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강 손님-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11.10. 월
손님
민문자
지금부터 손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손님이라는 이 짧은 단어는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늘 보던 우리 집 식구가 아닌 어떤 사람이 우리 집에 오면 머릿속이 쫑긋 서지요. 손님은 빈손으로 오시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선물을 가지고 오시거든요.
제가 자랄 때 우리 집에는 손님이 참 많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가문에서 연세가 가장 높으신 분이 할아버지이셨기 때문에 정월에는 세배손님이 보름이 지나도록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주안상과 식사 준비에 손 마를 새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동생인 작은할아버지와 대고모 할머님도 오셔서 열흘이나 어떤 때는 한 달씩 계시다 가시곤 했습니다. 당고모님이나 사돈어른도 오셔서 묵어가시곤 했지요.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우리와 인연이 있던 모든 인척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어른께 인사드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지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넉넉한 살림이 아닌데도 깨끗한 손님 이불과 베개를 준비해 둬야 했고 항상 술을 빚어둬야 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우리 집에 꼭 들려서 할아버지께 절을 올리고 가곤 했습니다. 그때가 인정이 물씬 넘치던 세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전에 사시던 아버지 고종사촌 형님은 할아버지 고무신도 사오시고 생선이나 쇠고기와 사과를 잘 사오셨습니다. 그밖에 손님들은 카스텔라, 깨엿, 맛있는 과자 등을 들고 왔습니다. 어른이 계신 집에는 빈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었던 시절입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손님 대접에 많이 신경을 쓰셨습니다. 손쉽게 할 수 있는 날떡국이나 녹두죽 팥죽 콩죽 콩칼국수 닭칼국수 등 별미음식을 급히 해놓으시곤 했지요. 할아버지 생신날에는 일부러 초대하지 않아도 집안 여러 가족이 와서 함께 식사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할아버지 덕분에 그 시절 제법 귀한 음식을 맛보며 자랐습니다. 손님이 가실 때에는 집에서 농사지은 잡곡이나 참깨, 참기름 들기름을 들려 보내셨습니다.
저는 1970년 겨울에 결혼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여자가 결혼할 때 제일 먼저 준비하는 혼수품이 50개들이 밥그릇 국그릇 접시 등이 들어 있는 홈세트였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백일 돌잔치를 하느라고 신선로 그릇 등 필요한 그릇을 모두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 생신 때마다 쓰느라 필요할 것이라고 더 많은 접시와 여러 가지 그릇을 사 모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정작 어머니 팔순잔치 때에는 뷔페식당에서 손님을 모시고 행사를 치렀습니다. 그 후 남편의 환갑과 고희 잔치도 가까운 분들만 모시고 전문한식당에서 지냈지요. 그러니 그 수많은 그릇은 별로 이용되지 않고 이사하면서도 한 번도 풀리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그냥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손님접대는 외부 장소를 많이 이용합니다. 가정을 방문하는 것도 꼭 초대가 있어야만 하고 방문해도 좋은지 어떤지 확인하고 가야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그러니 옛날 같은 손님에 대한 환상은 사라진지 오랩니다.
우리가 손님으로 갈 때와 손님을 맞이할 때 주의할 점을 살펴서 결례가 되지 않도록 많이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저는 지금까지 손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김수자 시조시인 약력
1943년 전북 전주 출생 호 나리
1967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2 『한국수필』에 추천완료, 1983 『시조문학』에 시조 「감」 등으로 등단.
2001 한국여성문학인회 간사. 한국문인협회,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문촌〉, 〈생활〉, 〈표현〉 동인.
[상훈] 2001 한국시조인 협회상.
『산나리』, 을지문화사, 1983, 시조집.
「새벽 미사」, 『월간문학』, 1984.9, 시조.
「전지」, 『월간문학』, 1985.10, 시조.
「그대는」, 『월간문학』, 1986.7, 시조.
「마른 꽃의 포에지」, 『월간문학』, 1987.7, 시조.
「추억」, 『한국문학』, 1987.10, 시조.
「여름삼제」, 『시대문학』, 1987.12, 시조.
「칠석」 외, 『월간문학』, 1988.5, 시조.
「놀이터 아참 까치」, 『월간문학』, 1989.10, 시조.
『내일은 안개꽃 찾아 가리라』, 백상, 1992, 시조집.
『햇살은 깨금박질로 징검다릴 건너간다』, 동방기획, 1995, 시집.
『사랑법』, 동방기획, 2003, 시조집.
『놓친 열차보다 아름다운 것』, 제삼기획, 1992, 수필집.
『사과향기』, 문학관, 2003, 수필집.
고인돌-몸의 신호 / 김수자
오래 잠들어 있었다고
본능을 눌러놓고 오래 잠들어 있었다고
몸이 아프다고 신호를 보냈다는 건
아주 깊고 간절하고 사려 깊은 일이에요
어떤 몸은 의뭉스럽거나 깊이가 없어
끝끝내 신호를 보내주지 않는 적이 많아요
제 무덤에 저를 묻으면서도
제 몸조차 연민을 하지 않는 차가움도 있어요
하얗게 질린 어둠이 놀라
후닥닥 뛰쳐나간 흔적들이 많아
소문내지 말라고 꾹꾹 눌러둔 무거운 말들이 많아
나를 눌러, 오래 잠들어 있었다고
상사호에서 / 김수자
고요한 숲 속의 정적
바스락
숨소리에도 나뭇잎이 흔들릴 것 같은
적막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빗방울이 하나 둘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졌다
헛기침 같은 바람이 일렁이자
무차별 쏟아져 내리던
여름날의 폭우 때처럼
호수는 금방 신열에 들끓어 올랐다
하나의 생각에 골똘하다보면
본질 밖에서 부풀어 오르기만 하여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필요 이상의 거품으로
넘칠 때가 있다
무심히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바람에 기대어 그냥 흔들리다가도
때론 빗방울 하나에도 들떠
밤을 온통 지새웠던 상사의
기억이 있었다
불쑥 / 김수자
하루하루 사는 것이 모두 리허설일지 모른다는,
고단하고 쓸쓸한 상처의 시간들도 통증 같은 그리움의 날들도
어쩌면 리허설이라는,
연초록 잎사귀를 흔드는 햇살의 음표였다가 바람의 옹이였다가
강 깊은 바닥이었다가 외롭게 흔들리는 풍경이었다가
의자에 남겨진 일분일초의 온기일 거라는
커피 잔에 남은 루즈자국일 거라는
마지막 한순간의 피날레를 위한 리허설일지 모른다는,
불쑥, 그럴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