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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강세미나 23.02.04(토)
요한일서 3장 1~2절의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아멘.
이것이 이제 우리가 말씀의 기름이 부어지고 나서 이 사도들이 쓴 이 말씀 한 두 구절도 읽으면 이 안에 엄청난 깊은 영역의 말씀이 감춰져 있습니다. 기름부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깊은 영역의 비밀을 알고 보니까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이 기록할 때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동일한 성령이 우리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에 이 말씀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랑을 주셨기에. 어떠한 사랑.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6~27절에 이렇게 증거 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 안에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니라. 아! 그러면 우리 안에 어떤 영이 있었는데 성령이 기름을 붓듯 인을 쳐서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영이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영이.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 우리는 교회 여기 교회 나오고 하나님의 아들 후사들이니까 모여서 우리가 여기서 같이 이렇게 전하고 하면 하나님의 우리는 아들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야. 이렇게 해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영으로 더불어서. 내 안에 있는 영과 무엇입니까? 교통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교통이. 교통이 일어나서. 교통이라고 하니까 내 영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냥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야’가 아니고 성령이 내 안에 있는 영을 영의 눈과 귀를 열어버리니까 내 안에 정체성이 내 자신의 정체성이 창세전에 하나님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던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내게 알려 주었다는 것입니다. 증거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 영이 깨어나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는 순간 내 정체성과 신분은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후사가. 아! 나는 이 땅의 상속권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권자가 되었구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구나. 아! 그렇게 보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볼 수도 없는 그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였고 또 예수님과 함께 한 후사다. 예수님과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같은 후사라는 것입니다. 같은 후사.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창세전에 그 말씀 안에 예수님은 말씀인데 말씀 안에 우리가 있었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 둘이 아니고 하나. 이 하나는 어떻게 됩니까?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한 성령. 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그리스도를 주라고 우리가 칭할 수가 없습니다. 잘 들으셔서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음으로써 우리가 예수님과 분리된 생명이 아니고 하나였던 생명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 그 하나는 창세전에 말씀이셨던 그 예수님의 말씀 안에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로. 말씀 안에. 이것은 어마어마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어마어마한 이야기. 이것이 한 줄로 지나가서 우리는 후사요 하나님의 할렐루야 주와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지나갈 이야기가 아니고 이것을 내 안에 있는 영이 감지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가 한 몸이 됨으로써 예수님이 이 땅에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진 권세가 우리에게 임해버리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주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것이 하늘의 대사입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하나님의 대사. 이런 신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와 여러분이. 이것만 막 하는 것이 아니고. 진짜 이 소리를 들으면 이것이 아니,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동일한 후사가 됩니까?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나의 동역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동역자. 이런 담대함.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도 않았는데 받은척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받은척하고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 간교한 것입니다. 교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이 와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영이 내 안에 임했다면 내가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동일한 후사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고난을 받을 때 그 분이 십자가를 통과해 감으로써 그는 우편 영광보좌 아들의 영광보좌에 앉는 신분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내가 못이 박혀야 됩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을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내 안에 있는 영이. 내 육이 좇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은 좇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육은 매일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는 것이 육이지. 육이 죽어야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야 십자가에 갈 수 있는 것이지 내 영은 안 살고 육은 살아 있는데 어떻게 십자가에 갑니까? 못 갑니다. 십자가만 보면 눈물만 흘립니다. 죽음 앞에 저것을 어떻게 통과해야 되나. 그 고난을 어떻게 통과해야 되나. 못을 어떻게 박혀야 되나. 이런 것. 염려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 안에 있는 육이 죽어야 영이 산다는 그 자체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내 영이 증거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바로 부활의 영광이 내 안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 분의 한 몸이기 때문에 그 분이 부활해 갈 때 나도 같이 가버립니다. 한 몸이니까.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 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루는 것이 이것이 합방하는 것입니다. 합방. 이것이 공중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는 자들의 그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신분.
