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PEN 문학
권두 에세이
눈물의 美學
박경석
국제PEN한국본부 고문
눈물은 아름답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만 주신 참 선물이다. 지고 지순한 영혼에게 내리신 투명한 수정알이다. 눈물은 정결한 혼을 지닌 사람만이 누릴수 있는 카타르시스이며 고귀한 자기 승화의 작용이다.
눈물은 사랑이다. 눈물은 진실의 표출이며 인간이 구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의 신체로써 표현하는 미학이다. 인간이 신에 다가갈 수 있는 구원의 목소리가 기도라면 인간이 신에게 애원하며 용서를 비는 도구는 눈물이다.
소리없이 몰래몰래 눈물을 훔치며 가늘게 흐느끼는 여인, 보는 이의 가슴을 연민의 정에 젖어들게 한다. 사형수의 마지막 눈물은 그가 어떤 엄청난 죄를 저질렀을지라도 그 눈물로써 이미 관용과 용서의 영역에 들어선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의도 KBS TV에서 이산가족 찾기운동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느라 손수건 한 장을 흠뻑 적신 경험이 있다.
눈물 만큼 인간을 감동에 젖게하는 매체는 없다. 눈물 만큼 무서운 호소력과 설득력을 지닌 언어는 없다. 눈물 속에는 수천 개의 묵주알과 염주알이 숨어 있다. 그 만큼 눈물은 기원이며 순수이며 지성이다.
또한 눈물은 비극이며 절규이며 슬픔이기도 하다. 그에 반하여 갈채는 기쁨이며 환호성이며 축복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날 제16시집 제목을 '눈물갈채'라고 했다. 어찌보면 상반된 개념이다. 그런데 어떻게 '눈물갈채'라는 표현이 성립될 수 있을까.
무릇 최고의 악은 최고의 선과 통한다고도 한다. 최고의 슬픔은 최고의 기쁨과 통할 수 있다. 따라서 눈물과 갈채는 한 꼭지점에서 합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술의 경지이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까레라스 이 세 명의 성악가가 부른 감미롭고 장중한 아리아를 두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로마의 고대 유적지 카라카라에서의 공연은 '눈물갈채' 바로 그것이었다. 수만명의 청중이 운집한 그 유명한 유적지 공연장 무대에서 도밍고가 부르는 푸치니의 토스카 중에서 '별은 빛나건만'의 아리아를 듣는 순간 나는 오,하는 가슴 깊숙이 터져나오는 탄성을 질렀다.
그 감동을 무엇에 비기랴. 다음으로 등장한 지난날의 카루소, 마리오란사에 이은 당대의 톱 테너 파바로티가 흰 손수건을 모아 쥐고 부르는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아리아를 들을 때 모든 청중은 숨 멎고 마침내 그 곡이 끝나는 순간 그가 눈물을 글썽이며 흰 손수건을 들어 올릴 때 청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의 박수를 보낸다.
천둥 같은 하나의 혼으로 뭉쳐진 예술 작품이 전개되는 순간이 연출된다. 나는 몇 번 아니 몇 십 번도 넘게 이 순간을 디스크를 통해 되풀이하여 보며 들으면서 그 때마다 격렬한 예술미에 벅찬 이슬이 맺힌다.
파바로티가 부른 아리아는 기어코 '눈물갈채'를 유발하고 말았다. 예술혼의 극치는 바로 '눈물갈채'이다. 완벽한 예술작품, 최고의 선은 눈물이다. 때로 예술을 논할 때 미학을 논할 때 눈물이 배제된 경우는 이미 감동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이 시대에 무한한 예술의 경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과학과 접목된 예술은 더욱 우리들의 혼을 빼앗아 간다. 얼마나 행복한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가를 자각 할 때 참 예술의 눈이 트일 것이며 그럴때 감동의 눈물은 고인다.
눈물은 긍정의 소산이기도 하다. 긍정의 안경으로 사물을 관찰 할 때 참 모습의 예술을 감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 시각의 소유자는 참 예술에 접하기 힘들지 않을까. 따라서 눈물과 긍정 그리고 참 예술은 동일 선상의 형이상학이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청년 장교 시절이나 장성이 되었을 때에도 예외일 수 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배트남전쟁, 저 유명했던 맹호사단 초대 재구대대장(在求大隊長) 시절을 회상하여 본다.
