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安山] - 역사, 문화예술, 산업의 도시
안산의 지명에는 문화와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배어있다. 안산은 상록구와 단원구로 구성되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안산을 빛낸 역사적 인물과 관계가 있다. 상록구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존 인물인 최용신 선생이 안산에서 계몽운동을 펼쳐 얻은 이름이며, 상록구 관할인 본오동이 상록수의 실제 인물인 최용신이 활동하던 곳이다. 단원구 이름은 안산에서 태어난 화가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통해 문화예술의 고장임을 부각시키기 위해 김홍도의 호에서 딴 것이다.
안산 문화관광 http://tour.iansan.net/tour/main/main.jsp
고송정지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했다가 참화를 당한 김문기(金文起)의 손(孫)인 김충주(金忠柱)가 살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밤중에 도성을 탈출하여 여러곳을 전전하다가 화정동에 숨어 살면서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파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스스로 호를 탄옹(炭翁)이라 칭하고, 평생 고기와 술을 먹지 않고 베옷에 평립(平笠)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단종에 대한 마음이 변할때마다 단종의 묘소가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하였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명에 숨진것을 애통하게 슬퍼하여 흘린 눈물에 소나무가 말라죽었다고 한다
누에섬등대전망대 단원구 선감동 산170번지(누에섬)
단원 조각공원
자연과 조화롭게 서 있는 조각들은 안산시가 매년 단원예술제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매입하여 전시한 예술품들입니다. 30여점의 작품을 모두 야외에 전시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공원이며 전시된 조각들은 관람객들이 손으로 만져 봐도 손상이 가지 않는 단단한 작품들입니다.
대부도
동주염전 www.djsalt.co.kr
묵언마을
묵언마을 관계자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타계 후 자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예방활동 차원에서 행사를 계획했다"며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한 자살영가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라고 말했다.
묵언마을 주지 지개야 스님은 7년여 전 '자살자가 45분마다 한 명씩 발생한다'는 통계를 접하고 출가를 결심, 그동안 네이버 카페와 상담활동 등을 통해 수십여명의 자살을 막았다고 한다. 또 <묵언마을의 차 한 잔>이라는 책에선 '자살방지를 위한 10가지 자기 암시'를 소개하기도 했다.
경북 안동 출신으로 공기업 임원(축협 상무)과 정치인으로 잘나가던 그는 어느 날 마음의 소리를 듣고 태고종 소속 승가대와 동방불교대학을 다닌 뒤 쉰한 살에 계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됐다. 스님은 ‘꽃등심’이란 낱말을 최초로 만들어 ‘안동한우’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kbs. mbc. sbs. TV 및 라디오.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월간조선, 일본 nhk 2TV 등에 400여 회나 보도 방영되었다고 한다
베르아델승마클럽 http://www.horseride.co.kr/
체험승마, 가족단위의 1박2일 프로그램이나 단기체험 승마강습도 가능합니다. 안전모, 장갑, 부츠 등 기초 장구는 무료로 대여합니다. 푸른 자연과 함께 오늘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려 보세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1689년(조선 숙종 15)에 창건되어 창건 당시에는 수정암(水井庵)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부근에서 1576년(선조 9)에 만들어진 기와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1576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69년(고종 6) 12월에 중창했다.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요사채 2동이 있고, 유물로는 목조아미타불좌상과 아미타후불탱화·현왕탱화·신중탱화·독성탱화·지장탱화 등이 전한다. 그밖에 인근에 부도가 남아 있으며 명문이 적힌 기와조각이 많이 발굴되었다.
성호기념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 중 한 사람으로 고향인 안산에서 평생을 지내며 학문연구에 몰두한 성호 이익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지어진 기념관이다. 9,246㎡의 부지에 기획전시관, 수장고, 상설전시장 등을 갖추고 성호 이익의 사상과 학문에 관련된 유물과 실학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근에 이익선생묘와 단원 조각공원, 식물원이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다.