그러니까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우리 살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 우리 몸을 부활시키는 것은 영인데 육은 무익하다. 그 영이 무엇인가 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다. 영이고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생명.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영이 성령과 더불어 인 쳐져 버리면 내 안에 있는 영이 살아버리니까 육이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육이 죽으려고 주여! 죽여주옵소서. 주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이런다고 되는 죽는 것이 아니고 무엇으로 죽습니까? 말씀으로 씻어지는 것입니다. 언약의 말씀으로 인 쳐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인 쳐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까지는 그 묵은 곡식 아래에서 사람의 지식으로 입혀진 것이 말씀인줄 알았는데 그것을 지금 하나님이 다 벗기고 새 곡식으로 새 언약의 말씀으로 입히는 것입니다. 지금. 입혔더니 내 안에 있는 육이 죽어버리고 영이 살아나게 되더라. 이것이 성령의 세례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
그러니까 그 과정이 있어야 내가 내 안에 있는 영이 깨어나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야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자녀이면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후사고 우편 열두 보좌에 연합되는 그 후사의 신분인데 그 후사의 신분이 될 때는 무엇입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가 동일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졌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영이 깨어나서 성령과 한 몸이 영적임 몸이 되어버리면 우리도 동일하게 예수그리스도가 받은 영광을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사하는 권세도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을 때 그 죄를 사하는 권세도 무엇입니까? 내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그 권세는 예수의 이름입니다. 예수. 할렐루야. 우리의 머리이시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그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내심이 되면. 나타내심이 된다는 것은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재림. 이것이 초림이 아닙니다. 나타내심이 되면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부활 승천하신 후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재림 때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되면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내 영이 깨어나고 영이 살고 육이 죽은 자들. 그 자들은 그 예수님과 같은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줄. 예수님과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신령한 몸으로 오시는 그 몸으로 같은 줄 안다는 것은 나도 동일하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다. 그의 계신 그대로가 어디입니까? 혼인잔치에 우리가 휴거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휴거되어서 혼인잔치에서 한 몸이 되는 그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그러면 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로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자는 영생하는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나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가 되면 우리 형상이 그 분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동일하게 화해져버린다는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믿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비밀을 철저하게 알았던 자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다시 오시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는 영생하는 생명이지 사망에 빠져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이것의 표현은 잔다는 표현입니다. 잔다는 표현. 죽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그 안에 있는 그들은 먼저 일어나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 먼저 그 안에 있던. 지금 무엇입니까? 베드로, 바울 형님 이런 분들 지금 낙원에 있잖아요. 그 분들이 주님이 재림할 때 되면 먼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땅에서 다시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이 먼저 살아난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우리가 살아 있잖아요. 우리는 살아서 들림 받는 자들이니까. 왜냐하면 어차피 이 시간은 우리가 그 화목직책의 사명을 이루고 가야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그 시간 안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 들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 빛의 아들들 입에서 불이 나가는 것을 해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멸해버린다고 계시록 11장 5절에 증거 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남은 자들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다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도 홀연히 변화가 되어버립니다. 신령한 몸으로. 그래서 그들과 함께 그러니까 이제 다윗 형님, 베드로 형님. 그 형님들 볼 날이 곧 옵니다. 조금 있으면 같이 일어납니다. 베드로 형님한테 여쭤볼 것이 굉장히 많으니까. 우리도 홀연히 변화가 되어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광보좌에.
그러니까 보십시오. 이 지금 부활이 되는 그 부활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영과 성령이 교통해야 됩니다. 내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나야 됩니다. 내 영이 살아나게 되면 내가 창세전에 하나님 말씀 안에 있었던 품에 있었던 독생자 안의 생명 함께 있었던 자인 것을 압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분의 몸으로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당연히 그리스도 그 분이 주신 말씀을 우리가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기름이 동일하게 부어지니까. 그러면 그것을 알게 되면 내가 부활의 생명 우리 예수님은 부활해 가셨기 때문에 내가 부활의 생명인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이을 후사인 것을 알게 되고 나는 우편 영광보좌에 앉게 되는데 이 땅에 있는데 그 길을 가는 것은 내 영이 깨어나고 살아나면 반드시 나는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가버립니다.
