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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석남 편집국장 |
[독서신문 조석남 편집국장] 갑오년 새해를 맞아 나름대로의 화두를 담은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넘쳐나고 있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 희망의 사자성어로 ‘轉迷開悟(전미개오)’를 선택했다. ‘미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열반에 든다’라는 불교용어이다. 가짜와 거짓,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올바른 것이 무언가를 깨닫고 실천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나, 우리 국민 모두가 이제 눈속임을 중단하고 정화된 마음으로 각성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가 어렵고, 다소 현학적인데 비해 재계의 사자성어는 현실적이다. 삼성그룹은 새해 ‘해현경장(解弦更張)’을 경영화두로 삼아 혁신과 도전을 추구한다. 해현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고쳐 매다’라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고 혁신함을 의미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경영의 사자성어로 ‘초심불망(初心不忘)’을 꼽았다.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포스코의 새해 경영전략은 ‘중원축록(中原逐鹿)’이다. 중원은 천하를, 축록은 서로 경쟁한다는 말로 ‘다투어 천하를 얻고자 함’을 뜻한다. LG그룹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 길을 개척한다’는 뜻의 ‘극세척도(克世拓道)’의 자세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만큼 불투명하고 어려운 글로벌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시장선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결연한 의지가 배어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지필묵으로 신년의 결의와 소망을 써서 걸어두고 일년간 마음과 행동의 지표로 삼았다. 묵을 갈면서 명상하고 치심(治心)하면서 붓을 들어 한지에 소망을 불어넣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 묻혀있는 꿈과 소망. 꿈이 막연한 기대감이라면 소망은 좀 구체적인 바람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결의 또는 소망을 사자성어에 얹어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으면서 발표하는 것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멀리는 가는 곳마다 휘호를 남기고, 또 유난히 구호를 좋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혁명완수(革命完遂)’<1962년>, ‘유비무환(有備無患)’<1972년>, ‘국론통일(國論統一)’<1975년> 등 ‘사자성어’라기보다는 ‘사자구호’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다작가에 들어가는데 1995년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히트작을 내놓았다.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를 가장 잘 구사했던 인사는 역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닌가 싶다. 한학에 밝았던 그는 풍류객답게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자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로 일갈했다. 1995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결별할 때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는 의미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통렬한 멘트도 날렸다.
국회에서 막가파식 드잡이가 일상화하고, 각 정당의 대변인들이 논평 때마다 막말 시리즈를 연발하는 요즈음 해학을 곁들여 고사성어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의도야 어떻든 상대방에게 직접화법으로 상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격조가 있어 보인다.
독서와 관련해서도 가슴에 새겨둘만한 사자성어가 많다. ‘독서삼도(讀書三到: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독서상우(讀書尙友: 독서함으로써 옛날의 현인을 벗삼다)’, ‘수불석권(手不釋卷: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늘 책을 가까이 하여 학문을 열심히 하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개권유익(開卷有益)’이라는 사자성어를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책을 펼쳐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는 말로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에 나온다. 우리 어르신들의 농 섞인 ‘책을 베고 자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책을 베든 머리 맡에 놔두든 가까이 하다보면 ‘개권(開卷)’을 하게 될 것이고, ‘독서삼매(讀書三昧: 아무 생각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수불석권(手不釋卷)’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義自見: 어려운 책이라도 백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된다는 말)’, ‘오거지서(吾車之書: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 많은 책)’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올해가 말(馬)의 해이긴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우보만리(牛步萬里: 우직한 소의 걸음이 만리를 간다)’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기 십상이다. 실천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이를 실행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뚜벅뚜벅 걷다보면 천리, 만리 길이 결코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