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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진화론:하나님이 진화를 통해 창조하셨다?
I. 들어가는 말
우주는 과연 그 시작이 있었을까? 아니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것일까? 20세기에 와서 천문학의 발달로 우주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작점이있다는 증거들이 과학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빅뱅(big bang, 우주대폭발)을 통해우주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단적이 예이다. 우주는 아무리 방대하고 그나이가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라, 분명 시작된 시점이 있고, 앞으로도 영원하지 않은 제한적 실체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출현하게 된 것일까?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닮은존재로 지음 받은 것일까?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출현에 관한 문제는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이해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 것과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믿는 것은 인간의 삶에 확연히 다른 영향을 끼친다. 전자의 경우,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존귀하며 사랑받고사랑하며 살 분명한 목적이 있는 존재인 반면, 후자의 경우, 인간은 우연의 결과물로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지배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세계가 무엇이며 그 가운데 있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사는 삶은 모르고 사는 삶과 확연히 구분된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능력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기성찰 능력이다. 동물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이 그저 생존 본능에 의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궁극적 운명은 무엇인지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에게 세상이 무엇이며,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세상과 인간이 저절로 생겨난 우연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물질과 감각의 세계가 전부이며 신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그 가운데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일 뿐이다. 반면, 세상과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결과라고 한다면, 인간의 삶에서 하나님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인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생명이 어떻게 출현하였는지를 다루는 연구에 의하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대략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 그리고 생명체가 하나님의 직접적인창조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둘째, 진화론(進化論, evolutionism)은 찰스 R.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이 『종의 기원』(1849)을 출간한 이래 과학계에서 마치 진리인 양 받아들여져 온 이론으로서, 우주의 시작과 생명의 출현을 우연의 결과로 보는 입장이다. 끝으로,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이 있는데, 이것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고 하는 입장으로서 대개 진지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다윈의 무신론적 진화론이 소개된 이래 그것은 유신론적 창조론과 대척점을이루면서 둘은 끊임없이 경쟁관계에 있어 왔다. 기원에 관한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의 논쟁은 과학과 종교의 문제로 간주되면서 상당부분 오해된 면이 있다. 즉, 진화론은 과학적 진실이지만, 창조론은 종교적 신념으로서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둘 사이의 논쟁을 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선입견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창조론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신념이라는 생각도,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실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도 오래 전에 일어난 생명의 출현을 목격한 사람도 없을 뿐더러 또 그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험과 관찰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진정한 과학적 이론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에서는 창조론을 배우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우고 또 그것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 생각하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인간의 기원에 관한 정체성의 혼란은 창조론을 진화론적 기반에서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도인 유신론적 진화론 혹은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1을 탄생시켰다.
II.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A. 용어의 정의
유신진화론(有神進化論, theistic evolution)은 창조론자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하면서도 진화라는 수단을 수용한 입장으로서 “신앙과 과학의 통합” 2을 꾀하는 시도이다. 유신진화론은 다른 말로 “진화적 창조” (evolutionary
creation)3라고 칭하기도 한다. 자연주의적 진화론은 신의 존재자체를 거부하는 반면, 유신진화론은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창조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6일 동안 직접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진화의 과정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도 이런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출현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이다.
유신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유신진화론은 단순히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중간입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한 여러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진화’란 단어만 해도 그 의미의 폭이 상당히 넓은데, 마이클 A. 하빈(Michael A. Harbin)은 다섯가지를 제시한다.4
첫째, 많은 경우에 변화나 일련의 변화를 가리킬 때 진화란 단어를 사용한다.
