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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좌담
2012 청소년 소설의 현재와 미래
1.
오세란 책들 많이 읽고 오셨을 텐데, 일단 총평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그 전 해에 비해서 어땠는지.
박상률 일단 소재가 많이 다양해졌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작가 자신의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문제를 다룬 회고적인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현재성과 보편성이 있는가가 문제지요. 청소년 문학이 소재 차원에서 다양해졌다는 건 일단 긍정적입니다. 역사물이나 추리물 등을 비롯해, 학교 안에서 오물오물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의 문제는 사실 가족 전체의 문제거든요. 이렇게 넓혀 가는 걸 보며 젊은 작가들이 보는 눈이 넓다는 걸 느꼈고, 한편으로는 앞선 작가들이 가까이 있는 소재를 다 써 버려서 그런가 싶기도 했습니다.(웃음)
유영종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지난해 좌담에서 제일 거론된 것이 소재가 비슷하더라는 거더라고요. 저도 그전까진 그렇게 느꼈는데, 이번에 보니까 많이 넓어졌구나 싶었습니다. 보편적인 문제, 존재에 대한 문제까지 다룬다든지 기법도 여러 가지여서 예컨대 다수의 화자를 등장시키는 시도도 있었고요. 사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관점을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있어서 읽으면서 절반 정도는 마음에 들었어요.
오세란 어떤 아쉬움 같은 것은 없으셨어요?
박상률 우선 저는 일찍 시작해서 이렇게까지 고민 안 하고 쓸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웃음) 근데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소재와 기법으로 고민은 많이 하는데, 정작 자신이 청소년이라는 생각은 못 하고 쓴 게 많구나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자신 안에 자라나는 청소년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한때 청소년이었다는 것에만 기대어 쓴 작품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법은 새로운데 틀에 맞춘 듯한 것이 많은 게 아쉬웠던 것 같아요. 내용과 형식이 같이 가야 좋은 것인데.
유영종 저도 같은 생각인데요. 지금 말씀하신 게 작가의 목소리랑 연결되는 것 같거든요. 읽으면서 몇몇 작품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크고, 작가가 개입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고, 그런 게 작품의 결론을 쉽고 시급하게 내는 문제와도 상관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오세란 저도 지난해 작품 읽으며 든 생각이 그전 해에 청소년 소설이 막 활성화되기 시작할 때에는 예를 들어 '청소년의 성에 대해서 쓴 소설이 없다.' 그러면 다음 시즌에 성을 다룬 소설이 서너 권 나오고(웃음) 좀 거칠게 말하면 촌스러운 현상이랄까. 물론 지금 돌아보면 소재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지만요. 그런데 이제는 작가들이 소재를 탐구하고 영역 자체가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약간 아쉬웠던 점이, 마찬가지로 작가의 목소리에 대한 맥락인데요. 공부를 많이 하고 취재를 열심히 했다는 흔적은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 취재가 주인공의 이야기로 소화되어야 하는데 그게 덜 된 채로 책으로 나온 경우가 많아서 조금 아쉽더라고요. 저는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작가가 더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웃음)
박상률 처음에 읽을 때는 야, 이거 굉장하다, 이러는데 끝 부분에 가면 힘이 들어서인지 작가 목소리가 그냥 나와요. 시시하게 끝나는 게 너무 많아요. 계몽과 교훈. 자꾸 작가들이 독자를 한 수 가르치려는 도인, 선생, 부모의 입장에서 쓰지 않나 싶었습니다. 동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느새 자기가 한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오세란 총평을 들어 봤고, 이제 개별 작품들과 연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박상률 선생님께서 사계절 1318문고를 만드셨는데요. 제가 학위 논문을 청소년 소설에 관한 연구로 썼는데, 1318문고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외국 소설 정보를 알려 준 것도 크고요. 그때 3부작 시리즈를 쓰셨잖아요. 사실 현대 청소년 소설이 거기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 사이에 성장 소설은 무엇이고 청소년 소설은 무엇인가 하는 논쟁도 있었고요. 작년에 과거가 배경인 소설들이 다시 나왔거든요. 『우리들의 자취 공화국』이나 몇몇 작품들, 『원더랜드 대모험』도 제5공화국 시절 롯데월드 만들어질 때 이야기이죠. 배경이 과거로 가긴 했는데 예전 성장 소설 같은 건 아니고, 어디 성장 소설의 대가로서 박상률 선생님은 이 흐름을 어떻게 보셨는지.(웃음)
박상률 저는 기본적으로 소설은 모두 성장 소설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청소년 소설과 일반 소설 속에서 성장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청소년은 신체적 성장과 같이 가는 것이고 일반소설 속의 성장은 '이러이러한 고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가가 되었다.'는 의미가 많은 것 같아요. 이걸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하는데 구분을 안 하고, 성장이라는 말에만 붙들려 시비를 많이 걸더라고요. 성장 소설은 이제 필요 없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애들이 13살에서 20살까지 몸과 마음이 같이 성장하는데, 아이들 키워 보셔서 알겠지만 그 무렵의 애들은 인간이 아니지요.(웃음)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이 녀석들에 대해서 쓰는 게 성장 소설이고요. 아무튼 이제는 '성장 소설은 나쁘다.' 무조건 '회고조다.' 하기보다는 일반 소설 속의 성장과 청소년 소설 속의 성장을 구분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청소년 소설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의 불안과 폭력성(어른이 되어도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게 성장을 위한 고통이지요. 여기서 멈춰 있으면 끝내 사람이 안 되는 거잖아요.
청소년의 성장이 어느 시대, 누구의 이야기가 되든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일반 소설도 살인이 나오든 대리 만족을 하든 카타르시스를 느끼든 어쨌든 영혼이 한 뼘 자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 읽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뭐 하러 읽겠습니까? 그런데 작가들이 이 시대 아이들 얘기를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 시대 이야기는 아이들 본인들이 더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들의 이야기는 시시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엄마 아빠의 청소년기가 궁금하지. 이거 사실 상당히 영업 비밀인데(좌중 웃음) 제가 15년간 써 온 방법인데. 조선 시대든 30년 전이든 지금 아이들이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를 쓰는 게 청소년 소설이지, 요즘 아이들이 즐겨 하는 인터넷이든, 게임이든 이런 걸 다룬다고 무조건 청소년 소설이 되는 게 아닙니다. 외피를 어떻게 쓰고 있든 간에 보편적인 것을 다뤄야지요. 젊은 작가들이 보편적인 핵심보다 외피만 다루려다 보니 소재주의로 가는 것 같아요.
오세란 유영종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외국 청소년 작가들 중에서 로이스 로리처럼 기본적으로 잔잔한 성장 소설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 성장 담론을 보면 어떠세요?
유영종 작년이랑 다르게 올해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 게 좀 있었던 것 같거든요. 말씀대로 모든 소설이 어느 정도 성장의 의미를 담고 있지요. 마음의 성장도 그렇고, 갈등의 과정도 그 일부라고 생각되고요. 그런 면에서는 이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 게 넓은 의미로 모든 게 다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저는 잔잔한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모녀 문제를 다루는 작품들이 좋았어요. 어머니가 살았던 시대와 아이가 살았던 시대를 같이 보여 주면서 공감할 수 있도록 다루는 게 우리 문단에서도 보였고, 이런 시도가 서양에서도 있었는데, 이렇게 비슷해져 가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싶어요.
