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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우리절(I Love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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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 초 교 리 스크랩 우리나라의 탑의이해와 석탑,목탑의 구조
수일화(마음자리) 추천 0 조회 137 06.11.29 22:0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우리나라 탑의 이해


(1)탑의 의미와 명칭 유래



탑(塔)이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고 예배하는 대상물이다.
탑이란 말은 고대 인도에서 무덤을 이르는 말인 '스투파(stupa)'가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탑파'로 되고,
줄여서 '탑'이 된 것이다.
원래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그 안에 모셔놓고 부처를 예배하듯이 하였으나,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건립되는 모든 탑에 진신사리를 모실 수가 없으므로
후대에는 다른 사리나 불경, 작은 금동불 등 공경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탑 안에 대신 모셨다.
그래서 절에 들어가면 부처를 모신 법당 앞에 있는 탑에 합장하여 예배하거나 탑돌이를 하며 기원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탑은 크게 재질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으로 나뉜다.
그리고 탑의 이름은 대개 그 탑이 있거나 옮기기 전에 있던 자리, 층수, 재질에 따라 붙이게 된다.
말하지면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은 불국사에 있는 삼층으로 지은 돌로 된 탑이라는 뜻이다.
또 안동 신세동 칠층전탑은 절 이름은 모르고
지금 안동시 신세동에 있으며 벽돌을 쌓아 세운 칠층탑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 경북궁에 있는 경천사터 십층석탑은
본래 경기도 개풍군의 경천사터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므로 명칭이 그러하다.
또한 일반이 쉽게 탑의 층수를 알려면 지붕돌(옥개석)의 수를 세워보면 된다.



(2)탑의 기원과 나라별 변천



우리 나라에서는 '탑'이라고 하면 대개 불국사 석가탑처럼 돌을 다듬어 쌓은 삼층석탑을 떠올리지만,
세계 모든 탑이 재료나 모양에서 모두 그러하지는 않다.
'탑'이라는 명칭이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지역어에 맞게 정착되었듯이 탑의 모양도 지역 특성에 따라 형성되었고
그래서 나라마다 특징도 다르다.
탑은 원래 인도 고유의 무덤 형식에 석가모니 사리를 모신 축조물에서 비롯되었다.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가 돌아가자(涅槃) 유해를 화장하여 여덟 나라에 나누어주고 탑을 세우게 하였으니
그것을 근본 팔탑이라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인도 산치에 있는 거대한 탑으로
기원전 1세기에 기본 구조가 축조된 것이다.
반구를 엎은 모양인 무덤 자체에는 맨 위에 우산 같은 덮개처럼 산개(傘蓋)를 얹었을 뿐 다른 장식이 없으나,
둘레에 돌 난간을 두르고 동서남북에 석가모니의 생애를 조각한 문을 세웠다

그후 불교가 동쪽으로 전해질 때에 한길로는 비단길을 따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의 북방을 통해 우리 나라로 전파되었고,
다른 한길로는 인도 남부의 스리랑카에서 바닷길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치고 중국 남부를 통해서 전파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도의 묘탑 형식이 고집되기보다는
각 지역의 고유한 건축물에 부처의 사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원래의 다층누각이 초기의 탑이 되었고 뒤에 벽돌을 쌓아 구축한 전탑으로 자리 잡았다.


(3)우리나라 탑의 연원과 형성 과정



중국을 통해 불교를 수용한 우리 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다층누각 형식을 본받아 다층목탑을 지었다.
그 자리가 발굴된 것으로 평양의 금강사 팔각목탑자리와 경우
황룡사터 사각목탑자리, 부여 천군리 절터 목탑자리 등이 있다.
시대에 가장 널리 지어졌고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도 계속 지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전란이 나거나 했을 때에 불에 타기 쉬운 성질 때문에 거의 파괴되었고,
조선 후기에 지은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과 김제 금산사의 미륵전만이 목탑 형식을 간직한 건축물로 남아 있다.