둘째, 진화란 종(species) 내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나 변이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셋째, 종의 변천을 의미하는 대진화 대신 소진화(microevolution)를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넷째, 일반 진화(general evolution)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무기물로부터 나온, 하나의 근원에서부터 출현했다는 통상적 의미의 진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섯째, 진화는 우주론적 진화(cosmological evolution)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이 논문에서는 네 번째 사용된, 무생물로부터 기원한 단일 생명체로부터 모든 생명체가 출현했다는 진화 사상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기원에 관한 문제를 논할 때, 전통적으로 기독교와 세속 문화 사이의 전쟁은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전쟁” 5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둘 사이의 전쟁은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진화론도 두 종류로 나뉘는데, 전통적인 무신론적 진화론과 새롭게 제기된 유신진화론이다.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이 곧 무신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진화론적인 방식으로 창조를 설명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통상적으로 학교의 과학 교과서에서 제시되는 이론으로서, 신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순수한 진화의 결과로 생명체가 출현하였고, 인간도 그 진화의 결과라는 입장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의 든든한 지원 아래 일반 공립학교와 학계에서 과학적 정설로 인정되는 기원에 관한 이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유신진화론은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6일 동안의 짧은 시간이 아닌, 오랜 기간 동안 진화의 방식으로 우주와 만물,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들이 아
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로 믿는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이 진화라는 방식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은 창세기 1장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이 6일 동안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특별 창조(special creation)” 를 믿어왔다.6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면서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을 둔 현대 과학의 주장을 수용한 입장이 유신진화론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진화론은 어떤 초자연적 존재도 배제한 채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철저하게 자연주의적이고 무신론적이다. 사회적으로도 공교육을 받는 지성인들에게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하나의 사실처럼 인식되는 반면, 창조론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적 확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출현하게 된 것이 유신진화론인데, 이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진화론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둘의 입장을 다 수용하여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들의 주장의 요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이론으로 받아들이는 게 가능하다.” 는 것이다.7 문제는 이것이 과학과 신앙의 통합을 이루어내려는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창조론자나 진화론자 모두에게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B. 유신진화론의 두 유형
유신진화론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하나님이 진화의 방식을 통해 창조하시되, 특정 단계에서만 특별한 초자연적 개입을 하신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오로지 진화의 방식으로만 창조하셨다는 입장이다.8 둘의 공통점은 창조자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점과 창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진화라는 점인데, 여기서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이다. 전자는 초자연적 개입을 허용하고, 후자는 철저히 자연적 방식에 의존한다. 전자의 입장을 ‘초자연적 유신진화론’(supernatural theistic evolution. STE)이라 부르고, 후
자를 ‘자연적 유신진화론’(natural theistic evolution, NTE)이라 한다.9 유신진화론의 전통적인 형태는 ‘초자연적 유신진화론’(STE)이었는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A. A. 하지(A. A. Hodge), A. H. 스트롱(A. H. Strong), 벤저민 워필드(Benjamin Warfield), 제임스 오르(James Orr)와 같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이 입장을 견지했다.
‘초자연적 유신진화론’은 우주의 창조, 생명체의 출현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허용하는 입장이다. 예컨대, ‘초자연적 유신진화론’은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뿐만 아니라 자연적 과정을 통해서도 유인원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하셨다.” 10고 주장한다.
그런데 ‘자연적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던 전통적 입장을 철회하고 순수한 진화의 방식에 의존한 창조를 주장한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신적 행위 전체를 거부한다.” 11
최근 들어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 전혀 없이 “오로지 자연적인 진화의 방식으로만 이 세상의 생명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유신진화론을 대표하는 견해로 개진” 되고 있다.12
‘자연적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로는 하워드 J. 밴 틸(Howard J. Van Til)과 드니 O. 라무뢰(Denis O. Lamoureux)를 들 수 있는데, 밴 틸은 “진화적 창조” (evolutionary creation)13라는 용어를 통해 유신진화론을 설명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애초에 창조물 속에 완전한 능력이 갖추어진 상태로 창조하심으로써, 어떤 기적적 개입이 없이도 스스로 자연법칙에 의하여 생명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이를 ‘완전한 능력을 갖춘 창조’(fully gifted creation)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14 하나님의 창조물 속에 모든 재창조의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창조 가운데 하나님의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개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라무뢰의 유신진화론은 현재 우리의 일상적 경험이 “우주가 시작된 기원과 같은 과거에도 동일하게 작용을 하였다는 믿음에 기초” 하고 있다고 밝힌다.15 생명이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작동하던 원리가 생명이 나타난 지금의 세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탐구함에 있어서 자연 법칙 이외의 어떤 초자연적 개입도 불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는 자연이 자아 충족적인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 유형이 어떠하든 유신진화론자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우주의 창조주로 인정함과 동시에 진화론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원리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
해 창조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는 것이다.16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화론을 믿는 것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유독 창조에서만 자연적인 방식이 아닌 “오직 기적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를 제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는 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원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7
그렇다면 기원에 대해 과학과 성경의 묘사가 충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입장을 취할까? 유신진화론의 신학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신학의 기본전제에 따르면, 종교와 과학은 불일치할 수 없다. 그런데 실상은 둘의 의견이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를 6일 동안 마무리하신 것으로 나오는데, 과학은 세계와 생명의 출현이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한 것이라고 본다. 현저한 의견 불일치 앞에서 유신진화론은 과학적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18 그 대신 성경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서 성경을 거부하거나 둘이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런 주장은 하나님이 성경의 저자일 뿐 아니라, 자연의 창조자라는 사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예컨대,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창조를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에서 진화라는 원리를 통해 생명의 창조를 보여주신다고 본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둘은 다른 측면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를 “상보적 모델” (complementary model), 즉 “과학과 신학은 세상에 대한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영향을 주며, 상호 경쟁하지 않는 묘사들” 이라고 부른다.19 레이먼드 그리즐(Raymond Grizzle)에 따르면, 두 분야는 각각 다음과 같이 다른 질문들을 한다. “과학은 방법을 묻고, 신학은 이유를 묻는다.” 20 둘은 각각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동일한 척도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둘의 다른 측면들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이 모델의 주장이다.
