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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도깨비와 춤을
한승원
“유리창에 등을 비비대며 거리를 미끄러져가는 노란 안개에도 확실히 시간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얼굴들을 대하기 위하여 한 얼굴을 꾸미는 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살해와 창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사랑하는 내 친구 도씨와 더불어 정자에 나란히 걸터앉아 하늘과 바다와 땅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젊은 시절부터 머리에 담고 있는 T.S 엘리엇의 시 <J.S 푸르프록의 연가> 한 대목을 암송한다. 나의 사랑하는 도깨비를 나는 도씨라고 부른다.
구름은 한가롭거나 바쁘게 떠돌고, 바다는 수시로 변색하는 하늘을 흉내 내느라고 회색이나 청남색이나 암녹색으로 낯빛을 바꾼다. 아침 햇빛이 쏟아질 때나 만월일 때는 비늘 찬란한 물고기들이 바다 수면 위로 올라와 파닥거린다. 땅의 까막까치와 제비와 바다의 갈매기와 백두루미와 흑두루미와 먹황새와 해오라기들은 늘 창공과 들판과 갯벌에서 훨훨 자유롭다. 나와 도씨에게는 변화무쌍한 하늘과 땅과 바다로 인해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그림자처럼 나를 따르곤 하는 도씨는 나의 철없던 젊은 시절의 나를 극성스럽게 본떠 행동한다. 보라색의 굽 높은 중절모자를 쓰고, 오래 입어서 소매 끝이 닳은 진한 벽돌색의 양복저고리에 검정 바지를 입고 가죽 부드러운 밤색 구두를 신는다. 살찐 통마늘 같은 코에 쌍꺼풀눈매에, 눈썹밭이 넓고 까맣고, 자잘하고 눌눌한 옥니가 드문드문하고 머리칼이 반백인 도씨의 모습은 내 눈에는 보이지만, 나 이외의 어떤 사람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이다. 모습만 투명한 것이 아니고, 목소리도 투명하고 체취도 없어, 나의 아내도 이놈의 존재를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이놈은 길 잘 든 애완동물처럼 나를 따르면서 내 행동을 흉내 내는데, 내가 이놈과 말을 주고받으면 아내는 내 목소리만 듣고서, 혼자 뭔 말을 그렇게 중얼중얼해 쌓느냐고 지청구를 한다.
나의 도씨는 은혜로운 놈이다. 서울 삼각산 밑에서 살다가 오십대 중반에 장흥 안양 율산마을로 이사를 온 것도 이놈이 그렇게 하자고 보챈 때문이다. 이리로 이사를 한 다음에도 이놈의 보챔에 따라, 마을 뒷산의 언덕에 25평짜리 한옥을 짓고, ‘海山土窟’이라는 현판을 달고 작가실로 사용한다. 해산은 내 아호이고 토굴은 허름한 집이라는 뜻인데, 한 스님은 그 현판을 쳐다보자마자 날마다 해산(解産)을 하시는 모양이군요, 하고 선문답 같은 농담을 했다. 200미터 아래쪽에 빨간 벽돌로 지은 양옥에서 아내는 살림을 하고 나는 토굴에서 밤낮으로 이놈과 함께 세상을 즐기다가 세 차례의 밥을 먹기 위해 아내의 살림집을 들락거린다. 물론 이때도 이놈은 동행한다.
토굴의 집들이를 한 첫날밤에 저 혼자만 아는 시공을 휭 다녀온 도씨가 나에게 말했다.
“야, 우리 거래를 하자.”
“무슨 거래?”
나의 물음에 이놈이 말했다.
“파우스트도 말년에 악마하고 거래를 했지 않으냐? 죽은 다음에 영혼을 악마에게 주기로 하고, 젊음을 새로이 받는......너도 파우스트처럼 우리 도깨비나라의 은행에 네 영혼을 담보로 하고, 수리에 어두운 네 머리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대출 받아다가 토굴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섬, 그 너머로 가로지른 고흥반도, 그 위로 떠오르는 달, 해, 가을 풀밭의 들꽃 같은 밤하늘의 별들, 바다와 들에 끼는 안개, 흐르는 구름, 부는 바람, 초혼된 넋처럼 내리는 눈송이들, 물새들, 고기들, 농토를 보듬고 사는 농부들, 바다에 사는 어부들, 검은 댕기 두루미, 해오라기, 먹황새, 도요새, 물떼새, 갈대밭에 둥지를 틀고 사는 개개비, 앞산 뒷산에서 나는 꿩, 밤에 우는 부엉이.....모든 것을 다 사가지고 주인 노릇을 하고 살아라. 세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지 말고 그냥 무료로 내주는 마음 넉넉한 호걸스러운 주인 노릇 말이다.”
