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참법문(小參法門)
-2020.4.2.화엄전. 無比스님-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이 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화엄경 이세간품(離世間品)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이 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설함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매우 깊은 법을 설하고, 넓고 큰 법을 설하고, 갖가지 법을 설하고, 일체 지혜의 법을 설하고,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설하고,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을 설하고,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설하느니라.”
심심법(甚深法)
“매우 깊은 법을 설한다.”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끊임없이 자기 향상과 자기 발전을 위해서 지혜와 자비를 증장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가르침으로 구제하려고 합니다. 그런 이는 매우 깊은 법을 설하지요. 법도 천차만별입니다.
불교라는 이름하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장 소중하고 존귀하다고 생각을 해서 법을 설합니다.
그런데 참 거기에는 여러 가지 차별이 있습니다.
여기 이세간품에서는 깊은 법을 설하고, 그다음에
광대법(廣大法)
“넓고 큰 법을 설하고”
넓고 큰 법, 많은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법을 설하고
종종법(種種法)
“갖가지 법을 설하고”
가지가지 법을, 중생의 근기가 또 가지가지다 보니 가지가지 법을 설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가지가지 법을 설하고
일체지법(一切智法)
“일체 지혜의 법을 설하고”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것이 궁극에는 지혜를 터득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실상에 대해서 평등한 이치와 차별한 이치, 그 모든 이치들을 다 꿰뚫어 아는 지혜를 일체 지혜의 법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설하고
수순바라밀법(隨順波羅蜜法)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설하고”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은 뭡니까?
6바라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등 이러한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설하고.
그 6바라밀이 우리 불자들의 기본수행 원칙입니다.
일단 그 여섯 가지는 실천하려고, 노력하려는 마음 자세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을 설하고
출생여래력법(出生如來力法)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을 설하고”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을 설한다.
궁극에는 여래의 힘,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다 갖추어져 있는 이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도록 해야 합니다. 감추어져 있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지요. 그래서 그것을 출생하는 법을 설하고
삼세상응법(三世相應法)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설하느니라.”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어느 장소에서는 맞고, 어느 장소에서는 안맞는다든지, 어느 때는 맞고 어느 때는 맞지 않는다든지 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편설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진리와 진리가 아닌 방편설을 나눠서 이해하는 길이 바로 그렇습니다.
장소와 때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가르침이라면 진리고, 때가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시절이 다르다고 해서 만약에 맞지 않는 말씀이라면 방편설입니다.
그 장소, 그러한 시대, 그러한 환경, 그러한 풍토에서만 딱 맞고, 그것이 변하고 다른 국토라든지 다른 시기에는 맞지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방편설이다.
이렇게 나누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진리와 방편설을 분별하는 아주 좋은 기준이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말한다.
물론 깨달으신 보살은 당연히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지 서로 상응하는 법을 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보살불퇴법(令菩薩不退法)
“보살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을 설하고”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을 설한다.
저도 늘 법을 전해준다고 제 나름대로는 힘을 다해서 하지만 저의 소견이 몇 푼어치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늘 경을 근거로 해서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이나 보살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어떤 우리 부처님의 법에서 물러서지 않지요.
그렇지 않고 제 개인이 한순간 어떤 이치를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을 가지고만 말하면 사실은 온전한 법이 못되기 때문에 물러설 수가 있습니다. 그 말에 물러서는 수가 있어요.
보살은 물러서지 않게 하는 법을 설한다.
찬탄불공덕법(讚歎佛功德法)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을 설하고”
부처님의 공덕, 역사적인 석가모니 부처님 좋습니다. 아미타불 좋습니다. 경전에 나타난 부처님이라든지 아니면 역사적인 부처님이라든지 또는 우리 마음의 공덕, 그것을 우리가 찬탄하고, 마음의 능력, 마음의 무한한 가능성 그것을 잘 이해해서 제대로 설한다면 참 좋은 일이죠.
그 모두를 포함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을 설하고.
사실은 우리 마음 부처님을 우리가 잘 이해해서 그것을 끊임없이 설한다고 하더라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끝도 없이 설할 수 있는 자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궁무진하지요. 그것이 우리 마음 부처님의 공덕입니다. 그런 마음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을 설하고
일체보살(一切菩薩) 학일체불평등(學一切佛平等) 일체여래경계상응법(一切如來境界相應法)
“모든 보살들이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모든 여래의 경계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말하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모든 보살들이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운다.
모든 부처님은 평등하지요. 그리고 그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모든 보살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모든 여래의 경계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열이니라.
*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공교한 말하는 법을 얻느니라.”