여러분들이 내 어떤 그 무엇이라고 합니까? 어디는 자기 몸을 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치고 왜냐하면 죄 많은 몸이라고 치고 고통을 예수님도 못도 한 번씩 팍팍 찌르고 여기 허벅지도 찌르고. 왜 그렇게 합니까? 아픈데. 그렇게 해서 가는 데가 아닙니다. 거기는. 거기는 그렇게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는 성령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성령이 인 쳐서 내 안의 영이 깨어나면 이제 여러분들 지금까지는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육은 죽고 이제 여러분들은 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굉장한 축복인데 그것이 싫으면 탈퇴를 하셔도 됩니다. 일단은 탈퇴하셔서 조금 더 세상에 좀 더 놀다가 더 재미있게 놀다가 때 되면 오셔도 됩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데 성령이 인을 쳐서 이 말씀이 은혜가 되고 이 말씀이 기뻐서 할렐루야 이러면 이미 여러분들도 이미 육은 죽은 것입니다. 꿈틀대는 자체가 굉장히 괴로워집니다. 그러니까 죽을 때는 확실하게 죽어버려야 됩니다. 확실하게. 확실하게 안 죽어버리면 괜히 좀 꿈틀꿈틀하다가 이것이 고통스럽습니다. 죽을 때는 단번에 죽어버려야 됩니다. 단번에. 그렇게 죽으셔야 됩니다. 예수님도 단번에 돌아가시잖아요. 질질 끌고 돌아가시지 말고 단번에. 그러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빨리 그냥 끝내버리십시오. 질질 끌지 말고. 그러면 그냥 세상에 거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 마누라, 자식. 이것 하나도 안 거칩니다. 그냥 내 영이 끌려가는데 그것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내가 여기 가진 것, 이 땅에서 교육 받은 것, 내 재산, 내 무슨 비즈니스, 내 이 땅에서의 명예를 가졌던 것. 다 쓸데없습니다.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내 영이 끌려가는 것입니다. 내 영이. 그래야 화목직책의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자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조건은 육이 죽고 영이 살아난 자를 통해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전에 선포하고 그렇게 하면 그 때는 할렐루야 그러다가 실제 이제 상황에 부딪히면 이것이 뭐야!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직 안 죽어서 그렇습니다. 붙들렸는데 아직 안 죽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힘듭니다. 붙들렸다고 하면 믿음이 들어오면 그래 붙들린 김에 죽어버려야 됩니다. 단번에. 딱 성령께서 인도해서 단번에 끝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왔다갔다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여러 번 하면 또 피곤하고 참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단번에 죽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굉장히 편합니다. 제가 사는 것이 후사님들이 내가 대전에 이번에 가니까 좋은 이야기시겠지요. 왜냐하면 장로님을 보면 편안해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럴까봐 좀 그런데 장로님을 보면 굉장히 편안하게 사시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겠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입니까? 그런데 그래서 진짜입니다. 그것은.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저는 no가 없습니다. 다 yes. 내가 무슨 하나님도 아닌데 내가 무슨 아니야 뭐가 있습니까? 뭐 하면 예스. 결정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나한테 여쭤보면 무조건 예스니까 후사님들이 장로님한테 여쭤볼 것이 많다? 그러면 물어볼 것 다 예스입니다. 예스. 하고 싶다? 하십시오. 그러니까 하시면 성령이 알려줍니다. 부딪히면 아닌가봐. 띵 해서 돌아오고 또 저리로 가서 아닌가봐 하고 저리로 가고 이러다가 다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길을. 왜냐하면 저도 가기 바쁘기 때문에 저나 하나 잘 가야지. 나는 항상 이 생각합니다. 저 하나라도 잘 가야지 옆에 이렇게 하면 괜히 샛길로 갔다가 오면 나도 피곤합니다. 나도 가기 바쁩니다. 저를 흔들지 마십시오. 저는 조용히 가고 싶습니다. 조용히. 물어보고 싶으면 앞으로 장로님한테 무엇을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우리 장로님은 예스야. 내가 질문이 있다. 예스. 답은 다 끝났습니다. 물어볼 일이 없습니다. 가시면 답은 성령이 알려주십니다. 가다가 띵 부딪히면 성령이 돌아가요. 그러면 또 돌아가면 되고 이리고 가다가 다른 길이예요.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렇게 해서 왔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왔습니다. 저도. 또 다시 그렇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좀 내버려두십시오. 저를. 물어보지도 마십시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주님 오실 때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서 가는 것이 지금 내가 그것 밖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기업을 세워서 가는 것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해 가는 것이지 충성해 가서 그 일을 하나님 앞에 순종해서 가서 그 뜻을 이루고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 사명을 해야 되는 것이니까. 그것은 ‘하고 안 하고’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때려 치워 말아.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는 것인데 자꾸 일을 더 많이 주니까 자꾸 제가 일을 좀 어떻게 하든지 덜어내려고 하는데 자꾸 주니까 걸렸다 걸렸어 내가. 왜냐하면 일을 많이 시키면 해야지. 적게 시키는 사람은 또 적게 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 똑같은 것입니다. 같이 좀 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좀. 그런 분이 있으면 오십시오. 제가 이렇게 많이 짐을 덜어드릴 테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활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이것이 엄청나게 힘든 일이고 엄청나게 이 땅의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영에 성령이 인을 치면 다 알아버립니다. 내가 이것을 어떤 지식으로 풀어서 당신 생명이 이렇게 되고 부활합니다. 나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설명을 합니까? 그러면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과학적 증거를 대십시오. 내가 어떤 과학적 증거를 어떻게 댑니까? 과학적 증거를. 그것을 내가 어떻게 DNA가 이렇게 되고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나는 못합니다. 예수님이 변했는데 그것을 무슨 과학적 증거로 이야기합니까? 오직 믿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떤 증명을 할 수 없지만 증거는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증거 하는가? 말씀 속에서 증거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받을 자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못 받는 자는 죽었다 깨도 못 받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깨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에 이 그 때 지금 때가 오니까 그 놀라운 그 비밀 세상은 믿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그 비밀을 우리는 소유하게 되었고 믿게 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고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그 증거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부활.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 그것이 증거입니다. 그 분이 부활하셨다. 그것을 안 믿으면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 그것을 안 믿으면. 안 믿으면 적그리스도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안에 있는 영이 영의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선악과열매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마저도 씻어져 못 나오면 무엇입니까? 악의 열매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열매입니다. 적그리스도 열매. 간단한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라서 생긴 것이 뿔 달리고 생긴 것이 찢어지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적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내 안에 말씀의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 말씀의 열매. 그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다 했습니다. 내가 지금 그 말에 이렇게 빠지다 보니까 지금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 요한일서 3장 3~6절의 말씀.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을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 여기서 지금 주라고 하면 성령입니다. 성령. 