그놈의 엉뚱하고 뜬금없는 제안에 나는 얼떨떨해진 채 “그래 좋다.”하고 말했다. 그런데 이놈이 “조건이 있다,”하고 말했다. 무슨 조건이냐니까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에도 한눈팔지 않고, 이 토굴 안에 깊이 너를 가둔 채 이때껏 읽지 못한 책 읽어대기, 앞으로 쓰고 싶은 시, 소설을 쓰는 일에 팍 미쳐버리겠다는 조건이다.”하고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딴청을 부렸다.
내가 흔쾌히 그 조건대로 하겠다고 했으므로, 우리의 흥정은 곧바로 이루어졌고, 이놈이 대출 받아다 준 돈으로 토굴에서 보이는 우주를 다 사버렸고, 나는 일약 그 우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도씨와 더불어 수시로 애용하는 남향의 정자는, 아름드리 소나무 기둥 네 개에 앉아서 놀 수 있는 마루를 놓고 동편 북편 서편에 등받이용의 원목 난간을 걸치고, 너와지붕을 얹은 두 평 남짓한 털털한 것이다. 이놈의 요청에 따라 앞면에 ‘見月亭’이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달을 보는 정자라는 뜻이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선생은 백련사의 혜장 스님과 주고받은 시문과 편지글을 모아 ‘견월첩’이라는 작은 책을 펴냈다고 이놈은 토를 단다. ‘원각경(圓覺經)’에 ‘달을 보라면 달을 볼 일이지 왜 손가락은 보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에서 견월이란 말을 가져온 것이고, 여기서 달은 진리를 뜻한다면서, 정자를 만든 것은 너이지만 그것의 주인은 햇빛과 바람이라고 아는 체를 한다.
토굴에 들어 있을 때 심심하면 음악을 틀어놓고 내 도씨와 더불어 막춤을 춘다. 나는 몸이 뻣뻣하지만 이놈은 내 젊은 시절의 나처럼 유연하다. 나도 이놈도 셀린드 디옹, 사라 부라트만의 육질 싱싱하고 섹시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어떤 때는 베토벤의 ‘운명’이나 슈벨트의 ‘미완성’ 차이콥스끼이의 ‘비창’을 틀어놓고 창틀에 놓인 난초화분들을 상대로 멋들어지게 지휘를 하기도 한다.
이놈하고 함께 사는 것이 심심치 않아 좋기는 하지만, 성가신 점도 많다. 이놈이 나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것이다.
아침 밥 먹은 다음 내가 잔디밭으로 나갈 때면 이놈은 바람이 차갑다고 명주목도리를 하라고 하고, 헌팅캡을 머리에 쓰라고 하고, 잔디 잎에 맺혀 있는 아침 이슬방울에게서 우주적인 만다라를 읽으라 하고,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여 사유하라고 하고, 쑥부쟁이꽃 아기동백꽃 은초롱꽃 앞으로 이끌고 가서 그 꽃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구름들을 쳐다보라 하고, 그 구름에게서 무위(無爲)를 배우고, 그 위에 올라타고 먼 하늘 먼 항구를 떠돌아다니라고 한다. 먼 허공에서 날아온 박새가 공작단풍의 가느다란 가지에 앉아 있다가 걷어차고 날아간 다음 그 가지의 미세한 흔들림에서 우주의 율동을 읽으라고 한다.
토굴에서 자리에 눕거나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심심함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전화질을 하려고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면, 이놈은 대번에 작가라는 사람이 자기 고독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하면서, 특별한 일도 없으면서 친지에게 전화질하는 멍청이 짓을 하지 말라고 지청구하고, 외로우면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시를 쓰라고 말한다.
이놈의 간섭에 따라 얼마 전부터 ‘이별 연습’이라는 연작시를 쓴다. 세상과의 이별하는 연습이다. 이별 연습이라는 것은 여한이 없도록, 세상과 더 진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라고, 늙은 아내하고도 그러한 이별 연습을 하라고 주문한다.
어쩌다 차(茶)생활을 하는 중년의 아낙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토굴을 찾아오면, 나는 그녀를 차탁 앞에 앉히고 차를 우려 대접한다. 그때 이놈은 앞에 앉은 여자의 짧은 치마 밑의 검은 그늘을 보라고 귀엣말을 한다. 저 검은 그늘은 천둥소리와 지령음(地靈音)을 품은 거대한 꽃잎의 시공이다. 그 속에서는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의 운행처럼 출렁거리는 신화와 바람과 파도 같은 유향(乳香)이 있다. 한 종교학자가 인간과 식물은 정반대 성향을 가진 존재라고 했는데, 식물의 꽃은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인간의 꽃은 땅을 향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인들, 모든 남자들이 그리워하는 그 속의 은밀한 늪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랴. 나는 이놈의 현학적인 말을 민망해 하면서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는데, 이놈은 계속해서, 불룩한 유방과 쇄골과 도톰한 입술을 르네 마그리트처럼 초현실적으로 응시하고, 번져오는 몸내에서 싱싱한 기(氣)를 얻으라고 속삭인다.
