥족 동이)과 동이족이 받아준 화하민족(남흉노 신라)이 함게 공존하는 것이며, 그로 인한 민족간 유전적DNA 확연한 차이로 비상식적인 역사적ㆍ문화적ㆍ 성품 성향적 분열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유전인자 DNA는 피보다 우선한다"
"이 시대에 유전인자 보다 더욱 훌륭한 것은 시대정신과 후대를 위한 올바른 역사교육과 미래를 함게 나아가려는 책임있는 문화공존 소통과 사회 공감능력을 배양하는 자세와 사실에 기준한 역사를 직시하고 학습하며 이해하려는 교육 바탕이 필요한 것이다"
"특정 지역민 화하족 신라계의 온갖 이적행위, 사회배반, 범죄자 추앙하는 그릇된 유전인자를 단칼에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실을 역사에 기록하고 즉시 즉시 단죄하는 것 뿐이다"
역사서에서 관용은 함부로 해서는 안됨을 증명 고증 말해준다.
예맥 은나라 왕조에 반혁 반란이 실패로 도망쳐 또돌던 남방 흉노(사람흉ㆍ노비노) 화하족 신라와 그 후민들의 배반 행위를 거울삼아야 한다.
지금 이순간에도 일본 역사왜곡 극우 사사키 로비 단체에 뒷돈을 받으며 역사왜곡 일본찬양, 북한선제공격론, 위안부 소녀상 철거 및 훼손과 무고 형사 고발이 자행되고 있으며 강제 징용자 분들 모욕하고 한국의 역사와 민족을 폄훼하고 자국의 대통령에게 일본 총리에게 무릎꿇고 사죄하라는 모욕적 발언하는 화하족+왜구족=○이 설치는 것은 범죄행위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지않은 것과 진실을 역사에 기록하고 가르치지 않은 우둔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입에 오르내리기 힘든 최악의 악행도 진실을 알리는 역사에 기록되어 전례되어야 하며, 현재는 단일민족이 아님을 있는 사실 그대로 직시하고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전례되어야 만이 진정 화합하고 앞으로는 동일한 문제를 쉽게 그리고 과단성 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학교에서 공개되어야 역사서로는 예제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5권(보경편), 동이전, 신채호역사서, 산해경, 동이전, 사기, 일본사기, 당 사서 등은 신라가 불태운 고대 역사서를 대신하여 재 정립 서술해가며 기록하고 가르치고 알려야 한다.
또한 유전 인자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환경과 지식, 성향이 다르다며 배척하는 것보다, 역사의 진실과 참상을 논하는 시대적 방향성에 공감하는 투명하고 사실에 기반한 사회 공동체가 뿌리 박을 수 있도록 시대적 역사 뿌리를 고증해 나아가야 한다.
"친일부역 이적행위, 반민족 행위자 처벌은 못한게 아니라 단지 뒤로 미뤄두었을 뿐이다. 그날은 멀지 않아 곧 드리닥칠것이다. 거대한 해일 쓰나미처럼 예고 없이 와서 남김없이 쓰레기들을 쓸고 갈 것이다"
※위의 첨언: (그 누구도 말하지 않으려 하는 내용 옮기다)
반선 라파엘.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강의 록.
https://youtu.be/H5l4MGivfu4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천년의 전라도 청춘, 세계를 품다 1부.
https://youtu.be/eZ5xngFBS8k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천년의 전라도 청춘, 세계를 품다 2부.
