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킹 69회 가을 문화행사
나에게 이번 가을 문화행사는 처음부터 기대 만발행사로 시작하였다.
10.17일 또다른 행사가 몇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지만 우리 부부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추억의 용산 미군 부대 방문을 선택 하여 33년 전 그래도 지금보다는 싱싱했던 시절을 되돌아 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 주한 미 해군사령부 연락장교로 발령을 받아 어설프고 더듬거리던 절름발이 영어의 추억, 하지만 한 달이 지나니 눈치 콧치 영어로 입이 트이고 귀가 열여 2년후 그곳을 떠날 때엔 미 해군성으로부터 공로 훈장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때 우린 토요일이 반 공휴일이고 미국은 휴일이어서 토요일엔 눈치껏 출근하고 땡땡이치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쯤 내가 알아낸 위대한 사실은 주말의 존재 가치가 미국과 한국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월-금까지 열심히 일하기 위해 쉬고 충전하기 위한 주말(토, 일)이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주말을 놀고 즐기기 위해 월-금까지 일한다는 것이었다. 해서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무엇이든지 껀수를 달아 파티를 했다. 내 기억에 그곳에서 나도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을 하고 진급 주를 navy club에서 냈는데 정말로 밥을 사는 것이 아니고 밥은 각자가 알아서 먹고 난 바텐더에서 먹은 음료값만 내는 진짜로 술만 사는 파티를 주최하였다. 이런저런 추억에서 깨어 이촌역에 내렸을 때 눈이 시리게 파란 가을 하늘이 우릴 반겨 주었다. South post에서 Main post를 둘러 볼 때면 인적 드문(90%가 평택으로 이전한 상태) 부대 안 시설은 그대로인데 인기척이 없으니 바람이라도 좀 불 작치면 서부영화 쟝고가 되어 어느 서부의 시골 마을을 찾아가는 기분이 되었다. 이윽고 80명의 쟝고가 dragon hills hotel을 찾았을 땐 본토에서 막 도착한 몇 명 공군 쫄병들이 정복 복장을 한 채 카운터에서 어슬렁거리고 파티장 입구에서 썰렁한 몇 점의 핼러윈 데크레이션이 우릴 반길 때까지 우린 전통의 우아한 69회 가을문화행사가 쑈킹 크레이지 문화행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문제는 식사를 기다리며 입구에 마련된 바텐더에서 한 시간 정도 만남의 기쁨을 갖는 시간이었다. 일부 주당들은 초반부터 시바스리갈 12년산으로 주는 위스키 더블 온더락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하였고 고운 마나님들마저 식사 테이블에선 반주로 나온 캘리포니아 캔달잭슨사의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 2016년산 레드와인(전치혁 고증)을 남이 마실세라 아까울세라 홀짝홀짝 들이키셨으니 해서 쇼킹 크래이지의 단초가 채워지게 되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처음엔 아주 젠틀하게 시작되었다.
송창식과 윤형주를 쎄시봉에서 키웠다는 80 넘은 기타, 바이올린, 피아노 세 어르신은 서부영화에서 보던 신들린 컨트리 뮤직을 보여주셨다. 발바닥 근질에 엉덩이 들썩이면 될 것을 그놈의 흥으로 애고 애고 손목운동 목운동 포도주잔만 축 내더라. 1부 할아버지 미8군 밴드의 추억의 올드팝송이 끝나고 남은 포도주를 들고 집에 갈거나 생각했는데 그날 파티를 주관한 임회장이 일어서 무반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면서 2부의 불씨를 집히었다. 하지만 쉽게 불이 붙지않아 꺼지기 일보 직전 세상 점잖은 꺼부정 한규석이 일어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위하여!”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하여튼 테이프 늘어나 고장난 반복된 리듬으로
“-----을 위하여”
“-----을 위하여”
“-----을 위하여”
“-----을 위하여”를 괴성으로 무한반복하는 것이었다.
모두 따라 하다 웃다가를 무한 반복하다가 “그만하자”라는 아우성에 괴성은 끝나고 드디어 2차전 불이 본격적으로 활활 붙기 시작하였다. 다음 바통을 이은 건 민경도 부인의 반주에 맞춘 최유화 부인의 본격 소프라노였다. 사실 좀 품위 떨어진 경기 가을문화제에 격조를 불어넣는 데 성공은 하였지만 이미 엎어진 기름불을 조절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이때부터 이태균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내가 빠질세라 정인범이 추억의 팝송으로 바통을 이었고 정말 그 시절의 고수 케세라 정세장이 악착같이 은퇴를 고집하는 가운데 80-90년 시절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우리의 엽기가수 최유화가 결국 “엽기 버전 ‘존재의 이유’”를 또 무한 반복으로 부르면서 그 자리 모두 배꼽이 빠지고 입이 찢어지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전통의 69회 가을문화제가 엽기문화제로 둔갑한 내역을 간단히 소회하고 머리 허연 늙은이들은 선선한 가을밤에 옷깃을 여미면서 또 한 번의 행복한 추억 보따리를 보듬어 안고 bye bye 하였습니다.
아참 그리고 이렇게 69회가 모두 아노미 상태로 가는데 미제 스테이크와 포도주로 자리를 깔아준 구자철 동문에 감사 하면서 엽기적 졸필 김호가 보고드립니다.
2019.10.17.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