정자에 앉아 있을 때 가끔 대하는 사람 가운데 마을 입구에 사는 박노인이 있다. 내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 정원과 차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의 밭이 펼쳐져 있으므로 늘 자기 밭을 둘러보러 오곤 하는 그를 볼 수 있다. 190센티미터 가까이 되는 키에 뼈대가 굵지만 어깨와 등이 약간 구부정한 박노인은 젊은 시절 씨름판에서 송아지를 끌어올 정도로 힘이 장사이고 날쌨다.
내 토굴 옆에 있는 그의 밭은 7백 평쯤인데 그것은 두 뙈기로 나뉘어 있다. 아래쪽에 백 평쯤의 밭이 있고, 그 위쪽에 실뱀길이 가로로 그어져 있는데, 그 길 위에 2 미터 높이의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서부터 6백 평쯤의 약간 비탈진 밭이 서북으로 펼쳐져 있다. 그 밭 위쪽의 동편 가장자리에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데, 그는 그 밭을 트랙터와 북 주는 기계와 퇴비 뿌리는 트럭 따위의 농기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6십대 초반의 부지런한 부부에게 해마다 쌀 한 가마니씩을 받기로 하고 내주었다.
박노인의 십 년 연하인 아내는 몇 십 년 전부터 읍내의 터미널 뒷골목에 가게 하나를 얻어 어물가게를 해오고 있었다. 아내가 한 달에 2백만 원 정도를 벌기 때문에 박노인은 힘들게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박노인에게는 십 년 전에 남들에게 오지 않는 행운이 왔다. 마을 앞으로 큰 길이 날 때 땅 백여 평이 들어가고, 집 전체가 헐렸는데, 6억 원의 보상을 받았다. 1억 5천만 원 들여 새 벽돌집을 짓고 나머지 돈을 서울 사는 두 아들이 가지고 가서 술장사를 했는데 크게 성공을 한 것이었다.
김영감은 배롱나무 묘목 생산하는 기술이 있어, 텃밭에서 그것을 만들어 가꾸었다. 삼년 된 묘목들을 두 뙈기의 밭두둑에 3미터 간격으로 줄지어 심었는데 해마다 선홍색의 꽃이 피었다.
두 뙈기의 밭을 경작하는 6십대 초반의 부부는 그의 밭에 옥수수를 심기도 하고, 밤처럼 단 호박을 심기도 하고, 고추를 심기도 했다. 그들 부부는 박노인의 밭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밭을 많이 얻어 농사를 짓기 때문에 밭둑의 잡풀을 제대로 베어주지 못했다. 명아주, 바랑이, 달개비, 실망초, 오손이 덩굴, 도깨비바늘, 도깨비방망이(도꼬마리), 억새, 모시나무 들은 헌걸차서 서로 세력 다툼을 하며 무성하게 자라곤 하는데, 박노인은 그것들을 보기 싫어했다. 그에게는 그 잡풀들을 없애는 묘책이 있었다. 농약 분무기 하나와 제초제를 사다가 놓고, 밭둑의 잡풀들이 푸르러지기가 무섭게 뿌렸다. 제초제 넣은 분무기통을 짊어지고 왼손으로 압축기를 눌러대면서 오른손으로 분무기를 잡고 잡풀의 잎사귀에 뿌리는 것이다.
제초제 세례를 받은 풀들은 뜨거운 물을 끼얹어놓은 듯한 냄새를 풍길 뿐 겉모양이 멀쩡하지만, 다음날에는 잎사귀들을 축 늘어뜨리고, 그 다음날에는 뜨거운 물로 데쳐놓은 듯 거무스레하게 변했다가 열흘쯤 뒤에는 모두 노랗게 변하면서 시들어 죽었다. 제초제는 식물의 신경을 마비시키므로 그렇게 노랗게 죽는다. 때문에 제초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 사람은 살릴 길이 없는 것이다. 몸의 모든 신경들이 천천히 마비되기 때문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다.
제초제 세례를 받지 않은 배롱나무들은 멀쩡했다. 놀랍게도, 박노인은 제초제를 뿌릴 때 코와 입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람이 불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한다.
나는 제초제가 끔찍스러워, 박노인이 분무기통을 짊어지고 밭둑의 풀에 제초제를 뿌리고 있을 때는 숨을 멈추고 재빨리 지나쳐 가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와 동행하는 도씨가 예언했다.
