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 목 : 변혁기 휴머니즘 문학론
* 저 자 : 강전식
* 분 량 : 330쪽
* 가 격 : 18,000원
* 책 크기 : 148 x 225mm
* 초판인쇄 : 2021년 10월 29일
* ISBN : 979-11-89678-98-2
* 도서출판 명성서림
저/자/소/개
■忠南禮山 出生
■예산농고
■고려대 국문과
■한국문인협회(평론분과) ᭼ PEN 한국본부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이사
■사)문협 · 남북문학 交流委 위원
목차
自 序 …… 04
Ⅰ. 휴머니즘 地平
헬라에 불던 에게 海 바람ⅰ …… 15
-북위37도, 문학의 고향
헬라에 불던 에게 海 바람ⅱ …… 30
-문학사의 고향, 헬레니즘과 로마 지배시대
서구 中世紀 문학의 이해 …… 46
-프, 독 史實的 문학 일별(一瞥)
사상가 루소의 자연 …… 87
-新엘로이즈 낭만주의, 바랑스부인, 대혁명
중세기 말엽 문학의 파노라마 …… 111
-「로미오와 줄리엣」영국 르네상스 국민문학
문예사조 변동 원리와 모더니즘 기타 …… 125
-상징주의에서 폴 발레리까지
18세기 후반, 19세기 러시아 문학 …… 143
-차리즘과 농노제, 인텔리겐차의 계몽
전후(戰後)현상과 행동문예 …… 179
-양차 대전 사이, 한‧ 미의 모더니즘
불리는 詩, 詩言志 歌永言 …… 201
-노산 이은상 「성불사의 밤」을 중심으로
언어의 종합적 행위와 문학 …… 216
-아더 왕, 아라비안 나이트, 랑그와 파롤
Ⅱ. 超特 기획
추사(秋史) 김정희의 經史學, 考證學, 금석학, 詩學, 書畫와
조선왕조 末, 戚里세도의 정치 社會相 …… 241
추사(秋史) 혹은 완당(阮堂) 김정희(1786-1856)의 생애는 21세기의
한국미학에서 존재방식의 모순을 풀어야 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기술하듯, 순탄
치 않은 세기말적 상황 속 유배가 지속되는 우울의 연속에서 어렵게 꽃피었다.
선생이 겪은 우울을 학예일치(學藝一致)로써 이룩한 세련됨이 조선
시대 미학의 완결이었다. 불완전한 삶을 학문과 예술로 치환한 미적
태도에 그 예술의 현대화 가능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전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맞게 예술적 재창조가 가능하다.
Ⅲ. 書齋 餘窓
❶. 미아(迷兒)로 걷는길 …… 285
-길이 많아, 길이 없는 외출
❷.옴니버스 스토리 …… 293
-증언(證言)하는 비유적 캘린더
하늬바람 소리
다시「12월」의 역(驛)
❸. 역사 이행(移行)에 대한 回心 …… 305
-중세 이후 넥스트교육의 시사적 대화
❹. 기사도(騎士道)와 세르반테스 …… 317
-「돈 키호테」, 희극으로 포장된 스페인 쇠망기
...................................................
自 序
우리들 주위에는 자기 이름보다 더 친숙한 古典의 명작들이 많다. 늘 듣고 보는 것이므로 푸른 하늘과 공기처럼 그냥 스쳐 지내고 마는 경우가 일상이다. 일상의 습관은 눈과 귀를 끌지 못한다. 멈춰 서려고 하지 않는다. 생의 다채로운 빛깔을 탐구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지 않는다. 그것을 응시하지 못한다.
저 언어 속에 잠들어 있는 여러 가지 빛깔의 美의 極致를 찾지 못한다. 잃어버리고 만다. 언어에 의한 진리는 멀리 달아나 버린다. 다시 읽기로 하자. 편견에서 벗어나 白紙의 상태에서 잃어버린 보석을 찾아 길을 떠나자. 고전의 언어들 숲속에 숨 쉬고 있는 언어들을 다시 탐색해 보자. 헬라에 불던 에게 海 바람을 호흡하자. 문학의 고향에서 호메로스를, 그리고 사포를 만나보자.
중세기 유럽문화가 걸어오던 길을 다시 걸어보자.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프랑크족의 역사, 북구 스라브족 部族史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생의 의미와 시대의 表情을 읽어 보자. 인간에게 무엇이 값어치가 있는 것이며 변하지 않는 진리인가를 속삭여줄 것이다. 휴머니즘과 문예사조의 관계를 넌지시 눈짓할 것이다.
