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취산은 4월이 되면 진달래로 온 산이 붉게 타오른다. 매년 영취산 진달래 축제가 개최되고, 축제 기간 중에는 산신제, 산상음악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상춘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봄이 되면 꽃을 통해 봄의 새 기운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지극 정성한 의례'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우리나라 3대 진달래 군락지 중의 하나인 영취산(靈鷲山)도 매년 4월 초순경 진달래 축제를 열어 그 붉은 기운을 함께 기리고 있다. 흥국사를 옆으로 하고 등산로를 30분 가량 올라와서 보게 되는 영취산 자락은 분홍색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만개한 진달래꽃이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낸다. 진달래꽃밭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데, 영취산 진달래축제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산신제가 영취산 진달래축제의 주축을 이루는 행사이다.
여수 영취산 중턱에 자리한 흥국사는 1195년(고려 명종 25)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창건되었다. 절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고 있다 하여 흥국사(興國寺)라고 했다. 보조국사가 이곳 흥국사에서 순천 송광사로 옮긴 후 흥국사의 사세는 급격히 기울게 되어 100여 년 가까이 토굴과 같았다고 하며, 이후 원나라의 침공 때 사찰이 모두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인 1560년(명종 15)에 법수대사가 중창했다.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관할하던 전라좌수영의 의승수군(義僧水軍) 거점이었다. 승병과 수군 지휘소이자 훈련소인 이곳에서 자운 · 옥형 두 스님의 지휘 하에 승병 700여 명이 호국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을 도와 활동했다. 왜란 기간 동안 호남지역 의병 · 승병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흥국사의 의승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일본군을 막아내는 일에 힘썼다.
후에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은 흥국사를 불태워 폐허로 만들었다. 이때 법당과 요사 등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624년(인조 2)에 계특 대사가 건물을 중창했으며, 1690년 법당을 증축하고 팔상전을 새로 지었다. 1780년에 선당(禪堂)을, 1812년에 심검당(尋劍堂)을 각각 중건했고 1925년에는 칠성각과 안양암을 새로 지었다. 흥국사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탱화, 홍교,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동종, 목조지장보살삼존상 · 시왕상 일괄 및 복장 유물이 있으며, 그 외에 다수의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