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고난받는 데서 나타난 사도의 자격,
성도를 사도와 하나님과의 거룩한 교제로 초대
(찬송 6장)
2023-4-16, 토
맥락과 의미
고린도 후서 2:14-7:4은 사도직과 목사의 직분이 무엇인가를 얘기합니다.
6장은 1-6장 전체를 요약합니다.
3장에서, 사도의 직분은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게 하신다는 복음을 전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4장에서는, 사도가 말씀을 정직하게 전할 때 하나님이 복음의 광채를 비추신다고 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복음을 전할 때 생명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내세의 소망 가운데 고난을 참고 직분을 감당해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5장은 바울 자신이 자격 있는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고린도 교인에게 우리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6장은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복음을 흡수하여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합니다.
1. 은혜로 직분 받은 사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1-2절)
2. 사도의 자격: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십자가 고난의 삶을 살다(3-10절)
3. 복음 전하는 자에게 마음 문을 열라(11-12절)
4. 거룩하게 살라는 복음을 전파(13-18절)
1. 은혜로 직분 받은 사도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1-2절)
사도의 직분을 “함께 일하는 자,” “은혜”(1절), “직분”(3절)=”일꾼”(4절)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이 세 단어는 고린도전서 12:4-6절에서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한 말입니다. 거기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직분을 말합니다.
사도와 목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직분(‘디아코노스’)은 식탁에서 섬기는 종을 말합니다. 복음 전파자는 말씀의 식탁에서 주님의 백성을 섬기는 웨이터입니다. 일꾼으로서 일을 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들에게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성장해야 함을 말합니다.
2. 사도의 자격: 십자가 복음을 전하며 십자가 고난의 삶을 살다(3-10절)
4절에서 바울 사도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합니다.” 스스로를 추천합니다. 성도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달게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격이 있는 사도라는 것을 변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5절, 참 사도와 목사의 자격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6절, 바울 사도는 깨끗하게 살고, 지식과 성령의 감화와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일하였습니다. 8절, 악한 이름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습니다. 즉 명예롭게 대접받기도 하고 불명예스럽게 대접받기도 했습니다. 10절, 근심하는 것 같으나 항상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사도의 자격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말씀을 바로 전하고 그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받습니다.
3. 복음 전하는 자에게 마음 문을 열라(11-12절)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사도가 의도적으로 사례를 받지 않는 것도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그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있으므로 그들도 자기를 향해 마음을 열라고 호소합니다. 자신이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을 복음의 은혜로 다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합니다.
13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이 말과 비슷한 뜻으로 우리나라 고사성어에 ‘반포지효’라는 말이 있습니다. 까마귀는 늙은 어미를 잘 먹여 살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람도 그것을 본받아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영적 아버지로서 신실하게 일한 것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4. 거룩하게 살라는 복음을 전파(13-18절)
14절부터 다시 복음을 전합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믿지 않는 자와 하나가 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며”(레 26:12). 구약 성전에서, 그리고 지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은 영적으로 걸어다니고 계십니다.
“너희 중에 나와서 따로 있어라”(이사야 52:11).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에스겔 20:34,40). 즉, 거기서 나오게 하여 환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기 백성을 끌어내셔서 거룩하게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성도는 세상 가운데 섞여서 삽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세상의 악으로부터 나와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사무엘하 7:14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그의 후손이 왕으로서 다스리게 해주겠다고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다스림에 참여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거룩한 왕적인 다스림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전후서의 맥락에서 이 거룩은 지금까지 행해온 음란, 탐심, 분쟁, 서로와 사도에 대한 비난을 그만두는 것을 뜻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거룩한 성전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배 가운데 거룩하게 예배합시다. 삶 가운데서도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지금은 은혜받을 때입니다. 죄 용서의 복음을 계속 들으면서 죄 용서의 기쁨을 회복합시다. 죄 용서에 참된 쉼이 있습니다.
그 쉼을 더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져야 합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낮은 마음으로 자기 직분을 다합시다. 그리스도는 낮아짐과 고난 가운데 살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와 함께 하시면서 참된 쉼을 주십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합니다.”(10절) 이 기쁨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며 주는 기쁨입니다.
이 일을 위해 목사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목사와 교회로부터 권면과 책망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책망을 달게 받아서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목사는 핍박 가운데 힘들어도 굽히지 않고 힘껏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복음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부모의 역할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만 주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필요한 책망을 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내게 맡겨진 직분을 행하기 위해 어떠한 고난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고난 가운데서도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부요하게 한다는 그 이유로 기뻐하며 만족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고린도후서를 쓸 때의 상황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를 배격하는 상황에서 쓰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음행을 행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도는 그 일을 책망했고 권징하라고 강하게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죄를 지은 교인을 두둔하면서 오히려 사도를 비난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전서 편지를 쓴 후, 에베소에서 또 다른 눈물의 편지를 보냈습니다(고후 2:4, 그 편지는 남아 있지 않음). 또 방문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인들과의 갈등만 더 심해졌습니다. 계속 강하게 책망하면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강제로 억압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1:24). 그래서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자신의 제자 목사인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디도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디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참지 못해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 지역(그리스 북부)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디도를 만났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과 화해하길 원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7:7절).
바울이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갔던 것을 2:13과 7:5에서 말합니다. 그 사이에 낀 2:14-7:4은 사도의 직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고린도 교인은 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하면서 비난했습니다. 마치 그의 자격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요구하는 듯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자천한다”(스스로 추천한다)고 말해왔습니다(3:1, 4:2, 5:12, 6:4). 편지의 뒷부분에서 계속해서 말할 것입니다(7:11, 10:12,18, 12:1).
<참고> 함께 일하는 자(1절), 은혜(1절), 직분(3절), 일꾼
사도의 직분을 “함께 일하는 자”(쉰-에르고1절), “은혜”(1, 카리스), “직분”(3절)=“일꾼”(4절)(디아코니아)으로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이 세 단어는 고린도전서 12:4-6절에서 직분과 관련하여 한 말입니다. “은사(카리스마)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직분, 디아코니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엔에르게마)는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으니.”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직분을 말합니다.
<참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14절) 불신자와 결혼 금지
“멍에를 갈이하지 말라”(헤테로-쥐고)는 구약 성경 헬라어 번역본(셉투아 진트, LXX)에 명사(헤테로-쥐고스)로 한번 나옵니다.
레위기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자(헤테로-쥐고스: 히브리어-칼아임)와 교합하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칼라임)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칼라임)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신명기 22:9, “두 종자(칼라임)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동물, 곡식, 옷감에서 다른 종류(칼라임)끼리 섞지 말라고 합니다. 이 본문은 구약 백성이 이방인의 우상 숭배와 음행을 따르지 말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9:2),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 하신 말씀에 이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과 이웃 사랑을 올바로 실천하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이방인의 삶과 섞이지 않도록 훈련하려는 목적으로 이 계명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6:14도 불신자의 악한 삶과 우상 숭배를 본받지 말라는 맥락에서 이 말을 사용합니다. 성도의 거룩한 삶을 위해서,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 교배를 금지하는 것을 적용합니다. 성도가 믿지 않는 자와 혼인하는 것은 이종 교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구절에 근거하여 불신자와 혼인을 금했습니다. ‘헤테로-쥐고스’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고백서 24장 혼인의 제3절은 “불신자, 삶이 현저하게 악한 자, 이단을 추종하는 자들과 혼인하여 대등하지 않은 멍에를 메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근거 구절로 고후 6:16을 인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