철학의 합리론은 理性을 최고의 원리로 하고, 비합리론에서는 人間을 최고 대상으로 삼았다. 고대의 소피스트들이 후자에서 인간을 만물의 尺度로 삼았다. 그것이 중세 신학시대로 말미암아 인간 존재성이 상실된다. 그러나 인간은 신학에 의한 억압에 安住하지 못한다. 그 기간이 길고 짧고 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자유의 생활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 못한다. 따라서 어떠한 변혁기(變革期)의 시대상에서 반드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의 경향은 14 · 15세기에 이르러 다시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 되고 인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르네상스 휴머니즘 운동이다. 이것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개념과 형태에서 다른 모습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자유세계에서 미국의 윤리운동으로 또는 종교 淸化운동이 되어 왔다. 종교의 정신에 가득 차 있는 도구마를 가지지 않는 신앙으로의 활용이다. 존 · 듀이를 위요(圍繞)하여 계속되어 왔다. 또 영국에서는 노동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페비안 협회(Fevian Society)와 동조를 울리고 있다. 네델란드에서는 프로테스탄트의 운동이 되고, 벨기에에서는 反카톨릭 운동으로 되어 있다. 프랑스에서는 자유의 이상으로 표명하려 하고, 독일에서는 도구마가 없는 종교성, 應報의 기대를 가지지 않는 도덕, 즉 기적없는 세계관을 표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휴머니즘은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쉽게 해석되며 이용되는 수가 많다. 휴머니즘은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 휴머니스트 협회 간행, 현대 휴머니즘 강좌에는 20세기 휴머니스트에 레닌 또는 모택동을 열거하는 것을 보면 자유세계의 전유물도 아닌 듯하다.
이것은 인간이 현실 사회에서 생활하여 가는 데 있어서 그 현실적인 直面問題를 해결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상이 옳은가 저 행동이 옳은가, 또는 현실적 난국을 타개를 위해 방황하는 것이 인간의 생활의 세계이다. 어떠한 사회고 그 시대와 그 사회에 생존하고 있는 이상, 인간에게 직면한 현실을 해결하도록 육박하고 있다. 휴머니즘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소급(遡及)해야 한다. 또 르네상스를 알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古代 형태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도에 대한 박해는 300년에 가까운 피의 역사이었으며 눈물겨운 싸움이었다. 제왕 네로를 위시하여 도미니쿠스, 디오크레티아누스, 투라야누스들의 박해는 전무 후무한 流血의 慘劇이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아니 받으면 받을수록 神의 관념은 더욱 깊게 스며들어 정신을 정복하였다. 유태(猶太)에서 소아시아로, 그리스, 시리아, 이탈리아 및 서유럽 전역으로 넓어져 가며 신도는 날로 늘어갈 뿐이었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로마제국의 생활양식에 대한 반항이었으며 부정이었다. 즉 농민과 도시 무산계급을 절망케 하는 부귀를 자랑하던 지배계급에 대한 반항이었다. 부유층의 문화라고 자랑하며 豪華를 이상으로 하던 정신적, 도덕적으로 인내할 수 없는 생활에 대한 항거였다.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편이었다. 향락적이며 탐미적인 것에 불평등 불만 증오를, 정신적 생활의 위안의 길을 기독교에서 찾았다. 신앙은 가난한 사람의 해방을 약속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은 선(善)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악(惡)이 승리하는 것이라 믿고 악도 고뇌도 없는 죽은 뒤에 갈 수 있는 내세를 渴求하였다.
그래서 사도(使徒)시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파한다. 순교자로 죽어갔다. 그러던 중에 동방에 있는 새로운 종교가 대두하여 많은 종파로 분렬되어 각자가 敎義를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해석을 열광적으로 고집하기도 하였다. 기독교도 그러한 小分派로 분렬할 위기에 빠졌다. 부연하면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불교나 혹은 고대 종교가 혼합되고 있음을 보고 초대 기독교의 교의를 교의대로 순결성을 지켜야 할 임무를 느낀 敎司들은 먼저 견고하게 단결할 필요를 느꼈다. 猶太敎의 신전과 제의(祭儀)와 슈나고게의 예배와 異敎徒 종교단(宗敎團)과 정확히 분간하기 위해 「敎會」라는 명칭을 만들어 붙였다. 교의의 통일을 얻고 동시에 집단의 견고성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교회가 건설되고 그것이 발전하게 되니 일면에서 修道院 제도가 생기고, 다른 면에서 권력파벌과 僧侶계급이 형성되었다. 또 종교의 권력파가 세속의 권력파인 제왕과 부유층과 타협하게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AD 313년에 비로소 종교의 자유화가 용인되었다. AD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국교로 공인되었다. 권력을 얻게 되니 신앙의 純潔을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異端을 박해하였다. 背敎的 이단으로 몰아 갖은 잔인과 苛酷을 남김없이 가하였다. 이단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위해 더욱 세속적 권력의 축복의 도구가 되어야 하고 민중에 대한 專制권력의 支持를 요구하게 된다. 이것은 박해받던 것이 박해하는 종교로 변한 것을 의미하게 된다.