이미 예수님은 가시고 그 분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이 주입니다. 주. 성부 성자 성령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입니다. 그 성령을 향해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망입니다. 부활의 소망. 주님 오실 때 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서 휴거되는 그 부활의 소망.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그의 깨끗하심이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 우리가 무슨 재주로 거룩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무엇입니까?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속한 교회의 머리셨습니다. 내가 깨끗하니 너희가 깨끗 하라. 내 몸이라면 깨끗해지려고 깨끗한 것이 아니고 내 몸이라면 성령 안에서 성령의 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거룩해질 수밖에 없는 몸이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인을 쳐버렸기 때문에. 성령이 내 안에 있는 영으로 더불어 교통을 해버렸기 때문에 함으로써 그 비밀이 내가 하늘에서 난 자라는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내가 어떻게 됩니까? 성령이 그 때부터는 우리 몸 안에 거하는 성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이고 우리도 성전이니까 어떻게 됩니까? 거룩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성령은 누구이십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 새 언약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새 언약의 말씀을 깨닫고 기쁨이 온다면 바로 성령이 여러분들 안에서 역사를 하기 때문에 기쁨이 오는 것이지 내 육이 그래 맞는 말이지, 이렇게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지 않으면 내 안에 있는 육이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하고 앉았네. 무슨 우리가 부활한다는 말이야. 부활이 무슨 부활?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이러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극히 정상적인 육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갈 길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길이 다른 것입니다. 길이. 우리 입에서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까짓거 이렇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 비밀을 아니까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성령이 나를 조명하고 나를 끌고 가기 때문에 거룩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성령이 오셨으면 내 안에 있는 거짓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 영이기 때문에. 그래서 일곱 귀신들이 다 쫓겨나고 내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성전. 그 안에는 진리가 있으니까.
그래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죄는 불법인데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죄는 예수님이 전한 천국의 비밀 그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고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와 상반되어 가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도적질해서 죄를 짓고 이래서 죄가 아니고 죄를 짓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말씀을 모른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내 안에 성령이 임해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해 있지 않으니까 내가 거룩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하지 않으니까 내 안에 뭐가 있습니까? 시커먼 일곱 귀신만 가득 있는 것입니다. 내 안이 귀신의 처소냐? 성령의 전이냐? 이것은 성령이 내 안에 임해 있느냐? 내 안에 임해 있지 않았느냐? 내 안에 임했다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이 담겨져 있고, 그 말씀이 담겨져 있으면 내가 죄를 지을 수가 없는 몸이 되어버립니다. 불법을 행할 수 없는 몸이 됩니다. 내 안에 성령이 나를 조정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성령이 내 안에 있지 않다면 나는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살고, 윤리 도덕적이고, 많은 구제를 하고, 그 선교사업을 하고, 귀한 일을 하고, 많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를 돕고 다 했다 한들 성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불법. 믿습니까?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하나님 법. 우리가 무슨 말씀입니까? 저 사람은 내가 봐도 선한 사람이고 정말 착한 사람이고 이 쪽의 사람은 탕자 같고 말도 되게 안 듣고 이 사람은 이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자 안에 뭐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네가 내 뜻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부. 불법을 행하는 자이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자고. 이것이 우리가 영안이 열리지 않고서는 분별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안에 안 열리면 우리는 무엇입니까? 선한 이 땅에 윤리 도덕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가다보면 그것을 쳐다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 시각에서 쳐다보면 이들이 이 땅에서 기준 하는 법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자는 다 이 땅의 법에 어긋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자는 이 땅의 법이 하나님 법을 대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래서 5절에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분.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이 땅에 초림에 오셨는데 그렇게 오신 것은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다. 죄가 없다. 이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 분은 처음부터 죄가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성령으로 오셨기 때문에. 거룩한 영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말씀으로 오셔서 동정녀 마리아의 배에 착상하셔서 성육신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를 없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빛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 가운데 존재해야 되기 때문에 우리 역시 내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나는 영의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내 영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자는 것입니다. 성령과 교통이 안 되기 때문에 말씀과 교통이 안 되기 때문에 자는 것입니다. 자니까 그 자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죄라는 것입니다. 죄. 그런데 빛이 안 왔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없이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와서 진리의 새 언약의 말씀을 전해 줬더니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기름이 우리 안에 담아지니까 내 안에 있는 죄가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이 채워지니까 어떻게 됩니까? 거룩한 성전이 되어버립니다. 성전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예수님 안에 성령 안에 거하는 자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한다. 왜 범죄를 아니합니까?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의 비밀한 복음을 소유해버렸기 때문에. 그러니까 내가 범죄 하지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다. 범죄 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의 비밀 복음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가르쳐줘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있는 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이. 영이 없기 때문에 성령과 교통이 안 됩니다. 내 안에는 혼의 생명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하나님은 이 혼의 생명 안에서도 선의 열매인 하나님의 종들 이 종들을 택하기 위해서는 산 영과 교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산 영과. 본질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는 것입니다. 살려주는 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부활시키는 영입니다. 부활의 영. 믿습니까?