오세란 저도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신기루』를 떠올렸거든요. 이금이 작가는 역시 이야기를 잘 다루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는데. 이 작품은 여행 소설의 매력이 있었어요. 가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요.
유영종 저는 가고 싶지 않던데요. 음식 얘기 같은 거 보니까.(좌중 웃음) 청소년기라는 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멀어지고 낯설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지점들을 여행을 통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게 좋았어요. 기존에 모녀 관계가 많이 다뤄졌었나요? 주인공이 남자아이거나 친구와의 갈등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요.
오세란 많지는 않았고 종종 나왔지요.
박상률 예전에는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터부가 많았어요. 부모가 이혼하면 안 되고, 모녀 관계 고부 관계도 잘 안 다뤘고. 지금은 그게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신기루』의 경우는 딸보다 엄마들이 읽어 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엄마도 한때는 딸이었던 적이 있었잖아요. 이금이 작가는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거의 안 쓰는 것 같아요. 쓸 수 있는 것만 쓰지, 쓰고 싶은 걸 쓰는 사람은 아니란 인상을 받았어요.
오세란 그래서 잘 쓰시지요. 저는 이 작품의 엄마하고 비슷한 또래고, 그 부모의 입장에서 읽게 되었는데요. 동화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듯이 청소년 소설도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보면 엄마가 읽어 좋은 작품이라는 건 맞아요. 얼마 전에 제 아이가 러시아 여행을 갔다가 마트료시카를 사 왔는데, 꼭 그런 느낌이었어요. 내 안에 나보다 작고 어린 존재가 있는. 또 모녀 관계 말씀을 하셨으니까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도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창비 공모전에서 나온 작품인데. 당시에는 창비가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이런 쪽으로 세게 가다가 이 작품은 반대로 많이 잔잔한 거예요. 독자들이 큰 걸 기대하는 상황에서 다시 정서의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리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었는데요.
박상률 조부모 세대든 부모 세대든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은 엄마가 암 선고를 받은 상황에서 아이들의 심리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되고요. 랭보의 시에서 따왔다고는 하는데, 제목을 잘 지은 것 같아요.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라도 아파서 죽는다고 하면 두렵지요. 모녀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어요. 소설에서 자극적이고 큰 서사만 보는 게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것, 등장인물의 심리나 사건의 묘사 같은 걸 보는 것도 재미잖아요.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죽는다는 건 뻔한데 그 안에 있는 것을 읽는 느낌.
유영종 같은 생각이고요.(좌중 웃음) 여기에 더하자면 『신기루』도 그렇고 이 작품도 문학적으로 잘 짜였어요. 상징도 그렇고요. 『신기루』도 신기루라는 상징, 사막의 상징 같은 게 그렇고, 『두려움과 인사하는 법』은 제목부터가 만났을 때 하는 인사인가 떠나보낼 때 하는 인사인가 하며 생각해 볼 만한 여지를 주는 것 같고요. 어머니와의 이별이 가장 큰 줄기지만, 시리우스와 이별하는 것도 이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과정이 잘 짜여 있으면서 전반적으로 과장되어 있지 않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게 참 좋았어요.
오세란 너무 좋은 말씀들만 하셔서(웃음) 아무튼 기본적으로 추린 작품 목록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보니까요. 저는 이 작품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아무튼 담담하게 끝까지 감정 선을 놓지 않고 죽음까지 갔다는 점이 좋았고요. 한편으로는 이럴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박상률 우리 같은 어른의 자리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요즘 애들은 지들 말마따나 아주 쿨해요, 쿨. 어른이 이해해 줘야 하는 거지요.
오세란 모녀 관계에 대한 작품 두 개를 이야기 했으니까, 부자 관계, 『맨홀』이라든가 『개 같은 날은 없다』에 대해서 말해 보지요. 저는 『맨홀』도 제목을 참 잘 지었다 싶더라고요. 청소년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의 하나는 이런 문학적 상징에 대한 나름의 깊은 맛을 볼 수가 있다는 거거든요. 『맨홀』이라는 제목과 주인공의 상황이 잘 맞닥뜨리면서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뒤로 가면서 힘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고, 이건 부자 관계인데 이 맨홀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박상률 이 작가가 그 전에 『합체』를 썼지요. 자기 이름도 잘 지었더라구요. 물론 자신이 지은 건 아니겠지만요. 박지리. 필명이 아니라 본명이더라고요. 가정에서 가장 힘을 갖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대개 아버지이죠. 이옥수의 『개 같은 날은 없다』를 보면 거기서도 아버지가 나옵니다. 형이랑 아버지가 나오는데. 체홉이 “소설 앞부분에 못이 나오면 거기에 목이라도 매달아야 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게 상징성이잖아요. 기본적으로 맨홀, 구멍, 이런 단어들에 상징성이 있어요. 시는 기본적으로 상징을 중요시하지만, 동화나 소설에선 서사를 중요시하지요. 부자간의 관계를 두고 봤을 때 『맨홀』이나 『개 같은 날은 없다』는 안 좋은 면을 다루는데 소설 속에서는 기본적으로 결핍, 고통을 다루니까 이런 소재를 채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족 간의 폭력을 겪고 주인공이 본의 아니게 살인자가 되고, 이런 것들이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았나. 맨홀에서 느낄 수 있는 구멍에 삶의 부조리함이 들어 있기는 하나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약해지는 이유는 작가 본인이 오래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해결을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20대거든요. 50대에 썼다면 또 달랐을 것 같아요.
유영종 저는 『맨홀』이라는 소설이 부자 관계를 다룬다고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인공에게 이름을 주지 않기도 했고요. 모든 사람이 다 자기만의 맨홀에 사는 것 같다고도 하고요. 아빠의 폭력 때문에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 폭력적인 것들이 상징적으로 실존적 불안을 뜻하는 게 아닌가, 그러다 보니 살인마저도 까뮈의 『이방인』에서처럼 주인공이 느끼는 내적 불안감을 표현하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소재가 아빠의 폭력이긴 하지만 부자 관계가 주요하게 이야기된 것 같진 않고요. 부모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한 면들을 보았을 때 청소년들이 느끼는 환멸을 드러내고, 이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게 끝에 가서도 쉽게 해결이 되지 않아요. 그런 점도 다른 작품들과 좀 달라서 좋았어요.
박상률 작가가 끝을 맺으려 할 때 강박이 오는데 어떨 땐 오히려 열린 결말로 그냥 두는 게 나을 때도 많아요. 제일 나쁜 영화가 관객을 무시하고 영화 화면에서 모든 걸 다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감독이 있는데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독자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서 자기 수준에 맞춰 느끼는 거지요. 부자 관계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존재의 부조리함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고. 자기가 느끼는 만큼 느끼면 되는 거 아닐까요.
