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타는 여자
창밖을 내다보기에 좋은 계절이 와 있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을 가로질러 푸른 물을 향해 앞뒤 생각 없이 뛰어들고 싶은 충동적인 계절이 여름이라면 가을은 잠시 숨을 고르듯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정적인 계절이다. 마치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을 설렘 속에 마주한 느낌. 나와 가을은 젊은이들만의 신조어인 썸을 탄다. 창틀에 얹은 양팔에 턱을 괴고 내려다보이는 풍경 역시 썸을 부추긴다. 그저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행복해지는 계절. 소리에 이끌려 걸어 들어가는 계절. 그 가을 길이 지금 나를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아침 이슬에 흠뻑 젖은 가을 길과는 전혀 썸을 타지 않는다. 은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매혹적인 풍경을 자아내도 나는 썸을 거부한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조심스럽게 내딛지 않으면 자칫 자빠질 수 있는 젖은 가을 길의 양면성은 내 취향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발길을 맡길 수 있는 막역한 길이 좋다. 그래서 낙엽이 수북이 쌓인 마른 길을 좋아하고 가을이 오면 일부러 찾아 나서기도 한다. 게다가 저마다 다른 소리로 아우성을 쳐대는 마른 길의 웅성거림은 또 다른 매력이고 내게 자연스럽게 낭만을 끌어낸다. 아주 가끔 마른 길을 걷다 보면 넓고 높다랗게 쌓여있는 낙엽 무더기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는 슬그머니 주위를 살피곤 과감하게 썸에서 벗어나 재빨리 몸을 내던진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먼지는 아랑곳없이 포근하고 편안한 맛에 빠져들면 썸에서 느낄 수 없는 짙은 가을 향이 내게 스며든다. 하지만 이처럼 여름날의 바닷물을 만난 것과 같은 충동적인 가을 길도 갈수록 내게서 멀어져 간다. 쉽게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예전만큼 유연한 몸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월은 좋아하는 취향도 어쩔 수 없이 변하게 하는 것 같다.
내게 가을은 듣는 계절이다. 바스락 부스럭 부스스 내지르는 소리와 톤도 다르다. 봄볕의 정겨움 속에 돋아난 파릇한 새싹이 찬란한 태양 빛을 받으며 짙푸른 잎새로 무성한 숲을 이루기까지. 청명한 파란 하늘빛에 익어간 낙엽은 시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 위에 내려앉으며 비로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 여름 내내 먹이를 찾던 벌레의 치열했던 삶의 투쟁은 갉아 먹은 잎새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던 새들의 세상 이야기며 빗물을 피하던 귀여운 다람쥐며 수많은 일생(一生)의 일부가 낙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낙엽의 소곤거리는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잊고 지내던 지난 시간 속에 얽힌 또 다른 가을로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지난가을엔 잘못 들어선 낯선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가을의 향연에 넋이 빠져 있던 적이 있다. 그 뒤로 시간만 나면 그곳을 찾아갔고, 심지어 ‘줄리아의 가을 길’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두 아들뿐 아니라 가까운 지인들에게 그곳을 안내하면 모두 또 다른 세상에 들어온 기분이라고 말할 만큼 정말 가을이 멋지게 들어앉은 곳이다. 색명(色名)조차 정해지지 않은 오묘한 빛깔의 환상적인 색의 조화. 펼쳐놓은 그 세상 안에 갇히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찬송가 79장의 첫 소절이 떠오르면서 저절로 뒹굴던 낙엽 무리와 합창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가을과 썸이 아닌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가을이 익어갈수록 편안한 침대에 포근한 낙엽 이불까지 덤으로 준비하고 있으니 썸 타던 마음에 어찌 불이 붙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난 하나님과도 썸을 탔다.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친정어머니는 모태 불교 신자였고 얼떨결에 나는 절을 들락날락 따라다니던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유치원은 서울 시청 앞 건너편 예쁜 종탑이 있는 영국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성 니콜라 유치원’ 1회 졸업생이다. 그뿐이랴 고등학교는 종로 5가 기독교 방송국 옆에 있던 ‘정신여고’이다. 애니 엘러스 벙커라는 여의사이자 미국 북장로회 소속의 선교사가 1887년에 창립한 학교이다. 물론 처음에야 여성 교육단체로 출발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처럼 하나님과 썸을 타고 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좋은 계절처럼 나와 썸을 타고 계셨던 하나님. 땅 위에 구르던 낙엽을 주워 들고 깨끗이 씻어서 두툼한 책갈피에 넣어 두었다가 일 년이고 삼 년이고 지난 후에 꺼내 들면 처음 넣어둘 때보다 곱게 펴진 낙엽은 늘 반갑고 기쁘게 했다. 이처럼 온갖 먼지를 뒤집어쓴 내가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은 뒤 변화되어가는 과정은 낙엽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이 갈수록 내 얼굴에 드리웠던 욕심과 허례허식의 그늘은 걷혀가고 감사로 물든 미소가 담기는 삶으로 바뀌었으니 낙엽을 보고 흐뭇해하듯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얼굴에도 미소가 있을 것 같다. 이젠 썸을 넘어 손도 잡고 발길을 맡길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되어 함께하는 이 길이 정말 좋다.
나는 썸 타던 여자이다.
이번엔 무엇으로 썸을 타려나…. 설렘 속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이 세상에는 나의 썸을 기다리는 것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오늘도 썸 탈 준비를 한다.
-2009년 10월 물들어가는 낙엽과 썸을 타던 중에…
*썸 : 호감
첫댓글 썸 타는 여자!
아름다운 노을 속에 잠잠히 들여다 보고 싶은 여자!
줄이아님의 썸 주인공이 되고 싶구려.
어느 날 불쑥 찾아와 활짝 웃고 설 낮 익은 얼굴처럼.
강숙려 선생님~~ ~ 이미 썸을 넘었는데요. ^^
썸을 넘으면........................
그것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