이익(李瀷, 1681년 10월 18일 ~ 1763년 12월 17일)은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사상가, 철학자, 실학자, 역사가, 교육자로 조선 영조 때의 남인(南人) 실학자이다. 조선후기 태동한 실학은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직된 전통 유학으로부터 현실에 적용하여 실용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학문 방향을 모색한 유학의 한 분파이다. 실학은 이전의 성리학적 가치관과 완전히 결별한 전혀 새로운 사상이 아니라 유학 속에서 민생을 도모하는 실용성을 찾아낸 당대 유학자 지식인들의 자기반성적 고뇌와 노력이 깃든 사상이었다. 그들 모두가 추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국가와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있었다. 그 중 토지를 바탕으로 한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을 꿈 꾼 이익(李瀷 1681~1763)은 많은 제자를 두고 자신의 호를 딴 성호(星湖)학파를 형성함으로써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호사설(星湖僿說) 조선 후기 때의 학자인 이익(李瀷)이 쓴 책. 성호는 이익의 호이며, 사설은 세쇄(細瑣 매우 가늘고 작음)한 논설이라는 뜻으로 이는 작가가 겸사로 붙인 서명이다. 저자가 40세 전후부터 책을 읽다가 느낀 점과 흥미있는 사실을 기록해둔 것과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내용들을 그의 나이 80에 이르렀을 때에 집안 조카들이 정리한 책이다. 이를 그의 제자 안정복(安鼎福)이 다시 정리한 것이 ≪성호사설유선(星湖僿說類選)≫이다.
화포잡영(華浦雜詠) 이익 선생은 화포잡영(華浦雜詠:지금의 본오동, 사동, 성포동 일부가 모두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이 갯벌을 화포라고 했다)이라는 시에서 “저 넓은 갯벌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소금끼를 없앤다면 광활한 옥토가 되어 농토가 없어 굶어 죽는 백성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니 좋은 계책 백성에게 물어 이루라" 라고 읊었으니 이익 선생의 간절한 이상이 200여년 후인 이제야 이루어져(시화호) 안산 시민들이 바다를 메꾸어 아파트를 짓고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익 선생의 방대한 저서는 후손들이 귀중하게 보존해 오다 국립중앙도서관 및 성호기념관에 기증하여 보존되고 있다.
성호문화제 안산시에서 출생한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을 기리는 종합 축제로, 이익선생숭모제와 문화유적답사·전통문화행사 등이 펼쳐진다. <성호기념관>
안산식물원
열대식물원 야자류,초화류,선인장류 등 열대식물 3,000여본이 전시되어 있고, 물레방아 수족관, 장수풍뎅이 등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중부식물원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관찰할 수 있습니다.
남부식물원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품고 있습니다. 동절기에는 휴면하는 식물. 및 수목 16,000여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못과 수련 그리고 향기 나는 나무, 습지식물과 식용식물 등도 볼 수 있습니다. 성호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 성호공원을 둘러 봐도 좋고 가까운 곳에 노적봉폭포공원도 있습니다.
시화호[始華湖]
원래는 시화방조제를 건설하고 바닷물을 빼낸 뒤 담수호(淡水湖)로 만들어 인근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개발사업 주체의 의도와는 달리 방조제 공사 이후부터 주변 공장의 하수 및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 문제를 야기시켰다. 더욱이 수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성된 지 3년도 못 되어 이른바 '죽음의 호수'로 바뀌어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게 되었고, 개발 당시의 담수호 계획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따라 1998년 11월 정부는 시화호의 담수화를 사실상 포기하였고, 같은 해 12월 농림부도 시화호 물을 농업용수로 쓰지 않겠다는 방침을 환경부에 공식 전달하였다. 2000년 2월에는 해양수산부 역시 시화호 및 인천 연안을 특별관리해역 시범해역으로 지정하였고, 정부는 2001년 2월 공식적으로 해수호로 인정하였다.
이 시화호를 가로지르는 시화호방조제는 그 길 자체가 최고의 드라이브코스입니다. 전망대로 올라서면, 전망대 아래쪽으로 하늘만큼이나 드넓게 펼쳐진 습지는 생물들의 천국입니다
<시화호 갈대습지공원>http://sihwa.kwater.or.kr
<시화호 환경전시관>
시화호 조력발전소
시화호 주변에는 황새, 청둥오리 등 150종, 150만 마리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고 산조풀, 갈대, 칠면초 등 359종의 식물과 고라니, 너구리, 족제비, 살쾡이 등 12종의 포유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살아 숨쉬는 자연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어촌민속박물
제1전시실에서는 염전, 갯벌 등 어촌의 역사와 해안유적을 전시하고, 제2전시실 에서는 서해갯벌의 생태와 생산어종,어선 어구의 변천사를 통해 어업문화를 엿 볼 수 있으며 제3전시실은 어민의 삶과 풍속, 신앙 등을 통해 어촌의 민속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습니다. 대부도
오정각
조선 세조2년(1456) 단종복위(端宗復位)의 모의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참형을 당한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충절(忠節)과 공(公)의 자 현석(玄錫)의 충신정문(忠臣旌問), 손 충주(忠柱), 증손 경남(景南), 현손 약전(約前)의 효자정문(孝子旌門)이 각각 봉안되어 있어 오정각(五旌閣)이라 불리고 있다. 김문기는 조선 세종8년(1426)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정언, 함길도(함경도의 옛이름) 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른 문신이다.
