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구미시 역사 유적 탐방
글쓴이: 임원주 (스토리텔링 작가, 저서: 허왕후 스토리텔링)
안녕하세요?
구미시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고, 대표적인 유적을 소개합니다.
1. 대한민국(大韓民國)
박정희 대통령 생가(상모 사곡동,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 등
2. 조선(朝鮮) 시대
선산향교(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23호), 금오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
※ 참고
선산은 사림이 시작된 곳입니다.
길재를 배향한 야은사(冶隱祠)가 있고, 영남학파 김종직(金宗直)의 고향입니다.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 (택리지 7권)
3. 고려(高麗) 시대
구미 발갱이 들소리 (지방 무형 문화재 제27호)
※ 참고
태조 왕건이 선산의 호족 김선궁(金宣弓)을 중용 하였습니다.
왕건이 견훤의 아들 신검과 싸우다가 사로잡아 항복을 받은 곳이 지산동입니다.
발갱이는 발검(拔 뽑을 발, 劍 칼 검), 발갱이 들소리 보존회가 무형문화 유산 '발갱이 들소리'(논매기 소리)를 전승하고 있습니다.
4.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
죽장리 오층석탑 (국보 제130호)
※ 참고
선산은 신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파된 곳입니다.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 모례(毛禮)의 집에서 묵호자(墨胡子)가 불교 전파를 시작 하였습니다.
5. 삼국(三國) 시대
선산 낙산동 고분군 (사적 제336호, 205기)
※ 참고
신라에 불교가 공인(이차돈의 순교, AD 527년)되기 전, AD 3세기부터의 유적이어서 불교와 관련이 없습니다.
낙산동 고분군의 위치가 낙동강과 감천의 합류지점입니다.
선산은 김천시에 있었던 삼한시대의 감문국과 같은 문화권에 있었습니다.
낙산동 고분의 유물은 한국 고대 기독교 유물인데, 대구가톨릭대학교 박물관에서 유물을 볼 수 있습니다.
관련 참고 내용으로는 다음의 블로그 2번 글(국립대구박물관의 유태교, 기독교 유물 관람)과 2번 사진 30장이 있습니다.
blog.naver.com/story4006
6. 삼한(三韓) 시대
변군미국(弁軍彌國)
※ 참고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24개 변진국 중에 변군미국이 나오는데, 구미시 인동동 지역에 있었던 군단위 지방자치단체로 추정됩니다.
삼한 시대의 역사유적 관광지로는 선산읍 인근에 있는 '감문국 이야기 나라' 사적지(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49)를 추천합니다.
감문국(甘文國)은 BC 3세기부터 AD 231년까지 삼한의 소국(小國)이었고, 현재의 김천시와 선산읍 지역 이었습니다.
삼한 시대 김천에는 군장(君長, 정치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감로국 甘路國, 교동)과 천군(天君, 제사장, 삼국사기의 감문국 甘文國,
도피성 소도 蘇塗, 개령)이 각각의 지역에서 지방 자치 단체장으로 소국을 다스렸습니다.
감문국의 군장 이름은 지백호(智伯虎, 정鄭 씨 도시조, 감문왕 甘文王)였고, 천군(天君, 이스라엘 레위지파 제사장)의 이름은
조슈아(여호수아, 창녕 조曺 씨 도시조)였습니다.
7. 진(辰)나라 시대
(辰: 고조선 남쪽에 있었던 나라, 청동기시대)
임수동, 인의동, 선산읍 생곡리 등 (청동기 유물 발견 지역)
※ 참고 (삼국 시대 내용 포함)
금오산(金烏山)은 경상분지의 육성층 퇴적암에 있는 화산암(의성군 금성산 金城山 참고)이었기 때문에, 고대에는 금(金, 沙金)이 생산
되었습니다.
구미시는 낙동강이 지나가는 곳이고, 낙동강은 고대무역의 통로였습니다.
구미시(금오산 지역)에서 생산된 사금은 낙동강과 감천을 통하여 배로 김천시(감문국)까지 운반 되었습니다.
김천(金泉), 경주(金城), 의성(金城山), 구미(金烏山)에서 생산된 사금은 김천시(감문국)에 집결되었고, 삼한시대 주조마국(走漕馬國, 현재
김천시 조마면 助馬面)의 말로 서역까지 운반 되었습니다.
말타고 초원의 길로 달리면 김천에서 이스라엘(갈릴리 호수 가버나움)까지 3개월에 갈 수 있었는데, 기마민족(시대별로 스키타이족, 흉노족,
선비족 등)이 무역의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역사와 지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역사는 지형과 지질을 이해하면 이미 절반을 아는 것입니다.
김천시 상금동 금화(金華)마을에 살았던 김수로(金 황금, 首 우두머리, 露 노두, 노다지 찾는 팀장)가 낙동강과 초원의 길을 이용하여
서역까지 황금 무역을 하였습니다.
김수로는 경남 김해시 구지봉에서 구간(九干, 부족장)과 주민대표들에게 AD 42년 3월 3일(계욕일) 황금알 6개를 보여 주었습니다.
김수로는 12일 지난 AD 42년 3월 15일(부활절날) 금관(金官)가야의 왕(王)위에 올랐습니다.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는 사도 도마의 중매로 AD 48년 7월 27일 (음력) 김해시 봉황동유적지에서 김수로왕과 혼인식을 하였습니다.
허왕후는 도마의 숨결(삼한시대 추풍령휴게소, 김천시 봉산면 신리 521)에 허왕후 약방의 지점을 내었습니다.
위의 역사는 모두 평평한 낙동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낙동강의 경사도는 매우 완만하여 하류 160km는 0에 가깝습니다.
낙동강은 김해시부터 왜관읍까지 약 200km인데 해발고도는 40m이므로, 5km 강 길이마다 1m의 높이로 호수처럼 평평합니다.
돗단배가 다니기 좋은 무역로였고, 낙동강의 소금배는 고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항상 다녔습니다.
도개면, 해평면, 선산읍 등지에 고인돌이 있습니다. (2022. 2. 7.)
위 글을 전달하는 사람:
대구세계문화엑스포 이사장 조국현
010 4391 4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