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 임연옥이사(서울영동교회집사)
4.절망
모금이 잘 안되어 자기의 마지막 소원이 관철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그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난 안되...뭐든 되는 게 없어...처음부터 그랬어...
시기적으로 일년여가 지나가니 온몸에 퍼진 암세포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다 했다. 섭생, 운동, 요양, 항암치료...
그 비싼 신약을 써 보는 것만 빼고,,,가끔 호흡곤란증이 오고 응급실을 들락거리다 보니 이젠내가 정말 죽나보다...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무섭다.
누군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자식들에게도 버림받고 이혼한 전 부인도 먹고 살기바빠 병실도 한번 찾지 않는다.
일년이 지나자 병상을 지켜주던 친구들도 지쳐서 낮에만 가끔 왔다간다.
70노인인 큰형이 며칠간 종일 간병하더니 그도 지쳐서 병이날 지경이다.
주위에선 간병인을 쓰도록 권했다.
문제는 돈이다.
수중에 돈도 없으니 응급으로 입원하는 병원비 또한 아는 사람들의 모금이나 형제, 자매들의 갹출로 메꿔야 했다. 그러나 병원에선 산소를 쓰게하고 기흉으로 인해 폐에 호스를 박고 통증 완화를 위한 몰핀을 투여하고...더 이상 해줄 일이 없단다.
병원비는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만 가고....
그러면서도 죽음이 임박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혼자 있기를 싫어하게 되 간병인도 써야하고. 암환자 요양원에 있다가도 힘들면 본인이 119를 불러 응급실을 찾고 또 이렇게 입원을 하고 임시 조치를 하고 견딜만 하면 또 퇴원한다.
이러기를 몇 번 하니 몸은 점점더 힘들어지고 주위사람들도 점점 지쳐간다.
이때가 호스피스봉사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봉사를 해야되는 시점이다
5.수용
홀로있다는 두려움...곧 혼자서 세상을 떠난다는 외로움. 통증에 의한 고통.....
병원으로 방문한 재가 호스피스봉사자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우선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두서없이 주절대는 마음속에 있는 얘기들, 두려움에 관한 얘기들을 들어주노라면
혼자 웃고 울다가 마음이 잠잠해지며,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되었다.
편안함이 온몸을 감싸게되면 자신의 죽음도 받아들이게 된다.
바로 수용의 상태이다.
이 과정이 같은 인간인 호스피스봉사자들에게도 자기극기를 요하는 힘든 기간이다.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는 이 기간동안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옆에 앉아 얘기도 들어주고 죽음에의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대개는 신앙심을 갖게 도와주어 죽음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마음을 달래준다.
그러나 어느분들은 끝까지 수용을 못하고 분노나 절망의 상태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분노에 차서 부릅뜬 눈으로 세상을 떠나는자.
보는 사람마다에게 나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자...
가엾고 불쌍하다.
봉사자들이 측은지심을 늘 가지고 봉사에 임해도 세상을 뜨려는 사람에게 시달리는 것이 힘들때가 많다.
많은 봉사자들의 정성어린 방문을 받고 애기를 듣고 본인의 처지를 돌아본 동생은 본인의 요청으로 용인의 샘물호스피스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환경이 좋아지고 밝은 햇빛과 따뜻한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는 모양이다.
놀랍게도 호스피스병원 입원 사흘만에 세례도 받았다,
코에서 산소줄이 조금만 비껴가도 금방 죽을 사람처럼 난리를 치던 그가 세례식 내내 산소줄을 벗고 성전으로 가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본인의 마음이 많이 편안해진 증거이다.
그러나 옆에 늘 누가 반드시 있어주길 원하는 건 외롭기 때문 일꺼다.
곁에서 수고해 주던 아산병원의 간병인을 보내고 백방으로 근처 단체에서 간병인을 알아보니 지불해야하는 수고료가 서울의 병원보다 4배정도를 더 주어야하며 그나마 구할 수도 없었다,
얼마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나도 계속 병상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 계속 간병인을 구해 보면서 혼자 좀 견뎌보라하니 혼자 견딜만 하다는 연락이 왔다.
식사도 잘하고 편안한 맘으로 면회오는 친구들과 애기도 잘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