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는 사정이 있어 농장에 오지 못했다.
지난주에 약간 새싹을 내밀기 시작한 두릅과 엄나무에 순이
이번 주말쯤에는 올라와있을 것이다.
새순은 제 때 따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키위나무와 감나무 가지치기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무들은 이미 새순을 내기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석잠도 싹을 틔워놓아서 이번 주말에는 본 밭에 심어야 한다.
처음 심어보는 인디언감자도 4월 중순에는 심어야 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밖에 수세미, 호박, 옥수수, 잎 들깨 등도
이번 주말에 파종을 해야 하는데
토요일에 참석해야 될 청첩장을 받고 보니 난감해진다.
봄은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계절이고,
그래서 주말마다 거둘 것은 거두어야 하고,
뿌릴 것은 뿌려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사람됨의 구실도 해야 하고,
식물도 가꾸어야 하고…….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
일요일 오후 틈을 내어 친구와 농장에 왔었다.
농장 입구에 들어서니 유채가 만발하게 피어있었다.
화사한 유채꽃을 보니 산들농원에도
봄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수원에는 배꽃이 새로 피어나있었고,
명자나무, 조팝나무에도 빨갛고, 하얗게 피운 꽃을 볼 수 있었다.
두릅과 엄나무 순도 예상한대로 올라와있었고
둥글래도 처음으로 땅을 뚫고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먼 산은 연두색으로 물들어가고
화단에는 봄꽃이 피어나고,
채소밭에는 감자, 완두콩, 상추, 쑥갓 등 올봄에 뿌린 새싹들이
올라와 갈색의 대지를 녹색으로 덮어가고 있었다.
산들농원은 지금 한창 봄동산을 꾸며가고 있는 중이었다.
한편 만물이 소생하고 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배롱나무에는 아직 앙상한 가지뿐이고 새싹을 볼 수 없었다.
한 여름에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지금이 때가 아닌듯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봄이 오면 식물들이 이렇게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우는가 하면
아직 때가 아닌듯 겨울잠을 자고 있는 식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극단의 배우들이 순서를 기다려
무대에 등장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말부터 화단에 꽃을 사와서 심기로 했다.
주말마다 꽃을 사와서 화단에 심게 되면 푼돈이 제법 들어간다.
하지만 꽃을 심는 것이 단순히 화초만을 가꾸는 것이 아니다.
솜씨는 서툴지만 아마추어가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
마치 화가가 하얀 캔버스에 그림을 구상하고
색깔의 조화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려나가듯
화단을 하나의 캔버스로 생각하고
키가 큰 것과 작은 것, 붉은색과 흰색, 노란색 등
꽃의 색깔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더 넓게 생각하면
농장 전체를 하나의 작품 공간으로 생각하고
채소와 과수나무, 화초가 조화를 이루는
그런 정원을 꾸며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푼돈을 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패랭이 등을 두 판 사가지고 와서 심어두었다.
이렇게 꽃을 심어놓으면 주말에 올 때마다
화초들이 꽃을 피워 주인을 반겨주는 맛이 있어 참 좋다.
농장을 둘러본 후 오늘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
일요일 오후에 오다보니 작업할 시간은 얼마 없고,
할 일은 엄청 많았다.
농장에 오면 늘 미결이 산적해있는 것이다.
먼저 키위나무와 감나무 전정을 하고,
초석잠과 인디언감자를 심었다.
초석잠은 뇌세포를 활성화시키고 강화하는 물질이 들어있어
뇌경색 예방과 치매방지, 기억력 증진 등에 좋다는 것이고,
인디언감자는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이 많아
쪄 먹으면 인삼냄새가 강하게 나고
영양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식품이며
그래서 일본에선 ‘힘이 나는 감자’,
‘천사의 꿈의 식품’으로 불린다고 한다.
둘 다 올해 처음 심어보는 것인데 재배에 성공할지 모르겠다.
절반의 성공만 거둘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비우면서 종자를 땅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엄나무 순과 두릅 순을 따고,
옥수수 씨앗을 땅에 묻는 것으로 일을 마쳤다.
늦게 와서 서둘러 일을 마치고 푸성귀를 챙겼다.
상추와 시금치, 그리고 엄나무와 두릅 순을 따서 담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했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푸성귀 얼마밖에 되지 않았다.
돈으로 치면 손에 쥐어지는 것이
농부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부산서 오가는 기름 값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에는 풍성함이 넘쳐나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쌉싸래한 향이 가득한
엄나무와 두릅 순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것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넘쳐나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how much, how many”가 아니다.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마음으로 넉넉함을 느끼면
그게 풍요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적지만 자연으로부터
소박한 선물을 받아가기에
마음에는 넉넉함이 넘쳐나는 것이다.
첫댓글 봄은 오는가 하면 가버리는 계절이고, 그래서 주말마다 거둘 것은 거두어야 하고, 뿌릴 것은 뿌려야 하는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how much,
how many”가 아니다. 적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마음으로 넉넉함을 느끼면 그게 풍요로운 삶이 되는 것이다.
제 마음도 풍요로워지네요
아마도 반딧불이님의 팬이 될듯해요^^~ 글도 그림도~
주말에 농장에 와서 식물을 가꾸고
먼 훗날 육신이 연약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기록으로 사진을 담아두고 또 글로 남겨두고 있는데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