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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十四回 智伯決水灌晉陽 豫讓擊衣報襄子
제84회: 지백이 물을 터서 진양에 대고, 예양은 옷을 베어 조양자에게 보복하다.
話說,智伯名瑤,乃智武子躒之孫,智宣子徐吾之子。徐吾欲建嗣,謀於族人智果曰:「吾欲立瑤何如?」智果曰:「不如宵也。」徐吾曰:「宵才智皆遜於瑤,不如立瑤。」智果曰:「瑤有五長過人,惟一短耳。美鬚長大過人,善射御過人,多技藝過人,強毅果敢過人,智巧便給過人,然而貪殘不仁,是其一短。以五長凌人,而濟之以不仁,誰能容之?若果立瑤,智宗必滅!」徐吾不以為然。竟立瑤為適子。智果嘆曰:「吾不別族,懼其隨波而溺也!」乃私謁太史,求改氏譜,自稱輔氏。及徐吾卒,瑤嗣位,獨專晉政。
한편, 지백(智伯)의 이름은 요(瑤)이고, 곧 지무자(智武子) 역(躒)의 손자이며 지선자(智宣子) 서오(徐吾)의 아들이다. 지서오가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종족인 지과(智果)와 의논하여 말하기를, “내가 요를 후계자로 삼으려는데 어떤가?” 하니, 지과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소(宵)가 낫습니다.” 했다. 지서오가 말하기를, “소의 재주가 모두 요보다 못하니 요를 세우는 것이 낫지.” 하니, 지과가 말하기를, “요는 다른 사람보다 장점이 다섯 가지가 있고 오직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수염과 남보다 큰 키를 가졌고, 활 솜씨와 말을 모는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며, 여러 가지 기예가 남보다 뛰어나고,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이 남보다 뛰어나며, 교묘한 지혜와 임기응변이 남보다 뛰어납니다. 그러나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어질지 못하니 그것이 한 가지 단점입니다. 다섯 가지 장점으로 남을 능멸하고 어질지 못한 마음으로 그것을 돕는다면 누가 그를 용납하겠습니까? 만일 끝내 그를 후사로 세우신다면 지씨 종족은 틀림없이 멸족될 것입니다!” 했다. 서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결국 요를 자기의 적자로 세웠다. 지과가 탄식하기를, “내가 우리 종족과 떨어지지 않으면 뒤따라오는 파도에 익사(溺死)할까 두렵다!” 하고, 이에 몰래 태사를 찾아가 족보를 고쳐서 스스로 보씨(輔氏)라고 칭했다. 지서오가 죽고 요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진(晉)나라 정사를 오로지했다.
內有智開智國等肺腑之親,外有絺疵豫讓等忠謀之士,權尊勢重,遂有代晉之志,召諸臣密議其事。謀士絺疵進曰:「四卿位均力敵,一家先發,三家拒之。今欲謀晉室,先削三家之勢。」智伯曰:「削之何道?」絺疵曰:「今越國方盛,晉失主盟,主公託言興兵,與越爭霸,假傳晉侯之命,令韓、趙、魏三家各獻地百里,率其賦以為軍資。三家若從命割地,我坐而增三百里之封,智氏益強,而三家日削矣。有不從者,矯晉侯之命,率大軍先除滅之。此『食果去皮』之法也。」智伯曰:「此計甚妙!但三家先從那家割起?」
안으로는 지개(智開)와 지국(智國) 등의 가까운 친족이 있고, 밖으로는 치자(絺疵), 예양(豫讓) 등의 충성스러운 모사가 있어서 권세는 높고 무거웠다. 마침내 진(晉)의 공실을 대신하려는 뜻을 품고 가신들을 불러 모아 그 일을 비밀리에 의논했다. 모사 치자가 나와서 말하기를, “네 집안의 위치와 힘이 비슷하여 한 집안이 먼저 나서면 세 집안이 대항합니다. 지금 진(晉)의 공실을 도모하려면 먼저 세 집안의 세력을 깎아야만 합니다.” 하니, 지백이 말하기를,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깎겠소?” 했다. 치자가 말하기를, “지금 월나라가 바야흐로 흥성하여 진(晉)나라가 맹주 자리를 잃었습니다. 주공께서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와 패권을 다투겠다는 핑계를 대고 진애공의 명을 가장하여 한(韓), 조(趙), 위(魏) 세 집안에 각기 백 리의 땅을 바쳐서 그 부세로 군자금을 삼으라는 명을 전하십시오. 세 집안이 만약 명령에 따라 땅을 쪼개 준다면 우리는 앉아서 3백 리의 봉토를 늘릴 수 있어 지씨가 더욱 강해지고 세 집안은 날로 깎일 것입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진애공의 명을 고쳐 대군을 거느리고 먼저 그 집안을 멸하십시오. 이것은 ‘과일을 먹으려면 껍질을 벗겨야 한다’라는 방법입니다.” 하니, 지백이 말하기를, “그 계책이 아주 훌륭하오! 다만 세 집안 중 어느 집안부터 먼저 땅을 떼어 바치라고 하겠소?” 했다.
絺疵曰:「智氏睦於韓魏,而與趙有隙,宜先韓次魏,韓魏既從,趙不能獨異也。」智伯即遣智開至韓虎府中,虎延入中堂,叩其來意。智開曰:「吾兄奉晉侯之命,治兵伐越,令三卿各割采地百里,入於公家,取其賦以充公用。吾兄命某致意,願乞地界回復。」韓虎曰:「子且暫回,某來日即當報命。」智開去,韓康子虎召集群下謀曰:「智瑤欲挾晉侯以弱三家,故請割地為名。吾欲興兵先除此賊,卿等以為何如?」謀士段規曰:「智伯貪而無厭,假君命以削吾地,若用兵,是抗君也,彼將借以罪我,不如與之。彼得吾地,必又求之於趙魏。趙魏不從,必相攻擊,吾得安坐而觀其勝負。」韓虎然之。
치자가 말하기를, “지씨는 한씨와 위씨와는 화목하지만 조씨와는 틈이 있으니 마땅히 먼저 한씨에게 명을 내리시고 다음에 위씨에게 명을 내리십시오. 한씨와 위씨가 이미 따르면 조씨는 혼자서 반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했다. 지백이 즉시 지개(智開)를 한호(韓虎)의 부중(府中)에 보내니, 한호가 지개를 집안으로 맞아들여서 방문한 뜻을 물었다. 지개가 말하기를, “우리 형님이 주군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월나라를 정벌하는데, 세 집안으로 하여금 각기 백 리의 땅을 잘라서 공실에 들이고 그 세금을 거두어 공용에 충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형님께서 저에게 명하여 그 뜻을 전하니, 원컨대 그 땅의 경계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한호가 말하기를, “그대는 잠시 돌아가 있으면 내가 내일 곧 마땅히 보고하겠소.” 했다. 지개가 가고나서 한강자(韓康子) 호가 가신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의논하여 말하기를, “지요가 진애공을 끼고 세 집안을 약화시키려고 땅을 잘라 군자금을 삼으라는 명분으로 청해왔소. 내가 군사를 일으켜 이 도적을 먼저 없애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니, 모사 단규(段規)가 말하기를, “지백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군주의 명을 빌려 우리의 땅을 깎으려고 하는 수작입니다. 만약 우리가 군사를 쓰면, 그것은 군주의 명에 항거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백은 우리에게 죄를 묻겠다고 할 것이니, 땅을 떼어주는 게 낫습니다. 틀림없이 조씨와 위씨 두 집안에도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만약 조씨와 위씨가 지백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세 집안이 서로 공격할 것이니, 우리는 편안히 앉아서 그 승부를 보면 됩니다.” 했다. 한호가 그러기로 했다.
次日,令段規畫出地界百里之圖,親自進於智伯。智伯大喜,設宴於藍臺之上,以款韓虎。飲酒中間,智伯命左右取畫一軸,置於几上,同虎觀之,乃魯卞莊子刺三虎之圖。上有題贊云:「三虎啖羊,勢在必爭。其鬥可俟,其倦可乘。一舉兼收,卞莊之能!」智伯戲謂韓虎曰:「某嘗稽諸史冊,列國中與足下同名者,齊有高虎,鄭有罕虎,今與足下而三矣。」時段規侍側,進曰:「禮,不呼名,懼觸諱也。君之戲吾主,毋乃甚乎?」段規生得身材矮小,立於智伯之旁,纔及乳下。
다음날, 단규에게 명하여 땅 백 리의 지도를 그려서 친히 지백에게 가서 바쳤다. 지백이 크게 기뻐하며 남대(藍臺)에 주연을 베풀어 한호를 접대했다. 술이 반쯤 올랐을 때 지백이 좌우에게 명하여 두루마리 그림 한 폭을 가져와 탁자 위에 펼치게 하고 한호와 함께 감상했다. 그 그림은 바로 노나라의 대부 변장자(卞莊子)가 세 마리의 호랑이를 찌르는 그림이었다. 그림 위의 찬양하는 글에 이르기를, “세 마리의 호랑이가 양을 잡아먹으려는데, 형세가 반드시 싸워야만 했다. 그 싸움이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그들이 피로한 틈을 타서, 일거에 세 마리의 호랑이 모두를 잡았으니, 변장자의 능력이라!” 했다. 지백이 희롱하여 한호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사서를 살펴보니 열국 중에서 그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는 제나라에 고호(高虎)가 있고, 정나라에 한호(罕虎)가 있으며, 그리고 지금의 그대까지 세 사람이오.” 했다. 그때 단규가 한호의 곁에서 모시고 있다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예에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꺼리는 일에 저촉될까 두려워서인데, 대감이 우리 주공을 희롱하니 너무 심한 게 아닙니까?” 했다. 단규는 원래 몸집이 왜소해서 지백의 곁에 서니 겨우 가슴에 닿을 정도였다.