오세란 이 작품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죄가 면피되는 것과 같이, 부조리한 세상을 보여 주는 거죠. 저는 처음에 좀 오독했던 게 이걸 가정폭력 이야기로 따라가다 보니까 뒤의 우발적인 살인하고는 연결되지 않는 거예요. 가정 폭력에 무게를 둔 작품으로 보면 뒷이야기가 너무 황당해지는 거예요. 지적하신 맥락으로 읽으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야 이 아이가 맨홀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주제가 와 닿고요. 다른 이야기인데, 저는 사실 『개 같은 날은 없다』의 결말은 불만스러웠거든요. 강아지가 살아오는 장면에서 맥이 빠졌어요. 좀 꿋꿋이 나갔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아무튼 여러 작품 중에서는 상당히 흥미 있는 작품이라고 봤거든요. 아버지하고 나중에 관계가 회복되는 것 같은 게 앞에 비해서 뒤가 너무 해피 엔딩? 착한 결말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박상률 청소년 소설을 쓰다 보면 좋게 끝나야 독자에게 안심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있어요. 이걸 성장으로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러다 보면 생각할 거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은 쉽게 하지만 막상 쓰다 보면 작가 자신도 걱정되지요.(웃음) 좋게 해 줘야 할 것 같고. 희망을 줘야 할 것 같고. 제가 십 수 년 전에 『밥이 끓는 시간』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그 주인공이 엄청 고생해요. 어느 선생님이 이 소설을 읽다 짜증이 나서 집어던졌다 하더라고요. 이 작가가 얼마나 독한 놈인지 궁금했다면서요. 그런데 고생 안 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그렇게 되면 소설이 안 되니까, 작가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의 논리로 끌고 가야지요.
유영종 이 작품은 가정 폭력에 대해서 분명히 다루는 것 같고, 화자를 교체시켜서 쓰는 방식 같은 건 좋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강아지가 돌아오는 것도 그렇고, 그 중간에 아버지나 형이 변화하는 게 너무 급작스럽다고 생각되었어요. 몇 년 간의 폭력을 너무 가볍게 끝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뒷부분으로 가면서 너무 쉽게 결론지으려 하지 않았나 싶어요.
박상률 미라 씨라는 인물이 등장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요? 꼭 무슨 해결사 같던데.
오세란 제가 자주 가는 인터넷 주부 사이트에 익명 게시판이 있는데요. 가정 폭력같이 남들에게 말 못 할 얘기들이 올라오는데 폭력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요. 댓글 대부분이 폭력을 행사하는 가족에 대해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빨리 정신 병원에 데려가라. 이런 걸 보면서 이런 상황에 있는 아이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또 다른 실망으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고요. 강한 절망을 보여 줌으로써 문학이 독자에게 전달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어서 조금 아쉽다고 할까요. 그랬어요.
유영종 결말이 딱 문 닫듯이 너무 잘해 버렸지요. 마치 앞의 무거운 문제들이 결국 별 것 아니었던 것처럼.
오세란 독자가 참 변덕스러운 게 처음에 개가 죽었을 때는 죽어서 슬퍼하다가 결말에 살아 돌아오니까 돌아왔다고 실망하고.(좌중 웃음)
2.
오세란 소재도 다양해지고 장르도 다양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예를 들면 구병모 작가의 책이라든가. 판타지는 아니지만 『시간을 파는 상점』이나 『검은 개들의 왕』 같은 것도 우리가 익히 보던 문법은 아니어서 얘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얘기를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자음과 모음의 『제2우주』라든가, 『도둑의 탄생』에도 주목했거든요. 한편으론 아쉽기도 하고요. 이런 장르적인 작품들을 좀 봤으면 좋겠는데요. 일단 구병모 작가의 『피그말리온 아이들』하고 『방주로 오세요』를 묶어서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유영종 구병모 작가는 공부도 많이 하셨고 현대 서구의 문학 사조나 경향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현실 속 청소년 문제도 굉장히 잘 풀어내시는데, 거의 1 대 1 대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알레고리컬한 경향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방주로 오세요』가 특히 그런 식으로 진행된 것 같아요.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방주로 오세요』 보다는 마음에 들었어요. 작품에서 다룬 문제가 결말에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괜찮았어요. 삶을 너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로 표현해 놓으면 현실성이 떨어지고 독자들도 위안을 받지 못할 것 같아요.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며 추리 소설 요소까지 가미되어 재미도 있었어요. 하나 걸리는 건 문장들이 굉장히…… 배운 사람의 문장이랄까요?(웃음)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고, 꼭 나쁘다고도 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취향과는 맞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딸이 중2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더라고요. 자신의 색이 있는 작가라 구병모 작가 작품에 늘 관심이 있어요.
박상률 현학적인 문체를 얘기하셨는데, 문득 떠오른 게 구어보다는 문어를 즐겨 쓰지 않나 싶고 자기 색깔이 있다는 건 큰 장점이지요. 『위저드 베이커리』는 독자가 예측할 수 없어서 좋았는데, 『방주로 오세요』는 독자가 예측을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알레고리 틀에 맞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 작가의 상상력 같은 건 높이 살 만하지요. 저는 판타지든 뭐든 다 좋은데, 판타지가 현실의 뒷모습이고 그림자잖아요. 이걸 잘 살려서 결국 현실 문제로 보여 줘야 하잖아요. 우리가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이야기하는데, 이게 사실 동화에서는 기본적인 것이거든요. 일반 소설로 쓰면 대단하게 여겨지고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선 뻔한 걸로 여겨져야 하나 싶었는데……. 이런 판타지가 붙는 리얼리즘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만, 좀 더 구어체를 썼으면 좋겠다. 자칫 현학적이고 독자보다는 작가를 위한 글로 보일 수 있거든요.
오세란 SF 장르가 유독 알레고리화하기가 좋아요. 영화를 봐도 그런 점이 두드러지고. 저는 『방주로 오세요』를 더 재미있게 봤거든요.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읽기가 어려워요. 가독력이 떨어지죠. 성인인 기자의 입장이고, 문어체로 서술되어서요. 정말로 현실의 학교,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점을 그냥 보여 준 것이기 때문에 덜 궁금한 측면이 생기는 거죠. 아무튼 청소년 소설 작가로서 자기만의 색깔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작가란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어서 혹시 『도둑의 탄생』이나 『시간을 파는 상점』까지 읽으셨으면 이 얘기까지 하고 쉬었으면 하거든요. 『시간을 파는 상점』은 제목 때문에 실망했어요.(웃음) 판타지일 줄 알았는데 시간을 판다지라기보다는 심부름센터랄까 인터넷 카페를 경영하는 문제 해결사이지요. 문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긴 하는데 시간에 대한 문장과 이야기가 전혀 같이 융합되지 못하지 않았나 싶긴 해요.
박상률 시간 자체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지요. 이게 현실의 사건과 잘 맞물려야 하는데 작가가 생각한 시간에 대한 내용이 설명적으로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제목도 그렇고. 그런 부분이 좀 아쉽지요.
유영종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모모』 같은 판타지가 아닐까 기대했는데 읽어 보니 다른 이야기였어요. 뭐 이건 독자의 잘못이니까 차치하고,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작가 목소리였던 것 같아요. 철학적인 내용을 이야기에 녹인 건 이 작품보다는 오히려 『맨홀』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철학적 관념을 다루는 건 좋은 시도였지만, 사건들의 진행과 철학적인 내용들이 같이 잘 녹아 있지 않아 좀 겉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작중 인물을 통해 철학적인 설명을 하는 부분과 사건이 전개되는 분분이 나눠 있는 것처럼요.
