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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선사 유트브로 보기 https://youtu.be/r0lcML1Y784
운문록 상권 상당 대기 19-3. 면벽(面壁)했던 뜻은 무엇입니까?
[한 스님이 예를 다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면벽(面壁)했던 뜻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면벽(面壁)은 무엇을 현실적으로 면벽이라고 하였는지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선(禪)에서 벽관(壁觀)이란>
선종(禪宗)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도모할 것인가.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해서 인도 선(印度禪)과 천태 선(天台禪)은 수행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인도 선에서는 호흡을 하나하나 세어보는 수식관(數息觀), 사람의 몸은 본래 더러운 것이라고 관하는 부정관(不定觀), 인간은 다 백골로 돌아간다는 것을 관하는 백골관(白骨觀) 등이 있었다. 그리고 천태 선(天台禪)에서는 우선 감각과 생각을 그치고 깊은 진리와 마음의 세계를 관찰하는 지관법(止觀法)을 쓰고 있었다.
이에 반해서 달마 선(達磨禪)은 첫 번째 방법론으로 벽관(壁觀)을 든다. 벽관은 사람의 여러 가지 시선이나 청각을 멈추고 벽을 향해서 자기 본래의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 좌선(坐禪)을 한다. 이는 고요히 앉아서 자기 마음의 세계를 관찰해 보는 것이다.
다음엔 반조(返照)가 있다. 이는 항상 내 마음에 돌아가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비추어 보는 묵조(黙照)의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선(禪)에서는 면벽 관심(面壁觀心)이라든지 또는 좌선(坐禪)이라든지 반조(返照)나 묵조(黙照) 등의 방법으로 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진정한 견성성불이 이루어지고 참다운 마음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달마 선은 6세기 초(서기 527년)에 달마(達摩, ?~536) 대사가 중국에 와서 선법(禪法)을 선양함으로써 비롯됐다. 달마의 제자로는 혜가(慧可)가 있고, 그 아래로 승찬(僧璨), 도신(道信), 홍인(弘忍) 등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달마 선은 당나라 시대에 와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달마 대사는 인도로부터 중국 남쪽 양(梁)나라에 들어와서 선법(禪法)을 펼치려 했지만 양 무제(梁武帝)와 서로 기연이 맞지 않아 장강을 건너 북위(北魏)로 가서 하남성(河南省) 숭산(嵩山) 소림사(小林寺)로 숨어들어 초조암(初祖庵)에서 9년간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림사(少林寺)는 중국의 오악(五嶽) 가운데 중악(中嶽)에 위치 해 있다. 불교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500여 년 전,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천축(天竺)의 고승 불타선사(佛陀禪師) 위해 창건했다.
불타선사는 인도 승려로 발타(拔陀) 또는 각자(覺者)라고도 부르는데, 서역(西域)의 여러 나라를 다니다가 북위 효문제 때 북위 도읍인 평성(平城) 현 산서생(山西省) 대동(大同)에 도착하니, 효문제가 스님의 덕을 숭앙(崇仰)해 높이 받들어 모셨다.
그리고 도읍지를 낙양(洛陽)으로 천도하자 특별히 선사를 위해 495년 도성과 마주보는 숭산(崇山) 북쪽기슭에 소림사(少林寺)를 창건했다. 불타선사는 절이 완공된 이후, “이 소림정사(少林精舍)는 각별하게 신령(神靈)의 지킴이 있으므로, 끝까지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었다. 그에 따라 “각지의 사문들이, 명성을 듣고 모여든 자가 항상 수백명이었다”고 한다.
이후 북위 효명제(孝明帝) 효창(孝昌) 3년(527), 보리달마가 소림사에 도착해 오유봉(五乳峰) 아래 ‘초조암(初祖庵)’에서 9년간 면벽(面壁) 수행했다.
그래서 달마 대사는 하루 종일 벽만 관하고 있는 바라문, 곧 ‘벽관 바라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벽을 향해 앉아 혼자 좌선삼매에 드는 것을 ‘면벽정진(面壁精進)’이라 하고, 벽을 마주하고 좌선한다고 해서 벽관이라 한다.