智伯以手拍其頂曰:「小兒何知,亦來饒舌!三虎所啖之餘,得非汝耶?」言畢,拍手大笑。段規不敢對,以目視韓虎。韓佯醉,閉目應曰:「智伯之言是也。」即時辭去。智國聞之,諫曰:「主公戲其君而侮其臣,韓氏之恨必深,若不備之,禍且至矣。」智伯瞋目大言曰:「我不禍人足矣,誰敢興禍於我?」智國曰:「蚋蟻蜂蠆,猶能害人,況君相乎?主公不備,異日悔之何及!」智伯曰:「吾將效卞莊子一舉刺三虎,蚋蟻蜂蠆,我何患哉!」智國嘆息而出。史臣有詩云:「智伯分明井底蛙,眼中不復置王家﹔宗英空進興亡計,避害誰如輔果嘉?」
지백이 손으로 단규의 정수리를 치며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요설을 늘어놓느냐? 세 마리의 호랑이가 먹다 남긴 것이 네가 아니냐?” 하고, 말을 마치자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단규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한호에게 눈짓을 했다. 한호가 거짓으로 술에 취한 척하면서 눈을 감으며 응하기를, “지백의 말씀이 옳소.” 하고 즉시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지국(智國)이 그것을 듣고 간하기를, “주공께서 한씨의 주공과 가신을 모욕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깊은 한을 품게 하였으니, 만약 대비하지 않으면 화를 입을 것입니다.” 했다. 지백이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쳐서 말하기를, “내가 사람들에게 족히 재앙을 내릴 수가 있는데, 누가 감히 나에게 재앙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하니, 지국이 말하기를, “파리, 개미, 벌, 전갈도 능히 사람을 해칠 수 있는데 하물며 그들은 주공과 상(相)이 아니겠습니까? 주공께서 대비하지 않으면 훗날에 후회해도 미칠 수 없을 것입니다.” 했다. 지백이 말하기를, “내가 장차 변장자를 본받아 일거에 세 마리의 호랑이를 찌르려 하는데, 내가 어찌 파리, 개미, 벌, 전갈 따위를 근심하겠는가?” 하니, 지국이 탄식하여 물러갔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지백은 분명 우물 안의 개구리라! 안중에 다시 왕가의 존재는 없었고, 종족 영걸들의 흥망계책을 헛되이 날려 버렸으니, 화를 피하기로는 누가 보과의 좋은 처신만 하겠는가?” 했다.
次日,智伯再遣智開求地於魏桓子駒,駒欲拒之。謀臣任章曰:「求地而與之,失地者必懼,得地者必驕,驕則輕敵,懼則相親,以相親之眾,待輕敵之人,智氏之亡可待矣。」魏駒曰:「善。」亦以萬家之邑獻之。智伯乃遣其兄智宵,求蔡皋狼之地於趙氏。趙襄子無䘏,銜其舊恨,怒曰:「土地乃先世所傳,安敢棄之?韓魏有地自予,吾不能媚人也!」智宵回報,智伯大怒,盡出智氏之甲,使人邀韓魏二家,共攻趙氏,約以滅趙氏之日,三分其地。韓虎魏駒一來懼智伯之強,二來貪趙氏之地,各引一軍,從智伯征進。
다음날, 지백이 다시 지개(智開)를 위환자(魏桓子) 구(駒)에게 보내어 땅을 요구하니, 위구가 거절하려고 했다. 모사 임장(任章)이 말하기를, “땅을 요구하면 주십시오. 땅을 잃은 자는 반드시 두려워하게 되고, 땅을 얻은 자는 반드시 교만하게 됩니다. 교만하면 적을 가볍게 여기고, 두려워하면 서로 친하게 됩니다. 서로 친해진 무리로 적을 가볍게 보는 사람을 대적하게 되니, 지씨의 멸망은 가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했다. 위구(魏駒)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 또한 만 호의 고을을 지백에게 바쳤다. 지백이 이에 그의 형 지소(智宵)를 조씨에게 보내어 채고랑(蔡皐狼)의 땅을 요구했다. 조양자(趙襄子) 무휼(無䘏)은 옛날의 원한을 잊지 않고 화를 내어 말하기를, “토지란 선조가 물려준 것인데 어찌 감히 버리겠소? 한씨와 위씨는 (남에게 줄) 땅이 있어서 스스로 바쳤겠지만 나는 땅을 바쳐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는 없소!” 했다. 지소가 돌아와서 지백에게 고했다. 지백이 대로하여 지씨 집안의 모든 군사를 출동시키고 사람을 시켜 한씨와 위씨 두 집안을 초청하여 함께 조씨를 공격하여 조씨들을 멸한 날에 그 땅을 삼분하기로 약속했다. 한호와 위구는 첫째로 지백의 강함이 두려웠고, 둘째로 조씨의 땅에 욕심이 생겨서 각각 한 무리의 군사를 이끌고 지백을 따라 출정했다.
智伯自將中軍,韓軍在右,魏軍在左,殺奔趙府中,欲擒趙無䘏。趙氏謀臣張孟談預知兵到,奔告無䘏曰:「寡不敵眾,主公速宜逃難!」無䘏曰:「逃在何處方好?」張孟談曰:「莫如晉陽。昔董安于曾築公宮於城內,又經尹鐸經理一番,百姓受尹鐸數十年寬恤之恩,必能效死。先君臨終有言:『異日國家有變,必往晉陽。』主公宜速行,不可遲疑。」無䘏即率家臣張孟談高赫等,望晉陽疾走。智伯勒二家之兵,以追無䘏。
지백은 스스로 중군을 거느리고, 한군은 오른쪽에서, 위군은 왼쪽에서 조씨의 부중으로 쳐들어가서 조무휼을 사로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조씨의 가신 장맹담(張孟談)은 세 집안의 군사들이 쳐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달려와 무휼에게 말하기를,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주공께서는 마땅히 빨리 피하십시오.” 하니, 무휼이 말하기를, “몸을 피한다면 어디가 좋겠소?” 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진양(晉陽)만한 곳이 없습니다. 옛날에 동안우(董安于)가 일찍이 공궁을 성안에 지었으며, 또 윤탁(尹鐸)의 경영을 한번 거쳐 백성이 윤탁의 수십 년간 관대하고 보살피는 은혜를 받아서 반드시 죽기로 보답하려고 할 것입니다. 선군께서 임종시에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조씨 가문에 변란이 생기면 반드시 진양으로 가거라.’라고 하셨습니다. 주공께서 의심하지 마시고 마땅히 빨리 가셔야 합니다.” 했다. 무휼이 즉시 가신 장맹담과 고혁(高赫) 등을 거느리고 진양성을 바라보고 질풍 같이 달려갔다. 지백도 한씨와 위씨 두 집안의 군사들을 재촉하여 무휼을 추격했다.
卻說,無䘏有家臣原過,行遲落後,於中途遇一神人,半雲半霧,惟見上截金冠錦袍,面貌亦不甚分明,以青竹二節授之,囑曰:「為我致趙無䘏。」原過追上無䘏,告以所見,以竹管呈之。無䘏親剖其竹,竹中有朱書二行:「告趙無䘏,余霍山之神也。奉上帝命,三月丙戌,使汝滅智氏。」無䘏令秘其事。行至晉陽,晉陽百姓感尹鐸仁德,攜老扶幼,迎接入城,駐札公宮。無䘏見百姓親附,又見晉陽城堞高固,倉廩充實,心中稍安。即時曉諭百姓,登城守望。點閱軍器,戈戟鈍敝,箭不滿千,愀然不樂,謂張孟談曰:「守城之器,莫利於弓矢,今箭不過數百,不夠分給,奈何?」
한편, 무휼의 가신에 원과(原過)가 있었는데, 행동이 느려서 일행에서 뒤떨어져, 가고 있는 도중에 신인 한 사람을 만났다. 반은 구름에 가려있고 반은 안개에 싸여있어 오직 상체의 금관과 금포만이 보였다. 얼굴 모습도 역시 분명하지 않았다. 그 신인이 푸른 대나무 두 마디를 주면서 당부하기를, “나를 위해 이것을 조무휼에게 전하라!” 했다. 원과가 무휼을 뒤쫓아가서 자기가 본 일을 고하고 대나무 통을 바쳤다. 무휼이 친히 그 대나무를 가르자 그 안에 두 줄의 붉은 글씨가 쓰여 있기를, “조무휼에게 고하노라! 나는 곽산의 신이다. 상제의 명을 받들어, 삼월 병술 일에, 너를 시켜서 지씨를 멸한다.”라고 했다. 무휼이 그 일을 비밀에 부치게 하고, 진양에 이르렀다. 진양의 백성들은 옛날 윤탁이 베푼 인자한 덕에 감격하여 노인들은 부축하고 어린애는 손을 잡고 나와 무휼을 영접하여 성안으로 모시고 공궁에 머무르게 했다. 무휼은 백성들이 진정으로 자기를 따르는 것을 보고, 또 진양성의 성곽이 높고 견고하였으며 창고가 충실한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즉시 백성들을 타이르고 성 위로 올라가 주변 정세를 살폈다. 진양성의 무기를 살펴보니 창과 극(戟)은 무디고 녹슬었으며 화살은 천 개도 되지 않았다. 근심스러운 얼굴로 장맹담에게 말하기를, “성을 지키는 무기로는 화살보다 날카로운 게 없는데 지금 화살이 수백 개를 넘지 못하니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기에 부족하다. 어찌해야 하겠소?” 했다.
