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오후
김 국 자
북한산 자락에 살면서도 산에 자주 오르지 못하다가 주말 오후 모처럼 뒷산에 올라갔다.
아파트화단에도 감나무와 단풍잎이 곱게 물들었지만, 가을정취가 더 깃들어 있을 산에 오르고 싶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여러 군데이지만 과수원 앞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과일나무에 열려있는 열매도 보고, 밭에 심어놓은 채소를 볼 수 있는 호젓한 이 길을 나는 좋아한다. 도시에서 보기드믄 원두막에 올라 쉬어가는 그 기분은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추석 무렵 향이 진한 산초도 따고, 도토리를 주울 때만 해도 숲이 우거져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던 오솔길은 엉성한 나무 사이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스산한 바람이 스칠 때마다 누런 가랑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은 인생의 허무함을 일게 했다.
집을 나설 때는 동행이 없어 쓸쓸했는데,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많아 외롭지 않았다. 등산객들 모두 자연의 향기에 흠뻑 젖어있는 표정이었다. 장수천을 지나 어머니바위라 부르는 넙적한 바위로 올라갔다. 확 트인 시야로 도봉산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다. 색동옷을 입은 듯 알록달록 곱게 물든 나뭇잎들은 황혼에 물든 석양을 배경으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단풍에 취해 오르다보니 어느덧 원통사(圓通寺)에 이르렀다. 원통사는 신라 경문왕 3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약사전 뒤에 집채만 한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둘러져있다. 소의 귀처럼 생겼다는 우이암은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이라 하여 관음봉이라고 부른다.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한 바위들이 관음봉을 향하여 머리를 조아리는듯하다. 그 아래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나한전이라는 석굴이 있다.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 이성계가 수양을 마친 후 ‘천상의 상공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새겼다는 ‘相公岩’이라는 바위도 있다.
이끼 낀 바위 밑 옹달샘에 맑은 물이 솟아오르고 돌담 옆 꽃밭에는 파초가 시들었다. 물소리. 바람소리. 낙엽 부스럭거리는 소리. 고개 숙인 파초와 저물어가는 황혼 모두 허무함이 감돈다.
고색창연한 사찰을 뒤로하고 계곡으로 이어진 무수골로 향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넓은 바위가 많은 이곳은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식혀주는 쉼터로 경치가 아름답다. 자연석으로 쌓아놓은 돌계단을 따라 물가로 내려가 계곡에 손을 담가보았다. 손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맑은 물이 흐르고 송사리 떼 노니는 계곡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구부러진 소나무가지에 까치 한 쌍이 나란히 앉았다. 참 다정해 보인다. 행여 까치가 놀라 날아 갈까봐 발소리를 낮추며 바윗돌에 걸터앉았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에 취해 있는 이 순간만은 답답하던 가슴 속이 뻥 뚫려버린 듯 상쾌하다.
산은 이래서 좋다.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히 감싸주는 곳. 바로 고향 같은 곳이다. 울적할 때 산에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맑은 기분으로 바꾸어준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산에 더 머물고 싶지만 가족들의 저녁준비를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하산 길에 곱게 물든 단풍잎을 한 줌 주웠다. 동행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가을 정취를 전해주고 싶어서다.
주워 온 단풍잎을 식탁 위에 장식하고 유리덮개로 살짝 덮었다. 새하얀 식탁보와 단풍잎 문양은 조화를 이루어 좁고 초라한 우리 집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작은 것 하나만으로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예술작품이 따로 있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가족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것, 바로 이런 것이 예술이 아닐까?
모처럼의 산행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가볍다.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는 나의 삶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은은한 가을 향기가 우리 집 울안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