오세란 『도둑의 탄생』, 이건 판타지잖아요. 저는 이 제목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현실에서는 도둑이 좋지 않은 직업이지만 문학적으로는 굉장히 매력 있잖아요. 무엇을 훔친다는 것인가. 『도둑의 탄생』도 나름 굉장히 노력한 작품임은 틀림없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가 내게 잘 전달이 안 되는지 읽기 힘들었어요.
박상률 도둑이 된 뒤 어디든 전지전능하게 도달할 수 있다는 점도 좀 그렇지 않나 싶었어요. 현실의 어려움을 너무 쉽게 해결해 버리는. 근데 제목이 너무 좋았어요.(웃음)
오세란 저는 『도둑의 탄생』이랑 『시간을 파는 상점』을 엮어 생각하는 까닭이 문장 때문인데요. 뭔가 얘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전달이 안 되는 문장. 철학이 문학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도는 문장의 느낌 때문에 두 작품이 연결되었습니다.
3.
오세란 『원더랜드 대모험』. 이 작품의 장점은 시대적 배경이 20년이 넘는데도 술술 읽힌다는 것이었어요. 근데 이야기가 너무 뻔하죠. 혹시 『명탐정의 아들』 읽으셨어요? 『그냥 컬링』을 쓴 작가의 작품이죠. 그리고 『검은 개들의 왕』 읽으셨으면 얘기를 좀 해 볼까요.
박상률 괴물들 얘기겠거니 싶더라고요. 개 중에서도 검은 개라고 하면 더 위압적이잖아요. 거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불안 의식, 마음속에선 어떤 생각이든 할 수 있는 게 잘 표현되지 않았나 했어요. 소재의 확장으로서도 좋은 작품이고.
유영종 정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좋은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많았던 것 같아요. 소재도 그렇고 귀신이 나오고 돼지가 움직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사건들과 사실적인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섞여 가며 진행되는 것도 그렇고, 여러 상징을 통해 불안 같은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데도 딱 집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좀 산만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있었던 같아요.
오세란 저는 이 작품이, 기대보단 못 했어요. 너무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아닌가 싶은……. 영화적인 것들이 소설로 들어오면서 음…… 곁들여 말하자면 최근 응모작 중에서 영화의 방법론이랄까 영화적 장면이 소설 창작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둘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에요.
『검은 개들의 왕』을 보면서 미국 영화 중에 『스탠 바이 미』라는 성장 영화가 있잖아요. 열세 살 아이들이 시체를 찾아오는. 그 영화가 생각났는데 왜 그것만큼 압축되어서 나에게 전달이 안 되나 봤더니, 등장하는 도구들은 많은데, 이것들이 하나의 무게감으로 오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박상률 결국은 아이들의 모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걸로 억지로 짜 맞춘 느낌이 있었지요. 그걸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닐까라고 이해는 되지만 소설이 독자가 이해해 줘야 좋은 건 아니거든요. 내가 억지로, 아 그렇게 그리려고 했구나 생각해 주면 안 되죠. 그래서 난삽하단 생각이 들어요.
오세란 저는 이게 소년들 이야기라서 더 멀게 느꼈을 수도 있어요.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최근 추세가 청소년 문학은 일단 웃긴 문장들이 중간 중간 나와서 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런데 독자 입장에선 오히려 안 웃길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것도 좀 정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박상률 등장인물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예수도 부처도 못 믿으니까 귀신을 믿겠다든지. 괴기스러운 소재를 엮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세란 개 얘기가 나왔으니 작가를 앞에 두고 『개님전』 얘기를 해 볼까요.
박상률 저는 제 작품을 놓고 하는 좌담은 절대 안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할 수 없이 불려 나왔는데요.(웃음)
유영종 아까 이야기한 보편적인 주제가 잘 들어 있어 좋았어요. 정신없이 쫓겨 살다 보니 바로 당면한 문제들 말고 삶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일들은 잘 못하잖아요. 소재주의라고 하는 문제도 그래서 생기는 거고요. 그런 이야기들에는 시간이 지나 문제가 해결되거나 다른 시기가 되면 읽지 않을 것들도 많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보편적인 가치와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이야기 전체도 무리 없이 잘 읽히면서, 우화 형식이지만 구식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서 가벼운 성장담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맘에 들었어요. 개를 통해 이야기해서 그런지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나기보다 자연스럽게 들렸고요. 또 어떤 면에서는 청소년 소설이 갖고 있던 관습적인 걸 깨지 않았나 했어요. 개를 소재로 한 것이나, 지방색을 다룬 것이나, 또 당면한 문제보다 보편적 주제에 집중하는 것도 다른 청소년 문학 작품들과 좀 달랐어요.
박상률 제가 아는 게 그것뿐이라서요. 그동안 사람 얘기를 많이 썼더니 이제 더 쓸 것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개 얘기를 쓰게 되었는데, 일단 우리 세대가 가고 나면 자연 속의 개 얘기를 쓸 일이 없을 것 같았어요. 제 고향 진도는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하기도 하고요. 그곳의 동네 개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생각하니까, 아 저 개들이 다 이야기를 물고 다니는구나 싶어 이야기가 술술 나오더라고요. 실제로 진돗개는 충성심이 강하잖아요. 주인이 아프면 개가 안 떠나요. 장례 치를 때 진도에선 고인의 옷을 다 태웁니다. 근데 진돗개는 이 옷을 다시 물어다가 주인 방에 가져다 놓고 그래요.
그리고 개가 춤추는 일은 없지만 노래는 따라서 해요. 진돗개 아이큐가 6, 70 정도 된다고 하잖아요.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들만큼 말을 알아듣는 것이지요. 장례 문화 같은 건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이지 처음부터 넣으려고 한 것은 아니에요. 황씨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개가 자연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걸 춤추는 것처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개가 들려줘서 알아서 받아 적었는데. 제가 58년 개띠이기도 하고(좌중 웃음) 그래서 작년부터 개장수를 하고 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사람한테 위로를 못 받다가 오히려 동물한테 받더라고요. 그럼 내가 한 번 개가 되어 보자 하고 개 입장에서 보니까 사람들이 되게 웃기더라고요. 개가 중심인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사람 얘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재의 확장이지만 주제는 결국 사람 얘기인.
오세란 처음에 청소년 문학의 깃발을 드셨는데 또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시네요. 작년에 나온 건 아니지만 저는 『방자 왈왈』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청소년 소설에 이만큼 맞는 소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사투리를 글로 쓰는 게 쉽지 않잖아요. 이걸 직접 말하면서 쓰시나 싶었어요.
