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권을 팥죽으로 사는 야곱
창세기 25장 24절 - 34절 2012년 9월9일 주일 오전 말씀지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똑같이 영원 전 하늘위에서부터 택함, 아담과 함께 영원 구원함,(기본구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보내심 받되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낳게 하사 그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자이지만 야곱은 그 생활이 종용하여 말씀 앞에 앉아(성화구원) 상을 갑절로 받는자요 (영광구원) 에서는 그 생활이 들사람 되어 말씀은 멀리하다가 그 상을 잃고 후회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처럼 영원한 하늘에서 장자들이 있는 것을 보게 하신자만 첫째부활의 영광을 얻게 하십니다. 히12:23-
24절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태에 쌍둥이는 야곱과 에서는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야곱은 영광을 사모하다가 그 영광을 받은 자요, 에서는 먼저 난 자인데 영광을 소홀히 하다가 잊어버린 자입니다. 똑같이 부름을 입어 말씀을 받지만 귀하게 여겨 더욱 사모하고 받는 이도 있고 받으면서도 귀한 줄 몰라 깨닫게 하신 은혜가 없어 결국에는 받지 않는 이도 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가요? 목마른 자, 바라보는 자, 사모하는 자, 달려가는 자,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늘 것입니다. 마11:11-
25절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먼저 나온 자는 에서로 먼저 나오게 하셨습니다.
붉은 것은 혈기적이요 흥분적이라는 것입니다.
전신이 갖옷 같은 것은 갖옷은 "털옷"이란 뜻인데 먼저 나온 아들이 털이 많은 자이므로 이름을 "에서"라고 짓게 하신 것입니다. 털은 육만 가진 짐승들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의 모양으로 그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영보다 육을 더 생각하는 에서라는 것입니다. 창27:16-
26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 이었더라
아우는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야곱과 에서는 모태에서도 먼저 나오려 싸웠고, 장성한 후에도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문제로 서로 대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싸움을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영에 속한 사람이고 에서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 육신적인 면에서는 크고 강한 면이 있으나, 하늘 것은 영에 속한 자에게 있습니다. 실상은 야곱으로 하늘에서 큰 자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동생으로 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자가 많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누구라도 육에 기울어지면 나중되는 것입니다. 마19:30-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 아버지 아브라함은 백세에 주시더니 이삭에게는 육십에 쌍둥이를 주신 것입니다. 자녀는 내가 낳는 것이 아니라 주심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이름도 뜻이 쌍둥이입니다. 그곳에 주님따라 영광 길 갈 마음도 있고 세상에서 영광 받고도 싶은 두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27절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 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고로 장막에 거하니
아이들이 장성하매 두 아들이 어떻게 자랐나요? 같은 어미 리브가의 젖을 먹고 자라는데 에서는 사냥군으로 야곱은 장막 안에서 종용히 자랍니다.
사냥군은 들에 나가서 들짐승을 잡아다 먹고 있으니 들짐승의 고기를 먹는 에서가 들사람이 되어 자기 손의 재주로 벌어먹고 자기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들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고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행, 모험, 경기를 좋아하는 이스마엘 들나귀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일 하랴 바빠서 말씀들을 시간이 거의 없는 자들입니다. 창16:12-
장막에 종용히 거하는 야곱은 하나님의 장막 안에서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서 신앙지도를 받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을 종용히 묵상하는 복 있는 사람 야곱인 것입니다. 시1:2-
종용한 것은 어머니 리브가를 통하여 주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하는 말씀으로 자라나고 있는 야곱이라는 것입니다. (딤후3:16)
28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믿음의 조상이 아버지임으로 그 아들 이삭의 일평생은 순탄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연단도 필요 없었습니다. 첫 번째 믿는 이들이 힘들지 그 후에 자녀들은 믿음생활하기가 너무 편합니다. 이때에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는 이삭처럼 되기 쉽습니다. 미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기는 육식입니다. 삶이 평탄한 이삭이 육신에 치우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친구가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한 그 믿음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광야에서 새벽마다 내려주는 만나를 불평하며 정욕이 약해졌다고 고기를 구했던 백성들입니다. 민11:6,18-
늙어서 육신에 떨어지는 이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와 두 아들의 다툼으로 가정에 풍랑이 일어 늦게서야 잘못을 깨닫게 되는 이삭입니다. 솔로몬도 젊어서는 모르다가 늦게서야 해래의 것은 잘못쓰면 다 헛됨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리브가는 늘 자기 옆에서 또박 또박 말씀 받는 야곱을 사랑한 것입니다. 주의 발아래서 말씀을 받는 마리아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리브가를 통해 하늘 것에 대해 받습니다.
