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부분
[원문] [현대어 풀이]
하 오월 초칠일의 하오월(夏五月) 초이레의
도강 날 졍?여네. 도강(渡江) 날짜 정하였네.
방물을 졍검?고 가지고 갈 물건을 점검하고
장을 슈습?여 여행 장비를 수습하여
압녹강변 다다르니 압록강변에 다다르니
송객졍이 여긔로다. 송객정(送客亭)이 여기로다.
<도강(渡江)을 위해 압록강 도착>
의쥬 부윤 나와 안고 의주 부윤(義州府尹)이 나와 앉고
다담상을 려 놋코, 다담상(茶啖床)을 차려 놓고,
삼 사신을 젼별 세 사신(使臣)을 전별(錢別)하는데
쳐창키도 그지없다. 구슬프기도 그지없다.
일 일 부일 한 잔 한 잔 또 한 잔으로
셔로 안져 권고?고, 서로 앉아 권고하고,
상 별곡 ? 곡조을 상사별곡(相思別曲) 한 곡조를
참아 듯기 어려워라. 차마 듣기 어려워라.
<의주 부윤의 전별 잔치>
장계을 봉? 후의 장계(狀啓)를 봉한 후에
더리고 이러나셔, 떨뜨리고 일어나서,
거국지회 그음업셔 나라 떠나는 감회 그지없어
억졔?기 어려운 즁 억제하기 어려운 중
홍상의 눈물이 여인의 꽃다운 눈물이
심회을 돕 도다. 마음의 회포를 돕는도다.
뉵인교을 물녀 노니 육인교(六人轎)를 물려 놓으니
장독교을 등 ?고, 장독교(帳獨橋)를 대령하고,
젼 토인 ?직?니 가마 앞 통인(通引)이 하직하니
일산 좌견 만 잇고, 해 가리는 일산과 말고삐만 있고,
공형 급창 물너셔니 공형(公兄)과 급창(及唱)이 물러서니
마두 셔 이로다. 마두(馬頭)와 서자(書者) 뿐이로다.
<장계 후 슬픈 심회와 이속들과의 이별>
일엽 소션 을 져어 한 조각 자그마한 배를 저어
졈졈 멀이 셔 가니, 점점 멀리 떠서 가니,
푸른 봉은 쳡쳡?여 푸른 봉우리는 첩첩하여
날을 보고 즐긔 듯, 나를 보고 즐기는 듯,
운은 요요?고 흰 구름은 멀리 아득하고
광 이 참담?다. 햇살의 빛깔이 참담하다.
비치 못 이 마음 비하지 못할 이내 마음
오날이 무 날고. 오늘이 무슨 날인고.
츌셰? 지 이십오 년 세상에 난 지 이십오 년
시?의 라나셔 부모님을 모시고 자라나서
평일의 이측?여 평소에 부모님 곁을 떨어져
오 나 본 일 업다. 오래 떠나 본 일이 없다.
반 년이나 엇지 고, 반 년이나 어찌할꼬,
이위졍이 어려우며, 부모님 곁을 떠나는 정이 어려우며,
경긔 지경 니 밧긔 경기도 지방 백 리 밖에
먼 길 단여 본 일 업다. 먼 길 다녀 본 적 없다.
허박?고 약? 긔질 허약하고 약한 기질에
말 이 역 걱졍일셰. 만 리나 되는 여행길이 걱정일세.
? 쥴긔 압녹강의 한 줄기 압록강이
양국지경 난화스니, 양국의 경계를 나누었으니,
도라보고 도라보니 돌아보고 돌아보니
우리 나라 다시 보 . 우리 나라 다시 보자.
<떠나는 배 위에서의 심회>
구련셩 다다라셔 구연성(九連城)에 다다라서
? 고 을 너머셔니 한 고개를 넘어서니
앗가 보든 통군졍이 아까 보던 통군정(統軍亭)이
그림 도 아니 뵈고, 그림자도 아니 보이고,
쥬금 뵈든 마산니 조금 보이던 백마산(白馬山)이
봉오리도 아니뵌다. 봉우리도 아니 보인다.
