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21일(수)
무려 12 시간을 잤다. 옆방에서 싸우고 우는 소리가 들려 깨기도 했고, 침대가 좁아서 떨어질까봐 신경을 쓰다 보니 숙면을 이루지는 못했다. 세 사람이지만 침대 두 개를 사용하니 찬이는 혼자서 쓰고, 덩치 큰 나와 세오녀가 한 침대를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따른다. 실컷 잤는데도 편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어제 추위에 떨어서 감기에 걸릴 징조인 모양이다. 밖이 훤하다. 6시 30분이다. 창 밖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찬 기운이 몰려든다. 안개가 희뿌옇다.

TV 채널을 한 바퀴 돌려보았다. 참 기막힌 것은 70여개 채널이 모두 중국어 방송이라는 것이다. 영어로 나오는 것은 단 하나, CCTV-9번만 영어 방송이고 나머지는 모두 중국 방송이다.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 방송 하나쯤은 틀어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타이레놀 두 알을 먹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아침 산책은커녕 관광하고픈 생각도 없다. 찬이는 배가 고프다고 졸라댄다. 마지못해 체크아웃을 하고 나선다. 웬만하면 하루 더 있으려고 했지만, 침대가 너무 좁고 청소 상태가 불결하여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 복도와 바닥에 먼지며 머리카락이 수두룩하다. <100배 즐기기> 뒤에 붙어 있는 10% 할인권에 있는 ‘상하이백패커’에 전화를 해보기로 한다.
일단 여관 앞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는다.
별로 맛이 없고 간장은 짜고 찬이가 시킨 죽은 너무 달아서 찬이가 먹지 않으려고 한다.
공중전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중국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공중전화 가게가 대개 문이 닫혀 있다. 그 남자는 결국 자기 휴대폰을 꺼내서 우리 대신 걸어준다. 하지만 <상하이백패커>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받지 않는다. 노트북에 저장해 놓은 정보에서 상하이게스트하우스 예원점은 전화번호가 없다.
일단 상하이 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어제보다 날씨는 좋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다. 햇볕이 쬐는 곳에서는 무척 따뜻하다. 802번 버스를 탔다. 요금은 2 위안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 호텔 가격 100 위안이라는 붉은 플래카드 글씨가 보인다. <원동불야성대주점(Fareast Ever Bright City Hotel)>로 가보자. 길에서 남자가 280 위안에 방을 준다고 한다. 그 남자를 따라 호텔에 들어섰다. 560 위안 방을 50% 할인해서 280 위안에 준다. 방을 구경하였다.

19층 방(1926)인데 깨끗하고 전망도 괜찮은 편이라 묵기로 했다. 다시 30 위안을 깎아서 250 위안에 묵는다. 어제 묵었던 방에 비하면 훨씬 깨끗하고 침대도 넓다.

시설도 별이 세 개인 삼성급(三星級)이라 부대시설도 많다. 특히 한국 식당까지 있다. 북향으로 난 창을 통해 상하이 역과 버스터미널이 잘 내려다보인다. 텔레비전엔 역시 중국방송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약을 다시 먹고 객실에서 좀더 쉬기로 하고 세오녀와 찬이는 3층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따뜻한 온돌방이 그립다. 뜨거운 동남아시아가 생각이 난다.
저녁이 되니 곳곳에서 폭죽놀이 소리가 들린다. 19층이라 불꽃이 잘 보인다. 나는 식욕도 없고 그냥 내내 침대에 누워 있고 싶었다. 하지만 세오녀와 찬이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일단 몸을 추슬러 일어나기로 했다. 한복 바지에 여벌 바지를 하나 더 입고, 비옷을 걸치니 한결 따뜻하다. 빨간 비옷을 입은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지만 이곳은 중국이기에 누구 하나 신경 쓸 일이 없다. 이래서 해외여행은 자유로운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김에 상하이 역에서 항주(항저우)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상하이 남역에서 출발하지만 상하이 역에서 끊을 수 있다. 하긴 전산화된 발매 제도에서는 발매역은 아무 관계가 없다. 10:05 에 출발하는 기차는 매진이어서 오후 13:35에 출발하는 기차표를 샀다. 표를 끊을 땐 어설픈 중국어보다 종이에 적어서 주는 게 가장 빠르다. 처음에 역무원은 ‘(完)’ 이라고 써준다. 아마 다 팔렸다는 뜻이리라. 연좌(軟座) 어른은 44 위안인데 어린이는 22.05 위안이다. 왜 절반 가격에 0.5 위안이 더 붙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원래는 와이탄이나 예원(위위안)으로 가려고 나섰지만 시간이 어중간하다. 벌써 여덟 시가 넘어서 그곳에 도착하면 실제로 야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다.
찬이가 <금요일에 떠나는 상하이> 책에 나오는 다자마 BBQ 식당에 가자고 한다. 다자마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한다. 요금이 3 위안인데 어린이 할인 제도가 보이지 않는다. 열차가 도착하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서로 자리를 잡겠다고 허둥댄다. 세 정거장을 지나 런민광창(인민광장(人民廣場))역에 내린다. 역시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이 밀고 들어온다. 경제 발전 속도에 비해 민도와 공중도덕은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중국 사람이지만 싱가포르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승하차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인민광장역은 1호선과 2호선 환승역이다. 11번 출구로 나가면 난징시루(남경서로(南京西路))에 서게 된다. 서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상하이 미술관이 보이고 황피베이루를 건너 한 블록 더 걸어가면 청두베이루(成都北路)와 만난다. 고가도로 밑으로 신호등을 건너면 555 상업빌딩(五五五商廈)이 나온다. 그 건물로 들어가면 다자마 바비큐 식당이 있다.