“저 노인 틀림없이 제초제로 인해 몸 어디인가가 상하게 될 것이므로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남한테 세내준 밭둑의 풀을 제초제로 죽이곤 하는 박노인의 심사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남한테 세내준 밭인데 왜 그렇게 밭둑의 풀을 영감님이 손수 죽여 없애주려고 하시오?”하고 물었다. 박노인은 얼굴을 으등카리처럼 일그러뜨리고 대답했다.
“내 밭둑에 잡풀이 자라고 있으면, 그것들이 내 살을 파묵음서 들어오는 것 같어서.....” 그것은 자기 것에 대한 무서운 사랑이고 집착이라고 내 도씨는 말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배롱나무 묘목은 또 왜 그렇게 많이 만들어 가꾸시오? 그것들을 너무 배게 심지 않았소?”하고 물었다. 박노인이 대답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자라면, 나 죽은 다음에 자식들보고 하나씩 팔아먹으라고 그러요.”
제초제를 뒤집어쓴 밭둑의 잡풀들이 뜨거운 물에 데쳐 놓은 듯싶은 냄새를 풍길 때 박노인은 정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 와서 제초제의 신통한 효력에 대하여 감탄하면서 말했다.
“옛날에는 풀을 일일이 땀 뻘뻘 흘림서 낫으로 비었는디, 요즘 세상은 참말로 좋아졌어라우.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일 년에 서너 차례만 풀약으로 지져버리면 만사 땡이여.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은 이 풀약 하나는 진짜로 편리하게 잘 만들었어라우.”
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제초제 뿌릴 때는 장화 신고, 마스크 쓰고, 바람을 등지고 하십시오. 그 약 아주 독한 것입니다. 그 약 조금만 바람결에 들이마셔도 후유증이 무섭습니다. 그것 미국 사람들이 베트남에서 베트콩 잡을 때 원시림을 다 말려죽인 것이요. 베트남에 파병 되었다가 돌아온 우리나라 군인들 가운데 제초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하고 말하자, 박노인은 걱정 말라는 듯 도리질을 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 약이 막 나오면서부터 시방까지 사용해 오는디 나 이렇게 성성하요. 아무 걱정 없어라우. 병째 들고 마시지만 않으면 돼라우.”
얼마쯤 뒤, 박노인의 얼굴을 한 달 가까이 볼 수가 없어, 어인 일인가 하고 내 옆집에 사는 김영감에게 물으니, “그 사람, 복수가 차고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자꾸 말라지니께 자식들이 서울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진찰해본께 간하고 피가 안 좋아졌다고.... 그래서 입원했다고 하요”하고 말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나의 도씨가, 젊었을 적에 씨름판에서 송아지를 타오곤 했다는 무쇠 같은 박노인일지라도 제초제로 인해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도씨의 말은 적중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박노인은 몸이 많이 좋아져 자기 집으로 와서 요양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박노인의 모습을 본 것은 늦은 여름의 어느 화창한 날 오전이었다. 도씨와 더불어, 정자에 앉아 나의 바다를 둘러보고 있는데, 박노인이 그의 밭둑 가장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노인은 천천한 걸음으로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오다가 잠시 멈추어 서고 다시 올라오다가 멈추어 서곤 했다. 몸이 완쾌 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싶었다. 나의 도씨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봐라, 저 노인 반 이상 허물어졌다.
나는 도씨에게 허튼 소리 작작하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병문안을 하러 가지 않은 죄송함 때문에 박노인 앞으로 달려가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이면서 “많이 편찮으시다는데도 병문안을 못가고 여기서 뵙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 인사를 하고 나서 소스라쳐 놀랐다.
박노인은 몸이 많이 상해 있었다. 장대 같은 박노인의 몸은 금방 무너져 내릴 듯 앙상해져 있었다. 살갗에 어두운 보랏빛의 저승꽃들이 선명하게 피어난 얼굴의 광대뼈는 전보다 더 튀어나오고, 볼은 우묵 들어가고, 눈에는 총기가 없고, 뭉툭한 코가 덩실 높아져 있는데 한껏 커져 있는 콧구멍에는 검은 어둠이 가득 담겨 있고, 입을 맥없이 반쯤 벌리고 있고, 주름살 많은 이마가 훤하고, 하얀 머리칼은 빗질하지 않아 부수수하고, 모가지가 가늘고 길어졌다. 숨을 가쁘게 쉬고, 눈자위가 잿빛을 띄고 있는 모습은 송장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영혼은 벌써부터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있는 듯싶었다.