孟談曰:「吾聞董安于之治晉陽也,公宮之牆垣,皆以荻蒿楛楚,聚而築之。主公何不發其牆垣,以驗虛實?」無䘏使人發其牆垣,果然都是箭簳之料。無䘏曰:「箭已足矣,奈無金以鑄兵器何?」孟談曰:「聞董安于建宮之時,堂室皆練精銅為柱,卸而用之,鑄兵有餘也。」無䘏再發其柱,純是練過的精銅。即使冶工碎柱,鑄為劍戟刀槍,無不精利,人情益安。無䘏嘆曰:「甚哉,治國之需賢臣也!得董安于而器用備,得尹鐸而民心歸,天祚趙氏,其未艾乎?」
장맹담이 말하기를, “제가 듣기에 옛날 동안우가 진양을 다스릴 때 공궁의 담장은 모두 쑥대와 싸릿대를 모아서 쌓았다고 했습니다. 주공께서는 어찌 그 담장을 허물어 허실을 확인해 보지 않으십니까?” 했다. 무휼이 사람을 시켜 공궁의 담장을 허물게 하니, 과연 모두가 화살의 재료였다. 무휼이 말하기를, “화살대는 충분하다고 하겠으나 쇠붙이가 없으니 화살촉과 병장기는 어찌하겠는가?” 하니, 장맹담이 말하기를, “들으니, 동안우가 공궁을 지을 때 궁전의 기둥은 모두 구리를 정제하여 세웠다고 합니다. 기둥을 바꾸어 녹여서 병장기를 주조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했다. 무휼이 다시 사람을 시켜 궁전의 기둥을 바꾸어 보니 잘 정제한 구리였다. 즉시 장인들을 시켜서 기둥을 부수어 녹여서 칼과 창을 만드니 모두 날카로웠다. 성안 백성들의 마음이 더욱 안정되었다. 무휼이 감탄하기를, “대단하구나.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수적인 것은 어진 신하구나! 동안우를 얻어서 병장기를 완비하였고 윤탁을 얻어서 민심을 돌아오게 했으니, 하늘이 조씨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 여기서 그치겠는가?” 했다.
再說,智、韓、魏三家兵到,分作三大營,連絡而居,把晉陽圍得鐵桶相似。晉陽百姓,情願出戰者甚眾,齊赴公宮請令。無䘏召張孟談商之。孟談曰:「彼眾我寡,戰未必勝,不如深溝高壘,堅閉不出,以待其變。韓魏無仇於趙,特為智伯所迫耳。兩家割地,亦非心願,雖同兵而實不同心,不出數月,必有自相疑猜之事,安能久乎?」無䘏納其言,親自撫諭百姓,示以協力固守之意。軍民互相勸勉,雖婦女童稚,亦皆欣然願效死力。有敵兵近城,輒以強弩射之,三家圍困歲餘,不能取勝。
한편, 지(智)씨, 한(韓)씨, 위(魏)씨 세 집안의 군사가 진양성 밖에 도착하여 세 개의 큰 진영을 나누어 짓고, 서로 연결하여 진양성을 철통같이 에워쌌다. 진양성의 백성들은 성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는 자가 많아서 공궁으로 일제히 몰려와 명령을 청했다. 무휼이 장맹담을 불러 상의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저들은 군사가 많고 우리는 적습니다. 싸워서 반드시 이기지 못한다면,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올려 성문을 굳게 닫아 나가지 말고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한씨와 위씨는 우리 조씨와 원수진 일이 없으나 이번에 지백의 협박에 의해 끌려 나왔을 뿐입니다. 두 집안이 땅을 떼어 준 것이 또한 마음으로 원한 것이 아니듯이, 비록 함께 출전했지만 실은 마음이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달 가지 않아 틀림없이 서로 의심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찌 오랫동안 우리를 포위하겠습니까?” 했다. 무휼이 그 말을 받아들여 친히 백성들을 달래고 협력하여 성을 굳게 지키자는 뜻을 보여주었다. 진양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서로 도우며 부지런히 힘써 비록 부녀자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하고자 했다. 적군이 성에 접근해 오자 그때마다 강한 쇠뇌로 화살을 쏘아대니, 세 집안의 포위가 일 년이 넘었지만 승리할 수가 없었다.
智伯乘小車周行城外,嘆曰:「此城堅如鐵甕,安可破哉?」正懷悶間,行至一山,見山下泉流萬道,滾滾望東而逝。拘土人問之,答曰:「此山名曰龍山,山腹有巨石如甕,故又名懸甕山。晉水東流,與汾水合,此山乃發源之處也。」智伯曰:「離城幾何里?」土人曰:「自此至城西門,可十里之遙。」智伯登山以望晉水,復遶城東北,相度了一回,忽然省悟曰:「吾得破城之策矣!」即時回寨,請韓魏二家商議,欲引水灌城。韓虎曰:「晉水東流,安能決之使西乎?」
지백이 작은 수레를 타고 진양성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서 한탄하기를, “저 성은 견고하기가 마치 철옹성과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함락할 수 있겠는가?” 하고, 고민하면서 어떤 산에 이르렀다. 그 산밑을 보니 수많은 개울이 흐르는데 모두 동쪽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토착민을 붙잡아서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이 산의 이름은 용산(龍山)이라고 합니다. 산 가운데에 항아리와 같은 큰 바위가 있어서 또한 현옹산(懸瓮山)이라고도 부릅니다. 진수(晉水)는 동쪽으로 흘러서 분수(汾水)와 합쳐지는데 이 산이 바로 진수의 발원지입니다.” 했다. 지백이 말하기를, “진양성과는 몇 리나 떨어져 있는가?” 하니, 토착민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진양성의 서문까지는 10리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했다. 지백이 용산에 올라가 살펴보니 진수는 진양성을 동북쪽으로 휘감아 흐르고 있었다. 지백이 지형을 한번 관찰해보더니 홀연히 깨달아 말하기를, “내가 진양성을 깨뜨릴 계책을 얻었다!” 하고, 즉시 영채로 돌아와서 한호와 위구를 청하여 상의하여, 강물을 끌어다가 진양성에 대려고 했다. 한호가 말하기를, “진수는 동쪽으로 흐르는데, 어떻게 그것을 터서 서쪽으로 흐르게 할 수 있습니까?” 했다.
智伯曰:「吾非引晉水也。晉水發源於龍山,其流如注,若於山北高阜處,掘成大渠,預為蓄水之地,然後將晉水上流壩斷,使水不歸於晉川,勢必盡注新渠。方今春雨將降,山水必大發,俟水至之日,決隄灌城,城中之人,皆為魚鱉矣。」韓魏齊聲贊曰:「此計妙哉!」智伯曰:「今日便須派定路數,各司其事。韓公守把東路,魏公守把南路,須早夜用心,以防奔突。某將大營移屯龍山,兼守西北二路,專督開渠築隄之事。」韓魏領命辭去。智伯傳下號令,多備鍬鍤,鑿渠於晉水之北。
지백이 말하기를, “나는 진수를 끌어들인다는 게 아니오. 진수는 용산에서 발원하는데, 그 흐름은 물을 대는 것 같아서 만약에 용산의 북쪽 높은 곳에 큰 물길을 파서 그곳에 물을 저장해 놓고 그 다음에 진수의 상류를 방죽으로 끊어서 상류의 물이 진수로 흘러들지 못하게 하면 수세는 반드시 새로 판 큰 물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바야흐로 봄비가 내려서 산에서 큰물이 날 것이고, 물이 도착하는 날을 기다려서 제방을 터트려 진양성에 물을 대면 성안의 사람들은 모두 고기나 자라가 될 것이오.” 하니, 한호와 위구가 일제히 찬탄하기를,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합니다.” 했다. 지백이 말하기를, “오늘부터 모름지기 구역을 나누어 맡아서 각기 그 일을 책임지고 행하도록 합시다. 한공께서는 진양의 동쪽 길을 지키고, 위공께서는 그 남쪽 길을 지키면서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을 써서 달아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본인은 본영을 용산으로 옮겨 주둔하면서 진양의 서로와 북로를 겸하여 지키면서 오로지 물길을 파고 제방을 쌓는 것을 감독하겠습니다.” 했다. 한호와 위구가 지백의 명을 받고 물러갔다. 지백이 휘하의 군사들에게 호령하여 군사들에게 각기 삽과 가래를 준비하게 하여 진수의 북쪽에 물길을 파기 시작했다.