그런데 벽관을 단순히 면벽좌선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벽관(壁觀)은 ‘벽을 본다’는 말이 아니다. ‘벽이 돼서’ 보는 것이다. 달마의 면벽은 벽과 하나가 돼 자기와 세계를 관하고 있다.
무엇을 보느냐? 벽(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을 멈추고 벽처럼 돼서, 공(空)을 관(觀)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공을 지켜보는 것이다. 때문에 벽관엔 시종일관 긴장감이 팽팽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면벽은 외부세계와 단절이 아니다. 달마의 면벽은 벽과 하나가 돼 자기와 세계를 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벽관은 ‘회광반조(廻光反照)’의 뜻을 품고 있다.
그래서 송 대의 종감(宗鑑, ?~1206) 선사가 저술한 <석문정통(釋門正統)>에 벽관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을 안정(如是安心)함이란 벽관을 말한다. 객진위망(客塵僞妄)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벽’이라 한다. 마치 가옥 외벽이 외부 풍진을 방지하는 것과 같이 객진위망을 근접시키지 않는 마음의 긴장, 그것이 벽관이다.”
이와 같이 벽관이란 참다운 마음의 안정이며, 벽(壁)은 먼지나 티끌처럼 밖에서 오는 번뇌를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주므로 마음을 집중해 벽과 같이 함으로써 마음의 청정함이 유지되니, 벽관은 그러한 객진위망이 달라붙지 않는 내면적인 마음의 긴장을 의미한다.
달마 대사의 말씀 가운데 “바깥으로는 모든 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의 헐떡임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가히 도에 들어간다[외식제연(外息諸緣) 내심무천(內心無喘) 심여장벽(心如牆壁) 가이입도(可以入道)”는 말은 벽관의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공부할 때는 바깥의 여러 가지 반연들, 얽히고설킨 인연들을 일단 쉬어야 공부가 된다. 할 일 다 해가면서 남의 참견할 것 다 참견해가면서 전화 받을 것 다 받아가면서, 그러면서 공부를 하려면 공부가 제대로 안 된다.
왜 그럴까? 우리의 몸이나 마음이 다 에너지인데 이것이 분산되면 집중된 어떤 힘을 발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독서삼매라는 말에서도 보듯 어떤 일에 몰두할 때 바로 거기에서 삼매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내심무천(內心無喘)’할 때 ‘천喘)’자는 ‘헐떡일 천(喘)’인데 정말 표현을 잘 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이 헐떡인다. 돈에 헐떡이고, 이성에 헐떡이고, 권세에 헐떡이고, 또는 콤플렉스를 갖고 뭔가에 헐떡이기도 한다. 그런 헐떡이는 마음이 푹 쉬어서 내심무천(內心無喘) 마음이 마치 장벽처럼 무덤덤해야 심여장벽(心如牆壁) 가히 도에 들어갈 수 있다 하이입도(可以入道)가 된다.
즉, 벽관은 직접 벽을 마주하여 좌선하거나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굳건한 벽처럼 번뇌와 망상에 전혀 흔들림이 없는 단정한 자세가 돼 좌선하는 수행법이다. 벽관이란 벽을 향하듯 조용하게 해서 자신을 관찰한다는 밀로서, 면벽이라고도 한다.