박노인은 “밥맛이 없어서 조깐 시들뿌들 해진 것을 애들이 억지로 끌고 가서 비싼 병원에다가...... 그랬는디 인제는 다 좋아졌어라우. 입맛도 많이 돌아왔고....”하고 나서, 자기네 밭의 사방 언덕들을 손으로 둘러 가리키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따 저것 조깐 보시오. 내가 없는 틈에.....”하고 말했다. 박노인은 틀니가 귀찮아 빼놓고 나온 듯 합죽이처럼 발음이 분명하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박노인이 가리킨 그의 밭 언덕들을 둘러 살폈다. 밭 언덕들에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것은 박노인이 제초제를 뿌리지 않은 두 달 사이에 그렇게 우거진 것이었다. 모시나무, 오손이 덩굴, 실망초, 달개비, 도깨비바늘, 도깨비방망이들은 제초제에 내성이 있어, 제초제를 뿌려놓으면 우듬지만 시들어지는 듯했다가 한 보름 쯤 뒤에는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박노인은 얼굴을 험상궂게 일그러뜨린 채 자기네 밭둑의 잡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결연한 표정이었다. 음음한 방안에서 누워 있다가 걸어 나온 송장인 듯싶은 박노인의 결연한 표정을 보면서 나는 진저리를 쳤다. 저 표정을 짓고 있는 박노인과 헌걸차게 자라나 있는 잡풀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한 인간과 잡풀들과의 살벌한 전투이다. 나는 박노인이 두려워졌다. 그가 쇠약해진 몸으로, 다시 제초제 넣은 분무기통을 짊어지고 저것들을 지지려고 나서지 않을까.
예감은 적중했다. 박노인은 이튿날 아침나절 일찍이 분무기통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토굴 옆의 밭둑에 분무기통을 내려놓고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담았다. 통 안에 미리 제초제를 넣어 온 모양이었다. 분무기통에 물을 반쯤 넣은 박노인은 안간힘을 쓰며 그것을 짊어졌다. 약간씩 비틀거리며 밭둑의 잡초들 앞으로 나아갔다. 박노인의 쇠약해진 건강상태를 염려하여 그가 하는 짓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물론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이 마을로 이사를 온 이래 마을사람들이 하는 그 어떠한 일도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설사 계몽이나 교도 차원의 말일지라도 삼갔다. 시골 사람들은 도시에서 온 먹물 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먹물 든 사람들에게서 음으로 양으로 피해를 당하고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실 나무 그늘에 숨은 채 박노인이 사력을 다해 제초제 뿌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억새가 무성한 남쪽 밭둑과, 명아주와 도깨비방망이 도깨비바늘 들이 무성한 동쪽 밭둑을 지지고, 모시나무와 오손이 덩굴이 무성한 북쪽 밭둑을 지지고 난 박노인은 오른 손에 분무기를 들고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바야흐로 실뱀 길 아래편의 백 평 남짓한 그의 밭 가장자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점은 마을에서 나오는 차도와 한길에서 올라오는 차도와 내 토굴에서 내려가는 약간 비탈진 차도가 만나는 삼거리였다.
마을에서 뻗어온 차도가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는 삼거리 가장자리에 벌겋게 녹슨 쇠 울타리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울타리는 박노인의 밭으로 밀고 들어오는 자동차의 범퍼와 바퀴를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장애물이었다. 뽕뽕 뚫려 있는 기다란 철판 두 장을 가로로 잇대어 세우고, 그것이 넘어지지 않도록 양 옆에 쇠말뚝 여덟 개를 드문드문 박아두었다. 그 쇠말뚝도 믿을 수 없었는지 보통사람들이 들기에 벅찬 아름드리 돌 다섯 개를 철판 밑 부분에 줄지어 놓아두었다.
그 방책으로 인해 차 운전자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 범퍼가 철판으로 인해 긁히기도 하고, 아름드리 돌에 앞바퀴가 걸리기도 하므로 서투른 운전자들은 차를 멈추고 한 번 후진했다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힘껏 꺾어 돌아나가곤 했다.
애초에 실뱀 길이던 그 길을 차도로 넓힐 때, 마을 이장과 유지들은 길 양편의 밭주인들에게 땅을 기부해 달라고 통사정했다. 밭주인들은 가슴아파하면서도 큰마음 먹고 자기의 맨 살 같은 땅을 기부했으므로 차도는 만들어질 수 있었고, 덩달아 포장도 될 수 있었다.
실뱀 길에서 차도로 탈바꿈할 때 자기 밭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책을 설치한 사람은 박노인이 유일했다. 마을의 차 가진 사람들은 아무도 박노인에게 방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 하지 못했다. 땅을 많이 기부한 까닭으로 기세가 등등한 그에게 그런 말을 뺄 수조차 없었다. 말을 할지라도 박노인이 들어주지 않을 터이므로, 그냥 아리는 속마음을 꿀꺽 삼키기만 했다.