次將各處泉流下瀉之道,盡皆壩斷。復於渠之左右,築起高隄,凡山㘭洩水之處,都有隄壩。那泉源泛溢,奔激無歸,只得望北而走,盡注新渠。卻將鐵枋閘板,漸次增添,截住水口,其水便有留而無去,有增而無減了。今晉水北流一支,名智伯渠,即當日所鑿也。一月之後,果然春雨大降,山水驟漲,渠高頓與隄平。智伯使人決開北面,其水從北溢出,竟灌入晉陽城來。有詩為證:「向聞洪水汨山陵,復見壅泉灌晉城。能令陽侯添膽大,便教神禹也心驚。」
다음에 각처의 개울물이 흘러내리는 길을 모두 둑으로 막았다. 그리고 물길의 좌우에 높게 제방을 쌓고 산에서 물이 샐 수 있는 지대가 낮은 곳은 모두 제방과 방죽을 쌓았다. 그 개울물들이 넘쳐서 세차게 흘러 돌아갈 수가 없자, 할 수 없이 북쪽으로 달려가 새로 판 물길로 쏟아져 들어갔다. 철판으로 갑문(閘門)을 만들어 점차 불어난 물은 수구에서 막혔고, 그 물은 갈 곳이 없어 불어나기만 하고 줄지는 않았다. 지금도 진수의 북쪽 지류 중 하나의 이름이 지백거(智伯渠)인데 바로 그때 지백이 판 물길이다. 한 달 후에 과연 봄비가 크게 내려 산골짜기의 물들이 갑자기 불어나 새로운 물길에 갇힌 물의 높이가 제방과 같아졌다. 지백이 사람을 시켜 북쪽 제방을 터뜨리자 그 물이 북쪽에서 넘쳐 나와 마침내 진양성으로 흘러 들어갔다. 시가 있어 증거하기를, “옛날에 홍수가 나서 산과 구릉을 잠기게 했다고 하더니, 다시 냇물을 막아 진양성에 물을 댄 것을 보았네. 수신이 된 양후에게 좀 더 대담하게 하라고 할 수 있었다면, 우임금의 신령도 놀라게 했으리라.” 했다.
時城中雖被圍困,百姓向來富庶,不苦凍餒。況城基築得十分堅厚,雖經水浸,並無剝損。過數日,水勢愈高,漸漸灌入城中,房屋不是倒塌,便是淹沒,百姓無地可棲,無灶可爨,皆構巢而居,懸釜而炊。公宮雖有高臺,無䘏不敢安居,與張孟談不時乘竹筏,周視城垣。但見城外水聲淙淙,一望江湖,有排山倒峽之勢,再加四五尺,便冒過城頭了。無䘏心下暗暗驚恐。且喜守城軍民,晝夜巡警,未嘗疏怠,百姓皆以死自誓,更無二心。無䘏嘆曰:「今日方知尹鐸之功矣!」乃私謂張孟談曰:「民心雖未變,而水勢不退,倘山水再漲,闔城俱為魚鱉,將若之何?霍山神其欺我乎?」
그때 진양성 안에서는 비록 포위되어 있어도 백성들은 그전부터 살림이 넉넉하여 얼거나 배고픈 고통을 당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성을 지을 때 충분히 견고하고 두텁게 했기 때문에 비록 성이 물에 잠기기는 했지만 그다지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물의 수위가 더욱 높아져서 점점 성안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가옥은 무너지지 않았으나 물에 잠겼고 백성들이 기거할 곳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취사를 할 수 있는 부뚜막이 없어져서 모두 높은 곳에 둥지를 얽어 기거하면서 솥을 걸어 밥을 지었다. 공궁은 비록 높은 누대가 있었으나 무휼은 감히 편안히 지낼 수가 없어 장맹담과 함께 대나무 뗏목을 타고 수시로 돌아다니며 성벽을 두루 살폈다. 다만 성 밖은 물소리가 나며 일망무제의 강과 호수만 보이고, 그 물살은 마치 산을 밀어내고 협곡을 뒤집어엎을 듯한 기세로 몰려와 다시 수면의 높이를 네다섯 자 더 높여서 곧 성 꼭대기에 이르렀다. 무휼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랍고 두려웠다. 그러나 기쁜 것은 성을 지키는 군사와 백성들이 주야로 순찰하면서 소홀하거나 태만하지 않았고 백성들 모두가 죽음으로써 맹세하며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무휼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윤탁의 공로를 알았다!” 하고, 장맹담에게 몰래 말하기를, “민심은 비록 변하지 않았지만, 물살이 물러가지 않으니, 만약 산골 물이 다시 불어나면 성 전체가 고기나 자라가 될 것인데 장차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곽산(霍山)의 신령이 나를 속였을까요?” 했다.
孟談曰:「韓魏獻地,未必甘心,今日從兵,迫於勢耳。臣請今夜潛出城外,說韓魏之君,反攻智伯,方脫此患。」無䘏曰:「兵圍水困,雖插翅亦不能飛出也。」孟談曰:「臣自有計,吾主不必憂慮,主公但令諸將多造船筏,利兵器,倘徼天之幸,臣說得行,智伯之頭,指日可取矣。」無䘏許之。孟談知韓康子屯兵於東門,乃假扮智伯軍士,於昏夜縋城而出,逕奔韓家大寨,只說「智元帥有機密事,差某面稟。」韓虎正坐帳中,使人召入。其時軍中嚴急,凡進見之人,俱搜簡乾淨,方纔放進。張孟談既與軍士一般打扮,身邊又無夾帶,並不疑心。
장맹담이 말하기를, “한씨와 위씨가 땅을 바친 것은 반드시 마음에 달갑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군사를 이끌고 따라온 것도 형세에 억눌렸을 따름입니다. 신이 청컨대 오늘 밤에 몰래 성 밖으로 나가서 한호와 위구를 설득하여지백을 역공하도록 하여 지금의 우환에서 벗어나게 하겠습니다.” 하니, 무휼이 말하기를, “군사가 포위하고 성은 물에 잠겼는데 비록 날개가 있은들 또한 날아 나갈 수 없소.” 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에게 계책이 있으니 주공께서는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주공께서는 장수들에게 영을 내려 배와 뗏목을 많이 만들게 하고 무기들을 날카롭게 해 놓으십시오. 만약 하늘의 요행을 얻어 신이 두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면 지백의 머리는 날을 꼽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무휼이 장맹담의 청을 허락했다. 장맹담은 한강자(韓康子)가 진양성의 동문 쪽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지백의 군사로 분장하여 밤이 되자 밧줄을 타고 나가 곧바로 한씨의 영채로 달려가서, 다만 말하기를, “지백 원수께서 기밀 사항이 있어 저를 보내어 직접 한장군에게 전하라고 하셨소.” 했다. 한호가 막사 안에 좌정해 있다가 사람을 시켜 불러들였다. 그때 군중의 경계는 매우 삼엄하여 한호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몸수색을 철저히 하고 난 후에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장맹담은 일반 군사의 차림이었고 몸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서 의심을 받지 않았다.