1966년, 맹호6호작전이 계속되는 동안 베트남 중부 퀴논 북방 푸캇산 '죽음의계곡'에서 부하 장병과 함께 전투에서의 승리와 우리의 피해자를 줄이기 위한 기도를 했을 때, 나는 '남의 전쟁판인 베트남전에 참전한 불행한 현실' 과 '부하 장병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부하 장병의 안녕을 호소하자 전장은 온통 비통으로 가득 찼다.
나는 부하 장병에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 정글에서 잘 싸워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탈취해야 할 목표는 없다. 다만 군인정신 하나로 싸우자. 적병은 사살보다 포로로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유 우방은 물론 세계인을 감동시켜서 우리 조국을 가난에서 구해야 한다. 나라가 돈이 없어 새 무기를 살 수 없어 3류 군대로 여기 정글에 왔지만 1류 군대로 도약할 수 있다. 세계 모든나라 특히 북한군까지 자동화기로 교체됐는데 우리만이 지금 2차대전 당시의 구식 M1소총으로 싸우고 있지 않는가"고.
이역 만리 정글 속 전장에서 조국과 겨레의 핏줄에 감동이 점화되면서 대대장인 나와 800여 명의 부하 장병이 모두 울었다. 가난한 나라의 군대, 총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나라. 이런 조국을 위해 우리는 피를 흘려야 했다.
눈물로 뭉쳐진 재구대대는 그 작전에서 마침내 베트남전 최대의 전과를 기록하는 신화를 남겼다. 눈물로 감동한 부하 장병이 오로지 조국애와 사명감으로 싸워준 결과였다.
지금도 그 전투에서의 압승을 증언하듯 내 거실 벽에 걸린 많은 무공훈장들. 그 훈장은 나와 부하 장병의 피와 눈물의 결정체가 아니겠는가.
내 작품집이 새로 나올 때마다 하나의 자식을 또다시 맞는 기쁨으로 가슴엔 벅찬 눈물이 고인다. 아름다운 이야기, 정의, 사랑,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의 전우애 등 감상적인 사연에 접할 때, 영화나 TV를 보면서도 감동스러운 장면에서 특히 정의가 불의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순간 곧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의미가 독특한 눈물은 바로 멋진 예술작품을 발견 할 때이다. 그것은 혼탁했던 영혼이 마치 투명한 수정체로 환생하는 느낌이다. 아니 스스로 가장 맑고 정결한 영혼이 되는 느낌이리라. 나는 인간이 별에 다가가는 순간이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사랑하는 일이며, 둘째는 예술세계에 탐닉하거나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는 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홀로 성찰하여 진정으로 반성한 나머지 눈물짓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곧 별이며 꽃인 순간은 바로 이 세 가지 경우라 할 수 있다. 나는 언제고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이미 그는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뉘우치는 순간 벌써 별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그의 마음에 넘치고 있기에 울 수 있었던 것이다.
실지로 의학계에서는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건강에 매우 좋다는 임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태양 광선,오염된 대기, 인공조명과 컴퓨터 단말기, 혹은 콘텍트 렌즈 등 끊임없이 안구를 괴롭히는 요인들을 자연스럽게 해소 시키는 눈물은 메마른 눈에 수분을 공급하여 안구를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가시적이며 임상적인 면만을 다룬 한정된 내용에 지나지않는다. 눈물은 정결하고 지순한 영혼만이 생성하여 내보낼 수 있는 투명한 수정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의 미학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진다.
내 생애의 많은 오류와 자만과 결핍이 눈물로써 정화될수 있다면 내 문학세계 특히 시문학이 후대에까지 편편이 살아 숨쉬리라.
흔히 군대는 무정하고 메마른 곳으로 인식된다. 무뚝뚝하고 엄격한 질서만이 강조된다. 군인 세계는 눈물도 없고 사랑도 저만치먼것으로 상징된다. 그러나 실제 군대는 어느 집단 못지 않게 사랑으로 충만해 있다.
만일 사랑이 없는 군대라면 능률이 오를 리 없다. 결국 패배하는 군대가 된다.
나는 지휘관 시절 사랑으로 부하 장병을 보살피려 노력했다. 사랑을 극대화 시킨 진실은 바로 눈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부하 사랑을 표출 할때 그곳이 전장이라면 그 부하는 상관을 위해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다. 때로 전우애는 육친의 사랑보다 진하다. 그 전우애는 곧 조국을 수호하는 원천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나는 그 까닭으로 군 생활을 통해 문학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내 시문학에서 사랑의 의미는 주로 군 시절 배우고 익힌 서정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