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12월 20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삼국사기 정덕본 간행 500주년 국제학술회의 행사에서 기조강연을 부탁받았는데 아침 10시 발표여서 19일에 내려가기로 했고, 나는 가는 김에 울산의 도산성과 서생포 성을 들러보기로 결심을 해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10시 30분 신경주역 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울산에 살고 있는 올사모 회원인 바람님에게 연락을 했더니 공교롭게도 19일 여행계획이 잡혀서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사를 연구하는 장준호 교수의 동행을 요청했고, 그의 쾌락을 받아 함께 가게 되었다.
19일 아침 4시에 기상을 해서 조간을 읽고 7시에 투표를 했다. 투표장에 가는데 60정도 먹은 아주머니가 같이 가는 우리 일행에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쩔둑러리는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자신은 몸도 불편한데 투표를 하러 나왔다는 것이다. 신분증을 찾기 위해 의자에 앉아서 찾겠다고 했더니 젊은 관리인이 집으로 가시라고 하여서 화를 냈고, 그랬더니 투표관리 책임자가 사과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사과는 받았지만 화를 아직도 다 삭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위로하면서 가서 알아보고 사실이라면 혼을 내주겠다고 하고 보냈다.
투표장에 가니 아직 날이 완전히 밝지 않았는데 교문으로부터 현관까지 전등이 켜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노인들이 오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왜 현관불을 켜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어디서 전등을 켜야하는지 몰라서 못 켰다고 한다. 투표장이 설치된 것은 어제일일 터인데 어찌 이처럼 관리가 소홀할 수 있느냐고 질책을 했다. 아마도 준비가 소홀한 것 같지만 중학교 교문에서 투표장까지 전등을 켜지 않은 것이 단순 실수이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9시에 집을 나서 서울역에 도착을 해서 장준호군과 함께 임진왜란사 이야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12시 30분에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울산역도 있는 줄 알았는데 서울역에서 차표를 바꿀 시간이 없었음) 서울에서 경주까지는 옛날 같으면 걸어서 20일이 걸리는 천리길이다. 건천면에서 시내버스 700번을 타니 15분 만에 시외버스터니날에 도착했고, 곧바로 울산행 직행버스를 곧바로 탈 수 있었다. 차 시간관계로 점심은 경주참보리빵을 사서 버스 안에서 요기로 때웠다. 버스는 1시간 후 울산에 도착했다. (경주에서 울산은 80리이다) 시간은 2시였다.
우리는 태화동로터리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임진왜란의 전쟁 중 조명 연함군이 두 차례나 치열한 전투를 벌린 학성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이 전투는 도산성(島山城)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현재 학성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남쪽의 태화강이 잔잔히 흐르고 있을 뿐 고층아파트가 주위에 꽉들어차 헬리곱타를 타고 보지 않으면 앞만 보술 있는 우리들의 육안으로는 전체의 지형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탄 택시를 시간당 2만원을 주기로 하고 3시간 대절을 하였다.
울산 도산성은 남쪽은 높이가 50미터나 되는 절벽 위에 10미터의 산성을 쌓은 유적이 남아 있었다. 산성의 규모에 대하여는 이미 문헌(이형석의 "임진전란사 중권)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곳에서 조명 연합군이 두 차례 전투가 벌어졌는데 1차 전투는 1597년 12월 22일부터 1월4일까지 치러졌다. 명군은 경리 양호의 직접 지휘 하에 4만여 병력이 투입되었고, 조선측에서는 도원수 권율 이하 1만명이 참여하였고, 왜군은 가등청정 이하 약 1만명이 싸운 전투이이었으나 끝내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명군은 완전 포위작전을 폈다. 이 전투에 대하여는 이형석 장군의 "임진전란사" 중권에 가장 상세히 실려 있으나 이를 읽고서는 전황을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장의 지리적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헌사료만으로 전투상황을 설명한다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충분한 이해를 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때 도산성의 물길을 끊어 식수난에 가등청정은 엄청난 곤욕을 치루었다고 한다. 명군의 전투에서 지리 상황을 이용한 전투를 벌리지 못한 것이 최대의 실수였다. 성을 공격하려면 10배의 군사력을 가져야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일반 상식적 원칙논이다.
성을 공격하여 빨리 이를 함락시키려는 작전보다는 거리를 두고 차단하면 성은 식량과 물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상식을 이용하지 못했다.