아주 최상가는 선교의 설법을 할 수 있다.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지님이 있다
이세간품(離世間品) 일련번호는 34번이 되겠는데요.
‘보살은 열 가지 지님이 있다’
열 가지 지니는 것이 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법을 지님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소집일체복덕선근(所集一切福德善根)
“이른바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선근을 지니고”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선근을 지닌다.
사실 우리 모든 불자들은요 그리고 철이 좀 든 사람들은, 또 지혜가 좀 있는 사람들은 평소에 복덕을 닦을 줄 압니다. 지혜도 어느 정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선근도 어느 정도 닦을 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 지니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 복을 지어놓고도 그것을 우리가 한두 가지 실수로써 지어놓은 복을 까먹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지요.
만약에 그걸 까먹지 아니하면 얼마나 많이 모이겠습니까? 돈을 버는 것도 그렇습니다.
돈을 벌기는 버는데 늘 사용하니까, 써버리니까, 그러니까 돈이 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돈을 모으는 일이라든지 복덕이라든지 선행이라든지 이런 것을 잘 지었으면 그것을 모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선근을 지니고’ 잘 모아서 지녀야 된다는 것이죠.
일체여래소설법(一切如來所說法)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지녀라.
많이 지니면,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 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처방전으로써 아주 적절한 처방을 할 수가 있는데, 입에서는 맴도는데 도대체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것 지니지 못해서 그래요. 제대로 확실하게 지니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이 탁 나와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저로서는 늘 염두에 두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일체비유(一切譬喩)
“일체 비유를 지니고”
비유, 경전이라든지 어록이라든지 이런 데 얼마나 많은 적절한 비유가 있습니까?
그것을 공부하고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얼른얼른 그때그때 적절하게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지니지 못해서 그런 거죠.
여래의 말씀한 법을 지니고 또 이어서 비유, 일체 비유를 지니고
일체법이취문(一切法理趣門)
“일체 법의 나아갈 문을 지니고”
일체 법의 나아갈 문을 지니고
일체출생다라니문(一切出生陀羅尼門)
“일체 것을 내는 다라니문을 지니고”
그렇지요.
다라니는 총지(摠持)라고 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기억해서 지니고 있는 것이 다라니문입니다.
그것을 다 지녀야 됩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교화하고 성숙시킬 때 적절한 처방으로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일체제의혹법(一切除疑惑法)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을 지니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저 스스로도 그렇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의혹 투성이죠. 의심투성이입니다.
이것이 맞는가 저것이 맞는가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하고, 한편 이해하고 감동하면서도 또한 의심스러운 데도 있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가 그런 경우가 참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을 지니라고 했습니다.
성취일체보살법(成就一切菩薩法)
“일체 보살을 성취하는 법을 지니고”
보살이 보살을 성취시키고 성숙시키고 교화시키는 법을 지닌다. 이런 뜻입니다.
일체여래소설평등삼매문(一切如來所說平等三昧門)
“일체 여래가 말씀한 평등한 삼매문을 지니고”
모든 부처님이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평등한 삼매문, 화엄경을 두고 이야기 한다면 화엄삼매(華嚴三昧)도 있고 해인삼매(海印三昧)도 있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화엄경에 심취해서 화엄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일은 그대로 화엄삼매문이고, 해인삼매문입니다.
그러한 삼매문을 지닌다.
열심히 공부하면 화엄삼매를 지니는 것이 되고 해인삼매를 지니는 것이 됩니다.
일체법조명문(一切法照明門)
“일체 법을 밝게 비추는 문을 지니고”
일체법을 밝게 비춘다. 모든 현상들을 사사건건, 설사 지금 세상에서 큰 문제로 등장되고 있는 이 코로나 문제도, 이것도 좀 환하게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러한 세균이 그렇게 세상을 뒤덮고 있으며, 이것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한 것을 환하게 밝게 비추어서 척척 하나씩 하나씩 그것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금 ‘코로나19’라고 했으니까 2019년도 12월경에 발생한 것입니다. 1월 2월 3월 벌써 4월에 접어들고 있는데 갈수록 세계적인 추세를 볼 때 더 성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어떻게 환하게 아는 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체제불신통유희력(一切諸佛神通遊戱力)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니니, 이것이 열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닌다.
코로나 같은 병균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부처님의 어떤 신통한 힘이 좀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한꺼번에 그런 병균을 싹 몰아 버릴 수 있는, 몰아서 없앨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 어떻게 생각하면 저의 능력으로서는 가당치 않은 생각이지만 하도 안타까우니까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에 머물러 지니는 힘을 얻느니라.”