29절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 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이 죽을 쑤는 것은 어린아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아직 자라지 못한 야곱과 에서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에서보다 나중 난 것이 억울했고 언젠가는 자기가 장자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기 위해 계획적으로 팥죽을 쑤고 있었던 것입니다.
에서가 심히 곤비한 것은 말씀 앞에 앉을 줄은 모르고 자기가 무엇이나 한다고 돌아다닌 탓입니다. 말씀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역사 안에 살줄을 모르는 에서입니다. 야곱 또한 환도뼈가 위골되어 이스라엘이 되기 전까지 자기가 그 장자의 복을 받기 위해 열심합니다. 창32:28-
30절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영적 양식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니 신령한 기쁨은 없고 힘만 드는 것입니다.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죽을 좋아하는 에서는 아직 영적으로 분별 못하는 어린아이입니다.
세상을 보는 들사람 에서에게는 팥죽이 (육신 먹는 것 해결) 멸망 길로 인도하는 세상의 부귀와 영광이 되고, 장막 안에 거하는 야곱에게는 하늘나라의 영광된 열매를 더하게 하시는 은혜가 됩니다.
별명은 에돔이더라 "에돔"은 "붉음"이라는 뜻인데, 붉은 팥죽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별명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없다 영이 없다고 하는 공산사상에 무리들이 모여 천하를 육신적으로 살기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온갖 거짓말로 사람들을 흥분시켜 붉은 깃발을 세우고 붉은 띠를 이마에 매게 하고 몰려다니며 혁명을 부르짖는 것과 같습니다. 계시록에는 붉은 용이라고 12:3, 붉은 빛 짐승이라고 17:3에 나타내셨습니다.
31절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팥죽가지고 흥정하는 야곱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1.아버지의 계대를 이어 가족을 대표하는 권리이며(27:29).
2.부모의 유산을 두 몫을 받는 권리이며(신 21:17).
3.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언약을 물려받을 권리이며(12:3; 15:5; 22:18; 26:3, 4, 24; 28:4).
4.장차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을 공중에서 맞이하는 더 좋은 부활 첫째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권한이요 (계19:9)
5.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까지 갑절로 얻는 복입니다. (계20:6)
6. 영원한 하늘에서 장자가 되는 복입니다. (히12:23)
야곱은 이 복에 참여하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귀중히 여겨 사모하고 그것을 자기가 받기 위하여 노력을 많이 한 것입니다. 팥죽을 쑨 것도 그 명분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32절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내가 죽게 되었으니 에서는 육신의 아버지 이삭에게서 받을 장자의 명분은 죽은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배고픔으로 팔아 버렸듯이 우리들 앞에는 첫 3년 반 환난을 통하여 순교로써 첫째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제사장 노릇하며 왕 노릇 하게 하시는 하늘의 장자의 명분을 파는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계20:6-
율법시대 때 팥죽 한 그릇에 육신의 아버지로부터 받을 육신의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된 에서보다 성령시대 보냄 받은 자들로 하늘의 장자를 보지 못한 자들이나 보면서도 얻지 못한 자들이 더 망령되고 부끄러울 것입니다.
33절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이까짓 것으로 경홀히 여겼습니다(34절). 에서가 왜 이러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① 영적인 신령한 은혜보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더 중히 여긴 때문입니다.
② 영원한 하늘에 장래의 것보다 당장 눈앞에 현세의 것을 더 중히 여긴 때문입니다.
③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참예하는 장자의 복을 경히 여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중에 눈물을 흘리며 축복을 받고자 하였으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히12:17). 그는 한 그릇 식물에 장자의 명분을 판 망령되고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물질만 좋아하고 현재에 잠깐 잘되는 것으로 만족하고 영적인 면보다 육적인 면에만 관심을 갖고 힘쓰는 자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자들입니다.
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에서가 먹고 일어나서 간 길은 멸망길로 장자의 명분을 그까짓 것이라고 소홀히 여기는 자들이 가는 길입니다. 지금도 박 목사를 통해서 장자의 복 첫째부활의 영광을 나타내주시는 것은 나에게 주실려 하는 것인데 그까짓 것 하는 분들은 에서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