교회의 축복은 오직 그 지배자들의 죄악을 容許하고 합리화로 신의 성지(聖旨)에 맞는 答辯을 만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교회는 異敎이었던 고대를 연구하는 것도 극력 방지하였다. 그리스의 기록과 문헌은 모든 지식의 源泉이 되었으되 교회의 손으로 없어지고 금지되었다. 그리스의 사상가, 철학자의 저작의 어떤 것은 완전 소실, 그 기록과 문헌이 유럽에 입수된 것은 오리엔트의 신비적 위엄과 융합되어 있던 비잔틴 문화에서 본격화하였다. 고전 그리스 문화는 오직 아라비아語로 번역되어 있었다. 이것을 아랍인이 보존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아라비아판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것을 중세기의 유럽에 보급된 것이다. 餘他 무명의 저작은 다른 설명이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그리스의 지혜는 이렇게 蹂躪되었다. 로마제국의 붕괴로 말미암아 지방의 封建諸侯들이 토지중심으로 봉건제도화 할 때 교회들 역시, 당시 주요산물의 도구인 토지를 통하여 農奴를 소유하였다.
11세기 이후 십자군 전쟁으로 교통이 발달하여 동양과 왕래가 빈번, 통상활동은 도시가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 농민들은 예농(隸農)의 생활에서 탈출하여 도시에 이주하였는데 여기에 자유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직업의 자유로운 변경은 행동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것이 시민사회의 형성이다. 시민군을 창설하여 자신들의 사령관을 임명하였다. 승려계급의 전매특허인 지식과 예술을 자유로이 민중이 획득한다. 이를 위해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 사회의 타개 창조 비판 내지 개혁의 힘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다.
거기에 인간의 조건이 문제화한다. 곧 행동적인 것의 묘사는 사유적(思惟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변하여 옮아가는 추행(推行)인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것에 매달려 생활하는 것이 아닌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변화하는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묘사된다. 17세기 휴머니스트 파스칼은 ‘사(死)의 찬미자’, 20세기의 헉슬리는 ‘생(生)의 찬미자’였다.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과 산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의 대결이다.
비근(卑近)한 예로, 휴머니즘은 패배자를 존중한다. 이것은 인간이 時空間에 관계없이 같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인간은 경화(硬化)할 수 없는 존재다. 오늘의 패배자는 내일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사상(事象)의 불리로 패했다 해도 그가 인간성이 없다거나 인격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勝負에 있어서 인간을 볼 뿐이다. 이것이 비합리성의 이론의 기본이다.
휴머니즘 선구적 인물인 단테의 출생지이며 거주지인 플로렌티아(꽃이 피어난다.Florentia 후에 피렌체로 도시명이 바뀜)가 주변의 농민들이 귀족에게서 독립하기까지 부의 축적으로 도시를 형성하고, 그 도시가 자주권을 얻기까지 77년간 장구한 세월을 두고 격전하였다. 1181년 귀족들이 동맹을 조직하여 자유 市民軍에 대전해 왔기 때문이다. 다시 130년간 전쟁을 하게 된다. 이런 것은 로마에도 있었다. 아니 이탈리아 전토에도, 유럽 전체가 그런 행로를 걸었다. 황제와 법황의 원조를 얻은 전투력은 강하였으며 민중의 희생은 잔인하였고 참혹했다. 피렌체는 중세기의 아테네였다. 그들의 자유에 대한 애정과 思慕의 情은 단테와 같은 시인으로 하여금 로마제국의 영광(榮光)을 추모(追慕)하게 하였다.
중세기 천년의 일별(一瞥)로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세속적 권력과 교회의 억압에 항거한 결과였다. 네오 · 휴머니즘은 專制와 주지주의, 경험철학에 항거했다. 전자는 학문적 근거를 라틴문화에서, 후자는 그리스문화에서 구하고 있다. 형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나 그 정신은 모두 같다. 인간성의 상실될 때 어떠한 시대이고 어떠한 나라이고 이 운동은 인류가 생존하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로마의 미스(myth)와 중세의 레전드(legend)를 거쳐온 근세의 리얼(real)이었다.
중세의 휴먼 빙(Human being)의 脈搏이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내재적 호흡이 된다. 피렌체의 이데올르기는 13세기 南佛의 투르바두르 연가를 북 프랑스까지 유행시켰다. 네오 · 휴머니스트 헤르더, 실러, 루소 등은 이성 철학으로 형성된 사회에 항거, 「자연으로 돌아가라」 부르짖었다. 이것이 황금의 권위에 항쟁하는 단서(端緖)인 것이다. 신흥 부르조아의 사유 관념에 대한 反旗이고 독일 시트럼 운트 드랑(Strum und Drang)시대와 연결된다.
이론(理論) 중에서 진실한 이론은 지식을 위해 도움이 된다.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생활을 위해 유효한 것이다. 휴머니즘 근저(根底)의 나무 밑에서 우리들은 다시 古典 명작을 읽기로 하자. 공소한 에고적 이론이 아닌 중세를 밝히던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자. 詩가 무엇이며, 또는 悲劇과 喜劇, 서사시와 서정시의 발생을 손으로 쥐어 보자. 크레티엥 드 트로와, 그리고 엘레오노르 다키텐느를 만나보자. 트루바두르의 사랑과 圓卓의 騎士, 그리고 성주의 딸 샤롯트 아가씨가 짠 목도리를 두른 란스롯트의 무술시합 장면을 바라보자.
그런 것들을 위해 웬체스의 무술시합이 있던 중세기의 초여름을 그리며 이 책을 펴낸다.
2021년 9월 초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