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문화·라이프
한글로 쓴 현존 最古 자전 발견
1458년 세조 때 편찬한 初學字會
17세기 초 필사본이지만 15세기 표기법 남아있어 가치 커
허윤희 기자
입력 2017.03.20. 03:01
현존 최고(最古)의 한글로 쓴 한자 자전(字典) 필사본이 발견됐다. 자전은 한자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글자 하나하나의 뜻과 음을 풀이한 책을 말한다.
현존 최고(最古)의 한글로 쓴 자전인 ‘초학자회’ 를 17세기초 다시 쓴 필사본. 국립한글박물관이 2015년 6월 구입했다.
홍윤표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18일 열린 국어사학회 월례강독회에서 "국립한글박물관이 2015년 구입한 '초학자회(初學字會)'는 1458년 세조의 명으로 편찬한 것으로 현존하는 문헌 중 한자 석음(釋音·뜻과 발음)을 한글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이라며 "원본은 아니고 17세기 초 필사본이지만 15세기 표기법이 그대로 남아 있어 국어사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현존 최고의 자전으로 알려진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년)보다 69년 빠르고, 한글로 뜻과 음을 적은 천자문 중 가장 오래된 선조 8년(1575년) 광주(光州)에서 간행된 천자문보다 117년 앞선 것이다.
세조실록에는 초학자회 편찬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지난번에 판서(判書) 최항과 참의(參議) 한계희가 언문으로 '초학자회'의 주(註)를 달다가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상(喪)을 당하였다. 하여 중추(中樞) 김구와 참의(參議) 이승소에게 다시 명해 우보덕, 최선복 등 12인을 거느리고 편찬하게 했다."(세조 4년 10월 15일조)
홍 교수는 "기록만 있고 실물이 확인되지 않다가 이번에 필사본 일부가 발견된 것"이라고 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2015년 6월 경북 봉화군의 금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것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책의 크기는 28.3×20.9㎝. 표지를 포함해 전체 7장만 남아 있다. 홍 교수는 "서문과 발문 등 편찬과 관련된 기록은 보이지 않고 전체 분량이 몇 장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책의 내용은 세종 때 신숙주·최항·박팽년 등이 편찬해 1448년 간행한 '동국정운'에 수록된 일부 한자를 대상으로 뜻을 달았다. 한자 아래에 그 한자의 뜻이 한글로 달려 있는데 방점은 없다. 홍 교수는 "ㅿ(반치음)·ㅸ(순경음 비읍)·ㅱ(순경음 미음) 등이 사용된 것으로 볼 때 이 책이 처음 편찬된 1458년의 표기 모습이 반영돼 있으며, ㆁ(옛이응)과 ㅇ(이응)이 구분되지 않고 ㅿ(반치음)이 ㅇ(이응)으로 변화한 모습 등으로 볼 때 17세기 초에 필사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홍 교수는 "'초학자회'는 한자의 성조와 뜻, 음 등 주된 정보를 제공하는 문헌으로 자료가 많지 않은 15세기의 언어 실태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며 "먼저 '동국정운'처럼 한자의 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초학자회'처럼 한자의 뜻까지 관심을 두게 되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언해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