최용신 기념관 http://choiyongsin.iansan.net
농촌계몽운동에 헌신한 독립운동가 최용신 선생 기념관
전시실 내부에는 최용신 선생이 활동하던 ‘샘골강습소’를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은 미니어처와 어렵게 발굴하여 채보된 교가(최용신 작사/1934년작)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상실에서는 영화 상록수와 최용신 선생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영상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된 중요 유물로는 최용신 선생의 건국훈장, 상록수 초판본(1936년)이 있으며 국어교재, 당시의 성경 등이 있습니다. 영상에세이, 생존제자의 인터뷰, 영화 상록수가 담긴 영상물 검색대가 있어 선생의 얼과 정신이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최용신(崔容信, 1909년 8월 12일 ~ 1935년 1월 23일)은 일제 강점기의 감리교 전도사이자 교육자이며 경기도 화성군 샘골(현재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에서 봉사한 농촌운동가이다. 소설가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의 모델이 되었다. 1931년 소설 『상록수』의 실제 인물인 농촌계몽사 최용신 선생이 부임하면서 학생 수가 120여 명으로 늘어나자 1933년 샘골강습소를 새로 건립하였다.
그는 유언을 통해 자신이 가르치던 천곡학당에 묻어달라 유언하였다. 그가 죽은 뒤에 그의 여동생 최용경이 와서 언니의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최용신의 묘소는 화성군 샘골에 위치해 있다. 후일 그의 약혼자였던 김학준 역시 사후 최용신의 옆에 안장되었다. 작가 심훈은 그를 모델로 삼아 소설 상록수를 쓰기도 했다.
최용신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으며, 2007년 안산 상록구에 최용신 기념관이 세워졌다
샘골강습소는 일제강점기 소설 『상록수』의 모델로 유명한 최용신이 1931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촌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YWCA의 파견교사가 되어 책임을 맡고 한글·역사·산수와 재봉·수예·창가·성경 등을 가르쳤던 강습소로, 당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위치하였다.
샘골교회 1907년 7월 3일 반월면 사리 샘골마을에 사는 홍원삼과 홍순호 형제가 사리[샘골]의 한 가정집에서 예배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1929년 장명덕 전도사에 의해 샘골학원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1931년 소설 『상록수』의 실제 인물인 농촌계몽사 최용신 선생이 부임하면서 학생 수가 120여 명으로 늘어나자 1933년 샘골강습소를 새로 건립하였다. 1998년 11월 교회를 증축하면서, 천곡교회에서 샘골교회로 교회명을 바꾸었다. 심훈의 소설인 『상록수』의 실제 배경인 곳으로 문학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큰 교회이다.
상록수[常綠樹]
고등농업학교 학생인 박동혁(朴東赫)과 여자신학교 학생 채영신(蔡永信)은 모신문사가 주최한 학생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우수 대원으로 뽑혀 보고회에서 감상담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학업을 중단하고서 ‘고향을 지키러’ 내려가기로 약속한다. 박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채영신은 기독교청년회연합회 특파로 경기도 청석골[靑石洞 샘골마을]로 각각 내려가 농촌사업의 기초작업에 들어간다.
두 사람은 각자의 형편과 사업의 진행 과정을 편지로 알리며 서로 의논한다. 두 사람의 동지 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3년쯤 지나 후진에게 일을 맡길 수 있을 때에 혼인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역경에 휘말리게 된다. 채영신은 과로와 영양실조로 점차 몸이 쇠약해지다가 학원 낙성식장에서 하객으로 초대된 박동혁이 보는 앞에서 맹장염을 일으켜 쓰러지고 만다. 박동혁은 악덕지주 강기천(姜基千)의 농간에 휘말리다가 투옥된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채영신은 서울 연합회의 주선으로 요코하마(橫濱)로 정양 겸 유학을 떠나나 곧 돌아온다. 다시 일에 몰두한 그녀는 각기병에 맹장염 재발로 숨을 거둔다. 출감한 박동혁은 채영신의 죽음을 알고서 비탄에 잠기나, 곧 두 사람 몫을 해낼 것을 굳게 맹세한다.