고물장수가 트럭을 몰고 올 때면 나의 도씨가 “고물장수에게, ‘이 철판하고 철근 뽑아 가지고 가시오.’하고 말해버리라”고 충동질하곤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나의 도씨에게 도리질을 했다. “내가 차를 운전하고 이 길을 오가는 것도 아닌데 왜 말썽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야.”
나는 금방 허물어질 듯싶은 박노인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놓은 철판 방책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을 쓴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았다. 나의 도씨가, 한 사람의 이기적인 고집이 세상을 얼마나 답답하게 만드는가를 확실하게 알고 살면서도 그것을 바로잡지 못하는 네 처지가 한심스럽다고 비웃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채 뻔뻔스럽게 하늘을 대하고 사는, 이른바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나의 무능, 무책임을 비난했다.
그 비난에 대하여, 나는 하잘 것 없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면 건강에 해롭다고 변명했다. 내 속마음을 알아챈 나의 도씨가 말했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라. 저 박노인에게 충동질하곤 하는 그의 도깨비한테 문제가 있다. 박노인의 도깨비는 이념도 무엇도 아닌, 다만 내 밭 내 작물만을 아끼는 이기심과 피해망상으로만 돌돌 뭉쳐 있다. 박노인은 자기 소유물을 어느 누구에게서나 손톱만치도 손해 보지 않고 산다는 자존심에 젖어 있다. 저런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 지역이기주의가 발동되고, 저런 사람들이 어떤 단체를 만들고 있으면 단체 이기주의를 발동하게 되는 것 아니냐.....너무 한심해하지 마라.’
박노인의 밭 언덕의 잡풀들이 제초제로 인해 거무죽죽하게 시들어지고 있는 날, 호흡이 심하게 가빠진 까닭으로 박노인이 서울로 실리어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날 오후 4시에 나는 운동복을 입고 수분 잘 빨아들이고 탄력 좋은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로 속보 운동을 하러 나갔다. 동행하는 나의 도씨가 씩씩하게 걸으라고 말하면서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하고 중얼거렸고, 나는 코를 찡긋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꼬마차를 탄 머리 허연 최노인이 그의 집 대문간을 나오다가 나를 대하고, ‘등산 가시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네’하면서 허리 굽혀 절하고, 나의 도씨에게, 저 노인은 ‘산책’과 ‘등산’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나의 도씨가 내 안목의 짧음을 비웃고, 최노인의 탁월한 안목에 대하여 말했다. “이 사람아, 바다 속에 너의 산(海山)이 있으므로 너는 늘 즐겁게 너 자신을 오르곤 하는 것 아니냐.”
박노인이 산화되어 멀리 떠나간다면, 우리 마을에서 금년 들어 세 번째 노인이 죽는다. 노인들이 한 사람씩 멀리 사라져가는 일 때문에 나는 쓸쓸해지고 세상이 허무해진다. 그렇지만 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는다. 더불어 사는 나의 도씨 때문이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숨을 쉬며 살기 시작하면서 삶을 함께 하는 도씨는 나의 든든한 우군이다. 도씨가 나를 버리고 멀리 떠나가지 않는 한 나는 외롭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쓸 것이다. 도씨는 외로워하는 나를 위로해주고, 시와 소설거리를 가져다주고, 급변하는 세상을 향한 아웃사이더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그것은 선(禪)에 다름 아니다. 선은 삶의 역설이고 반전이다.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기이고, 초현실적인 시각으로 응시하기이고 초연해지기이다. 내 도씨는 우주로 뻗은 안테나 노릇을 한다.
11월 달력을 뜯어내면서 느낀 덧없음으로 인한 우울함이 가시지 않은 12월 2일 저녁, 후배들이 송년회를 하자고 청해서 광주행 버스에 올랐다. 화순을 지나 광주 초입에 들어섰을 때 초혼(招魂)된 넋처럼 내린 첫눈이 소담스럽게 쌓인 소나무 숲을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데, 내 도씨가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하고 중얼거렸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원각사 불일서점에 들렀다가 무쇠로 지은 앙증스러운 풍경(風磬)들을 발견했다. 도씨가 ‘이것 너의 시간을 위해서 아주 유익한 것이다’하고 권했고, 나는 ‘그래 내 토굴 처마 끝에 달았으면 좋겠다,’하고 두 개를 골라 사서 가방에 넣었다. 가방에 넣은 풍경 때문에 가슴이 설레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가 한 작달막한 앳된 여자가 옷가게에 울긋불긋한 옷들을 진열하는 것을 보는데, 내 도씨가 ‘저 여자에게도 시간이 있다’라고 귀엣말을 하고 나서 아는 체를 했다.