18세기에 지은 쌍봉사 대웅전은 특히 목탑의 고유한 기울기를 그대로 간직하여
삼층목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녔는데 불에 타 버렸다.
지금은 그 자리에 복원되어 있어 원래의 고아한 맛을 지니지는 못하지만 목탑의 형식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탑들을 겉에서는 삼층 또는 오층으로 보이나 내부는 높은 기둥으로 지탱하여 통층으로 뚫려 있다.
목탑의 그러한 제약을 깨닫고 좀 더 견고하고 불에 타지 않는 구축물로 고안된 것이
벽돌을 쌓아 세운 전탑이나 돌을 쌓아 세운 석탑이다. 나라마다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하여 탑을 세웠는데,
중국에서는 풍부한 모래를 이용한 벽돌집이 이미 발달했던 터라 전탑을 많이 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의 전탑을 찾을 수 없다. 또 벽돌 생산 자체도 손쉬운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대신 풍부한 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잘라 쌓은 탑을 볼 수 있는데, 661년에 건립된 경주의 분황사탑이 그것이다.
원래는 오층 이상이었으나 지금은 삼층까지만 남아 있다.

분황사탑이 석재를 벽돌 크기로 자른 반면에,
돌 크기를 좀더 크게 하여 부재의 수효를 줄이고 모양을 단순하게 하여 쌓은 탑이 의성 탑리의 오층석탑이다.
이런 탑들은 몸돌에서 한 단계씩 점점 넓혀가며 쌓다가
가장 넓은 면에서 다시 한 단계씩 좁혀가며 쌓는 식으로 하여 옆에서 보면 한 층의 모양이 마름모꼴을 이룬다.
백제에서는 돌 자체의 성질을 살려 목탑의 부재를 돌로 대체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전라북도의 익산의 미륵사탑은 7세기 초 무왕이
미륵사를 세울 때 가운데에 목탑을 세우고 동서로 석탑을 세웠는데,
그 중에 서쪽 탑 일부가 남은 것이다. 1층 기둥 모양의 돌에 목재를 다듬듯이 배흘림을 주었고,
기둥 위에도 목조 건축의 가구 수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두공과 방(枋) 등을 두었으며,
넓은 판석을 다듬은 지붕돌의 처마 부분도 기와집의 지붕처럼 처마선이 살짝 들린 느낌을 주도록 석재를 깎았다.
원래는 구층탑이었으나 윗부분이 무너져 지금은 6층까지만 남아 있다.
이 석탑을 그대로 본따 동탑 잘에 새로 탑을 복원해 놓았다.
이처럼 목재를 석재로 대체하려면 돌을 나무처럼 깎아야 하므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돌의 성질에 맞게 세부를 단순하게 해서 다듬게 되었으니
그렇게 만든 탑이 부여 정림사터에 있는 오층탑이다.
미륵사탑보다는 훨씬 간결해졌으나 1층 탑신에는 여전히 배흘림 수법이 남아 있고,
두공 위에 지붕이 얹힌 형식이나 얇은 판석으로 처마선의 느낌을 살린 점 등에서
목조 건축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있다.
전체적인 비례로는 땅에 발 붙이기보다는 하늘을 향한 상승감이 더 강한 편이다.

탑의 이런 모양은 삼국 통일기에 매우 대담하게 정리되어 형식적인 통일성을 보인다.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이 동해를 바라보는 산중턱에 감은사를 세웠으나 끝을 보지 못한 채 죽자,
그 아들인 신문왕은 감은사 건립을 마무리하고
동남쪽을 향한 금당의 앞쪽 좌우로 의젓하고 둔중한 쌍탑을 세웠다.
681년에 완성된 이 감은사탑은 모든 목조적인 세부가 정리되어 단순해지면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인다.
감은사터 쌍탑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고선사터 삼층석탑이
7세기 중엽 삼국 통일의 기상과 힘을 표현한 반면,
100년 뒤에 축조된 불국사 석가탑은
전체를 받치는 기단부보다 몸돌과 지붕돌이 작아져 안정성이 강조됨으로써
신라문화 전성기인 8세기의 안정됨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9세기 이후에 세워진 탑들은 형식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이 석가탑을 본따 세워졌으므로
석가탑을 석탑의 전형 양식이라고 한다.