그래서 그 안에 거하는 자가 누구였는가 하면 창세전에 말씀 안에 있었던 좋은 씨였다는 것입니다. 좋은 씨. 복음의 씨. 이들은 처음부터 창조주의 생명이었기 때문에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는 생명입니다. 왜? 처음부터 말씀 안에 있었고, 처음부터 성령과 함께 있었고, 성부 성자 성령과 함께 있었다는 말입니다. 함께. 그러면 예를 들어서 성부 성자 성령과 예수그리스도의 신부가 하나가 있었는데 성부 성자 성령은 거룩하신데 그 안에 있는 씨가 조금 썩었습니다. 조금 썩어서 이것은 이것이 지금 수술을 하든지 제거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계실 때는 병원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수술대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냥 그것이 곪은 것처럼 있습니다. 내버려두자.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던 말씀 안의 생명도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았던 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여러분들이 어머니하고 아버지 육신의 어머니 아버지도 여러분들이 어머니 아버지를 보면서 무슨 여러분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내 친어머니인지 친아버지인지 태어나면서 친자 소송해보셨습니까? DNA 검사 해보자고 하고 혹시 우리 어머니랑 나랑 좀 다른 것 같고 우리 아버지랑 다른 것 같으니까 한 번 해보자고 했습니까? 안 했죠? 그냥 여러분들이 살면서 오다가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죠? 왜 압니까? 그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으니까. 그것도 모르면 ㄷㅅ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면 ㄷㅅ입니까? 아닙니까? ㄷㅅ입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ㄷㅅ입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들이. 하나님하고 함께 처음부터 있었는데 글쎄 저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네. 내가 봤어야 믿지. 내가 어떻게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누가 나한테 증거 해줄 수 있습니까? 안되잖아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는데 그 전에는 몰랐는데 진리의 성령이 와서 알려주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확신이 오는 것입니다. 자녀인 것이 인 쳐져버리는 것입니다. 인 쳐지면 아들의 영이 인 쳐버리면 다시는 종이 아니고 아들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되어야지 하나님나라의 상속권자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오늘 돌아가셔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진짜 하나님이 내 아버지 맞나? 안 맞나? 한 번 좀 조사를 해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나님 DNA를 한 번 봅시다. 이러면 말씀을 찾아라. 그러면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DNA는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이것이 안 보이면 친자가 아닙니다. 이것이 안 보이고 그냥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이러면 그는 일단 친자는 아닙니다. 친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을 딱 들으면 아! 이것이 우리 아버지 말 맞네. 이러면 그는 친자입니다. 제 말이 믿어지시죠? 믿음대로 될지어다. 그렇습니다. 요한일서가 엄청 깊은 영역의 말씀입니다. 요한일서가 깊은. 요한복음을 더 보강하는 말씀들입니다. 이것이. 이 요한일서는 요한복음 1장 1에서부터 5절의 말씀을 보강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요한일서가.