여 리 무인 지경 백여 리의 사람 없는 곳에
인젹이 고요?다. 인적이 고요하다.
위험? 만쳡 산즁 위험한 만 첩의 산중
울밀? 슈목이며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며
젹막? 소 적막한 새 소리는
쳐쳐의 구슬푸고, 곳곳에 구슬프고,
?가? 들의 츤 한가한 들의 꽃은
누을 위 피엿 냐? 누구를 위해 피었느냐?
앗갑도다, 이러? 아깝도다, 이러한 꽃
양국의 발인 의 두 나라의 버린 땅에
인가도 아니 살고 인가(人家)도 아니 살고
젼답도 업다 ?되, 논밭도 없다고 하되,
곳곳지 깁흔 골의 곳곳이 깊은 골에
계견 소 들이 듯. 닭 소리 개 소리 들리는 듯.
왕왕이 험? 산셰 끝없이 넓고 험한 산의 형세
호포지환 겁이 난다. 범과 표범의 해가 겁이 난다.
<무인지경의 험한 산중에서의 심회>
쥬방으로 상을 차려 밥 짓는 데서 상을 차려
졈심을 가져오니, 점심을 가져오니,
민 의 나려안져 맨 땅에 내려 앉아
즁화를 ?여 보 . 점심을 먹어 보자.
앗가가지 귀튼 몸미 아까까지 귀하던 몸이
어이 죨지 쳔?여서, 어이하여 졸지에 천해져서,
일등 명창 진지거 일등 명창이 오락가락하던
슈쳥 기 어 가고, 수청 기생은 어디 가고,
만반 진슈 죠흔 반찬 가득한 맛난 음식과 좋은 반찬
겻반도 업스나마, 딸린 반찬도 없으나마,
건양쳥 밥 ? 그릇 건양청(乾糧廳)에서 준 밥 한 그릇
일엇틋 감식?니, 이렇듯이 달게 먹으니,
가이업시 되여스나 가엽게 되었으나
엇지 안니 우수으랴. 어찌 아니 우스우랴.
<노상(路上)에서의 점심 식사>
금셕산 지나가니 금석산(金石山) 지나가니
온졍평이 여긔로다. 온정평(溫井坪)이 여기로다.
일 셰가 황혼?니 날의 형세가 황혼이 되니
?돈?며 슉소? . 한데서 잘 잠자리를 정하자.
삼 사신 세 사신 자는 데는
군막을 놉피 치고, 군사들 쓰는 장막을 높이 치고,
삿 리을 둘어 막아 삿자리를 둘러 막아
가방쳐럼 ?여스되, 임시로 꾸민 방처럼 하였으되,
역관이며 비장 반장 역관(譯官)이며 비장(裨將) 방장
불상?여 못 보갯다. 불쌍하여 못 보겠다.
면 외풍 드러부니 사면에서 외풍이 들이부니
밤 지 기 어렵도다. 밤 지내기 어렵도다.
군막이라 명식?미 군막이라고 말은 하되
무명 ? 겹 가려스니, 무명 한 겹으로 가렸으니,
오이려 이번 길은 오히려 이번 길은
오뉵월 염천이라, 오뉴월 더운 때라,
하로 밤 경과?기 하룻밤 지내기가
과이 아니 어려오나, 과히 아니 어려우나,
동지셧달 긴긴 밤의 동지섣달 긴긴 밤에
풍셜이 드리칠 졔 바람과 눈이 들어칠 때
그 고 읏더?랴, 그 고생이 어떠하랴,
혹들 ?다 ?데. 참혹들 하다고 하대.
쳐쳐의 화토불은 곳곳에 피운 화톳불은
?인 등이 둘너안고, 하인들이 둘러 앉고,
밤 도록 나발 소 밤새도록 나발 소리를 냄은
즘 올가 념예로다. 짐승 올까 염려해서이라.
