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미래유산 인생투어(1)
공공일호 건물
◇ 공공일호 건물 (『샘터』사옥) : 종로구 대학로 116번지 (서울미래유산)
- 44년 전 건축가 김수근이 지은 『샘터』 잡지사 사옥
공공일호 건물은 1979년에 건축가 김수근(金壽根)이 지은 건축물이다. 1975년에 전 국회의장 김재순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서울대학교 부지 661㎡를 인수하여 월간지 『샘터』 잡지 사옥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맡겼다.
김수근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다”라고 하면서 이 건물을 길과 소통하며, 다양한 면의 얼굴을 한, 열린공간으로 설계하였다. 이에 따라 빈 장소에 여러 개의 문을 만들고, 건물 앞뒤의 길을 연결하면서 지하 2층, 지상 4층의 건물이 지어졌다. 그 후 2012년에 건축가 승효상이 철과 유리를 이용하여 증축하고, 내부에 승강기를 설치하였다.
적벽돌과 담쟁이덩굴로 덮인 이 건물은 2018년에 공공그라운드 부동산회사에서 인수, ‘공공(空空)일호’라는 명칭으로 고쳤다. 지하에는 갤러리와 스테이지, 파랑새극장이 있다.
이 건물은 1979년에 ‘문화예술의 장소’였다. 1985년에 대학로가 ‘문화예술의 거리’로 지정된 후에는 ‘대중문화의 장소’로, 1990년대 이후에는 ‘생산과 문화의 장소’로 변화해 가면서 시민들과 호흡해 가는 장소이자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그 의미를 지켜나가고 있다.
◇ 마로니에공원 : 종로구 대학로 104 (서울미래유산)
- 대학로의 상징인 마로니에가 자라는 공원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옮긴 뒤 그 자리는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곳에
심어져 있는 마로니에는 1929년 4월 5일,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있을 때에 심은 것으로, 지금은 대학로의 상징이 되었다.
공원 이름이 된 마로니에는 모양이 아름답고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른 편이다.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자생하는 쌍떡잎식물로. 서양칠엽수, 혹은 가시칠엽수라고도 부른다. 본래 남유럽에서 재배된 식물로 가로수, 조경수 등으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마로니에라고 심은 나무는 대부분 일본 칠엽수이다. 한국에서 가장 확실한 마로니에 나무가 있는 곳은 덕수궁에 있다. 1913년 일제 때 네덜란드 공사가 고종황제에게 묘목을 선물한 한국 제1호 마로니에 나무가 덕수궁 석조전 뒤에 심어져 있다. 이 나무들은 1913년에 선물했기 때문에 확인된 수령이 100년을 넘은 고목들이다. 이 곳 외에도 마로니에 나무는 수목원, 식물원 등에 심어져 있다.
서울대학교의 역사를 상징하는 이 나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므로 서울대학교 건물을 철거할 때에도 그대로 두었다. 그 뒤 대학로 중심의 공원을 조성하면서 이 나무 이름을 따서 마로니에 공원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공원은 어린이놀이터·야외무대·연못·분수공원·조각품·매점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이 중 야외무대는 아마추어 가수들의 공연장으로 쓰이고 있다. 이 공원의 중심부에는 문예회관 대극장과 바탕골 소극장·샘터 파랑새극장 · 학전 · 코미디아트홀 · 동숭아트센터 · 정미소 등의 소극장이 몰려 있다.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되는 이 공원 앞의 도로(대학로)가 1985년 말에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차없는 거리’로 지정되었다가 1989년에 해지되었다. 2004년 5월 1일 주변 대학로 및 공원 일대가 문화지구로 선포되면서 마로니에길 이면도로 1,100m가 ‘차없는 거리’로 지정되었다.
마로니에 공원 주변에는 구 서울대학교 본관(사적 제278호), 창경궁(사적 제123호), 종묘(사적 제125호), 창덕궁(사적 제122호) 등의 사적이 있다.
◇ 구 서울대학교 본관 : 종로구 대학로 104(사적 제278호)
현재 문화예술진흥원 건물이 바로 구서울대학교 본관이다. 일제 치하의 1931년 옛 경성제국대학의 본관 건물이다. 1922년 11월 이상재를 대표로 조선교육협회에 의하여 조선민립대학 기성회가 결성되고, 1923년 3월 29일 발기인총회가 개최됨으로써 조선민립대학의 설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일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1923년 5월 경성제국대학령을 공포하고, 1924년 경성제국대학이란 관립대학을 설립하였다.
1924년 먼저 2년제의 예과를 설치하여 개교를 한 후, 1926년에는 3년제의 법문학부와 4년제의 의학부를 설치하였고, 1938년에는 이공학부를 신설하였다. 그리고 해방된 후 1946년 8월 미군정에 의해 국립 서울대학교 설치령이 발표되면서 오늘날 서울대학교로 바뀌었다.