도산성은 우뚝 섬처럼 솟은 곳이어서 사방에서 포위하기에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성을 공격할 때에 아군의 피해를 가장 줄이는 방법은 직접 공격이 아닌 포위작전이다. 이런 포위작전을 벌릴 때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군사훈련이다. 그런데 명나라 군대나 조선 군대 모두 이런 군사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또 포위작전을 하기에는 겨울의 추위가 큰 장애가 되었다. 이 1차도산성 전투를 포기하게 된 것은 배후의 서생포와 바다로 오는 일본 원군이 왔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사 연구에서 최대의 결점은 아군의 전사자가 몇명이었는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명군의 경우는 거의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승리했다는 점만을 기술하기에 전력을 다했다. 명군이 최후로 몇명이 돌아갔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울산의 도산성의 2차전투는 1598년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명나라 제독 마귀가 이끈 2만명여명과 아군측은 김응서가 이끈 5천여명이 가등청정, 흑전장정 등 1만5천명과 벌린 싸움이었다. 이 전투와 동시에 사천성의 도진의홍을 격파하기 위한 명제독 동일원이 이끈 명군과의 전투, 순천에 주둔하고 있는 소서행장을 잡기 위한 명제독 유정과 수군 진린이 이끈 순천 왜교성 전투가 함께 진행되었다.이를 사로군(四路軍, 東路軍, 中路軍, 西路軍, 水路軍)이라고 칭한다. 이 사로군 전투는 왜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최후의 전투였다. 세 성의 전투에서 모두 성공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울산도산성 전투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한 전투인데 후일 명군은 전승했다고 하여 대대적인 성공으로 미화시켰다. 특히 사천성의 전투에서는 명군 8000명이 전사했는데도 이를 숨기고 지휘관인 동일원은 귀국후 전승의 공로자로 포상을 받았다.
우리는 도산성전투의 배후지인 서생포성을 답사하기 위해 택시로 1시간을 달려갔다. 도산성은 울신시의 북쪽에 있고, 서생포성은 남쪽에 있어 60리 정도의 길이었다. 경주에서 울산까지가 80리이니 멀리 떨어져 있다. 도산성은 현재 주위의 성벽이 남아 있을 뿐 거의 파괴되었는데 서생포성은 가장 잘 남아 있는 왜성임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이 성은 동해안가에 있고, 남쪽에는 높은 산줄기가 뻗어 있고, 동쪽은 바다, 북쪽은 작지만 회야강이 흐르고 있으며, 서쪽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방어에는 천혜의 요새였다. 이는 외성과 내성으로 되어 있고, 내성의 성벽과 외성의 성벽도 잘 남아 있어 한시간 동안 답사를 했다. 그리고 경주행 5시 버스를 타고 우리는 떠났다. 서생포성에 대하여는 개인불로그를 통해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성은 1594년 5월경에 가등처정에 의하여 축조되었다고 한다.
12월 20일 경주뮨화유산연구원의 국제학술회의는 교원드림호텔에서 열렸다. 300명의 좌석이 꽉찼고, 올사모 회원인 바람님(이여사)도 참가해주셨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6시 30분까지 진행된 종합토론을 마칠 때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점이 참으로 인상적인 학술행사였다고 할수 있다. 이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가 지금까지 경주인에 의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공주와 부여의 백제문화행사와 큰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술진행을 담당한 직원들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 친절로 편하게 치루어졌습니다. 특히 김성혜팀장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12월 21일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경주최부자 400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힐튼호텔 대강당에서 열렸다. 나는 여기에 토론자로 초정되었다.기조강연은 박병호교수님이 하셨다. 가기 전에 모든 발표문을 읽고 갔다. 여기서 최부자 집안의 내력을 알게되어 나에게는 큰 소득이 있었다. 최부자는 임진왜란 때에 의병장으로 활약을 한 정무공 최진립으로 부터 12대 동안 만석군으로 알려진 집안이다. 일제시대 독립지원자금을 많이 보냈고, 1947년에는 대구대학에 전재산을 기부했으며 이것이 오늘날 영남대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집안은 가훈 6조가 특이하여 오늘 날 자본주의를 수정할수 있는 경영학적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최진립이 남긴 여섯가지 가훈은 다음과 같다.
1. 벼슬은 진사이상 하지 말라!
2. 재산은 만석 이상으로늘리지 말라!
3.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라!
4. 과객을 잘 접대하라!
5. 인근 백리안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6. 시집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그리고 최부자집은 문창후 최치원을 시조로 한다. 그는 1020년 고려 현종 때에 문창후로 시호가 올려지고 태학과 군현의 향교의 문묘에 배항되었다. 경주최부자집은 바로 경주향교의 앞 500미터 지점 교촌에 지어졌다. 최부자집은 참으로 부를 사회적 환원에 쓴 우리나라 기부문화사에 기록될 대표적 가문으로 존경스러움을 진하게 느겼다. 나는 8시 20분차로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였다. 참으로 많은 것도 많고 느낀 점도 많았던 3일간의 출장이었다.
사진
첫댓글 우선 교수님의 청년보다 더 높은 학구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저희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울산에 오셨는데 모시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고 오랜만에 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좋은 강의 잘 들었고 많은 사람들의 삼국사기에 대한 관심에 좀 놀랐습니다. 교수님도 글에 밝히셨지만...