벽관은 보리달마가 9년 동안 벽을 마주하고 좌선했다는 면벽 9년(面壁九年)의 좌선 수행법을 말한다. 벽과 같이 마음과 몸을 모두 적정(寂靜)하고 부동(不動)하며 굳건하게 머물러 흔들림이 없는 좌선의 관법이다. 달마의 벽관은 승당에서 벽을 바라보고 좌선하는 일종의 수행 방법을 초월해 깨달음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전개된 것이다. 벽관은 형식적으로는 좌선법이면서 수행의 방식으로는 관법(觀法)의 범주에 속하며, 내용으로는 달마 선법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준다. 관법은 사유의 대상을 정해놓고 그것에 지속적으로 마음을 집중하면서 관찰하는 방법으로서 인도의 초기불교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 온 선정 수행의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6세기 초에 남인도로부터 중국에 도래한 보리달마가 숭산의 소림사에 머물면서 행했던 관법으로 승당(僧堂)의 벽을 향해 하루 종일 침묵으로 일관하는 좌선의 명상 방법인데, 달마의 벽관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달마가 직접 승당의 벽을 마주하고 앉아서 관법의 방식으로 수행한다는 뜻이고, 달마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벽처럼 굳건하게 움직임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침묵의 자세로 벽을 응시하는 좌선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벽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달마의 몸이 벽처럼 돼 요지부동의 자세로 고요하고 분별이 없이 좌선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벽관은 달마가 보여준 좌선 수행법으로서 몸과 마음이 장벽과 같아서 어떤 망상도 침범하지 못하는 삼매의 경지를 가리킨다.
이러한 벽관의 선법은 중국 초기 선종에 보이는 좌선관의 특징으로 전승돼오는 것으로서, 고요한 몸의 상태로 행하는 좌선 및 움직임이 없는 마음으로 침묵의 상태를 아우르는 신심적정(身心寂靜)의 모습이다. 그리고 벽관 수행법은 제자들에게 안심(安心)의 경지를 터득하게 해주는 교화 방법이기도 하다.
달마의 벽관이 단순한 좌선의 모습만이 아니라 마음에 분별이 발생하지 않는 침묵의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던 까닭에 몸은 움직임이 없는 좌선이면서 마음은 성성하게 깨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달마 대사는 숭산의 소림사에서 벽을 마주해 좌선을 했는데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다. 아무도 그것을 헤아리지 못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 불렀다.”고 <경덕전등록>에도 나타나 있다.
달마는 벽관 수행과 관련해서 <이종입(二種入) =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 “만약 망상을 버리고 진성으로 돌아가려면 조용히 벽관을 실천해 자타가 없고 범부와 성인이 동일함을 굳게 지켜 움직이지 않아서 다시는 언교(言敎)를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해 벽관에 대해 깨달음에 나아가는 중요한 좌선의 실천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달마의 벽관은 조사선(祖師禪)의 전개와 더불어 좌선 수행의 기본으로 정착되면서 벽관의 좌선이 단순한 좌선의 형식에 머물지 않고 수행의 일반을 의미함으로써 좌선은 달마로부터 연유된 조사선에서 폭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후에 선종이 크게 발전되면서 선종오가(禪宗五家) 가운데 조동종(曹洞宗)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좌선을 중시하는 묵조선(黙照禪) 수행의 풍토로 계승돼 달마의 벽관은 승당에서 벽을 바라보고 좌선하는 일종의 수행 방법을 초월해 깨달음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전개됐다.
한편 혜능(慧能, 638~713)은 <단경(壇經)>에서 좌선의 모습에만 집착하는 일군의 학승들에 대해서 “달마가 말했던 몸으로는 고요하게 앉아서 좌선을 하고 마음으로는 흔들림이 없이 깨어서 관찰을 하는 굳건한 모습의 상태가 되지 못하고 단순히 몸의 앉음새에만 집착한다.”며 비판을 가했다. 벽관의 내용에 대해 “분별이 없이 금강심지(金剛心地)에 굳게 머물러 있는 것”이라는 <이종입>의 말은 <금강삼매경>의 입실제품(入實際品)에서, “또한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며 범과 성이 불이(不二)임을 금강심지에 굳게 머물러 옮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적정무위(寂靜無爲)의 무분별이 되는 것을 이입(二入)이라 말한다.”고 설명돼있다.
이것은 원효(元曉, 617~686)에게 “이미 자타가 평등한 공을 터득했기 때문에 마음이 금강처럼 굳게 머물러 물러남이 없다.”라고 <금강삼매경론>에 계승됐다.라고 아미산이 논평하고 있다.