<온정평에서의 노숙(路宿)>
발세을 기다려서 밝기를 기다려서
문으로 향 가니, 울짱의 문으로 향해 가니,
목 으로 울을 ?고 나무로 울타리를 하고
문 ?나을 여러 놋코, 문 하나를 열어 놓고,
봉황셩장 나와 안져 봉황성(鳳凰城)의 장이 나와 앉아
이 마을 졈검?며, 사람과 말을 점검하며,
례로 드러오니 차례로 들어오니
범문신칙 엄졀하다. 묻고 경계함이 엄숙하고 철저하다.
<책문에서의 검문>
녹창 쥬호 여염들은 녹색 창과 붉은 문의 여염집은
오 이 영농?고, 오색이 영롱하고,
화 란 시졍들은 화려한 집과 난간의 시가지는
만물이 번화?다. 만물이 번화하다.
집집이 호인들은 집집마다 만주 사람들은
길의 나와 구경?니, 길에 나와 구경하니,
의복기 괴려?여 옷차림이 괴이하여
쳐음 보기 놀납도다. 처음 보기에 놀랍도다.
머리 압흘 가 머리는 앞을 깎아
뒤만 ? 느리쳐셔 뒤만 땋아 늘어뜨려
당 실노 당긔?고 당사실로 댕기를 드리고
말 이을 눌너 쓰며, 마래기라는 모자를 눌러쓰며,
일 년 삼백육십 일에 일 년 삼백육십 일에
양치 한 번 아니?여 양치질 한 번 아니하여
이 은 황금이오 이빨은 황금빛이요
손톱은 다섯 치라. 손톱은 다섯 치라.
<청인(淸人)에 대한 첫인상>
거문빗 져구리 검은 빛의 저고리는
깃 업시 지어쓰되, 깃이 없이 지었으되,
옷고름은 아니 달고 옷고름은 아니 달고
단초 다라 입어쓰며, 단추 달아 입었으며,
아쳥 바지 반물 속것 검푸른 바지와 검은 남빛 속옷
허리 로 눌너 고, 허리띠로 눌러 매고,
두 다리의 젼 모양 두 다리에 행전 모양
타오구라 일홈 ?여, 타오구라 이름 하여,
회목의셔 오금 지 발목에서 오금까지
회 ?게 드리 고 가뜬하게 들이끼우고
깃 업슨 쳥두루막기 깃 없는 푸른 두루마기
단초가 여러히요, 단추가 여럿이며,
좁은 손등 덥허 좁은 소매가 손등을 덮어
손이 겨오 드나들고, 손이 겨우 드나들고,
두루막 위에 배자이며 두루마기 위에 덧저고리 입고
무릅 우에 슬갑이라. 무릎 위에는 슬갑(膝甲)이라.
<청인(淸人)의 복색(服色)>
공방 옥 물 리 곰방대와 옥 물뿌리
담 너 쥬머니의 담배 넣는 주머니에
부지 지 서 들고 부시까지 껴서 들고
뒤짐지기 버릇시라. 뒷짐을 지는 것이 버릇이라.
람마다 그 모양니 사람마다 그 모양이
쳔만 인이 한빗시라. 천만 사람이 한 모습이라.
인 온다 ?고 소국 사람 온다 하고
져의기리 지져귀며, 저희끼리 지저귀며,
무어시라 인사?나 무엇이라 인사하나
? 마 도 모르겟다. 한 마디도 모르겠다.
<청인(淸人)의 행동>
계집년들 볼 만?다 계집년들 볼 만하다.
그 모양은 읏더튼냐. 그 모양은 어떻더냐.