孟談既見韓虎,乞屏左右。虎命從人閃開,叩其所以。孟談曰:「某非軍士,實乃趙氏之臣張孟談也。吾主被圍日久,亡在旦夕,恐一旦身死家滅,無由布其腹心,故特遣臣假作軍士,潛夜至此,求見將軍,有言相告。將車容臣進言,臣敢開口,如不然,臣請死於將軍之前。」韓虎曰:「汝有話但說,有理則從。」孟談曰:「昔日六卿和睦,同執晉政,自范氏中行氏不得眾心,自取覆滅,今存者,惟智、韓、魏、趙四家耳。智伯無故欲奪趙氏蔡皋狼之地,吾主念先世之遺,不忍遽割,未有得罪於智伯也。智伯自恃其強,糾合韓魏,欲攻滅趙氏,趙氏亡,則禍必次及於韓魏矣。」韓虎沉吟未答。
장맹담이 한호를 접견하여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물리쳐 주기를 청했다. 한호가 시종들에게 물러가 있으라고 명하고, 자기를 만나러 온 까닭을 물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저는 지백의 군사가 아니라 실은 조씨의 가신인 장맹담이란 사람입니다. 우리 주공께서 포위된 지 이미 오래되어 아침저녁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조공께서 하루아침에 몸은 죽고 집안이 멸족될까 두려워하여, 마음속의 생각을 장군께 전할 길이 없어 특별히 소신을 지백의 군사로 분장시켜 밤을 틈타 이곳에 와서 장군을 뵙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장군께서 소신의 말을 들어 주신다면 제가 감히 입을 열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소신은 장군의 앞에서 죽기를 청합니다.” 하니, 한호가 말하기를, “네가 할 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이치에 닿으면 내가 따르겠다.” 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옛날에 육경(六卿)이 화목하여 함께 진(晉)나라의 정사를 담당하다가 범씨와 중행씨가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스스로 화를 불러 멸족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오로지 지(智)씨, 한(韓)씨, 위(魏)씨, 조(趙)씨 네 집안만 남게 되었습니다. 지백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조씨의 채고랑의 땅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우리 조공께서는 선조가 물려준 땅이라는 생각으로 선뜻 내어줄 수가 없었을 뿐이지, 지백에게 죄를 짓지는 않았습니다. 지백은 자신의 강함을 믿고 한씨와 위씨를 규합하여 조씨를 공격하여 멸족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조씨가 망하면 그 다음은 틀림없이 한씨와 위씨가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했다. 한호가 망설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孟談又曰:「今日韓魏所以從智伯而攻趙者,指望城下之日,三分趙氏之地耳。夫韓魏不嘗割萬家之邑,以獻智伯乎?世傳疆宇,彼尚垂涎而奪之,未聞韓魏敢出一語相抗也,況他人之地哉?趙氏滅,則智氏益強。韓魏能引今日之勞,與之爭厚薄乎?即使今日三分趙地,能保智氏異日之不復請乎?將軍請細思之!」韓虎曰:「子之意欲如何?」孟談曰:「依臣愚見,莫若與吾主私和,反攻智伯,均之得地,而智氏之地多倍於趙,且以除異日之患,三君同心,世為唇齒,豈不美哉?」韓虎曰:「子言亦似有理,俟吾與魏家計議。子且去,三日後來取回復。」
장맹담이 다시 말하기를, “지금 한씨와 위씨가 지백의 뒤를 따라서 조씨를 공격하는 것은. 성이 떨어지는 날을 기다려서 조씨의 땅을 셋으로 나누려는 것 때문입니다. 대저 한씨와 위씨가 일찍이 만호의 고을을 잘라서 지백에게 바치지 않았습니까? 대대로 전해오는 땅을 저 지백이 침을 흘리며 빼앗으려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한씨와 위씨가 감히 한마디 말이라도 항의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땅에 대해서겠습니까? 조씨가 멸족되면 지씨는 더욱 강성해집니다. 한씨와 위씨가 능히 오늘의 노고를 끄집어내어 지백과 논공행상의 후하고 박하고를 다툴 수 있겠습니까? 설령 오늘은 조씨의 땅을 삼분한다고는 하지만, 지백이 후일에도 다시 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는 세밀히 생각하십시오.” 하니, 한호가 말하기를, “그대는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했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우리 주공과 몰래 화의를 맺고 도리어 지백을 공격하여 멸한 후에 그의 땅을 고르게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지씨의 땅은 조씨의 땅보다 몇 배나 넓습니다. 또한 후일의 화근을 없애 세 집안이 동심협력하여 대대로 입술과 이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한호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위구(魏駒)와 상의해야겠으니 잠시 돌아가서 3일 후에 다시 오시오.” 했다.
孟談曰:「臣萬死一生,此來非同容易,軍中耳目,難保不洩,願留麾下三日,以待尊命。」韓虎使人密召段規,告以孟談所言。段規受智伯之侮,懷恨未忘,遂深贊孟談之謀。韓虎使孟談與段規相見,段規留孟談同幕而居,二人深相結納。次日,段規奉韓虎之命,親往魏桓子營中,密告以趙氏有人到軍中講話,如此恁般﹍﹍:「吾主不敢擅便,請將軍裁決!」魏駒曰:「狂賊悖嫚,吾亦恨之!但恐縛虎不成,反為所噬耳。」段規曰:「智伯不能相容,勢所必然,與其悔於後日,不如斷於今日。趙氏將亡,韓魏存之,其德我必深,不猶愈於與凶人共事乎?」魏駒曰:「此事當熟思而行,不可造次。」段規辭去。
장맹담이 말하기를, “신은 만 번 죽을 위험을 뚫고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이렇게 다시 오기가 쉽지 않고 군중에 귀와 눈도 있어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도 어려우니, 원컨대 장군의 막사에서 사흘을 머물러서 명령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했다. 한호가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모사 단규를 불러와 장맹담이 한 말을 전했다. 단규는 옛날에 지백에게 수모를 받고 그 원한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어서 마침내 장맹담의 계책에 깊이 찬동했다. 한호가 장맹담과 단규를 만나게 하고, 단규를 장맹담이 머무는 막사에 같이 지내게 했다. 두 사람은 깊이 의기투합하여 서로 친하게 되었다. 다음날 단규가 한호의 명을 받들어 친히 위환자(魏桓子) 구(駒)의 진영을 찾아 조씨의 가신이 한씨의 군중에 찾아와 제안한 일을 비밀리에 고하여 이러저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단규가 말하기를, “우리 한공께서는 감히 마음대로 결심할 수가 없어 장군의 결재를 청했습니다.” 하니, 위구가 말하기를, “미친 도적이 도리에 어긋나게 나를 업신여겨 나도 한을 품고 있소. 다만 호랑이를 포박하려다가 못 잡으면 도리어 물려 죽을 것이오.” 했다. 단규가 말하기를, “지백이 남을 용납하지 못하니 지금의 형세가 필연입니다. 후일에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그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 낫습니다. 조씨가 장차 망하려는데, 한씨와 위씨가 구해주면 조씨가 우리의 은혜에 깊이 감사할 것이니 흉악한 자와 같이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 하니. 위구가 말하기를, “이 일은 마땅히 심사숙고한 후에 행해야 할 것이니 당장 결정하기는 어렵소.” 했다. 단규가 인사를 올리고 물러갔다.
到第二日,智伯親自行水,遂治酒於懸甕山,邀請韓魏二將軍,同視水勢。飲酒中間,智伯喜形於色,遙指著晉陽城,謂韓魏曰:「城不沒者,僅三版矣!吾今日始知水之可以亡人國也。晉國之盛,表裏山河,汾、澮、晉、絳,皆號巨川,以吾觀之,水不足恃,適足速亡耳。」魏駒私以肘撐韓虎,韓虎躡魏駒之足,二人相視,皆有懼色。須臾席散,辭別而去。絺疵謂智伯曰:「韓魏二家必反矣!」智伯曰:「子何以知之?」絺疵曰:「臣未察其言,已觀其色。主公與二家約,滅趙之日,三分其地,今趙城旦暮必破,二家無得地之喜,而有慮患之色,是以知其必反也。」
이틀째 되는 날에 지백이 친히 물길로 가서 현옹산(懸瓮山)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한호와 위구 두 장군을 초청하여 함께 물의 형세를 보았다. 술을 마시다가 지백이 얼굴에 희색을 띠고 멀리 진양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한호와 위구 두 장군에게 말하기를, “성에서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은 겨우 세 담틀(6척)이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물이 사람과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진(晉)나라가 흥성하게 된 이유는 안과 밖에 산과 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분수(汾水), 회수(澮水), 진수(晉水), 강수(絳水)는 모두 큰 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물은 믿을 게 못 되고 마땅히 빨리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오.” 했다. 위구가 몰래 한호를 팔꿈치로 건드리자 한호도 위구의 발을 밟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모두 두려운 기색이 있었다. 잠시 후에 연희가 파하자 두 사람은 작별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치자(絺疵)가 지백에게 말하기를, “한씨와 위씨 두 집안은 틀림없이 배반할 것입니다.” 했다. 지백이 말하기를, “그대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니, 치자가 말하기를, “제가 그들의 말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기색을 이미 보았습니다. 주공께서 두 집안과 약속하기를 조씨를 멸망시키는 날에 그 땅을 셋으로 나누자고 했는데, 지금 진양성은 아침저녁에 함락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 집안은 땅을 얻는 기쁨은 없고, 우환을 근심하는 기색이 있으니, 그래서 그들이 반드시 배반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했다.
