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차.150120.화. 후포해변~망양정
모텔 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06:30에 길을 나선다. 상규는 몸이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다며 가벼이
출발한
다. 나도 한결 기분이 가볍다. 아직 어둡기는 해도
가로등이 길을 밝혀 랜턴을 켜지 않아도 된다. 계속되는 바
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가 상규의 마음도 흐뭇하게
만든다. 봄 날씨로 착각할 정도의 포근함과 맑은 하늘이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든다. 어제보다 더욱 뚜렷한 일출에 휴식 겸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고 사진을 찍는
다.
늘 보는 일출이라 생각하면 식상한다. 그러나 어제의 태양은 과거고 오늘의 태양은 현재다. 늘 새로울 수
밖에 없다. 약간의 굴곡은 있어도 높낮이가 없는 바다를
끼고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를 6 시간. 그리고
직산항을
지나 잠시 바다를 멀리 하다가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온통 수려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월
송정을 만난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도장으로 삼을 만한 곳 이었음을 인정할 만큼 주변 송림과 백사장이 절경
이다. 구산항을 지나고
봉산리를 지나는 중 80세 가까운 아주머니가 마당에서 가자미를 손질하고 있다. 타지
에 나가 사는 3남 2녀의
자식들이 좋아한다며 힘들게 손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자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외로운 당신이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대화 중 느낄 수가 있다. 의정부에서 시집 온지
60년 세월 동안 지
금은 혼자되어 바닷바람을 쐬며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데도 외지인을 대하는 표정만큼은 바다만큼이나 넓고
넉넉해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발 길은 언덕을 넘는다. 그리고 기성항에 이른다. 배고픈 차에 사랑의 밥집차
가 독거노인들을 위해 점심도시락을 배달 중이다. 남는
게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며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
다. 기성리에
있는 기성상회에서 먹거리를 사려했지만 오로지 술만 팔고 있었다. 기가 막히다. 다시 두어 차
례 고개마루에서 작은 터널을 지나는 길이 반복되고 사동리를 지나고 망양휴게소에서 식사를 한다. 오늘 목
표점인 망양정까지 무려 14Km가 남았다. 상규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면서도 가능성이 보여 아무런 말 없이
진행을 계속한다. 앞으로 세 시간이다. 날이 어두워지긴 했어도 바람이 없고 춥지도
않아 걸을 만 하다. 상규
가 정확한 표현을 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지친 것 같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없어 자꾸 말을 걸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의식의 세계에 빠진다. 그러면 걸음걸이는 자동이다. 마침내 19:30경 240m 거리 43m 높
이에
있는 망양정 앞에 도착한다. 왕피천찜질방은 휴업중이라는 정보를 얻고 울진 시내로 가는 버스를 알아
보니
이미 끊겼다는 것이다. 고맙게도 마침 슈퍼 안에 있던 동네 사람이 자기도 자주 걸어봐서 안다며 택시비
\12,000 거리의 시내에 있는 찜질방까지 일부러 태워준다. 오늘도
생각지 않던 난생 처음 보는 사람으로부
터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비싼 모텔도 아니고 민박도 아닌 평소
애용하는 저렴한 찜질방에서 자게 되니 마음
이 편하다. 전혀 경험 없이 무리를 하는 듯 하면서도 44Km를 무사히 함께 걸어준 상규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