다자마에는 각종 고기 꼬지 뷔페가 1인당 75 위안이다. 그냥 꼬지구이만 먹으면 55 위안이지만, 샐러드나 과일 등을 곁들이지 않고 육류만 먹는 것은 차라리 고문에 가깝다. 어린이 할인은 키가 1.2 미터 이하여야 50% 할인해준다. 자리에 앉아 있으면 종업원들이 계속 갖가지 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운 것을 두세 개씩 떼어내어 준다. 고기를 지독히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을지 몰라도 채식을 좋아하는 이에겐 별로다. 아무리 많이 먹으려고 해도 나중에는 더 이상 먹질 못한다. 작은 게를 구운 것도 나온다. 오늘 저녁엔 호텔 숙박비만큼 많은 식비가 나간다. 지나친 지출이다. 11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했지만, 손님도 적고 해서 10시 30분경에 식당이 파장을 한다. 우리에게 더 먹을 것인지 재차 확인해본다. 중국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둥근 판에 글씨로 적어 놓았다. ‘흔하오’에 손으로 짚어주었다. 같은 건물에 한국 식당과 일본 식당도 있다. 차라리 한식당에 들어갔으면 더 좋았겠다.
식당에서 나와 상하이역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고 살펴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 역으로 갔는데, 역무원이 매표구 문을 닫고 이미 차가 끊어졌다고 한다. 분명히 22:49에 막차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아직 5분 정도 남았는데 들여보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와서 버스를 찾아본다. 저녁이 되면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지도에서 방향을 찾기도 어렵고 간판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세오녀가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상하이 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이곳에서 15분쯤 걸어가야 한단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 기본요금은 11 위안이다. 호텔까지 14 위안 나온다. 영수증까지 받았다. 택시 영수증은 참 좋다. 22:59에 타서 23:09에 내렸다. 거리는 3.4 km. 우리 기사는 별을 세 개나 단 삼성급(三星級) 기사다. 15 위안을 주니 1 위안을 거슬러준다. 택시 영수증 제도는 1999년에 왔을 때도 시행되어 내가 참 부러워했던 바다. 아직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 제도가 도입되고 있지 않다.
호텔로 올라오니 초저녁보다 더 불꽃놀이가 난리법석이다. 꼭 전쟁이 난 것처럼 시끄럽고 온 상하이 시내가 폭죽 잔치다. 밤 12시가 되니 절정에 다다랐다. 폭죽 소리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폭죽을 이렇게 밤중에 터뜨리려면 무척 어렵다. 돈도 돈이거니와 허가를 맡아야 하는 일이 어렵다. 와인이라도 사가지고 왔으면 불꽃놀이를 구경하면서 분위기를 살렸을 텐데. 아쉬운 맘이 들지만, 침대에 앉아 불꽃 구경하는 것으로 달랜다. 호치민에서 만난 마이클이 중국 춘절 때 무척 시끄럽다는 말이 생각난다.
* 여행 기간 : 2007년 2월 20일(화)-2007년 2월 27(화) 7박 8일
* 여행 장소 : 인천-중국(상하이-항저우-쑤저우-상하이)-인천
*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찬이(만 11세) 가족
* 환전 : 1 위안=121원
* 연오랑의 다른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http://cafe.daum.net/meetangkor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ㅎㅎ 중국tv... 채널이 엄청나게 많은 것도 놀라운데... 저를 더 놀라게 했던 건... 중국어 방송이건만, 중국어 자막이 함께 나온다는게 더 신기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