智伯曰:「吾與二氏方歡然同事,彼何慮焉?」絺疵曰:「主公言水不足恃,適速其亡。夫晉水可以灌晉陽,汾水可以灌安邑,絳水可以灌平陽。主公言及晉陽之水,二君安得不慮乎?」至第三日,韓虎魏駒亦移酒於智伯營中,答其昨日之情。智伯舉觴未飲,謂韓魏曰:「瑤素負直性,能吐不能茹。昨有人言,二位將軍有中變之意,不知果否?」韓虎魏駒齊聲答曰:「元帥信乎?」智伯曰:「吾若信之,豈肯面詢於將軍哉?」韓虎曰:「聞趙氏大出金帛,欲離間吾三人,此必讒臣受趙氏之私,使元帥疑我二家,因而懈於攻圍,庶幾脫禍耳。」
지백이 말하기를, “나와 두 사람이 바야흐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일하는데, 그들을 어찌 염려하겠는가?” 하니, 치자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물은 믿을 게 못 되고 마땅히 빨리 망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진수가 진양성을 물에 잠기게 했듯이 분수는 위씨의 도읍인 안읍(安邑)을 잠기게 할 수 있고, 강수(絳水)는 한씨의 도읍인 평양(平陽)을 잠기게 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 진양의 물을 말씀하셨는데 한호와 위구 두 장군은 어찌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사흘째 되는 날, 한호와 위구가 또한 지백의 군중에 술자리를 옮겨서 전날의 정을 보답하고자 했다. 지백이 술잔을 들고 마시기 전에 한호와 위구에게 말하기를, “이 지요(智瑤)는 원래 직선적 성격이라 바로 토해야지 속에 두고 썩히지 못하오. 어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두 분 장군께서 마음속에 변심을 품고 있다고 했는데, 과연 두 분께서 그런지 모르겠소.” 했다. 한호와 위구가 일제히 대답하기를, “원수께서는 그 말을믿으십니까?” 하니, 지백이 말하기를, “내가 만약 그 말을 믿는다면 어찌 내가 두 장군의 얼굴을 대하고 물을 수 있겠소?” 했다. 한호가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조씨가 황금과 비단을 크게 내어 우리 세 사람을 이간시키려고 한다는데, 이것은 틀림없이 모함하는 신하가 조씨의 뇌물을 받아먹고 원수로 하여금 우리 두 사람을 의심하게 만들어 그로 인해 포위 공세를 늦추게 하여 화를 면해보려고 바라는 것입니다.” 했다.
魏駒亦曰:「此言甚當。不然,城破在邇,誰不願剖分其土地,乃舍此目前必獲之利,而蹈不可測之禍乎?」智伯笑曰:「吾亦知二位必無此心,乃絺疵之過慮也。」韓虎曰:「元帥今日雖然不信,恐早晚復有言者,使吾兩人忠心無以自明,寧不墮讒臣之計乎?」智伯以酒酹地曰:「今後彼此相猜,有如此酒!」虎駒拱手稱謝。是日飲酒倍歡,將晚而散。絺疵隨後入見智伯曰:「主公奈何以臣之言,洩於二君耶?」智伯曰:「汝又何以知之?」絺疵曰:「適臣遇二君於轅門,二君端目視臣,已而疾走。彼謂臣已知其情,有懼臣之心,故遑遽如此。」
위구도 또한 말하기를, “그 말이 매우 합당하니, 우리는 딴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성의 함락이 가까운데 누가 그 땅을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지 않겠으며, 바로 앞에 있는 필연적 이익을 버리고 예측할 수 없는 화를 밟겠습니까?” 하니, 지백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 역시 두 분께서 틀림없이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치자의 지나친 염려입니다.” 했다. 한호가 말하기를, “원수께서 비록 지금은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다시 참소하는 자가 있어서 우리 두 사람의 충심을 스스로 밝힐 수 없게 한다면 어찌 참소하는 자의 계략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니, 지백이 술을 땅에 붓고 맹세하기를, “이후로 피차 서로 의심하는 자가 있다면 이 술처럼 버리소서!” 했다. 한호와 위구가 두 손을 모아 감사했다. 이날의 술자리는 배나 즐거워서 늦어서야 흩어졌다. 그 후에 치자가 들어와 지백을 뵙고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어찌하여 신의 말을 두 사람에게 누설했습니까?” 하니, 지백이 말하기를, “그대는 또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했다. 치자가 말하기를, “마침 신이 원문에서 두 장군을 만났는데, 두 사람이 바로 저를 보자마자 달아나 버렸습니다. 저들은 신이 이미 그 사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황급하게 달아난 것입니다.” 했다.
智伯笑曰:「吾與二子酹酒為誓,各不相猜,子勿妄言,自傷和氣。」絺疵退而嘆曰:「智氏之命不長矣!」乃詐言暴得寒疾,求醫治療,遂逃奔秦國去訖。髯翁有詩詠絺疵云:「韓魏離心已見端,絺疵遠識詎能瞞?一朝託疾飄然去,明月清風到處安。」再說,韓虎魏駒從智伯營中歸去,路上二君定計,與張孟談歃血訂約:「期於明日夜半,決堤洩水,你家只看水退為信,便引城內軍士,殺將出來,共擒智伯。」孟談領命入城,報知無䘏。無䘏大喜,暗暗傳令,結束停當,等待接應。
지백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두 사람과 술을 땅에 부어 맹세하여 각각 서로 의심하지 말자고 했소. 그대는 망령된 말로 스스로 화목한 기운을 상하지 마시오.” 했다. 치자가 물러 나오며 한탄하기를, “지씨의 목숨도 길지 않겠구나!” 했다. 이에 갑자기 감기가 들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의사를 찾아 치료하겠다며 마침내 진(秦)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치자를 노래하기를, “한씨와 위씨의 배신은 이미 단서가 드러났거늘, 치자의 예견을 어찌 능히 속일 수 있으리오? 하루아침에 병을 핑계로 표연히 떠나가니, 명월과 청풍은 도처에 평안하리라.” 했다. 한편, 한호와 위구는 지백의 군영에서 돌아오면서 노상에서 두 사람이 계책을 정한 후에 장맹담과 희생의 피를 바르고 맹약하기를, “내일 밤중을 기한으로 하여 우리가 제방을 터트려서 물을 빼 버리겠소. 그대 조씨 집안에서는 물이 빠지는 것을 신호로 삼아 성내의 군사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쏟아져 나와 함께 지백을 사로잡읍시다.” 했다. 장맹담이 명을 받아 진양성으로 들어가 무휼에게 보고했다. 무휼이 크게 기뻐하며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결속하여 처리할 것을 기다렸다.
至期,韓虎魏駒暗地使人襲殺守隄軍士,於西面掘開水口,水從西決,反灌入智伯之寨。軍中驚亂,一片聲喊起,智伯從睡夢中驚醒起來,水已及於臥榻,衣被俱濕。還認道巡視疏虞,偶然隄漏,急喚左右快去救水塞隄。須臾,水勢益大,卻得智國豫讓率領水軍,駕筏相迎,扶入舟中。回視本營,波濤滾滾,營疊俱陷,軍糧器械,飄蕩一空。營中軍士,盡從水中浮沉掙命。智伯正在悽慘,忽聞鼓聲大震,韓魏兩家之兵,各乘小舟,趁著水勢殺來,將智家軍亂砍,口中只叫:「拿智瑤來獻者重賞!」智伯嘆曰:「吾不信絺疵之言,果中其詐!」
때가 되자, 한호와 위구가 몰래 군사들을 보내어 제방을 지키던 지백의 군사들을 습격하여 죽이고, 서쪽 수문을 파서 여니 물이 서쪽에서 터져서, 도리어 지백의 진영을 덮쳤다. 지백의 군중이 놀라 혼란에 빠져 외마디 고함치는 소리가 일어났다. 지백이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놀라 깨어났으나 물은 이미 침상에 이르렀고 옷과 이불도 모두 물에 젖었다. 그러나 지백은 순찰을 어설프게 해서 우연히 제방에서 물이 새었다고 생각하여, 황급히 좌우를 불러 빨리 군사들을 보내어 제방을 막으라고 했다. 잠시 후 물살이 더욱 거세어져서, 지국과 예양이 수군을 거느리고 뗏목에 타고 와서 지백을 부축하여 태웠다. 본영을 돌아보니 파도가 넘실대고 막사와 보루는 모두 잠겼으며 군량과 무기는 떠내려가 없어졌다. 진영 안의 군사들은 모두 물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살려고 발버둥쳤다. 지백이 이렇게 처참한 중에 갑자기 북소리를 크게 울리는 것을 들었다. 한씨와 위씨 두 집안 병사들이 각각 작은 배를 타고 수세를 타고 쳐들어와서 지씨의 군사를 어지럽게 베면서, 입으로 오직 부르짖기를, “지요를 잡아다 바치는 자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했다. 지백이 탄식하기를, “내가 치자의 말을 믿지 않아서 과연 속임수에 빠졌구나.” 했다.
