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섬(2)-마라도
최 화 웅
마라도는 잠들지 않는다. 모슬포의 모진 바람이 쉼 없이 흔들어 깨우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라산이 그리워서 상사병이 난 것일까? 오랜 세월 밀려온 파도가 만들어 놓은 기암괴석과 해식동굴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옆으로 아련하게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도 끝도 없다. 제주시인 문태길은 ‘마라도 등대’에서 “배 한척만 떠 있어도 섬은 외롭지 않다.”고 했다. 눈길이 끝나는 망망대해, 그 대한해협 너머 태평양을 향해 노을이 지고 등대불이 켜지면 마라도를 흔드는 파도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외로운 마라도의 밤은 물결 우는 소리가 절규하듯 신음한다. 신비의 섬, 마라도는 차마 마음으로 다스릴 수 없는 깊은 사랑의 병을 앓는다.
전설의 섬, 마라도는 시인 김순이가 펴낸 ‘제주도신화전설’에서 구전되는 설문대할망이 등장한다. 제주를 삼다도라 일컫는 것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탐라탄생신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은 키가 엄청 큰 거인이었다.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관탈섬에 걸쳤다고 한다. 제주 앞바다에 발을 넣으면 무릎 밖에 차지 않았단다. 거인할망이 처음 제주도를 만들 때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날랐다. 그러든 어느 날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흘러나온 흙이 여기저기 쌓여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할망이 빨래를 할 때는 빨랫감을 관탈섬에 풀어놓고 팔로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서서 발로 빨래를 문질렀다고 한다. 앉아서 빨래를 할 때는 한라산에 엉덩이를 걸치고 한쪽 다리는 관탈섬에 다른 한쪽은 마라도에 걸친 채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았다고 한다.
마라도(馬羅島)의 이름을 뜯어보면 그물에 걸린 말을 뜻한다. ‘羅 자’는 ‘깁 라’ 또는 그물 칠 라‘자로 말이 명주실로 짠 그물에 걸려 꼼짝하지 못하고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마라도는 모슬포 남쪽 11km 떨어진 섬이다. 1883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섬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무를 태워 화전을 일구는 통에 초원으로 변했다. 마라도에는 올레길이나 순례길이 없다. 오직 길이 있다면 험한 뱃길이 있다. 마라도로 가는 배편은 관광객들이 많이 타는 유람선은 송악산 서쪽 선착장을 떠나고 제주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정기 도항선은 모슬포항에서 출발하여 자리덕선착장과 살레덕선착장에 닿는다.
마라도 근해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은 모슬포 선창 주막에서 술을 마시며 너울과 그리움을 씻는다. 그 때 농담 삼아 “술값은 갚아도(가파도) 되고 말아도(마라도) 그만 아니냐?”고 억지를 부리며 술에 취하고 깬다. 해발 39m의 마라도에는 7만 평의 땅에 37세대 8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러나 마라도에는 있을 건 다 있다. 4.2km의 산책로 따라 살레덕 선착장으로부터 마라도 등대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서면 마라도 성당과 햇빛발전소, 장군바위와 최남단 기념비, 마라방송국과 기원정사, 그 옆으로 마라도 교회와 섬마을 선생님 한 분과 전교생 두 명이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을 지키고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치던 선전으로 전국에 이름난 짜장면 집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대문바위와 자리덕 선착장, 바람이 세찬 날이면 “나도 데려가 줍서”라고 울부짖는다는 애기업개 할망당까지 다양하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있는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에는 작은 경당, 뽀르치웅쿨라(portiuncula)가 있다. 큰 성당이 작은 성당, 오두막을 품었다. 프란치스칸이었던 민성기 요셉신부님이 마라도를 대성당으로 여기고 그 안에 작은 경당을 세웠나 보다. 마라도 성당은 전체 모형을 마라도에서 많이 잡히는 소라의 이미지를 형상화 하였다. 지붕은 단단한 전복껍질 모양이고 지붕 위의 동그란 부분은 문어발을 형상화하였다. 유리천정에서 빛이 들어오게 한 5개의 창은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상징한다. 마라도 경당은 이곳 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기도의 장소를 제공하려고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부산교구 대연 성당의 은인들이 세웠다.
해마다 여름이면 태풍과 쿠로시오가 올라와 이곳 바다를 뒤집어 놓는다. 조선 중기 제주에는 일본으로 장사를 가던 네덜란드 배가 거센 풍랑에 떠밀려오곤 했었다. 인조 5년(1627)에 네덜란드인 얀 얀스 벨테브레(Jan Janse Weltevree, 후에 박연이라는 이름으로 귀화) 일행 3명과 그로부터 26년 뒤인 효종 4년(1653)에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일행 36명이 제주에 표착하였다. 박연은 조선 여자와 결혼하고 무과에 급제해 훈련도감에 근무하면서 병기 개발에 큰 공을 세웠다. 한편 하멜 일행 8명은 13년 동안의 억류생활 끝에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가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하멜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직까지도 하멜 일행이 표착한 곳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용머리해안에 하멜기념비부터 세워지고 하멜이 타고왔던 스페르붸르호가 축소복원 되어 전시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표착지를 가파도와 마라도 주변 등 여러 곳을 추정할 뿐이다. 용머리해안을 하멜 표착지로 본 것은 그 부근에서 발굴된 네덜란드인 유골 등을 근거했다고 유흥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에서 밝히고 있다.