머리만 치거실러 머리만 치거슬러
가림 아니 타고, 가르마는 아니 타고
뒤통슈의 모화다가 뒤통수에 모아다가
시 잇게 슈식?고, 맵시 있게 수식하고,
오 으로 만든 츤 오색으로 만든 꽃은
면으로 스며, 사면으로 꽂았으며,
도화분 단장?여 도화색 분으로 단장하여
반ㅊ? 모양갓치 반쯤 취한 모양같이
불그러 고흔 도 불그스레 고운 태도
아미을 다스르고, 눈썹 치장을 하였고,
살 을 고이 고 귀밑 머리 고이 끼고
붓스로 그려스니, 붓으로 그렸으니,
입슐 아 연지빗흔 입술 아래 연지빛은
단슌이 분명?고, 붉은 입술 분명하고,
귓방을 른 군영 귓방울 뚫은 구멍
귀여 리 달아스며, 귀고리를 달았으며,
<여인들의 모습>
의복을 볼작시면 의복을 볼작시면
사나히 졔도로되, 시나이 제도로되,
다홍빗 바지의다 다홍빛 바지에다
푸른빗 져구리오, 푸른빛 저고리요,
연도 두루막이 연두색 두루마기
발등 지 길게 지어, 발등까지 길게 지어
목도리며 수구 동 목도리며 소매 끝동
화문으로 수을 노코, 꽃무늬로 수를 놓고,
품 너르고 널너 품 너르고 소매 넓어
풍신 죠케 쳐 입고, 풍신 좋게 떨쳐 입고,
<여인의 의복>
옥수의 금지환은 옥 같은 손의 금반지는
외 만 넙젹?고, 외짝만 넙적하고,
손목의 옥고리 손목에 낀 옥고리는
굴게 려 둥글고나. 굵게 사려 둥글구나.
손톱을 길게 길너 손톱을 길게 하여
? 치만큼 길너시며, 한 치만큼 길렀으며,
<여인의 손 치장>
발 시을 볼작시면 발 맵시를 볼작시면
수당혀를 신어시며, 수 놓은 당혜(唐鞋)를 신었으며,
쳥여 발이 커셔 청나라 여자는 발이 커서
남 의 발 트나, 남자의 발 같으나,
당여 발이 작아 한족(韓族)의 여자는 발이 작아
두 치짐 되 거 두 치쯤 되는 것을
비단으로 동히고 비단으로 꼭 동이고
신 뒤츅의 굽을 달아, 신 뒤축에 굽을 달아,
위둑비둑 가 모양 위뚝비뚝 가는 모양
너머질가 위 ?다. 넘어질까 위태롭다.
그러타고 웃지 마라. 그렇다고 웃지 마라.
명나라 친 졔도 명나라가 끼친 제도
져 계집의 발 ? 가지 저 계집의 발 한 가지
지금 지 볼 것 잇다. 지금까지 볼 것 있다.
<여인의 발 맵시>
아희들도 나와 구경 아이들도 나와 구경하느라
쥬룽쥬룽 몰녀 셧다. 주릉주릉 몰려 섰다.
이삼 셰 먹은 아 이삼 세 먹은 아이
어룬년이 츄여 안고, 어른 년이 추켜 안고,
오뉵 셰 되 거 오륙 세 되는 것은
압뒤로 잇그은다. 앞뒤로 이끈다.
<아이들의 사신 행렬 구경>
머리 다 가다 머리는 다 깎아다
좌우로 ? 모슴식 좌우로 한 줌씩
조?니 하스되 뾰족하니 땋았으되
불근 당 당긔?여 붉은 당사로 댕기를 들여
복쥬감토 말 이의 복주감투 마래기 모자에
비단 술을 노하, 채색 비단 수를 놓아,
거문 공단 션을 둘너 검은 공단(貢緞) 선을 둘러
불근 단초 지?고, 붉은 단추로 꼭지 하고,
바지며 져구리도 바지며 저고리도
오 으로 문을 노코, 오색으로 무늬를 놓고,
라기라 ? 거 옷소매 아래 배라기라는 것은
보 기의 을 달아 보자기에 끈을 달아
목아지의 걸어시니 목가지에 걸었으니
곱 가린 계로구나. 배꼽 가린 꼴이로구나.
<아이들의 머리 모양과 옷차림>
십여 세 쳐녀들은 십여 세 처녀들은
문 밧게 나와 셧 . 대문 밖에 나와 섰네.
머리 아니 고 머리는 아니 깎고
? 편 녑 모하다가 한 편 옆에 모아다가
양머리 모양쳐름 쪽지는 머리 모양처럼
졉쳠졉쳠 잡아 고, 접첨접첨 잡아매고,
가지을 시니 꽃가지를 꽂았으니
풍속이 그러?다. 풍속이 그러하다.
소소 발 늙은 년도 호호 백발 늙은 년도
머리마다 화로다. 머리마다 조화(造花)로다.