궁극에는 이러한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가장 높은 큰 지혜에 머물러 지니는 힘을 얻는다.
궁극에는 여래의 가장 높은 지혜를 지닐 수 있다 하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보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다
‘보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다’
변재(辯才), 화엄경에는 변재라고 하는 말을 자주 씁니다.
왜냐?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깨달음의 진리를 설하지만 화엄경의 변재와 같이 그렇게 풍부하고 넉넉하고 큰 바다가 출렁대듯이 자유자재로 출렁대면서 어디에도 조금도 걸림이 없이 변재를 펼쳐 보이는 경전은 화엄경 뿐입니다.
유마경이 아주 변재가 뛰어나서 소화엄이라고 이야기를 하지요. 유마경이 아주 대단한 경전이기는 합니다. 정말 화려하고, 화려하다 못해 현란하다고 까지 그런 변재를 보이지만, 정작 이 화엄경에 비교하면 게임이 안되지요.
화엄경과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됩니다.
변재하면 ‘화엄경의 변재같은 변재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화엄경을 능가하는 변재, 화엄경의 10분의 1, 100분의 1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무분별변재(無分別辯才)
“이른바 일체 법에 분별이 없는 변재와”
일체 법에 분별이 없는 변재와 그렇습니다.
‘이 법은 잘 알고 저 법은 잘 모르고, 이 법은 알 듯 말 듯 하고’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일체 법에 분별이 없고 차별이 없습니다.
무소작변재(無所作辯才)
“일체 법에 지음이 없는 변재와”
조작이 없습니다. 무작이예요.
지음이 없이 짓는, 함이 없이 하는 변재입니다.
저절로 나오는 변재지요.
우리는 화엄경 한 구절을 읽고 이해를 하려는 데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되고, 이것을 또 어떻게 설명할까?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생각하고 조작이 많습니다.
정말 조작투성이죠.
그런데 보살들은 그런 일체 법에 지음이 없이 하는 변재,
조작이 없이, 할려고 하는 마음 없이, 그저 흘러나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변재 그런 뜻입니다.
무소착변재(無所着辯才)
“일체 법에 집착이 없는 변재와”
일체법에 집착이 없는 변재와.
저는 지금 화엄경 81권을 수 차에 걸쳐서 읽고 쓰고 살펴보고 또 강의도 신도님들에게도 하고 스님들에게도 하고 있습니다만 마음에 얼른 이해가 되고 또 제가 감동을 하는 데는 집착합니다.
또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조금 까다롭다 그런 대목에는 별로 집착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참법문을 통해서, 다른 여러 가지 품이 많습니다, 욕심나는 품이 많지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세간품을 특별히 이렇게 선택해서 공부하는 것은 이세간품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일체법에 집착이 없다고 했는데, 저는 이세간품에 특별히 집착하는 바가 있습니다. 물론 여래출현품도 집착을 하지요. 세주묘엄품 아 그 게송들 얼마나 좋습니까? 다 집착을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집착을 하는 것이 이세간품입니다.
제가 강의하면서도 이세간품을 여러 번 말씀을 드리다 보니까, 우리 염화실에 들어오는 아수라라고 하는 거사님, 아주 재주가 뛰어나고 신심이 뛰어난 분인데 그분이 이세간품을 글자를 크게 출력을 해서 이렇게 저에게 책을 보내왔습니다.
(한자원문 책을 보여주시면서) 이 책이 아수라 거사님께서 출력을 해서 저에게 보내온 책입니다.
이분은 그 외에도 제가 강의한 것을 아주 여러 권을, 강의한 내용들을 출력을 해서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하도 이세간품을 집착하고 이세간품을 여러 번 언급하다 보니까 이세간품을 이렇게 출력을 해서 보내왔는데요.
저는 이것을 일일이 다 몇 번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표시를 다 해놓고요. 이렇게 집착을 합니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저의 수준으로서는 아직도 집착을 떠나지 못한 입장이니까요.
좋은 경전의 가르침, 화엄경 정도에는 우리가 집착을 좀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좀 집착하십시오. 화엄경에 좀 집착합시다.
이런 진리의 가르침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좋은 일입니다.
저는, 집착을 깨는 것은 그다음 일이고, 일단은 이렇게 우리가 화엄경에 집착을 하자고 권합니다.
요달공변재(了達空辯才)
“일체 법에 공한 줄을 아는 변재와”
이것이 기본입니다. 어떤 화려하고 근사한 진리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일체 법을 설한 그 대상은 전부 공한 것입니다.
그거 공(空)한 줄을 알야야 돼요.