豫讓曰:「事已急矣!主公可從山後逃匿,奔入秦邦請兵。臣當以死拒敵。」智伯從其言,遂與智國掉小舟轉出山背。誰知趙襄子也料智伯逃奔秦國,卻遣張孟談從韓魏二家追逐智軍,自引一隊,伏於龍山之後,湊巧相遇。無䘏親縛智伯,數其罪斬之。智國投水溺死。豫讓鼓勵殘兵,奮勇迎戰,爭奈寡不敵眾,手下漸漸解散。及聞智伯已擒,遂變服逃往石室山中。智氏一軍盡沒。無䘏查是日,正三月丙戌日也。天神所賜竹書,其言驗矣。三家收兵在於一處,將各路壩閘,盡行拆毀,水復東行,歸於晉川,晉陽城中之水,方纔退盡。
예양이 말하기를, “일이 이미 급하게 되었습니다. 주공께서는 산 뒤로 달아나 숨었다가 진(秦)나라로 들어가서 군사를 청하시고, 신은 마땅히 사력을 다해 적을 막겠습니다.” 했다. 지백이 그 말에 따라 마침내 지국과 함께 작은 배를 돌려 산 뒤로 나갔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조양자는 지백이 진(秦)나라로 달아날 것을 예상하고, 장맹담을 보내 한호와 위구의 군사를 따라 지백의 군사를 추격하게 하고, 스스로는 한 떼의 군사를 이끌고 용산의 뒤에 매복하여 공교롭게도 서로 만날 줄이야. 무휼이 친히 지백을 묶고, 그의 죄를 열거한 후에 목을 베었다. 지국은 물에 빠져 죽었다. 예양이 남은 군사를 독려하여 힘껏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어찌하랴 수하의 병사들이 점점 흩어졌다. 예양은 지백이 이미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곧 옷을 바꾸어 입고 석실산(石室山) 속으로 달아났다. 지씨의 군사들은 모두 죽었다. 무휼이 그날을 따져보니 바로 3월 병술(丙戌) 일이었다. 천신이 대나무에 글을 써 준 그 말이 증명되었다. 세 집안은 한 곳에 군사를 모아 각각 방죽과 수문이 있는 곳을 나누어 맡아 모조리 허물어 물이 다시 동쪽으로 흘러서 진천으로 들어가게 했다. 진양성 안의 물이 바야흐로 모두 빠졌다.
無䘏安撫居民已畢,謂韓魏曰:「某賴二公之力,保全殘城,實出望外。然智伯雖死,其族尚存,斬草留根,終為後患。」韓魏曰:「當盡滅其宗,以洩吾等之恨!」無䘏即同韓魏回至絳州,誣智氏以叛逆之罪,圍其家,無男女少長,盡行屠戮,宗族俱盡。惟智果已出姓為輔氏,得免於難,到此方知果之先見矣。韓魏所獻地,各自收回。又將智氏食邑,三分均分,無一民尺土,入於公家。(此周貞定王十六年事也。)無䘏論晉陽之功,左右皆推張孟談為首,無䘏獨以高赫為第一。孟談曰:「高赫在圍城之中,不聞畫一策,效一勞,而乃居首功,受上賞,臣竊不解。」
무휼이 백성들을 어루만져 위로한 후에 한호와 위구에게 말하기를, “두 분의 도움에 힘입어 진양성을 지켰으니 참으로 바라던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백이 비록 죽었으나 그 종족들이 아직도 남아있으니 풀을 베고 뿌리가 남은 것과 같아서 끝내 후환이 될 것입니다.” 하니, 한호와 위구가 말하기를, “당연히 그 종족을 모두 멸해서 우리들의 원한을 씻어야 합니다.” 했다. 무휼이 그 즉시 한호와 위구와 함께 강주성으로 돌아가서, 지씨를 반역의 죄로 고하고, 그 집을 포위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조리 도륙하여 지씨 종족들을 멸족시켰다. 오직 지과(智果)만이 이미 성을 보씨(輔氏)로 바꾸었기 때문에 화를 면하여,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지과의 선견지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한씨와 위씨가 바쳤던 땅은 각각 스스로 회수했다. 또 지씨의 식읍은 세 집안에서 고르게 나누어 백성 한 명 땅 한 자도 공실에 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주정정왕 16년의 일이다,) 무휼이 진양성 싸움에 대해 공을 논하는데, 좌우의 사람들은 모두 장맹담이 으뜸이라고 생각했으나, 무휼이 홀로 고혁(高赫)을 첫째로 쳤다. 장맹담이 말하기를, “고혁은 포위된 성안에서 한 가지의 계책을 내거나, 한 번의 싸움도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첫째 공으로 일등상을 받으니, 신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했다.
無䘏曰:「吾在厄困中,眾俱慌錯,惟高赫舉動敬謹,不失君臣之禮。夫功在一時,禮垂萬世,受上賞,不亦宜乎?」孟談愧服。無䘏感山神之靈,為之立祠於霍山,使原過世守其祀。又憾智伯不已,漆其頭顱為溲便之器。豫讓在石室山中,聞知其事,涕泣曰:「『士為知己者死。』吾受智氏厚恩,今國亡族滅,辱及遺骸,吾偷生於世,何以為人?」乃更姓名,詐為囚徒服役者,挾利匕首,潛入趙氏內廁之中,欲候無䘏如廁,乘間刺之。無䘏到廁,忽然心動,使左右搜廁中,牽豫讓出見無䘏。無䘏乃問曰:「子身藏利器,欲行刺於吾耶?」
무휼이 말하기를,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으나 오직 고혁은 거동이 공경하고 삼가며 군신의 예절을 어기지 않았다. 무릇 싸움의 공로는 일시적인 거지만, 예의란 만 대에 전해지는 것이니 그가 일등 상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했다. 장맹담이 부끄러워 승복했다. 무휼은 다시 산신의 영험에 감동하여 그를 위해 곽산에 사당을 짓고 원과(原過)를 시켜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한 지백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해 그의 두개골을 칠하여 오줌통으로 사용했다. 예양은 석실산 속에서 그 일을 듣고, 울면서 말하기를,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라고 했는데, 내가 지씨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나 지금은 지씨가 망하고 종족은 멸족되어 그 유해에 치욕이 미쳤는데, 내가 세상에 구차하게 산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하고, 이에 이름을 바꾸고 죄수로 복역한 사람이라고 속이고 예리한 비수를 감추어 조씨의 변소 안에 숨어 있다가 무휼이 변소에 오기를 기다려 틈을 타서 찔러 죽이려고 했다. 무휼이 변소에 이르러 갑자기 심장이 뛰어서 좌우를 시켜 변소 안을 수색하게 하니, 예양을 끌어내어 무휼에게 보였다. 무휼이 이에 묻기를, “너는 몸에 무기를 숨기고 나를 찔러 죽이려 했느냐?” 했다.
豫讓正色答曰:「吾智氏亡臣,欲為智伯報仇耳!」左右曰:「此人叛逆宜誅!」無䘏止之曰:「智伯身死無後,而豫讓欲為之報仇,真義士也!殺義士者不祥。」令放豫讓還家。臨去,復召問曰:「吾今縱子,能釋前仇否?」豫讓曰:「釋臣者,主之私恩﹔報仇者,臣之大義。」左右曰:「此人無禮,縱之必為後患。」無䘏曰:「吾已許之,可失信乎?今後但謹避之可耳。」即日歸治晉陽,以避豫讓之禍。卻說,豫讓回至家中,終日思報君仇,未能就計。其妻勸其再仕韓魏,以求富貴。豫讓怒,拂衣而出。
예양이 정색하고 대답하기를, “나는 망한 지씨의 신하로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했을 뿐이다.” 했다. 좌우의 시종이 말하기를, “이놈도 반역도이니 마땅히 죽여야 합니다.” 했다. 무휼이 그들을 말리고 말하기를, “지백은 죽었고 후손도 없는데, 예양이 그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려고 하니, 예양은 진실로 의로운 선비다. 의로운 선비를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 예양을 풀어 주어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떠나려고 할 때 무휼이 다시 불러 묻기를, “내가 오늘 그대를 풀어 주었으니 능히 옛날 원한을 풀 수 있겠는가?” 하니, 예양이 말하기를, “나를 풀어 준 것은 사사로운 은혜이지만, 원수를 갚는 일은 신하의 대의요.” 했다. 좌우의 시종들이 말하기를, “이놈은 무례합니다. 그를 풀어 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무휼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그를 풀어 주라고 허락했는데, 어찌 신의를 잃을 수 있겠는가? 이후로 다만 조심해서 피하면 된다.” 했다. 조무휼이 그날로 진양성으로 돌아가 다스리면서 예양의 화를 피했다. 한편, 예양은 집으로 돌아가 종일토록 원수 갚을 것을 생각했으나 계책이 없었다. 그의 처가 그에게 다시 한씨나 위씨에게 벼슬하여 부귀를 구하라고 권했다. 예양이 노하여 옷소매를 뿌리치고 집에서 나왔다.
