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시리즈.
"거짓 가르침과 영적 미혹에 대한 경고",
성경본문 "딤전 4:1"
23)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 - 말세에 믿음에서 떠나 그릇된 도를 따름
여러분 중에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오신 분들이 많으십니다.
권사님으로, 집사님으로, 주일학교 교사로 수십 년을 지내오신 분들이요.
그러다 보면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한때 나와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고, 나와 함께 심방을 다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던 그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길로 들어서 있는 걸 보게 되는 경험 말입니다.
처음엔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신실하던 사람이?"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나태해서 떠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열심이었습니다.
너무 간절해서, 너무 경건하고 싶어서, 결국 다른 길로 들어선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이 정확히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먼저 이 구절이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십시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바울이 자기 짐작이나 걱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령께서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이 경고는 무겁습니다.
그리고 원어를 보면 흥미로운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라는 표현입니다.
헬라어로 "티네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 중 일부"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교회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이들이 떠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그 "어떤 사람들" 안에 속해 있지 않은가.
"믿음에서 떠나"라는 표현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떠난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아피스테미"인데, 원래 물리적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처음부터 교회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안에 있다가 나간 사람들입니다.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성찬을 나누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진짜 위험한 미혹은 교회 담장 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늘 담장 안에서, 아주 신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무엇을 따르게 된다고 했습니까.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뉴마신 플라노이스", 그리고 "디다스칼리아이스 다이모니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플라노스"라는 단어는 사람을 길에서 벗어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방향을 잘못 잡게 만드는 것, 그것이 미혹입니다.
그리고 이 미혹의 배후에는 귀신이 있다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멈춰서야 합니다.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뭔가 기괴하고 무서운 것을 떠올립니다.
굿판이나 이상한 주술, 눈에 확 띄는 이단의 모습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인 3절을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것이라."
결혼하지 말라는 것, 어떤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 이게 귀신의 가르침이라니, 언뜻 이해가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매우 경건해 보이지 않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하고, 육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것 — 우리 눈에는 이것이 신앙의 극치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이 본문의 핵심이 있습니다.
사탄이 사람을 미혹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골적인 죄가 아닙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보다 더 거룩해 보이는 규율입니다.
왜 이것이 위험합니까.
4절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결혼도, 음식도, 하나님이 직접 선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하나님이 선하다 하신 것을 악하다고 규정하고, 그것을 금하는 자기 절제를 통해 스스로 거룩해지려 합니다.
이것은 결국 창조주의 선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규율과 노력으로 거룩해지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우리가 정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죄를 지어라"라고 속삭이지 않습니다.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더 참으면, 더 규칙을 지키면 하나님이 너를 인정하실 것이다"라고 속삭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런 형태의 미혹이 있습니다.
어떤 이단들은 여전히 특정한 음식을 금하고, 특정한 절기를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조용하고, 더 우리 가까이 있는 형태도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몇 번 나갔는지, 헌금을 얼마나 했는지, 봉사를 얼마나 오래 했는지로 은근히 자신의 신앙을 저울질하는 마음.
은혜보다 규율에 더 의지하고 싶은 유혹.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5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절제와 규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완전한 의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금식하고 절제해도 도달할 수 없는 그 완전한 의를,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은 무엇을 안 먹고 무엇을 안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참된 경건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의 신뢰를 원하십니다.
규율을 쌓아 하나님께 다가가려 했던 우리의 모든 시도를 내려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길 위에 서게 됩니다.
그 손은 우리가 아무리 흔들려도 놓지 않으시는 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오늘,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최근에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싶어서 쌓아온 어떤 규칙이나 기준이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새벽기도의 횟수든, 봉사의 시간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던 손을 오늘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짧게라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기도를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에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함께해 온 믿음의 동역자 한 분과 이 본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은연중에 "이 정도는 해야 진짜 신자다"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오래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일수록 이 대화가 더 깊을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속해 계신 구역이나 순모임에서 다루는 교재나 나누는 간증들 가운데,
은혜보다 노력과 열심을 더 강조하는 흐름은 없는지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를 격려할 때조차, 은혜의 언어보다 성과의 언어를 더 많이 쓰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혹은 늘 경건의 얼굴을 하고 찾아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참았는가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신 그 은혜를, 오늘도 빈손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그 은혜를 붙드는 사람은, 결코 넘어져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장 거룩해 보이는 거짓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이 진짜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