공한 줄을 아는 변재, 꼭 그 공한 것을 바탕에 두고 설해져야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건물들이 전부 땅에 근거를 해서 건립이 되었듯이, 공(空)이라고 하는 땅, 공한 줄 아는 그 땅에다 근거를 두고 법을 설해야 됩니다.
그래서 일체 법에 공한 줄을 아는 변재와
무의암변재(無疑暗辯才)
“일체 법에 의심의 어둠이 없는 변재이니라.”
의심이라고 하는 어둠, 의심하면 어둡죠.
일체 법에 대해서 의심이라고 하는 어둠이 없는 변재이니라.
불가피변재(佛加被辯才)
“일체 법에 부처님이 가피하는 변재와”
부처님이 으레 가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불보살들이 증명하고 또 따라서 가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각오변재(自覺悟辯才)
“일체 법에 스스로 깨닫는 변재와”
궁극에는 스스로 깨달아야 됩니다.
불보살들이 설했다고 해서 무조건 맹목적으로 따르고 믿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구차별선교변재(文句差別善巧辯才)
“일체 법에 글귀가 차별하고 교묘한 변재와”
그렇지요. 법을 설하려면 각각 다르게 설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문자가 차별할 수밖에 없고, 말이 차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기술적으로 아주 능수능란한 선교방편이라고 하는 변재를 필요로 합니다.
진실설변재(眞實說辯才)
“일체 법에 진실하게 말하는 변재와”
진실하게 말하는 변재가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가 감동을 하면 거기 진정성이 우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법을 이야기 하는데 진정성이 우러나야 됩니다.
진정성 없이 입에서만 나오는 말은 자신에게도 아무 의미가 없고, 듣는 사람도 감동을 하지 못합니다.
일체 법에 진실하게 말하는, 진정성에 근거한 진실하게 말하는 변재
수일체중생심(隨一切衆生心) 영환희변재(令歡喜辯才)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하는 변재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궁극에는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해야 됩니다.
듣는 사람이 기쁘게 해야 됩니다.
감동을 줘야 합니다.
제가 오늘은 이세간품에 대한 집착을 말씀을 드렸는데 참 100퍼센트 다는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제 마음에 계합하는 데는 아주 무한히 환희합니다.
여기서,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환희케 하는 변재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교묘한 변재를 얻느니라.”
위없이 교묘한 지혜를 얻느니라.
아주 훌륭한 지혜를 얻는다 라고 했습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부처님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_()()()_
_()()()_
_()()()_
_()()()_
“보살[을]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을 설하고”
_()()()_
_()()()_
고맙습니다 _()()()_
_()()()_
_()()()_
_()()()_
_()()()_
_()()()_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_()()()_
*不退住를 답하다---보살의 열 가지 법을 설함, 보살의 열 가지 지님.
보살의 몸과 마음이 한데 이루어 날마다 더욱 자라나고 물러서지 않는 지위의 보살.
여래의 위없이 공교하게 말하는 법을 얻고, 일체 선법을 남김없이 다 지닌다.
매우 깊은 법, 넓고 큰 법, 갖가지 법, 일체 지혜의 법, 바라밀다를 따르는 법, 여래의 힘을 출생하는 법, 과거 현재 미래와 서로 상응하는 법, 물러나지 않게 하는 법,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법, 모든 보살들이 일체 부처님의 평등함을 배워서 모든 여래의 경계와 서로 상응하는 법을 설한다.
모아 놓은 일체 복덕과 선근, 일체 여래의 말씀한 법, 일체비유, 일체 법의 나아갈 문, 일체 것을 내는 다라니문, 일체 의혹을 없애는 법, 일체 보살을 성취하는 법, 일체 여래가 말씀한 평등한 삼매문, 일체 법을 밝게 비추는 문, 일체 모든 부처님의 신통으로 유희하는 힘을 지닌다.
*童眞住를 답하다---보살은 열 가지 변재가 있음, 보살은 열 가지 자재가 있음.
보살에게그릇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을 파하지 않는 것이 마치 동자의 천진하여 애욕이 없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十身 靈相이 일시에 갖추어지는 地位의 보살.
일체 법에 분별이 없고, 일체 법에 지음이 없고, 일체 법에 집착이 없고, 일체 법이 공한 줄을 알고, 일체 법에 의심의 어둠이 없고, 일체 법에 부처님이 가피하고, 일체 법에 스스로 깨닫고, 일체 법에 글귀가 차별하고 교묘하며, 일체 법에 진실하게 말하며,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하는 변재이니라.
고맙습니다.
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_()()()_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