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문학』 제38집(2014)에 실었습니다*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며
심양섭
나는 2000년에 수필로 문단에 데뷔하면서 ‘아버지’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전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며 나 자신이 아버지로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글이었다. 당시 ‘아버지’ 외에도 네 편의 글을 보냈는데 ‘아버지’와 또 다른 한 편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
세 분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보면 “수필의 기교와 문장의 진실에서 흥이 있었다. 깊이와 논리에서도 날렵하고 더러는 파격적 흥이 흘렀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행간(行間)을 읽으면 ‘흥이 있지만 부족하고, 파격적인 측면 역시 미흡하며, 직관보다 설명과 논리가 앞섰다’는 비평이었다. 기자 출신으로 칼럼 형식의 글을 쓰는 나의 한계를 정확히 짚은 것이었다.
수필은 가장 쓰기 쉬운 문학 장르인 동시에 가장 쓰기 어려운 장르가 아닌가 싶다. 올 봄에 서울 남산 ‘문학의 집’을 다녀왔다. 북한 출신 망명작가들이 주최한 세미나 참석차 갔다가 행사 후 같은 장소에서 진행 중인 한국 주요작가들의 초상화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 중에 원로 수필가 원종성 선생의 초상화도 있었는데 거기에 “풀향기 십리 수필 향기 천리”라는 글귀가 자필로 쓰여 있었다. 나는 언제 천리향 풍기는 수필을 쓸까 하는 자괴감도 일었지만 동시에 그처럼 높은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자극도 받았다.
다시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오면, 내 아버지는 삼대독자 한량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정경제에 무관심하였고, 그 바람에 어머니와 형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내 아버지에게서 발견되는 무능 혹은 무책임은 양반문화의 역기능인데 그것은 비단 내 아버지에게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많은 남자들이 집안에서 체통만 지키고 여자가 장마당에 나가 식구들의 세 끼 땟거리를 벌어온다.
시대 변화와 더불어 바람직한 아버지의 모델도 바뀐다. “경제만 책임지면 다른 것은 문제될 게 별로 없었던 아버지”에서 “돈 버는 것에 더해 가족들과 문화생활, 여가생활을 잘 해야하는 것은 물론, 가사의 일부까지 분담해야 하는 아버지”로 말이다. 이런 시대에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 대신에 “민주적이고 사랑 받는 가장의 권위”를 추구해야 한다.
‘아버지’라는 수필로 문학계에 입문한 지 14년만에 다시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당시 삼십대 후반이던 아내도 어느덧 오십대에 접어들었다. 이십대에는 성가시기 짝이 없다던 월례행사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라는 현상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갱년기 여성의 남편으로 살아남는 법을 나도 배워야 할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신입생이던 아들 재현이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진짜 사나이’가 되었다. 대학 1년을 마치고 자진하여 군에 입대한 것이다. 어린이의 아버지와 청년의 아버지가 같을 수 없다. 재현이에게 편지를 쓰고 면회를 가면서 전에 아버지로서 잃었던 점수를 만회하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내가 아버지를 무시하고 원망하다가 아버지를 긍정하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었듯이, 재현이도 나로 인한 상처를 딛고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고 있는 듯해서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군대라는 환경은 어쩌면 재현이와 나 사이를 좁힐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지도 모른다. 같은 남자로서 우리 부자는 비로소 새로운 신뢰의 끈을 찾은 느낌이다.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와 닮지 않으려다가 반대편의 극단으로 치달음으로써 결국은 같아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가정경제에 무책임하고 무능한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하였는데 지금의 내 처지가 아버지와 닮은 꼴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아내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나의 이런 모습이 재현이에게 어떻게 비쳐지며 해석될까. 재현이가 또 나를 닮을까 걱정이다.
14년 전에 나는 “민주적이고 사랑받는 가장의 권위”를 바람직한 아버지 상(像)으로 제시하였거니와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러한가. 이 질문에 “예”라고 즉답할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무능했지만 권위주의적이지는 않았고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육아방식은 무관심 속에 관심을 갖는 방식이었을까. 아니면 들판에 소를 풀어놓고 키우는 방목형이었을까.
그릇된 열심은 무관심만 못하다. 자칫 좋은 아빠가 되려는 열심이 지나쳐 나쁜 아빠가 될 수 있다. ‘좋은 아빠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좋은 아빠가 되지 않을까. 어쩌면 내 아버지와 같은 적절한 무관심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언제나 가장 빠쁘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Ende gut, alles gut)”고 했다. 나에게도 기회는 남았다. 재현이가 군대생활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장가갈 때까지 잘 하는 것이 나의 숙제이다. 아내와도 남은 생애를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신이여, 부디 나를 도우소서.
다시 아버지를 생각하며(다시 재수정).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