그래서 7절의 말씀은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 의미가 무슨 말인가 하면 너는 영의 생명으로서 너는 복음의 아들로 이미 택정을 받았는데 네가 아직 그 진리의 성령이 네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네가 영의 생명인데도 율법 아래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어서 종노릇하지 못하게 하라. 네가 아직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장성해지라는 것입니다. 장성해져라. 너는 지금 택함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이 말씀을 받으면서도 나는 자꾸 옛적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옛적 것이. 유치원 때 다니던 학교도 가보고 싶고 거기 선생님도 한 번 인사를 드리고 싶고 우리 교구장님도 한 번 가보고 싶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아직은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의의 열매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의를 행하는 자는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생명으로 하나님께로 갈 자이기 때문에 이 단단한 식물 의인 후사가 되고 영원한 생명이 임해 있는데, 왜냐하면 예수님과 성령을 통해서 부활의 생명으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다. 지금 이것이 시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시제.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창세전의 그 생명을 이야기했던 것이고, 지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피조물세계인 천지를 창조한 그곳에서 혼의 생명으로 지은 자들은 다 마귀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둠 가운데 어둠의 권세자들 사망권세 왕 노릇하는 자들에게 다 종노릇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혼의 생명은 부활할 수 있는 영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 이 땅의 지식과 이 땅의 지정의로 다 마귀가 주는 이 땅의 그 말씀을 더 좋아하고 따라가기 때문에 다 사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 그 육의 소욕을 좇아가기 때문에. 이들은 다 범죄 하게 되어 있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선악과 안에서도 선의 열매를 건져서 생명나무 잎사귀로 접목을 시켜주어야 이것이 선악과열매 안에서도 이 선의 열매는 생명나무에 붙어야 어쨌든 간에 여자의 부활로 생명이 됩니다. 생명나무에 붙어야 부활의 생명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죄를 씻고 나와야 됩니다. 회개에 합당한 구원의 표가 인 쳐져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구원의 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령이 인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처음부터 범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고 혼의 생명들 그들은 무엇입니까? 다 어둠 가운데 흑암 안에 다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래서 이 우주가 창조가 되고 지구 땅이 창조가 되는 것입니다. 흑암 안에 다 심판 날에 다 흑암에 가둬두기 위해서. 그런데 우리 빛의 아들들도 그 안에서 빛의 생명이 함께 이 땅에 와야 이제 이곳에서 예수님 오실 때 우리가 부활의 생명으로 열매를 걷는 것입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로. 그것을 거둬야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시게 된 것. 예수님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왜 멸해야 되느냐? 이 마귀가 하는 것은 이 땅에 모든 육신을 가진 자를 하나도 부활로 뺏기지 아니하고 모두를 다 사망으로 끌고 가야 마귀의 권세입니다. 이 땅에서는.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왔는데 이 분이 마귀를 멸하러 왔다고 합니다. 마귀를 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귀는 사망권세로 다 끌고 가야 됩니다. 자기들은. 그것이 마귀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무엇입니까? 똑같이 성육신해서 왔는데 이 분은 와서 부활을 해버렸습니다. 부활. 마귀가 이것을 막아야 되는데 못 막아버렸습니다. 탁 막으려고 해서 저를 죽여 버리면 된다고 해서 죽였더니 부활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비밀을 마귀는 모르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창세전에 하나님 안에 감춰진 비밀이었기 때문에. 마귀는 천지를 창조한 피조세계에 그 하나님 그들에게 준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은 천지를 창조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비밀 뜻을 알고 왔던 것입니다. 이 차이입니다. 이 차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마귀 아들입니까? 왜 웃습니까? 나는 지금 질문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마귀의 아들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면 마귀를 멸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멸하셨나요? 소리가 작아졌습니다. 어떻게 멸할 수 있을까? 이미 내 안에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내 안이 이 땅에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일곱 귀신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육의 소욕을 좇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인을 치는 순간 하나님나라가 내 안에 들어옴으로써 내 안에 있는 일곱 귀신이 도망가 버립니다. 이것이 마귀를 멸하는 것입니다. 도망가는 순간 나는 영생하는 자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안 도망가고 내 안에 그대로 어둠이 있다? 이것은 사망권세에 종노릇하게 됩니다. 어렵지 않죠? 오늘 가셔서 집에 가셔서 여기에다 손을 얹고 몇 마리 있냐? 지금 몇 마리야? 솔직히 이야기해. 이렇게 해서 지금 한 번 검증기로 테스트 해보십시오. 몇 마리 있나? 한 번 테스트 해보십시오. 왜냐하면 이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몸 된 지체들이 부활 생명 되는 것을 막아야 되는데 예수님이 이미 멸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이미 그 부활의 생명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덕에 잘 있어 이 X들아 그러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없었다? 아마 좀 골 좀 깨질 것입니다. 여러분들. 마귀가 별 욕 다하고 하면 이 말씀이 없으면 못 갑니다. 이 말씀이 없으면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그래서 저기 기도원에 가서 주여! 백 번하고 돌 던지면서 주여! 백 번해도 목만 쉬는 것입니다. 목만. 다 해보셨죠? 저도 다 해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저도 거의 초등학문 수준을 다 겪었습니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것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안에 무엇입니까? 더 열악해져버리는 것입니다. 더 귀신들이 열악하게 합니다. 성령이 인을 쳐야 되는데 귀신이 더 열악하게 하니까 무엇입니까? 완전 묶여버립니다. 그래서 그 분들을 보면 항상 핏대가 이렇게 올라 있습니다. 이렇게. 저희를 보면 사람들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평안해 보여요. 