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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연대봉
08.02.02
토욜 아침 일찍 나오므로 자는 식구들의 아침밥을 조용히 해 놓고 8시 20분 집을 나섰다. 지난 번 조금 늦었다가 산행대장님 덕분에 게시판에 활자까지 타게 된 영광으로 오늘은 느긋이 출발을 한다.
두실에서 하단까지의 장거리 여행에 지하철에서 주는 공짜신문을 기대하였으나 오늘은 안 보인다.
나중에 물어보니 토요일은 안준단다.
멍청히 기차여행을 하려니 왠지 무식해 보여 신문이라도 사려고 역마다 기웃거렸으나 내가 탄 두실역외엔
신문가판대가 없다. 그동안 무심코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지하철을 타 보면 앞좌석의 사람들을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이지만 활기차 보이지는 않고 아직 어제의 피로가 묻어있는 밝지 않은 표정, 그리고 인상 쓴 표정들이 종종 보인다.
나도 저럴까? 하지만 배낭 맨 오늘의 내 표정에는 놀러가는 느낌이 나도록 보여야지 하면서 혼자서 몰래
입꼬리를 올리는 연습을 해 본다
중간 역에서 목적지가 같은 언니를 만나 하단까지 도란거리며 잘 갔다.
오늘은 일등도착이다. 대장과 함께 낯익은 몇이 보이고 낯설은 몇도 보인다. 언니랑 함께 오기로 한 일행이 불참하는 바람에 그녀의 차 한대가 펑크났다. 차는 한 대인데 사람은 아홉이라 난처함 잠깐 후에 대장님의 머리굴리기로 어딘가 급히 전화를 한다. 근데 아침부터 외간남자 얼굴을 자세히 안 보려 했지만 전화하는 대장의 눈티가 퍼어렇다. 워낙 뽈뽈거리시는 분이라 어디서 자빠졌던지 아니면 순해 보이는 사모님에게 한 박치기 당한 후유증이리라.
차가 있던 없던 어찌 되겠지 하며 놀러나온 일행들은 근처 포장에서 간또와 떡뽁이를 먹지만 차 한 대를 부도처리한 언니는 대장님의 퍼어런 인상에 주눅이 들어 평소의 소심함이 드러나 간또조차 못 먹고 주위를 살핀다. 아직은 머리 뺑뺑도는 대장의 위기 대처능력으로 졸지에 늦잠자던 근처 사는 제자가 눈꼽도 못뗀 체
차 한 대를 들고 왔다.
이제 배를 타러 용원으로 떠난다. 평소에 왕 잘난 체하던 올해의 임시대장 김씨가 도로표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덕분에 우리를 한참 뺑빼이 돌리더니 물어물어 겨우 출발 10분전에야 삼성자동차 근처의 선착장에 도착했다
1200원주고 승선신고서 까지 작성하려니, 이건 나를 위한 신고서가 아니라 침수 시 신문기사용이리라 생각되어 친절히 적기가 싫어짐을 잠깐 느낀다. 그리고 날이 추워 물에는 안 들어가고 싶다.
오늘처럼 흐린 날에도 등산객과 낚시꾼들이 제법 많이 승선한다.
오랜만에 타는 배라 기대하고 있었더니 겨우 배의 리듬을 타려는 순간 가덕도의 선창항까지 다 왔다고 내리란다,
뭐 이래 !, 올해 처음 해외로 나왔는데 ,이건 해외도 아니잖아.
가덕도의 유일한 산이 연대봉인줄 알았는데 표지판을 보니 봉이 몇 개나 된다.
섬 특유의 좁고 구불어진 골목길을 걷자니 가끔 좋은 대문간에 붙은 '소화기가 있는 집' 이라는 문구가 정겹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바다에서 부터 시작하니 오르막에 이르기까지는 제법 긴듯하다
항상 그렇듯 이 팀은 통성명 없이 눈인사만 나누고 출발한다. 첨엔 그것이 어색하더니 걷다가 보면 ,함께 들숨과 날숨을 교차하며 옆사람과 하모니를 맞추다 보면 어느새 우리 편이 되고 아는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 권유로 오늘 처음 참가한 여인은 직장의 내 옆자리에 앉아 기럭지 길다고 내내 자랑하며 공주행세를 하고 싶어하는 약간 오래된 아가씨인데 오늘은 왼손바닥에 붕대감은 판대기를 받치고 나타나서 일일이 벗겨죠, 묶어죠, 먹여죠 하며 평상시 못해본 어리광을 맘껏 부린다.
오늘 인상은 약간 험하신 우리의 대장님은 긴다리로 비실대는 그녀를 끝까지 동무하며 뒤에서 끌어 주신다.
아! 산에 오르니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날은 흐려 햇빛에 반사되는 은빛물결은 없지만 저 멀리 우리 부산의 금정산 봉우리가 생긴대로 보이고 내고향의 봉래산도 보이고 여러 산의 능선들 사이사이 은은한 구름이 겹겹이 포개져 한 폭의 산수화가 파노라마 진다.
망망한 푸른 태평양에 외항선들이 외롭게 정박해 있던 봉래산 정상의 풍경과는 달리 사방가득 아름다운
먼 산과 그 앞의 해안선과 모래톱. 을숙도와 아마 저기가 다대포 일까. 가늠도 해 본다
고개를 뒤로 돌리니 거제도 쯤으로 보이는 또 다른 크고 작은 남해안의 섬들이 있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아 아 ! 좋다". 소리내어 감탄하며 멋진 풍광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게 하는 목적인 도시락 시간이 다가왔다.