<처녀들과 할머니의 머리 모양>
무론 남녀 노소?고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담 들은 즐기인다. 담배들을 즐기는구나.
팔구 셰 이하라도 팔구 세 이하라도
곰방 을 물어스며, 곰방대를 물었으며,
<담배를 즐기는 남녀 노소>
햐쳐라고 가니 묵을 곳이라고 찾아가니
집 졔도가 우습도다. 집 제도가 우습도다.
오량각 이간반의 보 다섯 줄로 된 집 두 칸 반에
벽돌을 곱게 고, 벽돌을 곱게 깔고,
반 간식 캉을 지어 반 칸식 캉이라는 걸 지어
좌우로 캉?니, 좌우로 마주보게 하니,
캉 모양 엇더텨냐, 캉의 모양이 어떻더냐,
캉 졔도을 못 보거든, 캉의 제도를 못 보았거든
우리 나라 붓두막이 우리 나라 부뚜막이
그와 거의 흡 ?여, 그와 거의 흡사하여
그 밋 구둘 노하 그 밑에 구들 놓아
불을 게 마련?고, 불을 땔 수 있게 마련하고
그 우 리 펴고 그 위에 자리 펴고
밤이면 누어 며, 밤이면 누워 자며,
낫이면 손임 졉 낮이면 손님 접대
걸터앉기 가장 죠코, 걸터앉기에 매우 좋고,
유?온 완 창과 기름칠을 한 완자창과
면회?온 벽독담은 회를 바른 벽돌담은
미쳔? 호인들도 미천(微賤)한 오랑캐들도
집치례 과람코나. 집치레가 지나치구나.
<청인(淸人)의 주거 형태>
업시 먹 밥은 때도 없이 먹는 밥은
기장 좁살 슈슈 을 기장, 좁쌀, 수수쌀을
녹난?게 마 여 묽직하게 삶아 내어
슈의 워 두고, 냉수에 채워 두고
진긔 다 져셔 끈끈한 기운 다 빠져서
아모 맛 업 거 , 아무 맛도 없는 것을
남녀 노소 식구 로 남녀 노소 식구대로
부모 형뎨 쳐 권쇽 부모 형제 처자 권속
한 상의 둘너 안져 한 상에 둘러 앉아
? 그릇식 밥을 셔 한 그릇씩 밥을 떠서
져 치로 그러 먹고 젓가락으로 긁어 먹고,
낫부면 더 온다. 부족하면 더 떠 온다.
반찬이라 ? 거 반찬이라 하는 것은
돗 기름 날파 나물, 돼지 기름 날파 나물,
큰 독의 담은 장은 큰 독의 담근 장은
소금물의 며쥬 너코, 소금물에 메주 넣고,
날마다 갓금갓금 날마다 가끔가끔
막 로 휘져흐니, 막대로 휘저으니,
쥭 튼 된장물을 죽 같은 된장물을
쟝이라고 다 먹 . 장이라고 떠다 먹대.
<청인(淸人)의 식생활>
호인의 풍속들이 오랑캐의 풍속들이
즘 치기 슝상?여, 가축치기 숭상하여,
쥰춍 튼 말들이며 잘 닫는 좋은 말들이며
범 갓튼 큰 노 을 범 같은 큰 노새를
굴네도 아니 고 굴레도 씌우지 않고
갈도 아니 먹여 재갈도 물리지 않아
여 필식 압셰우고 백여 필씩 앞세우고
? 람이 모라 가 한 사람이 몰아 가되,
구률의 드러셔셔 구유에 들어서서
달 것 못 보게고, 달래는 것 못 보겠고,
양이며 도야지를 양이며 돼지를
슈 마리 를 지어 수백 마리 떼를 지어
조고마? 아희놈이 조그마한 아이놈이
?둘이 모라 가 , 한둘이 몰아 가되,
가리을 ? 모화 대가리를 한데 모아
허여지지 아니?고, 헤어지지 아니하고,
집 튼 황소라도 집채같은 황소라도
코 안 코 잘 부리며, 코 안 뚫고 잘 부리며,
조그마? 당나귀도 조그마한 당나귀도
돌질을 능히 ?고, 맷돌질을 능히 하고,
당 오리 거욱 댓닭, 장닭, 오리, 거위,
개 긔 지 길으며, 개, 고양이까지 기르며,
발발이라 ? 발발이라 하는 개는
계집년들 품고 자 . 계집년들 품고 자네.
