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박물관 문화유산 답사회 전남구례 답사자료 |
* 일 시 : 2016.03.23 (넷째 수요일) 07:30~19:00
* 일 정 : 현지 사정에 의하여 일부 변경 될 수 있습니다.
마산박물관(07:30) - (매화마을) - 오산 사성암 - 산수유마을
--- 점 심 - 구례읍내 식당 ---
- 운조루 - 연곡사 - (화계장터) - 마산박물관(19:00)
* 답사인원 : 4 5 명
* 인 솔 : 회 장 : 고 명 천 010-3889-1288
: 총무이사 : 강 영 애 010-5757-2567
마산박물관 문화유산답사회
16-3차 답사자료 (03. 23)
** * 구례지역의 유물·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문척면 월전리에 지석묘와 구례죽마리지석묘군(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2호), 토지면 구산리의 지석묘를 비롯하여 1백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으며, 마산면 냉천리에서는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토지면 송정리에 석주관성(사적 제385호)이 있으며 산성지로는 마봉산성지(馬峰山城址)·봉성산성·행유산성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마산면 황전리에 화엄사(華嚴寺,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4호), 토지면 내동리에 연곡사, 광의면 방광리에 천은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가 있다. 화엄사에는 화엄사각황전(국보 제67호)·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화엄사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화엄사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화엄사대웅전(보물 제299호)·화엄사원통전전사자탑(보물 제300호)·구례화엄사화엄석경(求禮華嚴寺華嚴石經, 보물 제1040호)·화엄사영산회괘불탱화(국보 제301호)·화엄사보제루(華嚴寺寶濟樓,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구층암석등(九層庵石燈,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등이 있다.
연곡사에는 연곡사동부도(鷰谷寺東浮屠, 국보 제53호)·연곡사북부도(鷰谷寺北浮屠, 국보 제54호)·연곡사삼층석탑(보물 제151호)·연곡사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연곡사동부도비(보물 제153호)·연곡사서부도(보물 제154호)가 있다.
천은사에는 천은사극락전아미타후불탱화(泉隱寺極樂殿阿彌陀後佛幀畵,보물 제924호), 천은사나옹화상원불(泉隱寺懶翁和尙願佛,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천은사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등이 있다.
그 밖에 문척면 죽마리에는 원효·도선·진각·의상이 수도하였다는 사성암(四聖庵,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3호), 구례읍 논곡리삼층석탑(보물 제509호), 마산면에 구례사도리삼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호) 및 구례사도리석불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문척면 죽마리 마애여래좌상·상곡사지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문척면에 월전리입석(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4호), 토지면에 구산리입석(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5호), 광의면에 구례대전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구례읍 봉서리에 구례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와 광의면 수월리에 매천사(梅泉祠,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7호), 마산면 황전리에 남악사(南岳祠,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6호)·오봉정사(五鳳精舍) 등이 있다.
그 밖에 산동면 이평리의 윤문효공신도비(尹文孝公神道碑, 보물 제584호)와 구례윤문효공묘전석등 및 석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 토지면 송정리에 임진왜란 때 전사한 7인을 모신 석주관칠의사묘(石柱關七義士墓, 사적 제106호), 산동면 시상리에 운흥정(雲興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1호)·좌사리에 방호정(方壺亭,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2호), 그리고 산동면 원촌리에 김완장군전승유허비(전라남도 기념물 제50호) 등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는 구례읍에 향제줄풍류(鄕制─風流, 중요무형문화재 제83호)와 토지면 오미리에 구례운조루(求禮雲鳥樓, 중요민속자료 제8호)가 있다.