“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의 위대한 선물이지만, 그것은 잔인한 것이다. ‘시간’이란 것은 ‘신(神)’과 ‘진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죽음이 없는 존재로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것들을 사정없이 소멸시킨다. 시간은 인간에게 늘 미래를 만들 기회를 주지만, 소를 잃은 다음 외양간을 제대로 손질하지 않는 것들을 사정없이 퇴출시키는 잔혹한 것이다. 순간을 영원처럼 살고 영원을 순간처럼 살아야 한다. 영원이란 것은 한 순간 한 순간의 집적의 결과물이니까. 신이 내려준 외양간 고칠 시간을 지혜롭고 게으르지 않게 활용해야 한다.”
송년회에서 얼근하게 취한 채 택시를 타고 토굴로 돌아온 나는 나의 도씨가 보채서, “하여튼 극성이요.”하는 아내의 볼멘소리를 무릅쓰고 처마 끝에 풍경 둘을 달았다.
곡두새벽에 일어나,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썼다. 풍경소리는 한겨울 허공의 향기로운 음악이다. 컴퓨터를 끈 다음에 보건체조를 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가는데 내 도씨가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하고 말한다.
버스를 타고 읍내에 나가 은행에 들러 가난한 통장에 들어온 원고료와 인세 몇 푼을 확인하고, 병의원에서 부정맥 약, 천식 기침 감기약, 항 알레르기 약의 처방전을 끊고, 약국에서 약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내 도씨는 또 중얼거린다.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나는 아프리카 케냐 인근의 원시림 속에 들어 있었다. 아내와 함께 간 패키지여행이었고, 나의 도씨도 동행했다. 안내자를 따라 원시림 체험을 하던 나는 요의를 참을 수 없어, 노거수 밑동에 오줌을 누었다. 그때 머리 위의 노거수 가지에서 바야흐로 진한 초록색 깃털의 노랑부리 앵무새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앵무새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바지의 지퍼를 올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어깨에 걸친 카메라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그들이 교미 하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기다렸다. 암컷은 구애를 허락하려 했다가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고 옆의 나뭇가지로 날아갔다. 수컷은 다시 암컷을 쫓아갔고 그녀의 무지개색깔 목털을 부리로 물면서 등에 올라탔다. 나는 셔터를 거듭 눌렀다. 셔터 소리 때문인지, 암컷은 수컷에게 꼬리를 옆으로 젖혀주지 않았고, 교미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컷은 암컷의 등에서 미끄러졌고, 암컷은 다시 옆의 다른 가지로 날아갔다. 나는 완벽하게 이루어진 교미장면을 촬영하지 못한 아쉬움을 어찌하지 못한 채 놓친 일행을 따라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내 도씨가 “야 쫌만, 기다려! 저 수컷이 지금 암컷에게 다가가서 다시 교미를 시도한다. 빨리 셔터!”하고 말했다. 나는 도씨의 말대로 앵무새 한 쌍의 사랑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앵무새들은 마침내 사랑의 절정에 도달했고, 내 카메라는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담아냈고 나는 흥분한 채 놓친 일행을 뒤쫓아 달렸다. 일행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으므로 나는 당황했다. 울창한 열대수림들이 하늘을 가렸고, 보아구렁이처럼 굵은 덩굴들이 치렁치렁 늘어져 있었다. 정사 장면을 들킨 앵무새들이 야자나무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며 짖어댔다. 진한 갈색 얼룩무늬의 보아구렁이가 노거수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가 나를 향해 혀를 널름거려서 그것을 피해 달아나다가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 순간, 혼자 낙오 되었을 경우, 헤매지 말고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는 여행 안내자의 말을 생각하며 발을 멈추었다. 헐떡거리는 숨결 소리와 내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번한 숲 저쪽으로부터 인기척이 있어, 나를 찾는 일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향해 “나 여기 있어요!”하고 외쳤다. 어떤 반응인가가 있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오래지 않아 그쪽에서 어떤 소리인가가 들렸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안내자가 나를 향해 달려올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제는 살았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도씨가, 아내와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너무 겁내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숲속에서 나타난 것은 여행안내자가 아니고, 살갗이 진한 갈색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타구니를 나뭇잎으로 가렸을 뿐 벌거벗었는데 손에손에 창이나 칼들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둘러쌌다. 젊은 남자들이 나에게 덤벼들었고, 나의 손목을 끈으로 포박해버렸다. 그들은 나를 발가벗긴 다음 사지를 나무에 묶어 놓고, 빙 둘러쌌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들이 식인들임을 알아차렸다. 거구의 식인 추장이 매부리코를 실룩거리고 유리구슬 같은 눈을 빛내며,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여기저기를 응시하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나의 도씨는 그 순간에 겁에 질려 떨고 있는 나를 구제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으냐는 소리만 반복했다. 추장의 가슴과 배에는 입을 크게 벌린 수사자의 머리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추장은 군살 없이 빼빼한 내 몸으로 인해 실망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부하들에게 말했다.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 목살, 등심, 안창살, 갈매기살, 갈빗대, 가슴살, 허벅다리, 팔뚝 같은 것들은 퍽퍽해서 먹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잘게 쪼개서 독수리들한테나 주어라. 다만, 불알 두 쪽하고, 눈알 두 개하고, 쓸개하고, 간하고, 대가리 속 뇌수하고는......아직 럼주 마실 때 안주삼아 먹을 만하겠다. 얼른 간단하게 작살내버려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키 헌칠한 젊은 놈이 긴 칼을 휘저으며 춤을 한바탕 추었다. 칼날이 내 눈앞을 스쳐가면서 휘파람 소리를 냈을 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식인들은 “어힛!”하고 추임새를 먹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진저리치면서 눈을 힘주어 감은 채 속으로 빌었다. “하느님, 살려주십시오. 저는 식인들에게 잡혀 먹힐 만큼 죄를 짓고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의 기도는 의미가 없었고, 식인의 칼끝이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고, 순간 나는 으악하고 소리쳤다.