제주 섬 속의 섬, 마라도는 휠링의 섬이다. 마라도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은 교향곡의 스케일로 그 일렁임이 크고 웅장하다. 섬을 바깥에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 사계리 해안길을 돌아 산방산 아랫자락에서 용머리해안에 이르는 비탈길을 내려오다 보면 가파도와 형제섬, 더 멀리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 아름다워라. 햇살과 바람이 빚은 바다의 선율은 화려한 변주로 보는 사람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꽃보다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와 오름, 그리고 계곡의 초원이 마냥 푸르다. 섬은 현악기의 소리통으로 부풀어 올라 빠르게 흐르는 바다를 지나가는 고깃배들이 긴 꼬리를 물며 소리 지르는 아르코 같다.
오늘도 내 마음은 마라도를 향해 제주해협을 지난다. 그리운 마라도로 가는 뱃길에서는 바람 탄 파도와 바다 속 깊은 곳을 흐르는 조류의 몸부림을 만난다. 멀리서 보면 하얀 꽃파도가 피는 바다의 모습이 기갈 들린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의 제주해협은 진도 울돌목 다음으로 바닷물의 흐름이 빠른 곳이다. 쿠로시오(黑潮)가 올라오면 마라도를 잇는 뱃길에는 너울이 심하다. 끝내 삼각파도가 덮치는 날 짙푸른 바다는 발버둥 치며 운다. 그 험한 바다를 건너는 것은 뛰어난 항해술이 아니고 너를 만나는 순수함이다. 박연과 하멜은 그 바다를 지나지 못하고 기어이 내려야 했었다. 바다를 지나는 것은 너와 함께 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리라. 바다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늘로 오르려나 보다.
첫댓글 마라도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하는 이야기였죠.
참나리님! 탐라창조신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이야기보다
스케일이 더 크고 흥미롭지 않습니까?
제주의 정체성을 거기서부터 찾았으면 한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감상해 봅니다. 마라도! 이렇게 생생하게 글로 주심. 제주사랑에 감탄합니다.
섬 속의 섬 마라도. 우도를 천천히 걸으며 내 맘 속에 넣을때까지,,,기다리며 계속 제주사랑에 빠져 보고픕니다.
그리움님! 제주사랑 주신 만큼 조금이라도....주님 은총,행복한 나날이시길....
감사합니다.^*^
차사랑님! 사랑은 새로운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주의 섬, 우도와 마라도는 관탈섬과 함께 탐라창조공간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이 깊어가는 제주에서 한 달만 살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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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에서 마라도을 가지 못한게 그리움님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가슴속에 마라도을 남겨두시네요
잘계시죠 한번 찾아 뵙고 순례의 이야기며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아데초이에서 커피한잔 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예, 아가다님! 제주의 이야기는 충분히 숙성시킨 뒤에 이야기하셔야 제 맛이 날 겁니다.
기회봐서 우리 아데초이의 레몬에이드와 연어샌드위치로 브런치를 하시죠. 감사합니다.
저도 끼워 주시면 안되나요? 보고싶은 분들 이네요.저도 분위기 맞춰 드릴 수 있는데요. 즐건 시간 되세요 죄송합니다.^*^
차사랑님! 환영합니다. 송정해수욕장 주변에 대한 가이드도 해드리죠.
언니원장님이랑한번내려오세요환영합니다송정바닷가의아름다움즐거보시죠보고싶습니다왕언니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제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려요.
마라도에 있는 소라의 이미지를 형상화 했다는 마라도 경당도 꼬옥 가보고 싶네요.
울릉도에 있는 오징어 배를 형상화한 성당에는 갔었거든요.
저희에게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꿈을 심어주심에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
성모님의 달에 건강하시고 평화로운 나날 되세요.
청초이님! 두꺼운 전복껍데기를 형상화한 마라도 경당의 지붕은 우리의 自我를 형상화 했답니다.
영원한 프란치스칸 요셉 신부님이 오늘 따라 그립습니다. 아름다운 섬 속의 섬, 마라도 전체를 대성당으로 여기고
작은 경당, 뽀르치웅쿨라를 세우신 안목이 정말 놀랍습니다.
부디 충만한 5월 지내십시오.
국장님 글을 읽으니 가만히 앉아서 마라도 여행을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금당님! 그랬었군요.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랬는데 틈나시면 한 번 가보시죠.
고맙습니다.
지붕은 단단한 껍질 모양이고,지붕위는 문어발을 형상화 한 경당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저는 도보순례 가기전 갔다 왔는데~그리운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마라도의 섬을 떠올려 봅니다. 제주도의 사랑에 푹 빠지신 그리움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강엘리님! 단단하고 두꺼운 전복껍질은 우리의 자아(自我)로 비유할 수 있겠죠.
경당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셔던 프린치스칸 민성기 요셉 신부님의 영성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마라도를 대성당으로 생각하고 그 안에 뽀르치웅 경당을 세우신 뜻을 되새기게 됩니다.
오! 아름다워라. 내 사랑 제주여, 우도여, 마라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