그 밖에 천연기념물로는 화엄사의 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가 있고, 노거수로는 간전면 흥대리와 마산면 냉천리의 느티나무, 문척면 죽마리의 팽나무가 있으며, 마산면 황전리에는 구례장죽전녹차시배지(求禮長竹田綠茶始培地, 전라남도 기념물 제138호)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사성암 (四聖庵)
소재지 :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
국가 명승 제111호로 지정된(2014.8.28)
사성암은 자라모양을 하고 있는 해발 531m의 오산 정산에 위치해 있다. 정상에 오르면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 지리산 연봉들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오산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 오산암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가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고 있다. 1800년 구례향교에서 발간한 「봉성지」에 이르길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하였다면서 사성암의 빼어난 경관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오산 사성암은 우리 선조들에게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예부터 경관이 빼어났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기암절벽에 지어져 그 독특한 건축양식에 관광객의 감탄을 자아내며, 기도의 효험 또한 높다하여 최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사성암[四聖庵]은 아직 덜 알려진 작은 암자로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멋스러움만큼은 으뜸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사성암은 바위 사이에 박혀 있다.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약사전'과 바위 위에 살짝 얹어 놓은 듯 단아한 '대웅전' 등 모든 구조물이 산과 하나되어 고운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돌면 아래로 섬진강이 돌아 흐르고 구례읍과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도선국사가 참선했다는 '도선굴'과 암벽에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마애여래입상'도 보며 일상의 번민을 씻을 수 있다 사성암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를 쐬며 조금은 헉헉거리며 산 정상까지 올라가면 기암절벽에 절묘하게 있는 절이 보여 저절로 감탄의 탄성이 나온다.
**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오산(鰲山, 해발 530m)의 정상에 위치한 사성암에서 남쪽으로 50m 정도 내려가면 높이 20m가 넘는 암벽에 남서향으로 열린 ㄷ자형 벽면 안쪽에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형태와 대의(大衣)의 처리 등으로 보아 나말여초인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7월 5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9m로, 불상의 표현은 거친 바위면에 외곽선을 그리고 선을 따라 일정한 깊이와 두께로 조각하였다. 두광과 주형거신광을 가진 불상은 소발의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고, 상호(相好)는 둥근 형으로 이목구비 등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고,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을 펴서 가슴 앞에 대고 있는 아미타수인을 취하고 있다.
대의는 양 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신체를 따라 무릎까지 U자형의 의습선이 길게 늘어져 있다. 하반신에 군의(裙衣)를 입어 대의 끝단 밑으로 군의자락이 표현되었다. 군의자락 밖으로 나온 발이 얼굴과 손 등에 비하여 비사실적이고 도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얼굴과 손이 신체에 비하여 강조된 것은 마애불이 위치한 지점이 지상에서 2미터 정도 위에 있어 예불을 드리는 사람의 시각을 고려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간략화된 음각기법으로 조성되었으며, 광배에는 불꽃무늬와 덩굴무늬가 보이는데, 이는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의 무늬와 비슷하여 주목된다. 대의와 군의에서 나타난 파상문, 발등 표현에 따른 사실적인 기법, 상호에서 풍겨주는 인상 등에서 10세기경의 불상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마애불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산동면 산수유 축제
구례의 산수유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사는 처녀가 구례군 산동면으로 시집올 때 처음으로 가져다 심었고, 산동이라는 지명도 이러한 연유에서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국내 최초의 산수유 시목이라 여겨지는 산수유나무가 산동면 계천리에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구례의 산수유는 전국 생산량의 73%, 수확면적으로는 84%에 달할정도로 국내 최대의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품질면에서도 다른 지역 산수유에 비해 칼륨, 칼슘, 아연과 같은 무기성분이 풍부해 최고의 품질로 평가받고 있다. 지리산의 맑은 물과 기온차의 영향으로 그처럼 우수한 품질이 보장된다는 것이 학계의 연구결과이다. 옛날 구례 산동면 처녀들은 산수유 열매를 입에 넣고 앞니로 씨와 과육을 분리하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이작업을 반복해서인지 앞니가 많이 닳아 있어 다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산동면 처녀를 쉽게 알아보게 했다. 부지런한 산동처녀를 며느리로 맞이하기 위한 인근의 남원과 순천 등지에서 경쟁은 치열했고, 신랑들이 산동에서 시집온 부인과 입 맞추는 것은 보약과 같다고 자랑했다. 구례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산수유꽃과 열매를 연인에게 선물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풍습이 이어졌다. 산동면 전역에 산수유 군락이 분포한다. 그중에서 상위마을, 반곡마을, 계척마을, 현천마을의 군락은 더욱 유명하며, 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 언제나 붐비고 있다. 구례군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산수유를 보다 널리 알리고 친근하게 관상 또는 시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2011년도에 산수유시목지 등에 47억을 투자하여 "산수유테마파크"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2014년 3월에는 산수유사랑공원에 산수유홍보관을 개관했다. 이 홍보관에서 산수유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안내 받을 수 있다.