박상률 제가 진도에서 태어나 자라다 보니까 아무래도 판소리 대사 같은 것에 익숙하지요. 고향 진도에서 어릴 때 많이 들었던 게 마을 방송이었어요. 그때 틀어 주는 게 기본적으로 춘향가나 진도 아리랑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귀에 인이 박인 거예요. 작가는 자기가 쓸 수 있는 걸 쓰는 게 작가라고 늘 생각하거든요. 내가 죽으면 누가 쓰겠나 싶어서 『방자 왈왈』도 판소리 소설처럼 써 보았지요. 사실 공부 안 한 이몽룡은 시험 떨어져야죠. 출세해서 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방자가 더 매력적이더라고요. 방자 입장이 되어 보니까 이몽룡이란 놈이 아주 형편없는 놈이에요. 거기 나온 사투리는 그냥 저절로 나왔던 것 같아요.
오세란 춘향전엔 워낙에 성적인 내용이 있지만 선생님도 그걸 청소년 소설에서는 아주 과감하게 쓰셨잖아요.
박상률 고등학교 강연 가서 요즘 애들을 보면, 교사가 무슨 얘기하면 애들이 킬킬대요. 자기들이 더 잘 아니까. 어른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예요. 우리 애는 안 그러겠지, 하고서요. 16살인 이몽룡이랑 춘향이는 이미 야동을 찍었어요. 교과서에는 아주 점잖은 장면만 나오지만 실제로는 보통 논 게 아니더라고요. 이걸 방자 입장에서 한번 그려 보고, 얘들이 모른 척해 주던 것을 여기다 쓰자. 그런데 교사들은 이 작품을 책꽂이에 거꾸로 꽂아 둔대요.(웃음) 저는 어른들의 위선이나 이런 걸 꼬집어 주려고, 『개님전』에도 이런 장면을 넣었고, 『방자 왈왈』에도 중간 중간 넣었어요. 실제로 애들이 오히려 부모를 걱정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부모들에게 애한테 되도록 떼를 쓰고 살라고 해요. 그래야 아이들도 부모 걱정하는데, 그냥 보호만 해 주려고 하면 이놈들이 독립도 안 해요. 어른들도 때로는 아이들한테 떼써야 합니다.
오세란 『두리안 나무』를 쓴 박영란 작가의 『라구나 이야기 외전』은 재미있게 보셨나요?
박상률 일단 우리나라가 아니고 필리핀의 라구나 지역에 유학 온 아이들 이야기니까 낯설다는 거엔 호감이 가더라고요. 거기서 외로움과 슬픔을 견디는 아이들 이야기고, 그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정하는 것이, 각 편마다 사건도 뚜렷하고 개성도 있고 스스로 서는 것은 상당한 미덕으로 느껴지는데. 자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라고 할 때 의문을 가질 수 있지 않은가 싶더라고요. 이국적인 것을 그려 놓은 것은 호기심도 끌고 좋은데, 뭐라 딱 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뭔가 아쉽더라고요. 그래도 청소년 입장에서 뭐가 있어야 하진 않겠나.
유영종 외전이란 제목이 풍기는 느낌, 주인공 일곱 인물 모두 바깥쪽에 겉돌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무언가에 밀려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일관성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것들을 모여 어떤 큰 그림을 보여 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외로움, 소외의 그림을 보여 주는 건 알겠는데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보편화시키기에 적절치 않을 것 같아서요. 이국적인 것을 보여 주는 게 장점일 수 있지만, 필리핀과 우리와의 관계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서 앞으로 어떻게 읽힐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과 같은 다문화 관점에서 보기도 좀 그럴 테고……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어요.
오세란 외국이기 때문에 오는 호기심, 낯섦 같은 면이 일반 소설에서는 많잖아요. 청소년 소설에 이런 이야기가 확장되고 있다는 게 좋았지만, 낯설게 하기를 통해서 가지고 올게 있어야 하는데 그냥 낯설음에서 끝나지 않았나. 『플라워 이야기』는 그래도 좀 찡한 면이 있었어요. 참고로 청소년 소설 단편집이 별로 안 나왔는데, 전 일반 소설에서도 단편집을 참 재미있게 읽거든요. 쉽지는 않겠지만 청소년 소설에도 단편집이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상률 그게 쉽지 않아요. 출판사에서는 장편을 더 원합니다. 실제로 현장에 가서 보면 애들이 단편이 빨리 읽히고 소화하기도 좋고, 읽고 바로 토론하기도 좋은데, 자꾸 장편만 내려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단편이 작가 입장에선 더 쓰기 힘든데. 출판사들이 착각하는 것 같아요. 일반 소설에서 장편이 더 상업성이 있다고 하니까.
유영종 헤밍웨이의 『우리 시대에』라는 장편 소설도 단편이 모여 1차 대전 이후 전후 세대의 상실감을 묘사했거든요. 단편집이나 장편 소설이냐 하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단편들이 구성에서 성공하면 장편 소설만큼 재미있고 의미 있을 것 같아요. 『라구나 이야기 외전』도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구조적인 완결성은 괜찮았어요.
박상률 부분이 모였을 때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커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서 좀 아쉽지요.
오세란 최근에 동화 단편집 중에 『내 머리에 햇살 냄새』, 『복수의 여신』이나, 『나의 사촌 세라』 이런 작품을 재밌게 읽었어요. 그 단편집들을 보면 동화지만 소설적 매력을 갖고 있어요. 아이러니한 매력들. 동화 보는 내내 웃는데 결말은 슬프단 말이에요. 아, 동화 작가들이 이제 정말 잘 쓰는구나 싶었는데 청소년 작가들도 좀 이런 단편집들을 좀 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요. 저는 단편은 호흡하면서 천천히 읽게 되거든요.
4.
오세란 이제 배경이 과거인 소설들인데요. 『무옥이』나 『철원 1945』처럼 배경이 한국 전쟁까지 이어져 올라간 작품이 둘이나 있어요.
유영종 『철원 1945』은 해방 직후 시대를 잘 그렸고, 꼭 『태백산맥』처럼 스케일이 큰 것 같아요. 무척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한 권에서 여러 인물을 다루다 보니까 각 인물들의 소개가 사실감 있게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건 아쉬웠어요. 『태백산맥』처럼 몇 권으로 쓰였으면 행동 동기, 과거사 등이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충분히 그려져 주인공들이 좀 더 생동감 있게 보였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요. 주인공들이 좀 더 입체적이었으면 이 사람들의 인간적인 고뇌가 온전히 전달되었을 것 같은데……. 여러 주요 인물의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 얽히는데 그걸 한 권의 책에서 소화하다 보니 좀 급하게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박상률 작가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이야깃거리를 잡았다고 생각돼요. 6.25 전에는 철원이 북한 땅이었단 말이지요. 기존의 계급들이 그대로 있으면서 사회주의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단편이 행동 하나하나를 묘사한다면 장편은 관계에 집중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관계가 많이 생략되고, 또 행동에 대한 묘사도 충분해야 하는데 한 권에 처리하다 보니까 좀 어렵지 않았나. 유 선생님 말씀마따나 그런 게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두세 권은 돼야 하고 공산당 누구도 나오고 하는데 그들의 내면 심리에 대해서 조금 더 묘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오세란 그런데 이게 두세 권 나오면 읽었을까요?(웃음)
박상률 그런 고려도 있었겠지요. 『태백산맥』 같은 것도 1, 2권만 많이 팔리고 9, 10권은 잘 안 팔리잖아요.
