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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론 82
창세기 29:31-30:8
야곱의 아들들(1)
언약의 상속자로, 또 아버지 집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은 그가 여기 하란에서 친족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도무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언약의 상속자인 야곱은 가나안 땅을 상속받을 자로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이끌고 계신 복의 과정에 있다. 이것이 결혼을 통해 언약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 언약적 계시이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31절). “사랑받지 못함”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세누아’는 ‘미워하다, 증오하다, 싫어하다, 혐오하다’라는 뜻인데 ‘사네’의 수동태로 야곱으로부터 단순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할 정도로 미움을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야곱이 레아를 미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자녀를 허락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 야곱은 레아를 미워하고 증오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언약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약의 아들은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무능한 자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는 자로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9:36). 진짜 언약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십자가로 속량하실 수 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32절). “돌보셨으니”라는 말의 ‘라아’는 ‘보다, 조사하다, 주목하다, 느끼다’라는 뜻이다. 야곱이 라헬만 사랑함으로 레아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억울한 자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아는 하나님께서 억울한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보시고 도와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을 “르우벤”(히, ‘레우벤’)리고 하였는데 ‘라아’(보다)와 ‘벤’(아들)의 합성어로 ‘한 아들을 보라’ 또는 ‘주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아보셨다’라는 뜻이다. 이런 레아의 생각은 모든 종교인의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그저 도와달라는 자기중심적인 말로 도배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위해 일하신다.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106:7-8)
자기 언약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는 뜻이다. 결국 “르우벤”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언약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요 8:18)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33-35절). “시므온”(히, ‘쉬므온’)은 ‘샤마’(듣다, 경청하다, 순종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로 ‘들음’이라는 뜻이다. 언약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게 될 때 아들의 음성이 들리는 것이다. 십자가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
“레위”는 ‘연합된’이라는 뜻이다. 레아는 남편과의 연합을 말하였지만 성경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언약의 아들 야곱과 연합됨으로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불러 연합하심으로 언약을 성취하겠다는 의미이다. 말씀이 보이고 들린 자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하나 됨에 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유다”(히, ‘예후다’)는 ‘감사하다, 찬양하다’라는 뜻이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14)
우리 성경에 “출산이 멈추었더라”라고 번역하였는데 히브리어 ‘아마드 얄라드’인데 ‘얄라드’는 ‘낳다, 출산하다’라는 뜻이고 ‘아마드’는 ‘서 있다, 위치를 취하다, 머무르다, 지탱하다, 일어나다, 확실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성경 곳곳에 ‘하나님 앞에 서다’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레 9:5, 신 19:17 등). 즉 단순히 아들 낳는 것을 멈추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자기 언약의 의미를 분명히 세우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네 아들 이후 이제 성경의 관심은 라헬에게로 옮겨간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1절). “시기하여”라는 말은 ‘카나’인데 ‘시기하다, 질투하다, 열정적이다, 열심히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칸나’(출 20:5)라는 단어가 왔다. 문자적으로 보면 레아에 대한 라헬의 투기로 시기로 보인다. 라헬의 뜻인 ‘암양’으로 언약의 아들인 야곱에게 사랑을 받는 복음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라헬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씨가 없는 상태, 곧 복음이 없는 상태로 죽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진짜 씨를 가져야 할 라헬은 가지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씨를 가지지 못한 자 레아는 씨를 가진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는 레아를 통해 율법적 행위로 드러내는 자기 의가 씨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레아가 먼저 아들을 낳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단순히 라헬의 시기가 아니다. 라헬은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라고 하였는데 라헬의 죽음 안에 하나님의 열심이 주어진다. 다시 말해서 라헬의 시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겔 39:25)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2절). 야곱의 분노는 라헬의 질투와 같은 의미로 표현된 것이다. 라헬의 시기, 야곱의 분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율법적 행위에 의한 인간의 의가 앞세워져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하기 위해 레아가 먼저 아들을 낳고 그다음에 라헬이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하나님의 언약적 의미이다.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3-6절). 문자적으로는 라헬이 고대근동의 풍습대로 시녀를 통해 자기 아들을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라고 하였는데 “아내”는 ‘잇샤’로 ‘여자, 아내’라는 뜻이다. 즉 야곱이 첩이 아닌 아내를 얻었다는 것으로 언약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자기 아내로 삼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라고 하여 야곱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단”이란 ‘딘’(다스리다, 재판하다, 심판하다)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심판, 다스림’이라는 뜻이다. 라헬은 자기 억울함을 풀어주셨다고 고백하지만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언약의 아들이 이루실 심판을 보여주고 계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죄가 없으신 언약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시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나타내신 것이다(히 4:1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7-8절). “납달리”(히, ‘나프탈리’)는 “크게”(히, ‘나프툴’)과 “경쟁하여”(히, ‘파탈’) 이겼다는 뜻의 ‘씨름’이다. 인간은 경쟁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철두철미하게 자기 언약을 보여주고 계신다. 결국 야곱이 하란 땅에서 얻는 아내와의 연합의 관계 안에서 얻는 아들들로 열두 지파를 만드셔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시는 구원을 설명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처소, 곧 예루살렘 성으로 만드시는 것이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202407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