*** 운조루 雲鳥樓
건립시기/연도 1776년(영조 52)
소재지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오미리)
문화재 지정번호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
문화재 지정일 1968년 11월 25일
집필자 이영문
중요민속자료 제8호. 1776년(영조 52)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집터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금환낙지(金環落地)라 하여 예로부터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사랑채는 4칸의 몸채에 뒤쪽으로 꺾여 이어진 2칸의 날개가 달려 있다. 몸채 왼쪽 끝의 1칸은 내루형(內樓形)으로 기둥 밖으로 난간이 둘러져 있다.
이 사랑채의 구성은 궁전 침전에서와 같이 완전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여기에 일반 대청이 연립하여 있다. 또, 사랑채에는 보통 큰 부엌이 없는 법인데,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더구나 본 사랑채와 직교한 누마루가 또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 있어 특이하다.
사랑채의 오른쪽은 안채로 평면이 트인 ㅁ형인데, 중행랑채를┍ 형으로 만들어서 전체 윤곽이 몸채 뒤쪽의 날개부분까지 합쳐 ㅁ형이 되어 아주 독특한 평면이다. 중행랑채는 一자형 곳간채의 왼쪽 끝에서 2칸이 앞쪽으로 돌출하여 있다. 이 2칸은 내루형으로 처리되어 1칸은 방이 되고 1칸은 판상(板床)을 높이 설치한 다락이 되었다.
머름을 드리고 문짝을 달았으며, 서벽 밖으로는 쪽마루와 난간을 설치하였다. 이 누하주(樓下柱) 서쪽에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는데, 죽담에 오르는 것을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또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안채의 중심부분은 대청으로 주간(柱間)이 개방되어 있다. 대청 좌우로는 안방과 건넌방들이 자리잡고 있다.
*** 연곡사 鷰谷寺
소재지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화엄사종주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습니다. 1981년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경내에는 동부도, 북부도가 국보로 연곡사삼층석탑, 현각선사탑비, 동부도비가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부도는 도선국사의 사리를 보관하던 것으로 연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통일신라 말기의 부도이며, 이 시기에 만들어진 부도 중 조각이 정밀하고 가장 아름답습니다. 또한 동부도와 나란히 서 있는 북부도는 목조 건축의 양식을 따라 정교하게 조각 되었고, 부도에 새겨진 문비, 향로, 사천왕상 등의 윤곽이 섬세하여 우리나라 부도를 대표할 만큼 아름답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연곡사동승탑 鷰谷寺東僧塔
시대 ; 통일신라시대, 9세기
성격 : 탑, 승탑
크기 : 높이 3.0m
별칭 : 연곡사 동부도
문화재 지정 : 국보 제53호(1962.12.20.)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53호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3m이다. 연곡사에는 북승탑과 서승탑까지 포함해 총 3기의 승탑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승탑은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연곡사 동쪽의 네모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을 기본형으로 삼았다. 하대석은 2단으로 하단에는 구름무늬를, 상단에는 사자를 조각했다. 중대석에는 둥근 통 모양의 안상(眼像) 속에 팔부신중(八部神衆)을 두었다. 상대석 역시 2단으로 나누어 연화무늬와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겼다. 옥신의 각면에는 우각(隅角)마다 중간에 둥근 마디가 있는 기둥모양을 세우고, 문살 ·보여(寶輿)·사천왕상을 얕게 양각했다. 옥개는 2중연목(二重緣木)과 기왓골이 정교하게 모각되었으며, 상륜에는 봉황과 연화무늬를 새긴 석재가 얹혀 있다.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승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기단이 다소 높아 보이는 것 외에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조각수법이 뛰어나서 통일신라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북승탑은 이 동승탑을 본뜬 것으로 보인다. (두산백과)
** 연곡사 북승탑 [ 鷰谷寺 北僧塔 ]
소재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지정종목 : 국보 제54호. (1962.12.20)
시대 : 고려시대./10세기
크기 : 3m
연곡사의 북쪽에 네모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다.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구름무늬를 조각한 8각 하대석을 놓고 그 위에 16잎의 연화무늬를 새겨 간석(竿石)을 받치고 있다. 중대석 각면에는 안상(眼象) 안에 조식(彫飾)이 있고, 팔각 탑신의 각 면은 향로와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으로 장식했다. 상대석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양각했다. 비교적 넓은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양식을 따라 이중연목(二重緣木), 기왓골 등을 세밀히 모각(模刻)했고, 상륜부는 완전하며 4마리의 봉황이 날개를 벌린 돌을 얹고 다시 연화석 보륜(寶輪) 등이 놓여 있다.