그렇게 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 육이 살아서 주와 복음 하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눈을 봐도 예수 믿어! 이러는데 깜짝깜짝 놀랍니다. 왜인지 압니까? 그 안에 성령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귀신이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귀신이. 이렇게 하고. 또 이것이 기름이 안 부어지면 거기 다 종처럼 거기 다 엎드립니다. 거기 전부 딱 엎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들 밥이니까. 이것을 잘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제발 중학교 때 배운 것 이런 것 다 버려야 됩니다. 초등학교 때 배운 것 아무 쓸모없습니다. 싹 다 비우시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셔야 됩니다. 싹 담고 빛의 아들로서 나는 이미 부활의 생명입니다. 사망권세가 나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 믿음을 갖지 않으면 내 안에서 지금 사망과 영생이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 안에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해결이 되어야 에덴동산 안에 모든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이것이 전쟁이 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다 겪습니다. 전부 다. 이것이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겪습니다. 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그러면 로마서 8장 19~30절. 안 물어봐도 해달라고 할 테니까 그냥 제가 여기까지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복음서에 전하셨던 말씀이나 바울이나 모든 사도들이 기록한 이 요한이나 기록한 말씀을 같이 연결하면 동일한 이야기입니다. 동일한 이야기.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나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침을 받고 전하는 말이나 똑같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래서 8장 19~30절에 보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다. 이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의 혼의 생명도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빛을 비춰줘야 자기들도 영생할 수 있기 때문에. 구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는 안 보여도 이 영적세계에서는 이 피조물 우리는 창조주의 생명이지 피조물이 아닙니다. 피조물들이 자기들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 빛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빛의 아들이 왜 나타나야 됩니까? 그들이 빛을 비춰져야 되고 진리를 줘야 그들이 그것을 먹고 그들도 구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들이.
그래서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허무한데 굴복한다는 것은 피조물 자체가 사망권세에 종노릇하게 되고 그냥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기 뜻이 아닌데도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간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아무나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다른 책에 이 기록된 그들을 추수해버리는 것입니다. 정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자. 그래서 144000. 7천인. 바다의 모래알 같은 수. 이렇게 하나님이 비유로 계시로 다 정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자신이 사망으로 해서 지옥 가는 것에서 구원 받고 싶은 것입니다. 구원 받고 싶은 것. 그것이 그들 안에서도 그 갈망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망함이. 그런데 그들은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굴복케 해버리셨기 때문에 그들은 굴복해 가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때가 되어서 그들에게 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진리를 부을 때 그들이 입고 있던 것을 벗고 그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나오는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부활생명으로 건져주겠다는 것입니다. 종들을 추수해주는 구속사입니다. 그것이 구속사.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처음 익은 열매를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다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다는 말입니다. 빛의 아들들이.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또 우리 빛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우리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해서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양자 될 것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들의 영 이것은 부활의 영인데 내가 온전히 우리 몸의 구속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부활. 이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지금 이 말씀을 전하면서도 내가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푯대를 향해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 오실 때 내가 부활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전하고 이 말씀을 전하고 이 복음서를 기록한다한들 자기도 아직 주님 오셔서 한 몸으로 연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도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자기는 그 비밀을 알고 그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그 푯대를 향해서 자기는 끝까지 가서 온전함을 이루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이 지금도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받아서 참으로 하나님께서 주셔서 주셨지만 내가 주님 오셨을 때 부활이 되어야지 되어서 올라가는 것이 그것이 물론 주님이 하시겠지요. 저를. 왜냐하면 말씀을 주셨으니까. 그런데 제가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오실 때까지 나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순종해서 내 몸을 드리는 온전함이 되는 그 성전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저도 말씀 외에는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한테 어떤 것 가지고 와서 유혹해보십시오.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턱도 없는 소리. 돈도 가지고 와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턱도 없는 소리. 저한테 deal이 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턱도 없는 소리. 이것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되는 것입니다. 부활. 부활이 되어서 우리가 그 소망 부활의 소망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됩니까?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인내하고 참아야 됩니다. 인내의 열매입니다. 인내의 열매.