오세란 저는 어쨌든 이현 작가가 저력 있다는 건 다시 한 번 느꼈는데요. 『철원 1945』라는 제목의 시공간이 아주 절묘해요. 어떻게 철원이라는 동네를 생각했을까. 또 은혜나 경애나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은혜하면 평양 출신 기독교인으로서 남하할 수밖에 없는 처지, 경애하면 『인간 문제』를 쓴 소설가 강경애가 생각나는 그런 지점들. 자기가 살아 보지 않은 시대에 대해서 어쩜 이렇게 고증하는지. 다만 이현 작가의 아쉬움 중 하나는 역할을 맡긴 다음에 인간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역할을 맡은 인물로만 움직이는 느낌이 강해서. 굉장히 좋은 작품이지만 분량으로랄까, 저는 등장인물 수도 한 권으로 다루기엔 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토지』에 나올 만한 가계도를 가지고 한 권으로 만들어서 좀 산만해진 게 있는 듯합니다. 지금 작가가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인데 그게 한국 전쟁 얘기거든요. 참 짧은 기간에 이런 굵직한 이야기를 연거푸 쓰다니, 저력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요.(웃음)
유영종 판타지부터 사실주의 소설, 역사 소설까지 장르도 넘나들며 글을 쓰는데도 한 시대를 역동적으로 잘 그려 낸 건 대단한 것 같아요.
오세란 『무옥이』는 어떠셨어요. 이건 작품 후기를 보니까 방직 공장 가기 전까지가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라고 하던데요.
박상률 이거야말로 해방 조국하고 6.25 휴전 직전까지 다뤘죠. 냉혹한 현실 속에서 개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를 다룬 것 아닌가 합니다. 근데 인물들이 너무 도식적이지 않은가. 이미 『태백산맥』이 상당히 인물들의 정형화를 이뤘기 때문에 그런 게 있지만, 이걸 넘어서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소재주의의 혐의가 있었고요. 무거운 이야기이면 문체도 좀 무거워야 하는데 너무 날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세란 너무 연대기처럼 읽혀서요. 요즘 아이들이 읽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50년 전 60년 전 이야기가 현재 아이들에 손에 들려서 읽히게 하려면 어떤 점이 중요할까요?
박상률 할머니 세대의 삶인데요. 청소년이랑 나이가 딱 맞거든요. 그 당시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서 성장했는가, 라는 좋은 주제지요. 정말 역사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관심도 없는 요즘 애들한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평론가나 어른들은 맞아, 그때 그랬지, 하며 읽을 수 있겠지만 애들한테는 오히려 이게 판타지일 수 있단 말이에요. 『몽실 언니』는 권정생 선생님 작품이기도 하고, 창비에서 나오기도 했고, 기독교 잡지에 발표가 시작되었고, 또 그게 드라마가 되었고, 다양한 상황 덕분에 많이 읽힌 게 있어요. 사실 작품만으로 보면 전혀 친절하지 않고 되게 읽기 힘들지요. 다시 쓰면 훨씬 재밌게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권정생 선생님보다 두 세대 정도 낮으면 ‘신몽실 언니’를 쓸 수 있을 텐데요.(웃음) 하지만 이젠 그런 상황이 없기 때문에, 『무옥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어떻게 좀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농담 같은 말이지만 호객 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오세란 저는 우리 아이 초등학교 때 밤마다 책을 읽어 줬는데 고학년이니까 『몽실 언니』를 읽어 줬어요. 매일 조금씩 읽어 주는데, 고학년한테 책을 읽어 주니까 『몽실 언니』를 재밌게 들어요. 권정생 선생님 작품들이 읽어 주기 좋은 작품인 거예요. 읽어 주기 좋다는 건 문장이 좋다든 거잖아요. 어떤 작품들은 읽는 데 몰입 안 되는 작품들도 있거든요. 근데 제일 곤란한 건 이 작품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울게 되는 거예요.
박상률 안동 지역, 아니 경상도 사투리가 나왔더라면 읽는 사람이 더 울었을 거예요. 리얼리티 때문에.
오세란 이제 『원더랜드 대모험』 얘기를 하고 싶거든요. 저는 이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쉬운 것도 굉장히 많은 작품이에요. 초반에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친구네 집에서 잡지 『보물섬』을 읽는 거라든가. 이제 새로운 문화가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절, 그런 장면들이 어른들한테는 추억거리가 되는 거죠. 그런데 뒤에서 초반에 등장하던 친구들은 없어져 버려요. 처음에 보물섬에 응모해서 당첨되고 롯데월드에 가는 데 여기서부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고 1등 되는 게 너무 뻔한 거죠. 끝에 가서는 『천국의 아이들』이에요. 엄마 아빠 캐릭터도 너무 아쉽고, 사실 청소년 문학이라기보다는 고학년 동화 정도로 생각되는데요.
유영종 비슷한 사건들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끝에 가서도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점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다른 것 같아요. 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동화이면서 환상적인 이야기이여서 사실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원더랜드 대모험』은 우리 과거의 특정 시대, 지역, 장소 같은 사실적인 요소가 아주 강한 배경을 이루는데 거기에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는, 약간은 비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건들이 큰 역할을 해서 서로 좀 잘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았어요. 롯데월드로 대변되는 자본주의나 전두환으로 대변되는 독재 시대에 대한 비판, 노동과 가난의 문제를 다룬다면 그 이야기를 좀 더 깊게 하든가, 아니면 약간 배경을 애매하게 해서 보편적인 이야기처럼 보였으면 좋겠는데 너무 한 시대나 장소를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좀 거슬렸어요.
오세란 독자에게 신나는 상상력을 주지는 못했다는 거지요. 『우주 비행』은 어떻게 읽으셨어요? 탈북자 얘기가 이렇게 나온 건 없지 않나요?
박상률 탈북 학생들이 직접 쓴 건 있었지요. 그거 보면 정말 우리 사회가 몹쓸 사회더라고요. 얘들이 목숨 걸고 국경선을 넘어왔는데 남한이 절대 그렇게 너그러운 사회가 아니지요. 남한 작가가 쓴 탈북 소년 얘기로 거의 첫 시도가 아닌가 합니다. 작가가 취재했다기보다는 어느 단체에서 활동했나 봐요.
오세란 저는 읽으면서 취재를 잘했구나, 정말 가까이에서 봤나 보다 싶었어요. 아동 문학 작가나 청소년 문학 작가군 안에서 단체 활동을 하시다가 그 얘기를 소재로 작품을 쓰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 작품을 종종 보면 서사가 좀 약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청소년 소설이 최근 작품에서 밴드나 춤 동아리 얘기가 한때 너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 소재가 섞이면서 조금 재미가 없어졌었어요. 복지사도 너무 어디서 본 듯한 사람. 좋은 소재로 청소년 소설을 만들지 않았나 싶었어요.
박상률 요즘 응모한 것들이 다 그런 것 같아, 참 뽑기가 힘들어요.