이 승탑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누구의 승탑인지는 모르고 다만 '북승탑'이라고 부른다. 동승탑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반면에 북승탑은 그 후인 고려시대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서승탑은 조선 때 만들어진 것이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한 승탑이다.
(두산백과)
** 연곡사 삼층석탑 [ 鷰谷寺三層石塔 ]
소재지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지정종목 : 보물 제151호 (1963.01.21)
시대 : 통일신라
크기 : 높이 6m.
연곡사의 법당(法堂) 남쪽에 있는 사각형의 3층 석탑으로 3중의 기단(基壇)을 가지고 있으며 지대석에는 하대석을 받치기 위한 낮은 1단의 석재가 있고, 그 위에 하대석, 그 위에 중대석, 그 위 중석(中石)에는 우주(隅柱:탑 몸돌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와 탱주(撑柱: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있다. 갑석(甲石) 상면에는 완만한 경사가 보이고 중앙에는 각형과 호형(弧形)의 몰딩이 있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맨 윗기단이 넓은데 비해 탑신부(塔身部)는 줄어들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석탑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추녀 밑은 수평이며 지붕돌의 경사도는 경쾌한 곡선을 그린다. 1967년 떨어져 있던 석탑의 3층 지붕돌을 복원공사할 때 위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銅造如來立像)이 발견되었다.
특이한 3중 기단 양식과 탑신부가 기단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안정감을 주는 아름다운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소재지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종목 : 보물 제152호 (1963.01.21)
시대 : 고려시대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
현재 비신은 없어졌고 귀부(龜跌)와 이수(이首)만이 남아 있다. 귀부의 조형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입 주변에 수염을, 비좌(碑座) 둘레에 조출(彫出)된 귀꽃과 안상(眼象) 등을 새기었다. 이는 고려시대(高麗時代) 비석(碑石)의 형식을 갖춘 것이다.
이수의 용의 형상은 웅건하며 사실성이 두드러진 조형이다. 이 석비의 건립년대는 기록에 의하면 고려(高麗) 경종(景宗) 4년(979)으로 추정된다.
** 연곡사 동승탑비 [ 鷰谷寺 東僧塔碑 ]
소재지 :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연곡사
지정종목 : 보물 제153호 (1963.01.21)
시대 : 고려
종목 : 석비
크기 : 높이 1.2m
비(碑)는 동승탑 앞쪽에 있다.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귀부와 이수의 조형이 작은 편인 고려시대의 석비이다.
비문을 새긴 비신(碑身)은 임진왜란 때 없어지고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인 귀부와 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인 이수만 남아 있다. 비석의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거북머리는 훼손된 것을 복구하여 붙여놓았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했고,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되어 있는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화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무늬를 장식한 연꽃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가 돌출되어 새겨져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 연곡사서부도 [ 鷰谷寺西浮屠 ]
승탑과 탑비를 별도로 세우지 않고 승탑의 탑신석이나 다른 부재에 글자를 새긴 예이다.
부도와 탑비를 별도로 세우지 않고 부도의 탑신석이나 다른 부재에 글자를 새기는 예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 부도도 그 예의 하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