소스라쳐 꿈에서 깨어났고, 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일어나 앉은 채 서가의 모퉁이에서 날아드는 취침용 전등의 파르스름한 불빛을 바라보다가 요의를 느끼고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엘 갔다. 소변을 한 다음 세면대에 물을 받아 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나오는데 나의 도씨가 히히히 웃으며 말했다.
“불알 두 쪽, 눈알 두 개, 쓸개, 간, 뇌수는 아직 럼주 마실 때 안주삼아 먹을 만하겠다는 추장의 말에서 희망을 가져라. 아직도 너는 세상을 진하게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글을 쓰고, 얼마쯤은 더 살겠구나.”
자리끼 한 모금을 마시고 어둠에 젖어 있는 서까래들을 쳐다보는데 도씨가 말했다.
“너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배 한 척을 사라. 그걸 타고 연안바다 여행을 즐기자. 요즘 타고 다닐 만한 배 한 척 3천만 원쯤이면 살 수 있다. 나무 아닌, 에프알피(FRP)로 지은 것인데, 가볍고 견고하다. 엔진은 혼다에서 나온 것이 좋다더라. 어선으로 지었을지라도 레저에 쓸 수 있는 것을 선택하면 아주 좋을 거다. 남은 세월을 즐겨라. 별로 거칠지 않은 파도를 헤치고 다니다가 낚시를 하고, 회를 떠서 초고추장 발라 포도주하고 먹기도 하고......그냥 너하고 나하고 우리 둘이서 즐기는 거야. 물론 신나는 음악도 싣고 다니는 것이지. 네가 좋아하는 사라 브라트만, 셀린드 디옹 같은.....”
나는 솔깃했다. 이때껏 도씨의 말을 들어서 밑진 적이 없었다. 통장의 돈을 어림으로 헤아렸다. 십여 년 동안 먹고 살 돈을 제하고도 여유 자금이 웬만치는 있었다.
이튿날 아침 영어법인 덕흥수산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마침 그 가격쯤에 나와 있는 좋은 배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황홀한 꿈에 젖어들었다. 배의 선장이 되어, 녹동 포구에도 가고, 소록도에도 가고, 노화도와 청산도에도 가고, 무인도인 꽃섬과 장구섬에도 가고,.....나의 사랑하는 도씨와 더불어, 싱싱한 회와 포도주를 즐기는 것이다.
서둘러 수문포구의 선창으로 나가려는데, 마을 앞 전주에 걸린 확성기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박노인의 주검이 관에 담기어 사장 마당에 도착했는데 바야흐로 거리제를 지내고 있으니 조문할 분은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도씨와 함께 사장마당으로 가서, 거리제에 내 걸린 박노인의 영정 앞에 절을 했다. 박노인은 간암과 혈액암을 동시에 앓고 있었는데, 갑자기 혈관이 막혀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부의함에 5만 원짜리 담은 봉투를 쑤셔 넣고 돌아서서 도씨와 더불어 수문포항을 향해 가며 나와 내 도씨는 엘리엇의 시를 합창하듯이 외었다. 유리창에 등을 비비대며 거리를 미끄러져가는 노란 안개에도 확실히 시간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만날 얼굴들을 대하기 위하여 한 얼굴을 꾸미는 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시간은 있으리라. 살해와 창조에도 시간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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