미국 성공회에서 출판된 『창조교리문답』에서는 “과학과 기독교 신학은 진리와 이해를 탐구하는 데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 21고 주장한다. 상보적 유신진화론의 요지는 “성경의 자연에 대한 계시가 객관적이며, 그런 만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도 객관적 사실” 임을 강조한다.22 상보적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을 각각 주관적 영역과 객관적 영역으로 구분하여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진화의 원리 자체가 창조의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창조를 객관적인 사실로 강조한다. 그들은 성경의 저자도 하나님이고 자연의 창조자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과학이 창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성경이 창조에 대해 말하는 것의 진정한 해석으로 보아야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을 통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분명하고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모델이 가진 문제점은 하빈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자로서 과연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23 거대한 자연의 법칙 앞에서 하나님이 설 자리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성경과 과학에 대하여 상보적 유신진화론과 다르면서도 유사한 면을 동시에 가진 입장이 있는데, 이것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제시한 것으로서, 흔히 ‘노마’(NOMA, Non-overlapping Magisteria: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24 이것의 핵심 논점은 종교와 과학이 별개의 교도권에 속한 것이므로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질문들을 다루며, 둘을 별개로 취급해야 양자가 조화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보적 유신진화론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별개로 본다는 것이다. 둘을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본다는 것은, 과학은 실제의 세계를 다루는 것인 반면, 종교는 천사, 하나님 등과 같은 비실제의 세계를 다룬다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학은 현실적 세계를 다루고, 성경은 가상적 세계를 다룬다며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인데, 이는 기독교 입장에서 수용하기 곤란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유신진화론이 굴드의 ‘노마’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굴드의 방법론은 상보적 유신진화론과 유사한 면을 지녔다. 결국은 둘 다 성경과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현저한 견해
차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이지만 여전히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C. 유신진화론의 주장
유신진화론을 평가하기에 앞서, 우선 오늘날 대다수의 자연적 유신진화론
이 공통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는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신진화론은 우주와 생명의 출현에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유
신진화론은 기원문제에 있어서 전통적 진화론이 취하는 “방법론적 자연주의
(methodological naturalism)” 혹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 25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거부한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란
자연과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 “방법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거부
하는 연구 방법론 이다. 즉, 본래 자연이 자연 스스로 있었다는 전제, 곧 자연주의
의 전제에 따라서 연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6 우주와 생명의 출현에 있어서
무신론적 진화론이 지닌 한계를 자각하고, 우주의 출현과 생명의 출현 등과 관
련하여 자연주의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유신진화론은 그 해결책을 하나
님에게서 찾는다. 이런 입장을 일컬어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이라는 용어
로써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자연에서 설명할 수 없을 때, 초자연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이 안 되는 곳에 하나님을 초청하여 그 빈 곳을 채
우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틈새의 신’이라고 부른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자연법칙 하에서 이루어졌다고 주
장한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법칙이 과거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는 전제 하에서 이런 주장을 펼친다. 자연 자체의 기능적 완결성 때문에 생명은
태초에 하나님이 수립하신 법칙에 따라 추가적인 신적 개입 없이도 물질에 부여
된 잠재적 가능성이 발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의 주장의 핵심은 모든 생명체의 출현에 하나님이 일일이 직접 개입하신 것이 아니라, 자연 자체에 부여된 기
능적 완결성에 의해 추가적으로 생명들이 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는 것이다. 프랜시스 S. 콜린스(Francis S. Collins, 1950~ )는 유신진화론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공간과 시간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이를 규율하는 자
연법칙을 확립하셨다. 내버려두었더라면 불모의 공간이 되고 말았을 우주에 생
명들을 번성시키기 위해 하나님은 진화라는 우아한 방법을 선택하셔서 모든 종
류의 미생물, 식물 및 동물들을 창조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이와 동일한 방
법을 선택하셔서 지성,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을 인정할 자유의
지 및 욕구를 지니게 될 특별한 생명체가 생겨나게 하셨다.” 27
콜린스의 유신진화론은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시사한다. 우선 하나님이 우주
의 창조자임을 인정한다. 이 점은 무신론적 진화론이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지만