思欲再入晉陽,恐其識認不便,乃削鬚去眉,漆其身為癩子之狀,乞丐於市中。妻往市跟尋,聞呼乞聲,驚曰:「此吾夫之聲也!」趨視,見豫讓,曰:「其聲似而其人非。」遂舍去。豫讓嫌其聲音尚在,復吞炭變為啞喉,再乞於市。妻雖聞聲,亦不復訝。有友人素知豫讓之志,見乞者行動,心疑為讓,潛呼其名,果是也。乃邀至家中進飲食,謂曰:「子報仇之志決矣!然未得報之術也。以子之才,若詐投趙氏,必得重用。此時乘隙行事,唾手而得,何苦毀形滅性,以求濟其事乎?」豫讓謝曰:「吾既臣趙氏,而復行刺,是貳心也。今吾漆身吞炭,為智伯報仇,正欲使人臣懷貳心者,聞吾風而知愧耳!請與子訣,勿復相見。」
예양은 다시 진양성으로 들어가려고 생각했으나,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불편할까 걱정되어 즉시 수염을 깎고 눈썹을 없애고 그 몸에 옷칠을 하여 문둥병 환자 같은 모습을 하고 시중에서 구걸을 했다. 그의 처가 시장에 가서 찾다가 구걸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남편의 목소리다.” 하고, 따라가서 보고 예양에게 말하기를, “목소리가 그 사람과 비슷하지만 남편이 아니구나.” 하고 마침내 가버렸다. 예양이 그 목소리가 남아있는 것을 싫어하여 다시 숯가루를 삼켜 벙어리가 되어 다시 시중에서 구걸했다. 그의 처가 비록 소리를 들었으나 다시는 의아해하지 않았다. 평소에 예양의 뜻을 알고 있던 친구가 걸인의 행동을 보고 마음속으로 예양인가 의심하여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렀더니 과연 그가 예양이었다. 이에 예양을 집으로 데려가 음식을 먹이고 말하기를, “그대가 원수를 갚으려는 뜻이 결연하구나! 그러나 원수 갚을 방법을 얻지 못했네. 그대의 재주로 만약 거짓으로 조씨에게 투항한다면 반드시 중용할 것이네. 그때 기회를 보아 원수를 갚는다면 손바닥에 침 뱉듯이 할 수 있는데, 어찌 고생스럽게 몸을 망가뜨리고 성품을 없애면서 그 일을 이루려고 하는가?” 했다. 예양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미 조씨의 신하가 되었다가 다시 그를 찔러 죽인다면 그것은 두 가지 마음을 품는 것이네. 지금 내가 몸에 옷칠을 하고 숯가루를 삼켜서 지백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은 바로 남의 신하가 되어 두 가지 마음을 품은 자들에게 나의 풍모를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 따름이네! 청컨대 그대와 헤어지면 다시는 서로 만나지 말기로 하세.” 했다.
遂奔晉陽城來,行乞如故,更無人識之者。趙無䘏在晉陽觀智伯新渠,已成之業,不可復廢,乃使人建橋於渠上,以便來往,名曰赤橋。赤乃火色,火能剋水,因晉水之患,故以赤橋厭之。橋既成,無䘏駕車出觀。豫讓預知無䘏觀橋,復懷利刃,詐為死人,伏於橋梁之下。無䘏之車,將近赤橋,其馬忽悲嘶卻步。御者連鞭數策,亦不前進。張孟談進曰:「臣聞『良驥不陷其主。』今此馬不渡赤橋,必有奸人藏伏,不可不察。」無䘏停車,命左右搜簡。回報:「橋下並無奸細,只有一死人僵臥。」無䘏曰:「新築橋梁,安得便有死屍?必豫讓也。」
마침내 예양은 진양성으로 와서 여전히 구걸했으나, 다시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조무휼이 진양성에서 지백이 판 새 물길을 살펴보고 이미 이룩된 일을 다시 없앨 필요가 없어서 이에 사람들을 시켜 물길 위에 다리를 놓게 하여 왕래를 편하게 하고 이름을 적교(赤橋)라고 했다. 붉은색은 불빛이라 불은 능히 물을 이기므로 진수의 홍수를 적교로 누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다리가 완성되자 무휼이 수레를 타고 살펴보려고 했다. 예양은 무휼이 다리를 보러 간다는 것을 미리 알고, 다시 예리한 비수를 품고 죽은 사람처럼 가장하여 다리 밑에 숨어 있었다. 무휼의 수레가 적교에 가까이 다가가자 말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걸음을 멈췄다. 마부가 잇달아 여러 번 채찍으로 내리쳤으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장맹담이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신이 듣기에 ‘좋은 말은 주인을 함정에 빠뜨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말들이 적교를 건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이 간사한 사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했다. 무휼이 수레를 세우고 좌우에게 명하여 수색하게 하니, 돌아와 보고하기를, “다리 밑에는 숨어 있는 사람이 없고 다만 시체가 한 구 있습니다.” 했다. 무휼이 말하기를, “새로 만든 다리 밑에 어찌 시체가 있겠느냐? 틀림없이 예양일 것이다.” 했다.
命曳出視之,形容雖變,無䘏尚能識認。罵曰:「吾前已曲法赦子,今又來謀刺,皇天豈佑汝哉!」命牽去斬之。豫讓呼天而號,淚與血下。左右曰:「子畏死耶?」讓曰:「某非畏死,痛某死之後,別無報仇之人耳!」無䘏召回問曰:「子先事范氏,范氏為智伯所滅,子忍恥偷生,反事智伯,不為范氏報仇。今智伯之死,子獨報之甚切,何也?」豫讓曰:「夫君臣以義合。君待臣如手足,則臣待君如腹心﹔君待臣如犬馬,則臣待君如路人。某向事范氏,止以眾人相待,吾亦以眾人報之。及事智伯,蒙其解衣推食,以國士相待,吾當以國士報之。豈可一例而觀耶?」
무휼이 그 시체를 끌어오게 하여 살펴보니 모습이 비록 변했으나 그가 예양임을 알 수 있었다. 무휼이 꾸짖기를, “내가 전날에 이미 법을 어겨가며 그대를 용서했거늘 오늘 다시 와서 나를 죽이려 하니 하늘이 어찌 너를 돕겠느냐?” 하고, 끌고 나가 목을 치도록 명령했다. 예양이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피눈물을 흘렸다. 좌우가 말하기를, “그대는 죽음이 두려운가?” 하니, 예양이 말하기를, “나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죽은 후에 지백의 원수를 갚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오!” 했다. 무휼이 예양을 불러서 묻기를, “그대가 먼저 범씨를 섬겼는데, 범씨는 지백에게 멸족당했다. 그대는 수치를 참고 구차하게 살아서 도리어 지백을 섬기면서 범씨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지백이 죽었다고 해서 그대가 홀로 그 원수를 너무 간절히 갚고자 한다. 무엇 때문인가?” 하니, 예양이 말하기를, “무릇 주군과 신하는 의로써 맺어진 것입니다. 주군이 신하를 수족처럼 대하면 신하는 주군을 심복이 되어 섬깁니다. 주군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대하면 신하는 주군을 길가는 사람같이 대합니다. 내가 옛날에 범씨를 섬길 때 그들은 나를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대할 뿐이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을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보답했습니다. 내가 지백을 섬기게 되자 지백은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밀어주며 나를 국사(國士)로 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마땅히 국사로써 보답하려고 했습니다. 어찌 똑같이 볼 수 있겠습니까?” 했다.
無䘏曰:「子心如鐵石不轉,吾不復赦子矣!」遂解佩劍,責令自裁。豫讓曰:「臣聞『忠臣不憂身之死,明主不掩人之義。』蒙君赦宥,於臣已足。今日臣豈望再活?但兩計不成,憤無所洩。請君脫衣與臣擊之,以寓報仇之意,臣死亦瞑目矣!」無䘏憐其志,脫下錦袍,使左右遞與豫讓。讓掣劍在手,怒目視袍,如對無䘏之狀,三躍而三砍之,曰:「吾今可以報智伯於地下矣。」遂伏劍而死。至今此橋尚存,後人改名為豫讓橋。無䘏見豫讓自刎,心甚悲之,即命收葬其屍。軍士提起錦袍,呈與無䘏。無䘏視所砍之處,皆有鮮血點污。此乃精誠之所感也。無䘏心中驚駭,自是染病。
무휼이 말하기를, “그대의 마음은 마치 철석과 같아 움직일 수 없소. 내가 다시는 그대를 용서하지 않겠소!” 하고, 마침내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예양에게 주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령했다. 예양이 말하기를, “신이 듣기에 ‘충신은 제 몸이 죽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밝은 임금은 사람의 의리를 덮어 가리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지난날 용서해 준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늘 어찌 또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다만 두 번이나 계책이 실패하여 분함을 풀 길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대, 옷을 벗어 저에게 주시어 제가 그것을 내리쳐서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풀게 해 주십시오. 제가 죽더라도 또한 눈을 감겠습니다.” 했다. 무휼이 예양의 뜻을 가엽게 여겨서, 비단 도포를 벗어 좌우에게 시켜 예양에게 넘겨주었다. 예양이 칼을 손에 들고는 성난 눈으로 도포를 노려보기를 마치 무휼의 모습을 대하듯 하면서, 세 번을 뛰며 세 번을 칼로 내리치고 말하기를, “내가 오늘에야 지하에 있는 지백의 원수를 갚았다.” 하고, 마침내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지금도 이 다리가 아직 남아있는데, 뒷사람이 이름을 바꾸어 예양교라고 부른다. 무휼은 예양이 스스로 목을 찔러 죽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매우 비통해져 즉시 예양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했다. 군사들이 도포를 들고 와서 무휼에게 바쳤다. 무휼이 보니 칼 맞은 자리마다 선혈이 얼룩져 있었다. 이것은 곧 정성이 감응한 깃이었다. 무휼이 마음속으로 놀라서 이로부터 병이 들었다.
不知性命何如,且看下回分解。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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