이 건물은 한국인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를 하였고, 일본인 미야가와구미(宮川祖)가 시공을 담당하였는데, 1930년 8월에 착공하여 1931년 10월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서울대학교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에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옮기면서 문화예술진흥원의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장방형의 평면에 구조는 철근콘크리트가 주가 되면서 벽돌과 목재를 겸용하였다. 지하는 1층이고, 지상의 일부분은 2층, 일부는 3층으로 설계되었으며, 근대합리주의적 형태로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 학림다방(學林茶房) : 종로구 대학로 119, 2층 / 명륜동 4가(서울미래유산)
-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제25강의실’로 불린 대학로의 오래된 다방
학림다방은 1956년에 개업하여 67년간(2023년 현재)을 이어오고 있다. 개업 당시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건너편에 있었다. 1981년 전두환정권 초에 학생운동을 탄압한 ‘학림 사건(學林事件)’은 바로 이 다방과 관련이 있다.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인 이 다방은 서울대학교가 1975년에 관악산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당시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휴식처이자 아지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별칭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제25강의실'로 불릴 정도였다. 이 다방의 출입하던 유명인사로는 시인 김지하, 소설가 이청준, 시인 천상병 등이 있었다. 서울대학교가 관악산으로 이전하게 된 이후에도 이 다방은 대학로에 그대로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뿐만 아니라 대학로의 북쪽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명륜캠퍼스 학생들도 여유가 있을 때면 마을버스를 타고 많이 찾아오는 편이다
학림다방의 1960년대의 분위기는 요즘의 카페들과는 다르게 고풍적이고, 오래된 분위기라 엣 추억을 느끼려는 중노년층과 옛날 분위기에 관심이 있는 젊은층들이 들른다.
그밖에 이 다방은 TV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의 데이트 장소로도 등장하였고, <별에서 온 그대와 응답하라 1988>의 촬영을 한 장소여서 젊은층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이 곳에서 유명한 메뉴는 비엔나커피. 핸드드립 커피도 유명하다. 이 두 가지 메뉴 외에도 다방의 이름값에 맞게 대추차나 생강차도 판다.
이 다방 건물은 1983년에 신축하였다. 원래 건물은 지하철 4호선 공사 당시의 노후화 문제 등으로 철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동양서림 : 종로구 창경궁로 271-1 (서울미래유산)
동양서림은 1953년 9월 1일,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장녀이자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가 현 위치에서 개업했다.
개업 당시의 서점은 6평 크기에 불과했으나 이후에 40평 정도의 토지를 공동으로 구입하여 1964년에 지상 4층 건물을 준공하고, 현재 1층의 30여 평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1968년에는 이순경 여사가 출판 유공자 표창장을 받았다. 당시 이 서점은 규모에 비해 종업원이 많았는데 이들을 모두 고등학교, 대학에 재학시켜 공부하도록 하여 유명하였다.
동양서림은 개업했을 때에 점원으로 취업했던 최주보가 1980년에 인수하여 2대 대표가 되었다. 2000년에는 최주보 대표의 딸이 이 서점을 함께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 3대 대표가 되어 운영하고 있다.
주요 고객은 단골손님과 서점에 대한 추억으로 찾아오는 고객들이다.
한편 이 서점 앞에는 종로구청과 경기도 양평군청이 공동으로 세운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지」 표석이 세워져 있다.
◇ 혜화동 주민센터 : 종로구 혜화로 12 / 구 한소제 가옥(서울미래유산)
- 1940년대 최초의 여의사인 한소제가 지은 한옥을 개조한 주민센터
혜화동 주민센터는 전통한옥을 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한옥청사의 널찍한 정원과 커다란 목제 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종로구청은 지은 지 70년쯤 된 ‘ㄷ’자 형태의 한옥을 구입하여 개수한 뒤, 2006년에 주민센터 간판을 붙였다.
전국에서 최초의 한옥 주민센터로 탈바꿈한 혜화동 주민센터는 한국 걸스카우트 창설자이자 대한부인회장,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였던 고 한소제(韓少濟)가 1940년대에 지은 근대 한옥이다. 대지 808.1㎡, 건평 232.5㎡ 크기의 이 한옥청사는 한옥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이어서 2010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우선 전통 마룻바닥을 깔고,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도리와 도리 사이에 서까래를 걸쳐놓아 옛 멋을 살렸다. 그리고 벽면을 투명한 통유리로 바꾸고, 낮은 담장을 둘러놓았다.
이 곳 정원에는 200년 된 향나무가 심어져 있고, 감나무가 서 있어서 운치가 있다. 마치 역사교육장의 느낌을 주어 관공서의 딱딱한 인상을 탈피하여 주민 친화적인 주민들의 쉼터로서 문화적인 휴식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 추사 김정희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