유신진화론의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자 하나님은 자연계에 물
리학의 법칙들과 정교하게 만들어진 초기 조건들을 설정하신 존재이다. 그 하나
님은 최초의 우주와 생명의 창조뿐 아니라, 그 우주를 존재하도록 유지하는 일
을 하신다. 여기까지는 대다수의 유신진화론자들이 이견 없이 동의한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에 대한 그의 견해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점이 발생한다. 하나님은 다
양한 생명체들을 창조함에 있어서 추가적인 초자연적 개입 없이 계속적으로 진
행하시는데, 인간의 출현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특별한 조치가 이루어진다. 점
진적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미 출현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특별한 형상을
부여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주의 원초적 창
조와 생명의 창조, 그리고 인간의 창조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고 초자연
적 개입을 하셨다. 데이비드 H. 레인(David H. Lane)은 “물질의 기원, 무생물로
부터의 생명의 기원, 인간 속의 영적 특성” 을 포함하는 여러 시점에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 이 필요하다고 보았다.28
사실 이런 입장은 일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까지 와서 단
지 아직 생명의 기원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없다는 이유로 ‘틈새의 신’을 도입한
다는 것은 일관성을 잃은 처사이다. 생명의 기원과 발전이 생명이 발생하기 이전
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일관성이 있을 것이다.
물질의 기원, 무생물에서의 생명의 기원, 인간의 출현 등에서만 하나님이 초자연
적인 개입을 했다는 사실은 불합리해 보인다. 이 입장은 근본적으로 자연적 유신
진화론의 입장을 취하지만, 인간의 창조에 초자연적 개입을 허락한다는 점에 있
어서는 두 유신진화론 사이의 중간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이 입장이 여전히 진
화론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이미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출현한 사람,
즉 유인원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셋째, 유신진화론은 화학적 진화나 진화 메커니즘 등과 같이 신뢰할 만한 과
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46억 년에 달하는 지
구의 나이가 더 과학적이라 생각한다. 40억 년 전에 무기물로부터 간단한 유기물
이 출현하고, 여기서부터 더 복잡한 유기물이 나오고, 또 세포가 탄생하여 결국
생명의 기원이 되는 세포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생명의 진화
에 대한 다양하고 광범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화석 기록과 지
층 내의 화석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또
한 자연선택과 돌연변이가 진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종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상동성(相同性, homology)을 공통 설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공통
조상의 증거라고 주장한다.29 진화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딜레마 중의 하나
인 중간종의 부재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요한 변화가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 ‘단속평형
설(斷續平衡說, punctuated equilibrium)’30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 비켜가
고자 한다.
오늘날 학계에서도 전통적 형태의 진화론이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는 점
을 인정한다. 우주의 출현에 대한 설명은 고사하고, 무기물로부터의 생명의 출현,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 등 어느 것 하나 만족할만한 과학적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과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은 기껏해야 종 내에서의
변이 같은 소진화(microevolution)31 정도이지 원숭이가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종의 분화를 의미하는 대진화(macroevolution)는 아니다.
III. 유신진화론의 문제점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을 전제로 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서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만연한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기독교 신자들조차 유신진화론을 창조론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입장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은 창조자 하나님을 인정하고, 또 현대 과학의 주장도 받아들인다는 포용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양하고 복합적인 근본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사실상 이것은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모두에게 거부당하는 입장이다. 진화론자들은 당연히 우주와 생명의 기원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전제로 하는 유신론적 전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창조론자들 역시 진화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의 방식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있어서 창조자 하나님을 인정한 것은 진화론에서 진일보한 것이 분명하지만, 유신진화론은 여러 근본적인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 문제들 중 몇 가지만 꼽으라면, 우선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성을 부정하고, 타락 전 죽음을 전제함으로써 신학적 문제를 야기하고, 성경의 본질적 가르침들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들을 공공연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사실과 불일치할 시 성경을 재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성경을 거부하게 한다.
A. 신학적 문제
유신진화론은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그것들 중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전능성에 심각한 상처를 입힌다.