심지어 초롱 속의 심지어 초롱 속에
온갓 을 너허니시, 온갖 새를 넣었으니,
잉무 며 셜죠 앵무새며 백설조(白舌鳥)는
사 의 말 능히 ?다. 사람의 말 능히 한다.
<청인(淸人)의 가축 사용 방법>
어린아희 길은 법은 어린아이 기른는 법은
풍속이 괴상?다. 풍속이 괴상하다.
담의 줄을 여 행담(行擔)에 줄을 매어
그 밑듯 축혀 달고, 그네 매듯 추켜 달고,
우 아희 졋 먹여서 우는 아이 젖을 먹여서
강보의 뭉둥그려 강보(襁褓)에 뭉뚱그려
담 속의 누여 주고 행담 속의 뉘어 주고
쥴을 잡아 흔들며은 줄을 잡아 흔들며는
아모 소 아니?고 아무 소리 아니하고
보 일 업다 ?데. 보채는 일 없다 하대.
<청인(淸人)의 육아법(育兒法)>
농 ?기 길삼?기 농사하기, 길쌈하기,
브즈런이 위업?다. 부지런히 일을 한다.
집집이 문 압 집집이 대문 앞에
흔 거름 산 까고, 쌓은 거름 태산 같고,
논은 업고 밧만 잇셔 논은 없고 밭만 있어
온갓 곡석 다 심운다. 온갖 곡식 다 심는다.
나긔말긔 장기 메여 나귀말에 쟁기를 메여
소 업셔도 능히 갈며, 소 없어도 능히 갈며,
흠의 로 길게 ?여 호미 자루 길게 하여
기음 기 셔셔 ?다. 김매기 서서 한다.
<청인(淸人)의 농사 짓기>
아질의 물네질과 씨아질과 물레질과
리 겻 계집이라. 실꾸리 감는 계집이라.
도토마리 날을 졔 도투마리 날을 맬 때
풀칠 안코 잘들 ?며, 풀칠 않고 잘들 하며,
뵈틀이라 ? 거 베틀이라 하는 것은
경쳡?고 치 있다. 가쁜하고 재치 있다.
쇠 리가 아니라도 쇠꼬리가 없더라도
잉아 능녹 어렵잔코, 잉아 사용 어렵잖고,
북을 지어 더지며 북을 집어 던지며는
바듸질은 결노 ?다. 바디질은 절로 한다.
<청인(淸人)의 길쌈하기>
교과서 뒤 내용
봉황성에서 북경에 이르는 여정
북경에서 본 이국 풍물에 대한 견문
북경에서 조선까지의 간략한 여정
▶ 핵심 정리
지은이 : 홍순학(洪淳學. 1842-1892) 본관 남양(南陽). 자 덕오(德五). 철종 8년 (1857)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 수찬관을 거쳐 1866년(고종 3)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장편의 기행가사(紀行歌辭) <연행가(燕行歌)>를 지었다. 대사헌 ·대사간 ·예조참의를 지내고 1884년 감리인천항(監理仁川港) 통상사무가 되고 이듬해 인천부사(仁川府使)를 겸임하였으며, 그 뒤 협판교섭(協辦交涉) 통상사무를 지냈다.
연대 : 고종 3년(1866)
갈래 : 가사. 기행 가사. 사행(使行) 가사
율격 : 4.4조 위주의 4음보격
성격 : 사실적. 객관적. 비판적. 서사적
문체 : 가사체. 운문체
특징 : 서술 대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예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존명 배청(尊明排淸-명나라를 높이고 청나라를 배척함)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국(異國)의 문물과 풍속, 인물 등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다.
의의 :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와 함께 조선 후기 기행 가사의 대표작이다.