근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할 거 같습니다. 울산ktx역이 최근에 생긴 것을 서울에 계시는 분들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읽으니 돌아서 돌아서 고생을 하신 거 같습니다. 울산 ktx역은 시내완 좀 먼 울주군에 위치하지만 직행버스로 시내까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오실 수 있습니다.
늦었지만 혹~~다음에 서울서 오시는 분들이 계시면 울산ktx역에 내리셔서 시내로 가는 5003번 직행버스를 타면 바로 학성공원(4,50분소요)앞에 내립니다.
도산성을 본 후, 학성공원은 교통요충지로 버스가 아주 많으니, 공업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셔서 공업탑에서 하차하여 그 자리에서 울산대공원동문으로 가는 버스로 환승하여 1정거장을 가서 그 자리에서 405번 버스를 타서 진하해수욕장앞에 내리면 그 곳이 바로 서생포왜성으로 가는 길목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다만 이 버스는 1시간20분 정도 간격으로 오는 버스이니 시간이 여의찮으면 남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남창에 내려서 택시를 타면 그나마 비교적 쌀 거 같습니다
볼거리가 풍부한 서생포왜성만 보신다면 울산 ktx역에서 5004번 직행버스를 타고 종점인 남창고등학교에 내리셔서 남창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 가장 빨리 갑니다. 다만 ktx역에서 남창까지 가는데 아마도 약 1시간 정도 소요할 거 같습니다.
이 곳이 아무래도 울산외곽에 있다보니 그다지 교통이 편리한 곳이 아닌지라 대중교통으로만 가려면 좀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성공원의 도산성은 도심에 있다보니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학성공원은 구 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도심에 위치합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울산의 교통요충지여서 어디서든 저 곳을 대중교통으로 가기는 아주 쉬운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제주도 가는 싼 표를 두어달 전에 예약하면서 19일이 선거일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인식했을 땐 부재자투표 신청기간도 이미 끝난지라... 투표때문에 고민이 되어서 가장 좋은 출발시간인 제주-부산의 17시10분표를 취소하고 2만원을 더 주고 2시50분 표로 바꾸어서 6시에 거의 임박하여 투표를 했답니다.
제 남편이 터미널까지 마중나와 픽업을 했기에 가능했지요.
그래서 아마 저 같은 50대 투표율이 경이적인 89.9%(저도 일등공신^^)에 도달하지 않았을까요? 누워있는 사람과 출장 등으로 피치못할 사람만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렇게 투표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답니다. 교수님도 새벽6시 투표하시고 먼 여정 떠나셨네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구세대는 이렇듯 선거에 적극적이고..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보이는 신세대인 2,30대의 자녀들과의 갭은 점점 멀어짐을 오늘 인터넷신문에서 접하네요.
무상교육, 무료급식과 반값등록금에 반대한 구세대는 지하철무료혜택과 기초노령연금혜택을 포기하라고 논쟁이 일고 있더군요.
기사를 읽고 수많은 찬반댓글들을 체크하면서 가슴이 답답해옴을 느꼈고, 그들의 주장 중 다른 건 몰라도 지하철무료는 일부대도시(서울, 경기, 부산, 대구, 광주)의 돈 많은 노인들만 혜택을 보고 막상 시골에 사시는 노인분들은 버스비를 주고 버스를 탄다는 말은 공감이 되긴하더군요.
갈 길이 멀어보이는 통합입니다.
울산역이 있다는 사실은 후에 알았습니다. 서울역에서 표를 바꿀 시간이 없었습니다. 독자를 위해서 수정해놓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울산의 서생포성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두 곳을 모두 한번 훑어 보려고 했습니다. 도저히 시간이 짧아서 택시 대절을 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 곳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맞습니다. 교수님은 짧은 시간에 두 곳을 모두 보셔야하니 택시대절을 하신 것은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전 대중교통으로 저 곳들을 가는 방법을 설명했구요. 아침 일찍 오시면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되어서 설명드렸습니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택시는 한 두 번 타야할 거 같구요. 그만큼 교통이 좋지 않은 곳에 위치합니다.
서생포왜성 가까이 간절곶이라는 울산관광명소도 있습니다. 아주 경치가 좋은 곳이고 1월1일 해맞이 장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라고 호미곶과 서로 경쟁하는 곳이랍니다.^^
울산이란 도시를 처음 가봤습니다. 바쁘게 다니다 보니 울산 소개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KBS1에서 어제 종료방송된 주말 연속극 메이퀸을 잘보았습니다. 울산의 새로운 국가산업단지로 다시 활기를 찾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바람님과 같은 문화시민이 살기에 좋은 곳입니다. 다음 따뜻할 때에 며칠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