“유신론적 진화 체계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는 전능하신 주님이 아니다.” 32
하나님이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실 능력이 있는데, 왜 굳이 오랜 세월 동안 진
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창조하셔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대답이 궁색하다. 창세
기 1장은 하나님을 단 6일 만에 태양계를 포함한 별들과 지구상의 생명체를 다
만드신 분으로 언급한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는 방식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문제를 취급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세상을 순간적으
로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자신이 이미 세워놓으신 자연법칙, 곧 자체적으로
충족된 시스템에 창조의 일을 맡기셨을 수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또한 하나님의 전능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
신의 법칙에 갇혀서 활동에 제약을 받으시는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 경
우, 하나님은 성경이 말하는 절대자이자 전능한 존재와는 거리가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존재라고 한다면, 창조에 있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필요
로 했을 리가 없다. 창세기 1장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전능자이므로
말씀으로 일순간에 무수한 생명체들을 만들 수 있는 분이다. 따라서 유신진화론
자들처럼 자연법칙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자신이 제정한 그 법칙 안에 가둔다면,
이는 심각한 모순이다. 자연법칙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것들이 아무리 기
적적인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놀라지 않고 당연시하지만 그 법칙 밖에서 일
어나는 기적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창조자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법칙 안에서뿐만 아니라, 그 밖에서도 활동하실 수 있는 존재이
다. 그는 법칙 안에서의 자연적 방식뿐 아니라, 법칙 밖에서의 초자연적 방식으
로도 일할 수 있는 전능한 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죽음이 필연적으로 전제된 진화론을 기초로 한 이론으로
서, 죄의 결과로 인간의 운명이 된 죽음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
한다.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는 타락의 교리인데, 이는 최초의 인류 아담
과 하와의 타락으로 이 세상에 죽음이 이르러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음은 인
류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로서 모든 피조세계에 임하게 된 비극적 운명이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은 “수십억 년에 걸친 동물들의 죽음의 행렬을 통해
인간이 창조되었음을 주장” 함으로써,33 죽음을 타락의 결과로 보는 성경의 가르
침을 부정한다. 진화론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는 자연선택설(自然選
擇說)에 따르면, 약자들은 언제나 강자들의 먹이가 되어 왔다. 유신진화론자들
은 이 자연선택을 “하나님께서 창조의 활동 가운데 하나로 사용하시는 창조 과
정” 이라고 주장한다.34 이를 통해 개체수를 조절할 뿐 아니라, 다양한 종이 발생
하는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신진화론은 “죽음, 파괴, 질병, 고
통, 그리고 고난이 아담과 하와의 선조들에게서 수백만 년 동안 지배” 35했음을 전
제한다. 그런데 창세기 1:29~30에 따르면, 동물의 세계도 육식이 아닌 채식이었
음을 알 수 있다. 강한 자가 먹고 약한 자가 먹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
는 타락 이후에 이 세상에 들어온 동물계의 먹이사슬 체계이다.
유신진화론자인 게리 엠버거(Gary Emberger)는 타락 전 죽음과 타락 후 죽
음의 문제는 다양한 창조론의 유형들 가운데 어느 것이 적절한가를 판단하는 결
정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타락 전 죽음을 전제로 하
는 유신진화론자들과 달리 창조론자들은 타락 후 죽음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죽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것으로서 사실상 신학적으로 대단
히 중요한 문제이다. 창세기 3장에 따르면, 인류가 타락하기 전에는 죽음이란 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부터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즉, 죽음의 문제는 단순히 죽음의 문제가 아닌 죄의 문제와
직결된 중요한 이슈이다. 만약 죽음이 죄가 들어오기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존
재했다면 창세기의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따라서 창조
론을 믿는 자들은 타락 전 죽음을 전제로 하는 진화 사상이 들어간 어떤 것도 용
납할 수가 없으며, 유신진화론도 물론 그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유신진화론은 창세기의 초반부에 나타난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의 역사
성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유신진화론자 앨런 리처드슨(Alan Richardson)은 성
경의 첫 몇 장들이 진정한 역사 대신 “위대한 신화들” 을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36
아담이란 존재는 역사적 인물이 아니며, 죽음의 원인인 타락도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상징적인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둘
째 아담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도 역시 무의미해진다. 바울은 아담의 역사성을 구
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과 결부시키는데, 이를 죽은 자의 부활의 근
거로 삼는다(고전 15:12~23). 유신진화론의 성경의 역사성에 대한 부정은 결과
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비판하고 부정하기에 이른다.37
유신진화론의 근본적 입장은 창세기 1장의 창조주간의 역사성을 거부하고, 창
조주간의 하루를 오늘날과 같은 24시간이 아닌, 긴 세월로 본다. 창조주간의 6일
동안 매일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하나님에 의해 즉각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
라,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김병훈에 따르면, 에덴의 세
계는 애초에 현재 우리가 겪는 세계와 같이 질병, 죽음, 포식동물들, 폭풍, 지진,
그리고 다양한 재난들이 존재하는 세계였다.38 따라서 창조주간 6일과 관련된 문