유영종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번에 판타지를 좀 많이 읽어 봤으면 싶어서 제목을 보고 골랐는데 읽기 시작해 보니 탈북 이야기더라고요. 19살이지만 17살로 살아간다든가, 우리 사회에 아직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아직 많은 것이 유동적인 상태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 지대에 있는 청소년들의 상황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런 점에선 탈북자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는 청소년들의 일반적인 이야기기도 한 것 같고. 오 선생님 말씀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도 많이 본 인물 같고, 아이도 북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다른 소설에서도 보아 왔던, 춤추고 싶어 하고 평범하게 꿈을 추구하는 주인공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특별히 좋았다기보다는 그냥 무난한 이야기로 읽혔어요.
박상률 상큼하다 싶진 않고 먹을 만하다는 데서 그쳤다는 게 좀 아쉬웠던 점이고요. 제가 그나마 점수를 줬던 것은 그 소년, 승규라는 아이의 내면 갈등 묘사에 점수를 줬던 것 같아요.
오세란 또 언급하지 못한 작품 중에서 이야기해 보시지요.
박상률 『제2 우주』는 우주가 여자애 이름이더라고요. 죽은 엄마가 살아 있는 세계와 지금 세계와 평행 이론으로 왔다 갔다 하지요. 보니까 엄마는 과학자이고 아빠는 SF 작가예요. 엄마의 유품을 통해 평행 이론이 나오는데, 저는 이 작품에서 이런 건 처음 접했어요. 그런데 여주인공 이름이 우주고 내용 속에서 우주로 넘어가고 하는 게 작위적이지 않나 해서 맥이 좀 빠졌어요. 우리 세대로서는 공감이 좀 어려운 게 있어요. 뭐 나는 쓸 수 없는 얘기지만.(웃음) 그러나 일단 읽어 가는 박진감 같은 힘은 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오세란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게 정체성과 관련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다양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청소년 소설에 아주 적합한 형식이고 좋은 상징 같거든요. 그런데 『제2우주』는 이 아이가 평행의 세계를 오가면서 서사적인 것과 별개로 과학적으로도 이 평행 이론이 맞아떨어져야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작위적이게 된 것 같아요. 조금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박상률 『그놈』은, 어른들은 아이를 ADHD라고 하지만, 사실 학교가 오히려 병을 키워 주는 구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어떻게 보면 고발 소설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 하나가 생기면 감옥 하나가 줄어들더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학교 하나가 생기면 감옥 하나도 같이 생기더라. 근데 우리나라는 학교가 곧 감옥이더라.(웃음) 사실 자연 속에서 살면 괜찮을 텐데 학교를 다니다 보니 왕따도 폭행도 생기지 않나 싶어요. 어른 입장이 아니라 주인공 입장에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 언급하는 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이 아이를 몬스터라고 하지만 아이 눈에는 어른들이 몬스터인 것이죠.
오세란 요즘은 공모전이 대세잖아요.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이기도 하고 출판사 입장으로는 작가를 발굴할 수 있기도 하고요. 오늘 작품 중에서도 공모전 심사하시면서 본 작품도 있으시잖아요.
박상률 맞아요. 제가 심사해서 A 출판사에서 떨어진 책이 B 출판사에서 당선작으로 나와서 잘 팔리면 내가 심사를 잘못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오세란 저도 그런 작품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바뀌었나 더 유심히 보게 되더라고요. 반갑기도 하고 그래요.
개별 작품 얘기는 거의 다 한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언급하시고 싶은 작품 없으신가요. 또 전반적인 경향이나 흐름에 대한 바람이라든가.
박상률 일단 감개무량하다고나 할까요. 전에는 청소년 작품을 추천한다고 해도 기껏 일반 소설에서 청소년이 읽을 만한 것을 꼽는 정도였는데, 이제 청소년 소설만으로도 이렇게 많아졌다는 것이. 어떤 시인이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말했어요. 처음에 1318 문고 만들어 시작했을 때 일반 소설가들이 쓰기로 계약해 놓고도 아무도 못 써요. 그래서 제가 쓰기 시작한 건데, 한 15년 지난 지금은 집에서 그냥 뽑아 봐도 작년에만 한 20권이 있더라고요. 이제는 너무 많아서 뭘 읽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만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는데 이게 10년 뒤까지 견딜 수 있을까?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보편성에 대한 성취가 좀 아쉽고요. 알레고리와 판타지의 틀에 맞추는 것도 그렇습니다. 작가들이 너무 똑똑한 것 같아요. 기법은 굉장히 잘 쓰는 것 같은데, 자기만의 문장이랄까 하는 게 부족한 것 같아요. ‘누구 판타지 소설이랑 비슷하네.’ 같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하여간 소재는 굉장히 넓어졌고, 작가군도 굉장히 넓어졌다는 게 좋습니다. 일단 물꼬가 터졌고 이걸 잘 잡아 가는 후배 작가들이 많다는 점이 좋다 싶어요.
오세란 유영종 선생님은 아까 장르가 넓어진 것에 대해 좋게 말씀하셨는데요.
유영종 역사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돼요. 다양한 소재와 주제로 많은 작품이 나오고 있는데도 아직도 더 넓힐 것들이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영미 청소년들은 로봇, 뱀파이어, 좀비 이야기들을 참 좋아해요. 이런 것들이 바로 청소년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대변해 주거든요. 살아 있지만 죽은 좀비, 인간의 감정을 가졌지만 로봇같이 살아가는 것 같고, 사랑하고 싶은데 금지되어 다가갈 수 없는 뱀파이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런 것들처럼 요즘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새로운 소재들을 찾아가다 보면 청소년 소설의 외연이 더 넓어질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보편성과 재미를 같이 가져갈 수 있어야 하는 거겠지요. 좋은 작품은 이 시대의 문제를 다루지만 십 년 이십 년 후의 독자들이 보아도 지금과 똑같이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세란 약간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가 작년에 공모전 읽으면서 느낀 게 학교 폭력이 굉장히 많은 소재가 되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이슈화되기도 했고. 그런데 이걸 잘 쓴 게 굉장히 드물어요. 이 소재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박상률 문제 상황을 형상화해 주는 것 정도가 작가 역할 같아요. 요즘은 대학 입시랑 맞물려서 제도적인 것 때문에 폭력이 더 도드라지지 않은가 싶은데,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니까요. 주변에 친구 자식들 봐도 반에서 4, 5등 하면 벌써 절망감을 느낀단 말이지요. 이걸로 어느 대학을 가냐고 하고 있어요. 가긴 어딜 가요, 안 가도 되지. 그런데 이 아이들을 어른들은 또 원격 조정한단 말이에요. 한참 자라는 아이들은 자라면서 속이 근질근질할 텐데 이게 어디로 가겠어요. 가장 가까운 학교 친구, 가족에게로 가서 폭력으로 나타나겠지요. 요즘 애들이 왜 죽겠다는 건지 이유를 따져 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정말 애들이 재밌게 보고도 감동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려 줬으면 좋겠어요.
오세란 제가 이런 질문을 여쭙는 이유 중 하나는, 청소년 소설을 통해서 이게 승화가 되어야 하는데 소설은 잠깐의 위안일 뿐 너무 현실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이 안고 나가야 하는데요.