상록수역[常綠樹驛] 안산시 상록구 본오제3동 875번지에 있는 지하철 4호선 역 이름이다. 심훈의 ≪상록수≫ 실제 주인공인 최용신이 항일운동과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터전 샘골을 상록수마을이라고 하고, 지하철 개통 때 역 이름으로 붙였다.
청문당
유시회는 선조의 부마가 된 어린조카 적(1595-1619)과 함께 선조가 내린 사패지인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집은 ㄱ자의 안채와 ㄱ자의 사랑채가 마주보고 있으며, 현재는 후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일자형의 바깥채가 중앙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기 타 -------------------------------
김홍도[金弘道] 김홍도의 고향이 어디인지는 아직까지 확실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경기도 안산 (安山) 부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의 화가. 산수화·인물화·신선화(神仙畵)·불화(佛畵)·풍속화에 모두 능했고, 특히 산수화와 풍속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된 뒤 1771년(영조 47)에 왕세손(뒤의 正祖)의 초상을 그렸고, 1781년(정조 5)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렸다.
김홍도는 7∼8 세부터 20여세까지 이곳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豹庵 姜世晃) 선생으로부터 그림과 글 수업을 받았으며 그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단원미술대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가인 단원 김홍도의 높은 예술혼의 계승발전과 단원의 도시인 안산을 미술의 도시로 발전시키고자 '99년부터 시작되어 짧은 기간이지만 전국 미술 공모대전으로는 최상의 작가지원, 최대 규모, 높은 작품 수준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전기간에는 500여점의 수준 높은 수상작품들이 한 자리에서 전시되며 무료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세충렬문 임진왜란때 순국한 김여물(1548~1592)장군의 애국충정과 병자호란때 청나라 군사가 침입하자 스스로 목숨을 던진 김여물 집안 4대에 걸친 고부의 열녀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하사한 충신 정문과 열녀 정문이다. 사세충렬문은 목조건물로서 사각기둥의 주심포 양식 팔자지붕이 특징이다
안산거리극축제 2005년부터 매년 5월 국내외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거리축제. 거리를 무대로 삶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는 세계의 광대들이 안산에 옵니다. 거리극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야외에서 소규모로 서커스와 마임, 저글링, 퍼포먼스, 퍼레이드 등 다양한 공연을 펼치는 연극 장르로 과천한마당축제, 남양주세계야외공연축제 등 국내 몇몇 행사에서 선보인바 있지만 본격적인 거리극축제로는 국내 최초입니다.
안산 맛집 이천영양돌솥밥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선 선정의 집
안산 맛집 단원한정식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점 100선 선정의 집
안산해바라기축제 그리움, 숭배, 영원한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해바라기 꽃이 매년 8월이 되면 안산시 도심 한가운데를 가득 메우고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2007년부터 개최한 해바라기축제는 전국에 있는 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친환경 축제이다. 해바라기가 개화하여 절정에 이르는 8월말경 다양한 문화공연과 해바라기체험들이 열리며 건강축제도 함께한다.
안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는 외국인 최대 밀집 지역인 안산·시흥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 지역의 외국인 고용 사업장 고용주와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충과 갈등을 해결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산업 현장의 평화를 실현하고자 설립되었다.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 2008년에는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주민센터에서 제공하는 각종 행정, 여가, 의료, 통역, 송금 등 한 차원 높은 서비스는 타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 1호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도권 전철4호선 ‘안산역’에 내리면 국내 최대의 거주외국인 밀집지역을 만 날 수 있다. 이곳은 행정 구역상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으로 다양한 세계 문화, 특히 음식문화가 어우러져 정착돼 있으며 지식경제부로부터 ‘다문화특구’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세계 67개국 4만5천여명의 거주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이 일대의 거리를 둘러보면 국내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가게의 간판 이름(수왈-태국, 칸티푸르-네팔 , 와룽키타-인도네시아 등)에서부터 상가에 진열된 물건, 각국 식당에서 풍겨나는 음식냄새 등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