제는 성경의 재해석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로서 단순히 역사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재해석도 단순히 해석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기독교의 본
질적 가르침을 거부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B. 성경의 재해석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유신진화론은 창조자를 전제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6
일간의 창조 대신 오랜 세월을 통한 진화의 과정으로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점진
적 창조(progressive creation)의 입장을 견지한다. 여기서 6일간 창조가 이루어
졌다는 성경과 오랜 세월 진화의 과정을 통과했다고 보는 과학이 정면으로 충돌
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성경과 과학이 충돌하는 갈등의 상황에서 유신진화론은
언제나 과학 편에 손을 들어준다. 창조는 이루어졌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루
어졌다고 한다면, 성경이 주장하는 6일 창조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황에
서 유신진화론자들이 택한 것은 성경의 주장 전체를 폐기하는 대신, 성경을 재
해석함으로써 둘 사이의 충돌을 회피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패틀 펀(Pattle Pun)
의 주장처럼, 유신진화론자들이 선택한 방식은 “믿는 과학적 근거들을 기초로성경을 재해석” 하는 것이었다.39 창세기 초반부의 역사성을 받아들일 경우 발생
하는 과학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야기되는 이슈들로
는 창조주간의 하루, 안식일, 아담의 존재 등 여러 가지다.
첫째, 창세기 1장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오랜 세월이라는 유신진화론의 주
장은 불가피하게 하루에 대한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40 창조주간의 하루를 문자
적 하루가 아닌, 수백만 년에서 심지어 수억 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로 해석한다
면, 과학이 이야기하는 진화론과의 충돌은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윤철호
는 이 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기서 날은 문자적으로 하루 24시간
으로 구성된 날이 아니다. 첫 3일 동안은 태양, 달, 별, 하늘도 없는데, 무슨 24시
간으로서의 날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몇 마디 말씀만으로 창조가 진행된 6일을
실제적인 144시간으로서의 한 주간으로 이해하는 문자적 해석은 넌센스가 아
닐 수 없다.” 41 그런데 문제는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오랜 세월로 볼 해석학적 근거
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 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 ‘욤’(yôm)이
란 단어는 구약에서 언제나 24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문법적으로
나 신학적으로나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실제적 하루가 아닌 상징적 하루로 볼 근
거가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에 있어서 굳이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하
지 않으신다는 것 역시 상식적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이 만드신 자연 법칙
에 예속되어 오랜 세월 동안 창조하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창조하셨다고 가정하더라도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창세기 1장의 첫 6일이 상징
적 시간으로서 긴 세월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셋째 날과 넷째 날 사이에 일어난
창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날에 오랜 세월에 걸쳐서 식물이 창조되
고, 다음날인 넷째 날이 오기까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태양이 창조되었다고 한
다면, 식물은 출현하는 과정에서 멸종되고 말았을 것이다. 태양이 없는 상태로
그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는 식물은 없기 때문이다. 식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사실상 존재가 불가능한데, 이는 태양을 통해 식물이 자
라고, 동물들은 그 식물 섭취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 받게 됨으로써 생존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수백만 년이나 수억 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이
라고 할 경우, 이런 결정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둘째, 유신진화론이 주장하듯 창세기 1장의 하루를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긴
세월로 본다면, 안식일이란 개념도 그 의미를 상실한다. 만약 창세기의 하루가
오랜 세월이라고 할 경우, 창조의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고 난 후 제7일에 안식하
셨다는 성경의 가르침 역시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제7일이 문자적인 날이 아닌
상징적인 날이 되면, 성경이 가르치는 제7일 안식일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상실
하게 된다. 왜냐하면 제7일이 실제적 시간이 아니고 상징적 시간이라면 오늘날의
안식일과는 무관한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주간 6일을 마치면
서 주어진 제7일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서 1주일이란 시간 단위의 매듭과도
같은 것이다. 제7일 안식일이 만약 상징적인 수로서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것으
로 재해석된다면, 창세기의 창조주간 이후에 등장하는 제7일 안식일은 모두 실
제적 주일(週日) 중 마지막 날을 가리키는 문자적 의미의 안식일로 적용하기에 곤
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성경의 재해석을 통해 과학과의 충
돌을 피하는 듯했지만, 오히려 성경을 거부하는 더 심각한 문제만 야기할 뿐이었
다. 결과적으로 유신진화론의 하나님은 자연법칙에 두 손과 두 발을 완전히 묶인
채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IV. 나가는 말
A. 유신진화론의 문제점들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유신진화론
은 우주와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분명 창조론의 한
유형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창조의 방식이 창세기 1장의 묘사와 달리, 오랜 세
월 동안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창조론이라기보
다는 진화론에 가깝다. 특히, 오늘날 대세로 자리 잡은 유신진화론이 제시하는 주장들은 중요한 신학적 문제들을 안고 있다.