유영종 학교, 학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소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그렇다고 한다면 청소년 소설에서 이를 다룰 때의 목표라는 건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잖아요. 감동을 통한 변화 그런 걸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은데……. 교육 현장 문제는 정말 해결책이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 문제를 계속 답습할 수도 없고.
박상률 가해자도 피해자도 공감 가능하게 작가가 잘 써 줘야 할 것 같아요. 공감이 시작점이니까. 독자가 거기서 스스로 알게 모르게 변화될 것인데 그렇게 쓰기가 쉽지 않지요. 작가는 틀림없이 누구 편을 들게 됩니다. 가해자는 죽일 놈 되고 피해자만 불쌍하고. 하지만 다 같이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가해자도 껴안고 가야 하는 거지요. 인생 자체가 사실 해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설도 질문을 던져 주자는 거예요.
유영종 잘못된 사회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보니 소설에서 잘 다루기가 참 힘든 것 같아요. 눈에 확 띄는 현상이긴 하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여서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 너무 안이하게 보이잖아요.
오세란 현실이 너무 암울하고 출구가 없다 보니까 소설도 이를 보여 줄 때 작가나 독자나 무거워지는데요.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가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자.’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자발적인 게토를 만들고 거기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아 보자 하셨는데, 한두 명씩 그런 사람들이 그려졌으면 좋겠어요. 수능이나 기존 제도를 넘어선 대안들을 조명해 주고, 그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도록 모델을 보여 주는 게 되지 않을까요. 모르겠어요. 이게 바람인지.(웃음)
박상률 학교를 끊어 버리면 간단한데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 우리 주변에 보면 대학에 안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꿈도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애들은 죽자 살자 하고 학교에 다녀야겠지요. 하지만 이미 중고등학교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된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매일 필요가 없어요. 그걸 발견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 같습니다.
오세란 그냥 소재주의가 아니고 정말 학교를 떠난 아이들,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하나의 샛길을 만드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년 작품들을 쭉 보면서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가 나오던 때에 비해 도리어 여러 면에서 걱정이 많이 들었어요. 작품의 완성도 등에서요.
박상률 동화도 한때 얼마나 많았어요? 이제 청소년 소설도 거품이 좀 빠지고, 정말 쓸 사람들만 남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세란 제 경험상, 비평은 소설에 비하면 짧은 글이지만, 아무튼 글을 묻어 놨다가 다시 봐야 빈 구성이 보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소설은 그럴 여유가 없고, 출판사도 그럴 시간을 주지 못하지 않나. 사실 출판사들에서 청소년 문학 시리즈를 만들어 내면서 양적으로 만들어 내서 생긴 현상인데, 이런 건 작가들도 되돌아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박상률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생계라는 측면에서 허덕이지요. 그러다 보니 일단 찾을 때 생각 없이 막 써서 주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기 살을 깎아먹고.
오세란 그래서 저희가 평가한 여러 작품이 뭔가 한두 가지씩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작가의 역량 문제도 있겠지만 현 시대 출판 흐름의 문제이지 않은가 싶어서 저희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아닌 가 싶어요.
박상률 폭력이라는 주제에 너무 쓸려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 장르화가 되는 거지요. 청소년 소설도 나중에 장르화되지 않을까 싶은데, 뻔하지 않게 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 같아요. 폭력 얘기를 하더라도 기존의 소설과는 다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청소년 소설은 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가도 문제인 것 같고요.
유영종 장르 소설은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맹점이지요. 비슷한 주제, 소재를 다루며 비슷한 구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해지기도 하고요.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서 문학성을 좀 더 담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세란 저는 두 가지인데, 한 가지는 소재가 다양화되고 장르가 다양화된 건 좋은데, 만족도가 높지는 않은 거예요. 동화에서도 추리물 처음 나왔을 때는 추리를 건드렸네 정도였는데 이제는 『명탐견 오드리』 같은 작품 보면 재미있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나 보다 싶은데, 그래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장르를 건드리고 마는가 보다 싶어요. 언급하진 않았지만 예를 들어 『명탐정의 아들』 같은 작품은 범인이 뻔해요. 범인이 뻔한 추리 소설은 추리 소설이 아니잖아요. 또 나는 지금 추리 소설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SF면 SF, 판타지면 판타지 제대로 장르를 다뤘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작가들이 다른 히트 작품을 너무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자들이나 심사 위원들이나 비슷한 걸 선호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니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려 노력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청소년 소설이 그렇게 되어야지만 작가들마다 색깔이 뚜렷해지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될 수밖에 되지 않을까.
박상률 아마 그렇게 되겠지요. 과도기에 있으면서, 혼란기에 있을 수도 있겠죠. 안 읽어도 되는 작품을 너무 읽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오세란 한 가지 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책은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요즘 아이들이 영화나 영상을 더 선호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채워 주는 몫을 문학이 좀 해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애들이 <학교 2013> 같은 걸 재밌게 봤는데, <바람>이라는 영화도 재밌게 봤어요. <학교 2013>는 요즘 이야기지만 <바람>은 예전 이야기예요. 옛날 학생들 다룬 건데도 요즘 아이들이 아주 재미있게 봐요. 거기에서도 보편성을 얻은 거죠. 영상으로 그런 것을 열심히 보고 있다면 문학에서도 뭔가 다른 것을 얻을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박상률 문학이 영상과 경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문학의 질이 높아지면 되는 것이지요.
공부라는 것이 사실은 어려운 것을 자기 걸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소설의 묘미는 묘사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느리게 읽히는 것이 좋은 문학이기도 하겠지요.
오세란 문학적으로 성찰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작품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현재는 전문화되지 않은 거죠.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요. 문장들에 대해서 줄을 그어 가면서 읽을 만한 청소년 소설이 나오면 그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고요. 다 같아지려고 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걸 흩어져서 했으면 좋겠어요.
유영종 제 주위 사람들은 책과 영화가 있으면 대체로 책을 좋아해요. 『허클베리 핀의 모험』도 영화화가 열 몇 번 되었는데 잘되었다는 게 없어요. 영화보다 문학이 보여 줄 수 있는 감동이나 영역이 더 큰 것 같고 그런 부분을 찾아야겠지요. 로이스 로리나 쉐런 크리치 같은 작가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작품을 쓰기 때문에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생각돼요. 그러니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색깔을 찾아 나가는 것이 작가들에게 정말 중요한 작업이겠지요.
오세란 요즘 흥미 있는 소재나, 동아리, 폭력 얘기 등 외부의 물결과 상관없이 자기 걸로 쓰면 지금 현재는 주목을 덜 받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더 자기 스타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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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1990년 『한길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계간 『청소년문학』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나를 위한 연구』, 『방자 왈왈』, 『불량청춘 목록』, 『개님전』,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들이 있다.
오세란
아동 청소년 문학 평론가, 충남대에서 「한국 청소년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사를 소재로 한 어린이 문학, 새롭게 읽기」로 제4회 <창비어린이> 신인 평론상을 받았다. 현재 계간 <창비어린이> 편집위원이며 충남대, 공주교대, 목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유영종
퍼듀 대학교에서 마크 트웨인을 전공하고 인하대학교 영문과에서 어린이, 청소년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매기의 야구 노트』, 『불새처럼 일어나』, 『크라신스키 광장의 고양이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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