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3.11:15 火. 흐림
메주는 콩으로 쑤고 팥죽은 팥으로 쑤지, 그런데 새알심은 왜 먹지?
죽粥은 곡식을 물에 묽게 풀어 오래 끓여 알갱이가 흠씬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일부 국가의 문화에서 죽은 주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로 취급하는 한편 다른 문화에서는 밥을 대체하는 다른 요리로 취급한다. 중국에서는 죽粥을 저우zhou라고 하고, 쌀죽은 시판稀飯xifan이라고 부른다. 영어를 사용하는 곳에서는 죽을 라이스 콘지rice congee라고 말하며 이는 인도 고유 언어인 드라비다어족의 낱말인 Kanji에서 비롯했다는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죽은 함께 첨가되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주재료가 되는 쌀과 부재료로 첨가되는 재료를 합쳐 이름이 만들어지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잣죽, 흰죽, 전복죽, 호박죽, 콩죽, 녹두죽, 흑임자죽, 팥죽, 닭죽 등이 있다.
우리 민속에는 동짓날에는 질병과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로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이 있다. 고려 말기의 학자 이재현의 ‘익재집益齋集’에는 동짓날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적소두赤小豆로 쑨 두죽豆粥을 끓여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우리 조상들은 해가 짧고 밤이 긴 동지를 음陰의 기운이 강해 귀신이 성행하는 날로 여겨 붉은 팥죽을 쑤어 방, 마루, 광, 헛간, 우물, 장독대 등에 한 그릇씩 놓았다. 또 팥죽을 대문이나 벽에 뿌리면 귀신을 쫓고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붉은 색의 팥이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지팥죽에는 유독이 옹심이라고 부르는 찹쌀 경단인 새알심이 들어간다. 왜 그럴까? 동지팥죽을 먹는 사람의 나이 수만큼 팥죽에 새알심을 함께 넣어 먹어야 정말 나이를 먹게 된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글쎄 진짜 그것 때문일까? 동짓날 동지죽을 먹는 이유와 팥으로 팥 앙금을 내고 찹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맛있는 동지팥죽을 만드는 방법들은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왜 새알심을 함께 넣어 먹는지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왜 그럴까?
‘빌다’ 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해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빌다와 가장 가까운 뜻으로 우리 고유어에 ‘비손하다’라는 말이 있다. ‘비손하다’는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다.라는 뜻인데, 이 말에는 기도의 구체적인 형식과 기도의 대상이 분명하게 나타나있다. 목욕재계를 한 뒤 촛불을 켜고 정화수를 떠놓고 나서 단정히 앉아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소원이나 소망을 간청하는 행위는 우리 민간에 전해오는 기도의 가장 오래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기도 중에 하는 ‘두 손을 비비면서’라는 행위는 왜 나오게 된 걸까? 우리들은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 또 할머니의 할머니처럼 두 손을 비비면서 기도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두 손을 비비면서.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일요법회를 마치고나서 스님, 법우님들과 더불어 주방일도 도울 겸 놀이삼아 빙 둘러앉아 새알심을 만들다가 아하! 이것이로구나.하고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찹쌀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 내어 두 손바닥 사이에 두고 비비면서 동그랗게 새알심을 만들다보니 오라! 이렇게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서로 비빈다는 일이 자연스럽게 정성精誠을 들이고 그것으로 몰입沒入을 한다는 효과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쩍 든 것이었다.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 풍습은 잡귀와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면 팥죽에 동그란 찹쌀 새알심을 만들어 함께 먹는 풍습은 두 손을 비비면서 기도력으로 만들어낸 소원과 소망의 현현顯現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붉은 팥죽 속에 동그란 새알심이 들어있는 동지팥죽은 잡귀와 재앙은 물리치고 소원과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력이 응집된 기적의 죽’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메주는 콩으로 쑤고 팥죽은 팥으로 쑤지, 그런데 새알심은 왜 먹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