https://youtu.be/TvvE39NCuv4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동학운동과 광주5.18민주화운동은 현재의 역사이다
https://youtu.be/ZdZwNahJ_Xs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동학은 평등을 외치다
https://youtu.be/6WISJkK9pbI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우리민족 역사적 체험은 세계사 주류형성
https://youtu.be/PRJxqkdKqLg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마가복음 강해
https://youtu.be/10MLfLlR99E
천년동안 사라지지 않을 이름 호남
ㆍ고려 현종의 몽진 고려의 뿌리 나주
ㆍ뿌리의 고유함 자부심
https://youtu.be/lbl3vkXYWrM
이름없는 영웅들이 지커낼 땅 호남
ㆍ이순신과 6명의 관군이 호남의병군 120명으로
ㆍ~1만명 이름없는 호남 해양의병
■국운이 바람앞 촛불과 같은 시기 호남의병 항쟁사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7XwC&articleno=15859926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1부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7XwC&articleno=15860365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2부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7XwC&articleno=15859761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3부
■화하족(양쯔강 이남종족) 신라기록 소개
[상고사, 삼국사기, 중국사기]
삼국사기는 사로와 서나벌이 변한 땅인데 진한6부라고 되어 있다.(삼국사기)
1. 『“신라의 선조는 본래 진한종이다. 진한(辰韓)을 역시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辰韓과 秦韓의 거리는 일만리나 된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진나라 시대에 사람들이 노역을 피해서 마한으로 왔는데 마한에서 동쪽 경계지역을 떼어주어 살게 했다. 그래서 이름을 秦韓이라고도 한다. 언어, 이름, 문물 등이 중국인과 유사하다. 마한과 같지 않다. 진한은 스스로 자립하여 왕이 되지 못하고 항상 마한(백제)의 제도를 따랐다. 진한은 처음에 6국이었다가 12개국이 되었는데 신라는 그 중의 하나다. 그 나라는 백제 동남쪽으로 5천여리에 있다. 국토는 동쪽이 대해변이고, 남북쪽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있다. 위나라 때는 신로이고, 송나라 때는 신라 혹은 사라였다. 사신을 파견하여 백제에 방물을 봉헌했다.“(新羅者 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居之. 故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有似中國人---不與馬韓同.---辰韓不得自立王. 恒爲馬韓所制. 辰韓始有六國. 稍分爲十二新羅卽其一也. 其國在百濟東南五天餘里. 地東濱大海. 南北與句麗,百濟接. 魏時曰新盧, 宋時曰新羅惑曰斯羅---始使使隨百濟奉獻方物---)』(梁書, 南史)
(해설)
①신라는 진한 땅이 아니고 그 조상이 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②여기의 마한은 중국 사천성에 있는 온조의 금마백제를 말한다. 기자조선의 마지막왕인 기준이 위만에게 망하고 배를 타고 사천성 성도지역으로 가서 “마한국”을 건국했는데 온조가 빼앗아 백제를 건국해서 마한백제, 금마백제, 온조백제 등으로 부른다.
③“언어, 이름, 문물 등이 마한백제와 같지 않고 중국인과 유사하다.“는 것은 사로의 원래위치는 고조선의 변한 땅인 감숙성 평량이남 땅이므로 진나라가 점령하여 전쟁과 장성축조로 노역이 심하니 도망한 부족들이다. 원래 진시황의 진나라는 지금의 청해성과 감숙성 남부인데 진나라 도읍을 섬서성 함안으로 이동 조작하여 중국 본토를 서이족들의 무대로 변조한 것이다.
④진한신라는 항상 백제의 관리 하에 있었고, 백제 왕족만이 신라왕을 할 수 있었다. 백제도읍인 사천성 성도지역에서 광서성 진한신라의 계림- 유주지역까지 옛날 거리로 5천여리가 된다.
■저서: 추악한 중국인(화하족: 황하강 이남)
백양 선생 아이오대학 1984년 대만, 1985중국출판
ㆍ더러웁고 어지럽고 시끄럽다
ㆍ내부투쟁 지역분열 단결력이 없고 이간질에 분열성에
ㆍ극히 고여 장독대 썩은물처럼 수구적이고 의심이 많고 자기만아는 변절자이다.
ㆍ서로 조화롭지 못하고 화합할지 모른다.
ㆍ남의 아품과 어려움을 격는자를 돕지 않는 민족성 이다.
ㆍ자기 중심주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뿌리깊게 박힌 민족이다.
ㆍ나만 예외라는 공식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논리가 횡행한다.
ㆍ위법에도 남은 안되지만 나는 된다는 이중성과 자아 과대 망상증 갖고 있다. 이러한 성향으로 남을 깍아내리고 질투하고 남이 잘되는것을 보지못하고 경시하며 질투하고 주위에 화를낸다.
ㆍ목청이 큰소리로 지껄일수록 자신이 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ㆍ하화족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로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를 뽑았다.
ㆍ하화족은 과오를 범해도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 과오를 덮기위해 무슨 짓이든 다하는 사람들이라 절대로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ㆍ하화족에게는 평등이라는 관념은 없고, 오직 우열과 주종관계만 항상 존재할 뿐이다.
첫댓글 https://youtu.be/PuQjBu2oe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