주제 : 청나라 연경(燕京)을 다녀온 견문과 여정
출전 : 심재완 교합본(沈載完 校合本)
▶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일명 '병인 연행가(丙寅燕行歌)', '북원록(北轅錄)'. '연행록(燕行錄)', '원 녹' 등 여러 이름으로 전하는데, 국어 교과서에 실은 것은 심재완 교합본(沈載完 校合本)을 대본으로 하였는데, 현저하게 잘못된 표기는 바로잡았다.
홍순학이 지은 이 작품은 중국을 다녀온 내용을 적은 것인데, 당시 중국에 가는 목적이 주로 사행(使行)이었으므로 이런 내용을 가진 작품들을 가리켜 사행(使行) 가사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양반 가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작품의 길이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고종의 왕비를 책정한 일로 고종 3년(1866)에 중국에 사신을 보낸 진하사은겸주청사행(進賀謝恩兼奏淸使行-나라의 경사가 있어 은혜에 감사함과 아울러 국사에 대하여 아뢰고 간청할 일을 하는 사신의 행차)에 서장관(書狀官-외국에 사신을 보내는 임시 벼슬로 정사, 부사, 기록관 세 사신 중 기록관을 가리킴)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것을 노래한 작품으로 일행이 4월 9일 서울을 출발하여 6월 6일 북경에 당도하여 40일 간의 북경 체류 후, 8월 23일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130여 일 간의 여정에서 보고 들은 바를 기술하였다.
작품의 시작은 서울을 떠나 모화관, 무악재, 홍제원, 녹번, 박석, 구파발, 창릉내, 고양, 파주목, 임진강, 진서루, 장단부, 송도, 만월대, 선죽교, 청석관, 금천, 청단역, 돌여울, 평산부, 곡산부, 중화참, 총수관, 서흥부, 검수관, 봉산군, 사인암, 황주, 월파루, 중화부, 이천역, 대동역, 평양에 이르며, 평양에서 연광정, 부벽루, 대동문, 청류벽, 전금문, 영명사, 칠성문, 기자문 등을 돌아본 뒤, 순안현, 숙천부, 안주성, 만경루, 백상루, 청천강, 박천, 가산, 샛별령, 납청정, 정주성, 북장대, 관삭군, 선천부, 의검정, 동림진, 차련관, 철산, 서림진, 양책관, 용천, 청류암, 석계교, 소곶관 등을 거쳐 의주에 들어가 취승당과 통군정을 구경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다음이 교과서에 실린 부분인데, 압록강 도강 장면에서 시작하여 구련성, 금석산, 온정평을 거쳐 봉황성에 이르러 보게 된 호인(胡人)의 인상, 남녀의 모습, 옷차림, 가옥 구조, 식생활, 짐승치기, 육아법, 베짜기 등을 묘사한 것이다.
그 뒤에는 북경에 이르기까지의 도정과 북경에서 보고 느낀 점을 담고 있고, 다시 돌아오는 노정을 따라 중국 풍물의 묘사가 이어진다. 압록강을 건너가기까지는 고국의 산천과 거기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정감 있게 묘사하였으며, 도강 이후는 중국의 제반 풍물, 세태, 자연 풍치 등을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려 내었다.
이에 덧붙여 '연행가'에 나타난 작가의 시각을 알아 보기로 한다.