그래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도움을 받는 자가 축복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저 역시도 주님이 오신다고 해도 지금 그 길이 우리가 세월을 따지면 짧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세월이 짧은 세월은 또 아닙니다. 가면 깁니다. 그 안에 내가 내 생각으로 맞아 이 길이야. 이렇게 내 마음대로 가보십시오. 그러면 성령이 나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가더라도 성령이 나를 쳐서라도 끌고 이렇게 가면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끌어주어야 됩니다. 인도해야 됩니다. 내가 무슨 이 길이 맞아. 내가 무슨 도사입니까? 성령이 끌어주어야지 가는 것입니다. 이 길도 가는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그 성령의 도움을 받는 자가 그 자가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과 이미 연합되어버렸기 때문에. 성령이 내 안에 임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을 이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성도를 위해서 간구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도 내 안에 있는 성령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좌정하셔야 그 분이 다 역사를 하는 것이고 그 분이 내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는 것이고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순간 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내가 하는 순간 이것입니다. 내가 해버리면 성령과 부딪혀버립니다. 그런데 성령이 안에 좌정해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끌고 가버리기 때문에. 내가 무슨 정신 차려서 성령이 왜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만 하세요? 저도 나도 내 뜻이 있어요. 그러고 내가 성령이 이러는데도 무슨 소리하세요? 저는 이리로 가고 싶어요. 미련한 자입니다. 미련한 자. 그렇게 안 됩니다. 그냥 그런 말 자체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끌고 가면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 제가 여기 온 것이. 내가 여기 왜 있는지도 모르는데 여기 온 것입니다. 이리로. 갖다놓았으니까. 하라면 또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경험을 하셔야 되고 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볼 수 있습니다. 아! 이렇게 하시는구나. 지금은 제가 이제 조금은 장성해져서 그 전에는 그것을 못 보고 자기 잘났다고 이렇게 뛸 때는 성령께서 가만히 내버려둡니다. 저게 가다가 지칠 것이다. 가면 저기로 막 갑니다. 이것을 한 이십 년 이상 했나? 이렇게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도 안 갑니다. 왜냐하면 내가 모르니까 하나님 뜻을 모르니까 내가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다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하신 다음에 말씀을 붓고 저한테 하니까 제가 이제는 제가 왜 가요? 또 20년 전으로 돌아가라고? 안 갑니다. 왜? 성령이 끌고 가면 가고 안 가면 말고. 이것은 내 일이 아니니까. 이런 지혜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후사님들하고 임원들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우리 임원들하고 우리 하나님 기업을 하면서 제가 옛날 같았으면 북 치고 끝났습니다. 벌써 다 정리 다 끝나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일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일이니까. 이렇게 해라. 예. 이렇게 해라. 예. 아버지 좀 과중합니다. 조용히 해. 또 예. 계속 나는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또 합니다. 그렇게 하니까 더 줍니다. 더. 그래서 제가 tip을 좀 드리는데 주세요. 한 번 해보십시오. 더 주세요. 이렇게 해보십시오. 안 주실 것 같기도 한데. 제가 계속 너무 많은데요. 그러면 대답도 없이 막 확장시킵니다. 아! 아버지. 또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 기도했나? 그냥 주세요. 그런데 지금은 주세요. 그러면 다 줄까봐 안 합니다. 지금 저도 굉장히 약아서 지금 보니까 주세요. 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가? 주세요. 그러면 어! 그래. 왕창 줄까봐 지금 제가 지금도 너무 좀 많으신 것 같은데요. 지금 그래. 그 다음에 아무 생각 없이 막 주십니다. 그냥. 확장시키고.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죠? 저랑 동역하실래요? 제가 저랑 같이 동역하실 분들 저한테 전화 주십시오. 저랑 같이 가게. 그렇습니다.
이것이 왜 그런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동역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데 내 안에 있는 영이 깨어서 성령과 교통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이 나를 불렀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창세전부터 하나님 안에 있던 생명이었고 그 마지막 화목직책의 사명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때문에 하나님과 합력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미 내 안에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영적 예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그래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라는 것입니다. 미리 아셨다. 이 이야기는 창세전에 그 분 안에 있었던 생명이었기 때문에.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다. 이것이 바로 말씀 안에 있었던 복음의 씨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 부활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을 때 그 부활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했을 때 그 아들의 부활과 신령한 몸으로 부활된 몸과 연합을 이루는 자들을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들과 성령 안에서 한 몸으로 생명의 부활에 연합될 자들이 미리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몸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신부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놓았다고 합니다. 창세전에. 이것을 좀 바울 형님도 쉽게 이야기했으면 아무 어려움이 없을 텐데 이것을 꼬아서 거기에다 또 꼬아서 또 꼬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그 예수님을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의 머리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머리. 그 아들들은 그 분의 몸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머리와 몸이 하나가 한 성령 안에서 연합이 됨으로써 말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말씀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는 마지막 화목직책의 사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예수님도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한 영화를 회복했듯이 그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도 또한 하나님과 함께 영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참 이것이 놀라운 말씀들입니다. 이것이 내 안에 있는 생명수가 흐르면 이것이 지금 내 안에는 하나님나라 안에서의 생명수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모든 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 그러면 내 안에 무엇입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인 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그것은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성령께서 나를 통해 그 빛을 증거 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아버지께 영광의 박수를 돌립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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