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정사 시판大峯精舍 詩板
경북 영덕군 지품면 율전리 밤실 소재
遂謁于鳥嶺郵館書進一絶
大峯出海上
三字缺 思君
努力崇明德
在心不在文
[原詩 : 大峯逸稿 卷之二]
위 시는 차응주車應周의 문집인『대봉일고大峯逸稿』에 실려 있는 행장行狀(李中轍 撰)에 의하면 1546(丙午)년 2월에 조령우관鳥嶺郵館에 나아가 퇴계선생을 배알하였는데 이때 받은 시라고 한다. 퇴계선생문집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일시逸詩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구句가 시판에는 앞의 3자가 지워졌고 뒤의 2자 즉 ‘사군思君’이라고 새겨져 있고, 정사이건기精舍移建記에는 ‘하계이下繼以’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퇴계선생연보退溪先生年譜에 병오丙午(1546)년 2월에 빙부聘父의 장례를 위하여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퇴계선생연보보유退溪先生年譜補遺(上溪本)에는 병환이 있어서 실재로는 3월에 고향에 오셨다고 밝혀 기록되었다. 따라서 2월에 퇴계선생을 배알하신 것이 아니라 3월에 배알하셨을 것으로 확인된다.
대봉정사大峯精舍는 대봉공大峯公께서 조선시대 중종조中宗朝에 충청도 태원현 단월리(현재위치 미상)에서 예주禮州(寧海府의 古名) 대동봉 아래(현 위치 미상)에 옮겨 거주하며 대봉정사를 지었다. 여러 세대를 넘어 야성野城(盈德縣의 古名) 율리栗里로 이주하여 후손이 현재의 위치로 1914(甲寅)년에 옮겨지었다.
구성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기와 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전면에 루마루 형식의 계자난간을 설치한 툇간을 두었으며, 전면 양쪽 추녀에 활주로 받혀있는 것이 특징으로 보인다. 마루 가운데 뒤쪽 벽에 이건기移建記 편액이 걸려있고 오른편 방 전면 바깥벽에 제작시기가 오래되지 않은 듯한 퇴계선생 시를 새긴 시판詩板이 걸렸고, 왼편 방 전면 바깥벽에는 풍경을 그린 수묵화 액자가 걸려 있으며, 마당에 벌 수십 통을 기르며 마루 밑에는 양봉자재를 보관하는 등 관리는 소홀한 편이다.
율전리는 대봉공의 아드님인 차제동車濟東공이 개척한 마을로 안동에서 영덕으로 연결된 920번국도 영덕군 지품면 신안리에서 서북방향으로 지품초등학교를 지나 약1km의 거리에 위치한 속칭 ‘밤실’이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대봉공 주손인 사상의車相義씨를 비롯한 연안차씨延安車氏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며 대봉공과 그의 후손들의 유적遺蹟이 산재해 있고, 넓은 들이 없어도 단감농사와 양봉, 송이채취 등으로 소득이 높다고 한다.
마을의 여러 어른들이 답사에 도움을 주시고 분에 넘치는 환대에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특히 이 마을의 특산인 자연산 송이를 봄까지 보관하여 적炙을 만든 것을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일행 모두가 처음 맛보는 송이요리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