먼저 '연행가'를 검토하면 작가 홍순학의 관심이 어느 한 곳에 편중되지 않고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작가는 우리의 역사는 물론이고 중국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기행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의 현장마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박람 강기적인 사실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관을 토대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선죽교(정몽주), 취승당(임진왜란), 북장대(홍경래 난) 등에서 고사를 회상한다. 그리고 "병 년 호란시의 효종 왕 입심? 이 고 너무실 졔 친 곡조 유젼하다. 호풍도 참도 찰 구진비는 무 일고 옛일이 로오니 창감키도 그지업다,", "슬푸다 져문밧게 삼학 의 충효 혼 만 리 밧게 외롭다가 우리 보고 반게헐 듯 병 년 이 원슈 어느 갑파 볼가. 후셰 인신 예 지날 졔 분헌 마음 뉘 업스랴." 등을 통해서 작가가 중국에서도 우리 역사에 관심을 보이며 동시에 반청 의식(反淸意識)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부분 친명반청(親明反淸)으로 일관하고 있다. 명청 교체기에 있었던 전쟁에 대하여 "슬푸다 명젹의 유장군의 슈십만 명 일시의 함몰?여 이물의 져다니 맛참 이 곳 지날 젹의 엇지 안니 창감?랴."라고 감회를 서술한 후, 오삼계를 만고 역신이라 했다. 그리고 1644년(갑신) 3월, 명의 마지막 황제가 자살한 매산각에서는 "서리지회(黍離之懷) 그음 업셔 다시곰 바라보니"라고 하였으며, 모두 "명젹의 명문 거족 후예"들인 청나라에서 만난 선비들을 통해서는 "마지못 살녀 ?고 호인의게 벼슬?나 의관의 슈통지심 분한 마음 품어구나."라고 하여 대칭 우월 의식까지도 보인다.
서양인에 대한 서술은 더욱 부정적인 시각에서 행하여진다. 서양인을 '서양국놈' 혹은 '양귀자놈'이라고 표현하고 여인네들은 흉칙하다고 하였으며, 아이들에 대해서는 "잔나뷔 삭기들과 이상이 갓도갓다. 졍녕이 짐 이요 람의 종 아니로다."라고 표현하였다. 그런데 몽골 승려들에 대해서도 '몽고놈들 볼작시면'이라고 한 것을 보면 작가는 한족과 우리 민족 이외는 모두 오랑캐라는 보수적인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모화 사상은 중국계 기행 가사가 대체로 가진 성향이기는 하지만 '연행가'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서술 태도면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감정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이다. 출발하면서 "집안을 생각?니 심회도 창연할 "라고 했던 그의 고향 생각은 귀로에까지 이어져서 책문에서 모친의 생신을 당하여 "불효?다 만 니 밧게 반 년니나 나시니 두린 마음 둘거지 바이업다."라고 한 데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소년 공명', '소년 서장' 등의 어휘를 사용하면서 우월감을 과시하기도 하고 '양귀자놈', '몽고놈들'에서 보듯이 거침없는 비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불에 탄 절터에서 "부쳐도 쓸 업다. 졔 만일 영검?면 져 지경이 되어스랴."라고 서술한 것에서 확인되듯이 곳곳의 경치 완상 과정에 작가 자신의 소감이 개입되어 있다. 이러한 자기 내면의 솔직한 토로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젊은 나이(25세)에서 연유하는 것이겠지만 '연행가'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심화 학습 자료
'연행가'의 평가
'연행가'는 가사 작품으로는 드물게 장편인 탓에 노정이 자세하고 서술 내용이 풍부하여 다른 연행 가사에 비해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그리하여 김인겸의 '일동장유가'와 더불어 조선 전기의 양반 가사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후기 가사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외형상으로 주어진 평가와는 다르게 '연행가'에 대한 연구자들의 인식이 반드시 긍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실제 작품론에서는 공식 문학이나 보고 문학의 하나로서 취급되고, 세밀하고 이론적인 표현의 전개가 중심이면서 지나치게 사실성에 얽매여 있어서 그 문학성이 높지 못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 연행 문학으로서의 대표성에만 주목을 하였고 그것을 사행 가사의 하나로서가 아닌 그 자체로서 다룬 성과 역시 미미하다. 그래서 기행 가사 혹은 연행 문학이라는 하위의 유형 내에서도 같은 부류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인 우위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행가'의 의의와 한계
'연행가'는 가사 작품으로는 드물게 장편이며 노정이 자세하고 서술 내용이 풍부하다는 점과, 보수적인 의식의 소유자가 새로운 경험을 가사라는 장르 속에 충실하게 담아 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인정된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새로운 대상의 특성을 담아 내기보다는 작가의 보수적 의식을 앞세워 민족 의식 고취와 서구에 대한 경계만을 드러냄으로써 문제 의식을 발전적으로 형상화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또한 지나치게 사실성에 얽매여 그 문학성이 저해를 받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한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