동네별 김밥나라와 맨밥과 김치와 컵라면 그리고 떡갈비와 함께 복분자, 생탁 파티가 시작되었다.
차량과 함께 납치되어 얼떨결에 산꼭대기까지 등산복이 아닌 털옷을 입고 끌려온 창훈씨와 정상주를 나눈다.
둘이 무슨짓을 하고 왔는지 눈티반티 대장과 손가락 장애녀가 뒤늦게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 식사의 여흥으로 그녀가 마지막 공연을 정상에서 펼치기 시작했다.
“아아 악” 하는 오프닝음향과 함께 가덕도의 봉우리를 베고 그녀가 길게 눕더니 두 다리를 쳐 든다.
그러자 전임대장과 신임대장이 번갈아 그녀의 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또 다시 그녀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남자들은 다년간 경험상 잘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잘 다룬다. 웬 산위에서 쥐가 나왔다고 수선들이다. 아마 그녀의 첫 경험 이었으리라.
나는 언제쯤 저런 첫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곁의 다른 여자들도 같은 마음인가 부러워하는 눈치다.
산 아래에서 이게 웬 소리인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낯선 남자 둘이 헐레벌떡 뛰어 오르는 우스운 모양이 보인다. ㅋ
아 즐거운 점심시간이었다. 김밥이 먼저 팔리고 홀로 맨밥이 남자, 일행 중 젤로 어린 남자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저거 엄마제 맛난 김장김치 한 포기를 꺼낸다. 20여년 전 중 1때의 선생님을 따라 김치까지 들고오는 이런 제자들을 둔 대장님이 정말 부럽게 보였다.
지난번 산행 때 한번 본 어떤 멋진 남자가 오늘도 왔었는데 오늘은 부인과 함께 와서 독립된 ‘멋진남자’ 로
안보이고 ‘어떤 여자의남편’으로만 보인다. 상황에 따른 생각의 전환으로 알아두어야 할 교훈이다.
밥 먹는 중간 그녀가 또 벌떡 일어나더니 맨 발로 주위를 배회하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 아마 후유증인가 보다.
싱거운 커피를 가지고 와서 야단맞고 그래도 저거 마누라제 라고 혼자 다 마신 대장님의 ‘출발 5분전’이라는 소리에 자리를 거두는데 반대편에서 하산하는 한 무리의 어른들이 오더니 재호님의 문어말랭이를 나누자고 손을 내미신다. 산에서는 모두가 산 동무로 통하는지 그것도 정겹다.
내 손에 있던 문어를 뒤따라오는 잘 생긴 어른에게 내밀었더니 말 인사를 길게 하신다
“저희 가덕도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란다 .마치 가덕도 주인인 것 처럼.
의아해 하는 우리들에게 자기가 강서구청장이라고 한다.
그러자 호기심 많은 내가 뻥이지 싶어 물어본다 “진짜?” 진짜란다. “진짜로?” 진짜란다. “에이 진짭니까?” 하고 세 번째 물으니 자기가 맞단다. 대장님은 기회다 싶어 우리를 헤매게 한 엉성한 도로표지를 일러바쳣다.
나는 평생 처음 고위공직자인 강서 구청장에게 문어말랭이를 드린 날이라 일기를 쓰기로 다짐하였다.
해발 459,4 M 연대봉이다
烟대峰 .봉수대가 보여 연기 연 인가 했더니 연기 연은 煙이란다
집에서 찾아보니 烟=煙 같은 글이다 .옛날 왜구의 침입시 봉화를 올린 곳이란다
우리가 하산할 항구가 발아래 보이고 또 다시 아름다운 바다도 보인다.
몇 해 지나면 이 풍경에 긴 다리가 합성되리다. 가거대교(거가대교)가 완공 되면 우리가 섬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아련한 향수가 옅어지지나 않을까?
올 때는 1200원에 선창까지 10분 만 태워주더니 갈 때는 대항에서 2000원에 오래오래 40분이나 태워주어 배에서 졸기까지 하였다.
부산 진해 신항만을 지나 항구에 도착하니 그새 낯선 풍경으로 바뀌었고 게다가 우리가 타고 온 차마져 사라지고 없다.
출발지와 다른곳이다. 오늘은 차의 수난이다. 콜택시 두 대를 거금 2만원에 불러 차가 주차된 다른 항구로 10분 달려와 옮겨타고 오늘 하단 9시 40분에서 시작되어 4시 녹산 선착장까지의 산행을 마무리 했다.
대장님의 제자들이 선샘집 방문하는데 얹혀서 맛난 회를 잘 얻어먹고 기분좋게 귀가하엿다.
함께 놀아준 최대장, 김대장, 소심한 혜씨, 장애의 몸으로 공연까지 해준 은숙씨, 선샘의 구박에도 꿋꿋이 썰렁한 성수씨. 어떤 부부, 자다가 잡혀온 창훈씨
고맙습니다.
(축구하다 고장난 대장님의 잘생긴 코뼈가 다음날 병원침대에서 원위치 되기를 기원하며.)
낙동강 하구 모래톱 모습
첫댓글 짧지 않은 글인데 시종 미소를 띠고 읽게 하는 마력을 지녔네요. ㅎㅎㅎ. 워낙 한 유모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다리 공사 잘 되고 있던가요?^^ 조만간에 가덕도 신항만이 완공되고 다리가 놓이고하면 그곳도 지금과는 또 다르겠죠...어쩌면 지금이 그나마 여행의 맛이 날지도 모르는데.....잘 읽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가덕도입니다. 옛날 그 쪽 어장이 할아버지 소유였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저의 뿌리를 찾아 한 번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가지 못했네요^^
그 넓은 바다가 조부님소유인 분 과는 아는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