첫째,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의 모습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더 나아가서 성경의
가르침들을 거부하게 한다. 이신론(理神論, deism)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유신
진화론자들의 하나님은 창조하신 다음 뒷짐을 지고 있거나, 혹은 더 나아가서
아예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만 보는 존재이다. 자연 자체가 스스
로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로서 창조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할은 축소되고, 하
나님은 사실상 자연법칙에 예속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따르면, 성경의 모든 기적들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성경의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
하신 존재로서 자연법칙을 통해 “만물을 붙드” 시고(히 1:3) 보존하시는 존재이지
만, 때로는 필요에 따라 법칙 바깥에서 일하시는 분으로서 온갖 기적들을 베푸
시는 존재이다.4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자연적 방식이든
초자연적 방식이든 그들은 모두 초월적 능력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예컨
대, 지구가 정확한 속도로 자전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궤도를 유지하며 공전
하는 것은 자연법칙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창조자 하나님의 붙드시는 사역
의 결과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적(奇蹟)이라 일컫는 사건들보다
결코 덜 초월적인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자연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이 오히려
초월적 능력을 더욱 잘 드러낼지도 모른다. 둘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규칙성을
띤다는 것이고, 후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초월적 능력으로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것을 자신이 제정하신 자연법칙 안에서 초월
적 능력으로 유지하시는 분이다.
둘째, 유신진화론은 아담의 타락과 홍수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상징적 사건들
로 이해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거부로 끝나지 않
는다. 이런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는 “창세기 1~2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
훼가 우주와 인간의 창조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다. 하나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
는 것은 저자의 관심사도 아니며 성경의 주제도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42 여기서 사용된 언어는 문자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비유 언어” 라는 것이다.43 이는 단순히
성경에 대한 재해석에서 끝나지 않고 성경 전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는데, 이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경을 불신하는 것이므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
다. 유신진화론이 창세기 초반부의 사건들을 역사가 아닌 상징들로만 본다면, 신
약이 인정하고 가르친 아담과 하와의 존재와 인류의 타락, 홍수 등은 상징 내지
는 비유 언어에 불과한 것들이 된다. 심지어 예수 이야기조차 역사적 근거가 희박
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게 됨으로써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서 무엇이 남게 될
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셋째, 유신진화론은 얼핏 보면 창조론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그것은 창조자 하
나님의 설 자리를 거의 없애버린 이론으로서 창조론을 빙자한 진화론에 불과하
다.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의 모습을 심각
하게 왜곡한다는 것이다. 또한 유신진화론은 성경의 가르침들과 충돌하는 사실
들을 제시함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역사적 사실이 아닌 상징이나 신화
로 취급하게 한다. 이런 입장의 결론은 뻔한데, 그것은 결국 성경의 신적 권위를
실추시키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결국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진리
를 거부하게 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따라서 과학적 이론의 신빙성 때문에 진화론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기독교
신학자들은 창세기 초반부에 대한 재해석이나 성경의 주장에 대한 부분적 불인
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성경과 기독교 전반에 대해 거부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다고 한다면 유신진화론은 창조론의 옷을 입은 진화론으로서
기독교가 받아들이기 곤란한 입장이 되는 것이다.