이렇게 묻는 한 스님에게 운문선사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27<念七>이다" 하더니, 다시 "정(定)" 하셨다.]라고 답을 합니다.
이게 무슨 대답입니까? 27념칠(念七)이란 중국의 전통교인 도교(道敎)에서 말하는 음력 매월 4, 9, 13, 18, 22, 27일은 천지휴폐일(天地休廢日)인 대공망(大空妄)일로써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서 가만히 집에 들어앉았기로 되어있는 날을 이르는 말이니 면벽수행을 물은 학인에게 이것은 수행을 행하지 말라고 하는 혜능선사의 유훈을 지키려는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되는 것이지 토굴에 들어앉아 면벽수행은 사실 현실도피적이라는 점을 들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면벽은 천대선사의 지관(止觀)법을 무시하는 것이 됨으로 하지말라는 말은 또한 양변에 치우친 편견이 됨으로 다시 답을 바꾸어 정(定)이라고 했다, 이것은 수행이란 면벽수행이든 고행수행이든 평상선이든 많은 수행법이 있지만 수억겁의 번뇌망상에 집착해온 중생들에게는 수행이 없으면 참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은 꿈에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혜능선사야 말로 금강경 한줄은 인연하여 일촉지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였지만 돈오돈수(頓悟頓修)은 전생의 수행공덕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하였다가 다시 수행목적은 오직 선정(禪定)에 들기 위한 방편일 뿐 오직 목적은 선정에 드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하고 안하고를 떠나 자기 스스로 선정에 들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일괄하고 계십니다.
그 때 또 다른 한 스님이 나와 예를 다한 후 이렇게 묻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찾아왔을 땐 스님은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선문답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모든 물음은 상대성 원리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한 변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을 알려면 상대성인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회광반조해서 대대법(對對法)으로는 ”전부를 다 아는 사람“이라고 말에 떨어지지 않고 바른 안목(眼目)으로 들어야 말에 떨어지는 화타(話墮)에 떨어지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또 ”찾아왔을 땐 스님은 어떻게 맞이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은 자기라는 것을 완전히 숨기고 찾아온 선사가 찾아 왔을 땐 어떻게 선기방편(禪機方便)을 물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 조사선(祖師禪)을 창시한 임제스님의 감변에 보면은 전부 부정해 버립니다. 즉 사구백비(四句百非)를 사용하였습니다.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 가서 벌어지는 내용을 보면 바로 나를 드러내는 것을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상대인 경계도 네가지로 선기방편을 베풉니다. 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처음부터 다 부정해 버리는 사구로 제접합니다. 그러니 상대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다가가 인식이 되면 바로 “할”을합니다. 이것은 말없는 말이며 행함 없는 행함입니다. 이것이 양변을 벗어난 해탈의 경계인 것입니다. 상대가 무어라고 하면은 침을 탁 벧어버리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돌아서 바로 돌아서 버립니다.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한 소리 하는 것이며 헛소리를해서 양변을 벗어난 해탈의 경지를 드러내는 방편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듯이 이 한 스님이 물은 뜻은 조사선의 본래적 선기방편을 운문선사에게 물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실언해서 속을 들켰구나(話墮).”]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의 말에 내가 떨어질까를 덧을 놓았지만 나는 그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무어라 해도 다 화타(話墮)에 떨어지지 않고 사구백비로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말하는 그 뜻을 잘 알고 있다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 학인은 그 물음에 떨어지지 않는 운문선사의 말씀을 듣고 또 부정한 그 말의 뜻을 다시 묻고 있다.
[“어떤 점이 실언해서 속을 들켰다는 것입니까?”] 이렇게 대 물으니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일곱 방망이로 열 셋을 대적하는구나.”]라고 하십니다.
열셋 방망이를 갖다 주어도 일곱 명도 상대하지 못하는 이 스님을 거꾸로 추켜 세워주고 있지만 그 뜻을 지금 바로 금방 깨닫겠는가?
오직 선문답이란 상대성 원리와 대대법을 자유자재로 걸림없이 사용할 때에만이 진정한 선사이며 선지식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올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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