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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론 84
요한계시록 21:12-21
거룩한 성 예루살렘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서 확인하는 것은 천국은 하나님 왕국이기에 결코 물질적인 것이나 장소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며 더불어 누리는 상태로 말씀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신부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로 음녀와 대조된 것이며 또한 죄악 된 세상을 보여주는 바벨론 성과 대조해서 표현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12-14절).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천국은 외부의 적이 더 이상 없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크고 높은 성곽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성곽”이라는 헬라어 ‘테이코스’는 ‘성벽, 울타리’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호마’의 역어인데 접근하기 어려운 정숙한 처녀를 비유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아 8:9 이하).
17절에 보면 성곽이 “백사십사 규빗”이라고 하였는데 1 규빗이 45-50cm로 보면 약 65-70m 정도로 환산할 수 있는데 성벽의 높이가 아니라 두께로 보는 자들도 있다. 또 16절에서 성의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하였기에 1 스타디온은 약 192m이니 약 2,400km 정도가 된다. 만 이천 스타디온에 비하면 백사십사 규빗의 성벽은 크고 높다고 할 수 없는 수치이다.
따라서 “크고 높은 성곽”이라는 표현은 물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며 또한 미래의 천국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울타리로 구별되었다는 뜻으로 예루살렘 성이 완전하게 완성되어 안전한 성이라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즉 외부의 더러운 것들 곧 비진리가 들어올 수 없는 상태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요 아내를 철저히 보호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는 온전히 구별되어 진리로 완성된 상태를 나타낸다.
“열두 문”은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으로 그 문들 위에 이름이 있다는 표현은 에스겔 48:30-35의 성취로 말씀한 것이다. 네 방향의 문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선택된 세상의 모든 자기 백성은 누구나 다 들어오게 된다는 뜻이며, 그 문이 각 방향마다 셋 있다는 것은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일하심이라는 의미이다.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7-10)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라는 표현은 천사가 복음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복음이 주어진 자만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곧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된 자인 교회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열두 지파를 세우신 것은 결국 교회를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가 바로 구약에서 말씀한 이스라엘의 실체이다.
그래서 그 성의 기초는 “열두 기초석”으로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열두 사도들을 터로 삼으신 것이 예루살렘 성, 곧 교회이다(엡 2:20, 벧전 2: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되고 열두 사도가 터가 된 복음 위에 세워졌다. 이런 점에서 주성교회는 세상에 의해 공격당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인 교회는 결코 무너질 수 없고 진리로 온전히 존재한다. 주님은 인간들이 간판 걸고 세운 교회를 무너뜨리심으로 자기 몸만 남기신다.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 자를 가졌더라”(15절). “내게 말하는 자”란 9절에서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의 하나”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였던 천사이다. 천사란 복음, 진리를 드러내는 존재로서 그 진리의 기준으로 예루살렘 성을 측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씀은 지난 강론에서 보았던 에스겔 40:2-3에 기록된 새 성전 측량에 대한 말씀의 성취를 보여준다.
“금 갈대 자”란 금으로 된 측량자라는 말이다. 11:1에서도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과 제단과 거기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였다. “측량”이란 “금 갈대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어린 양의 신부요 아내가 아닌 존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아닌 것들은 날마다 무너뜨리신다는 의미이다(참고 암 7:7-9). 그렇다면 교회는 세상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도록 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 모든 구성원의 존재 이유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측량된 성의 모습을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16절)라고 하였다. “만 이천 스다디온”은 약 2,400km 정도이나 현재의 도량형으로 환산한 것은 무의미하다. 12,000이란 숫자는 각 지파에서 인침을 받은 자로 십사만 사천을 이루었다(7:5-8). 따라서 12×1,000의 구성으로 열두 지파라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1,000이라는 수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스다디온”의 헬라어 ‘스타디온’은 길이의 단위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운동장, 경기장’이라는 뜻이다.
운동장(스타디온)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여기서 “달음질”이라는 말의 헬라어 ‘트레코’는 ‘빠르게 움직이다, 달리다’라는 경기를 뜻하는데 70인역에서 히브리어 ‘루츠’의 역어로 “주의 계명들의 길을 달려가리이다”(시 119:32)라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단어이다(히 12:1). 따라서 ‘스타디온’이란 하나님의 아들들이 말씀에 이끌려 가는 현장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라는 것이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 네모반듯한 것은 지성소를 표현한 것이다.
19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 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왕상 6:19-20)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교회요 성도가 지성소가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성막을 짓도록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지성소, 곧 자기 처소로 삼으시기 위한 것이었다(출 15:13-17). 결국 열두 지파의 이스라엘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는 하나님의 아들들, 곧 교회요 성도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처소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말씀에 이끌려 가는 경기이고 그것은 세상의 경기와는 달리 조건과 결과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나님의 의 안에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17절). “백사십사 규빗”이란 12×12로 “십사만 사천”(7:4, 14:1, 3)처럼 구약의 이스라엘과 그 성취로서의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언약 안에서 하나 된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온전한 백성이요 교회라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백사십사, 만 이천, 십사만 사천은 열두 지파를 기준으로 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을 다양하게 한 것이다.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는 표현은 에스겔 40:3에서 사람이 측량한 그것은 곧 천사의 측량이라는 뜻이다. 즉 복음을 드러낸다는 차원에서 생각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건축된 존재가 교회요 성도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적 자기 행위로 의를 내세우는 지상의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예루살렘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세워졌기에 인간의 의가 개입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18절)라고 말씀한다. 성곽의 열두 기초석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예루살렘 성이 온갖 보석(헬, ‘리도스 티미오스’)으로 치장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근거하여 있고, 어린 양의 신부요 아내가 신랑으로부터 받은 영광스러움과 고귀함을 나타낸 것이다.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18-21절). 대제사장의 흉패에 열두 보석은 이스라엘의 이름이다. 즉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가슴에 품고 지성소에 들어가신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18 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 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출 28:15-21)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성막 제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인간의 의가 결코 개입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성전이라는 뜻이다.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 2:10-14)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갈 미래의 천국은 보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나라이고 그 길은 정금으로 된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라는 창조 언약의 완성을 말씀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20240714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