B. 하나님이 일하시는 두 가지 방식
성경의 역사적 관점에는 분명히 시작과 끝이 있다. 성경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주관자(主管者)이지, 유신진화론자들이 보는 것처럼 관망자(觀望
者)가 아니다. 존 W. 쿠퍼(John W. Cooper)의 말처럼,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요 유지자로서 “피조물과는 완전하게 구별” 되는 존재이지만 “세상의 모든 영역
에서 전능자로서 임재하실 뿐 아니라 활동적” 44이시다. 그의 활동 방식은 두 가
지로 나눠지는데, 첫째는 천체를 운행하고, 비를 내리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신
적 활동이다. 둘째는 필요에 의해 물을 포도즙으로 바꾸거나 죽은 자를 살리고,
물위를 걷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신적 활동이다. 자연적인 신적 활동은 자연법
칙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하나님의 활동인 반면, 초자연적인 신적 활동은 자연법
칙의 범위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수행하시는 활동들이다. 하나님
은 우주와 생명을 창조하실 때, 초자연적인 신적 활동을 주로 하셨고, 이후 세상
을 유지함에 있어서 그는 자연적인 신적 활동을 주로 하신다. 하지만 창조 이후
에도 구약에서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여러 초자연적 활동들을 하셨는
데, 우리는 이들을 ‘기적’이라 부른다. 기적은 하나님이 자연법칙에 개입하시는 행
위인데, 이는 마치 인간이 떨어지는 사과를 붙잡음으로써 만유인력의 법칙을 중
단시키는 행위와 흡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연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은 필
요에 따라 법칙에 개입하심으로써 초자연적인 일(기적)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
는 분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 그런데 유신진화론의 전제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런 초자연적 활동들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초자연적인 신적 활동
들이 이들에게는 상징이나 신화이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는 것이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성경의 하나님은 무에서부터 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
는 존재이다. 이 하나님 이외에는 기원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단정적
진술을 할 자격을 갖춘 이는 없는데, 이는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
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
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4)고 말씀하신다. 창조 사건이 어떻게 이
루어졌는지 목격하진 못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굳이 진화론과 창조론 둘 중 선
택해야 한다면, 일련의 불가능한 가설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진화론보다는 전
능한 하나님만 전제하면 모든 게 해결 가능한 창조론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그리고 창조론과 유신진화론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굳이 유
신진화론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초자연적인 신적 활동을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굳이 모든 일을 자연적인 신적 활동으로만 하실 리가 없기 때문이
다. 진화론적 전제와 창조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에게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가 한 말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나는 해가 떴
다는 것을 믿듯이 기독교를 믿는다. 내가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
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45 기독교는 아무 근거도 없는 맹신이 아니라,
분명한 근거들을 가진 합리적인 신앙이다.
1. 본 논문에서는 영어 ‘theistic evolution’을 ‘유신론적 진화론’ 대신 ‘유신진화론’으로 용어를 통
일해서 사용한다.
2. Michael A. Harbin, “Theistic Evolution: Deism Revisited,” Journal of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0/4 (December 1997): 640.
3. John W. Cooper, “Human Nature in Theistic and Evolutionary Perspectives,” Zygon
48/2 (June 2013): 479.
4. Harbin, 641~642.
5. 윤철호, “창조와 진화,” 『한국조직신학논총』 51 (2018. 6): 7.
6. 김성현, “화학적 진화의 관점에서 본 유신진화론,” 『당신이 몰랐던 유신진화론』(서울: 세창미디
어, 2016), 103.
7. 테드 피터스(Ted Peters)·마르티네즈 휼릿(Martinez Hewlett),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Can You Believe in God and Evolution? ), 천사무엘·김정형 역(서울: 도서출판 동
연, 2015), 38.
8.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당신이 몰랐던 유신
진화론』(서울: 세창미디어, 2016), 60.
9. Cooper, 479~480.
10. Francis S. Collins,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New York: Free Press, 2006), 202, 207.
11. Cooper, 482.
12.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61.
13. Howard J. Van Till, “Is Special Creation a Heresy?” , Christian Scholar’s Review 22/4
(June 1993): 391.
14.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62.
15. 상게서, 71.
16. 피터스·휼릿, 33.
17.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62~63.
18. David H. Lane, “Theological Problems with Theistic Evolution,” Bibliotheca Sacra 150
(April-June 1994): 159.
19. J. P. Moreland, Christianity and the Nature of Science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9), 12.
20. Raymond Grizzle, “A Conceptual Model Relating Theology and Science.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as an Example of How They Should Not Interact,”
Perspective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 , 45/2 (December 1993): 224.
21. 피터스·휼릿, 40.
22.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64.
23. Harbin, 643.
24. 존 C. 레녹스(John C. Lennox), 『최초의 7일: 창세기와 과학에 따른 세상의 기원』(Seven
Days That Divide the World: The Beginning According to Genesis and Science ), 노동
래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5), 31에서 재인용.
25. Cooper, 479.
26. 김병훈, “창조 진리와 유신진화론: 진화론이 신앙의 본질에 미치는 영향,” 65.
27. Collins,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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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레녹스, 107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