전형이 확립된 뒤의 탑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8세기 이후에는 신라의 수도인 경주 중심에서 문화가 지방으로 확산됨에 따라
경상남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까지 많을 절이 지어졌는데, 거기에 세워진 탑은 석가탑이 작아진 모습이다.
우리가 절에 가서 볼 수 있는 탑들이 대개 그러하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쌍탑을 세운 예도 많다.

감은사탑을 동서 쌍탑으로 세운 것에서부터 전남 장흥 보림사 대적광전 앞의 쌍탑,
근처에서 옮겨온 것이지만 경북 영주 부석사의 쌍탑 등이 그 보기이다.

 

 

 

 

2. 우리나라 석탑의 구조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삼국에 전해지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앙의 대상으로는 불상과 탑이 있으며, 특히 탑은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열반 후
석가모니의 유품과 사리를 보관하기 위하여 유래한 것으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예배하는 대상물이다.
경우에 따라 진신사리 대신 불경이나 작은 금동불 등 법물을 봉안하기도 한다.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등으로 나누어지고,
특성상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탑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전해오고 있다.



■석탑 부재

기단부 : 탑의 하부구조로 하중을 지반에 폭넓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기단부는 1층이나 2층으로 마련하는데, 보통 1층으로 된 기단을 단층기단,
2층으로 된 기단을 이층기단이라 하며,
이때 아래층을 하층기단, 위층을 상층기단이라 한다.

지대석 : 기단부와 지면이 닿는 부분에 놓이는 석재로 탑을 세우는 기초이다.
            보통의 경우 장대석이나 넓은 판석 등으로 하중 전달이
            용이하도록 되어 있다.

탱  주 : 기단면석에서 우주 안쪽 면석부에 세워진 기둥으로
          이 수량은 시대별로 특징을 보여 주고 있어 석탑의 건립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탱주는 탑의 몸체 부분 가운데에 도드라지게 새겨 지붕을 기둥처럼 받치는 형태로
          목조건축에서 평주를 번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  주 : 기단의 면석과 탑신석의 가장자리에 세워진 기둥이다.

면  석 : 우주와 탱주 사이의 벽을 막아댄 넓은 돌로 여러장의 판석으로 되어있다.
           그 위치에 따라 상층기단면석, 하층기단면석으로 구분한다.

갑  석 : 기단의 상면에 놓이는 넓은 석재로 여러 장의 판석을 활용하여 조립하는데
           그 위치에 따라 상층기단갑석, 하층기단갑석으로 구분한다.

부  연 : 상층기단갑석의 밑부분에 만든 받침으로 주로 각형 1단을 활용하여 만들어진다.
           간혹 낙수홈을 마련하여 빗물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탑신석 : 석탑의 몸체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몸돌이라 한다.
            각면 가장자리에 우주를 세운다.

옥개석 : 탑신석 상면에 놓이는 석재로 목조건축의 지붕에 해당한다

옥개받침 : 옥개석의 하면에 마련된 각형받침으로 목조건축의 공포에 해당된다.
              옥개받침 수도 시대별로 특징을 보이고 있어 건립시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전  각 : 옥개석의 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지점으로 시대별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각부의 처마가 치켜 올라간 정도를 반전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은 전각의 반전이 경쾌하고 날렵하며,
           고려시대의 석탑은 둔중한 감을 주고 있다.

노  반 : 상륜의 맨 아래에 있는 반으로 이는 귀한 사람을 모실 때나
          혹은 신성한 물건을 다룰 때 높이는 뜻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경의를 표하는 의미이다.

복  발 : 분묘의 형태로, 고대 인도의 둥근 모양인 하늘 모양을
           불교 극락정토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앙  화 : 신전이나 궁전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처나 보살이 앉는 연화좌로 귀한 자만을 모시는 자리로 표현되어 진 것이고
           아울러 항상 깨끗함을 상징한는 것이다.

보  륜 : 인도에서 이상적인 전륜성왕을 불교와 연결시켜
           불법을 전파시킬 수 있는 자, 최고의 자리를 의미

보  개 : 구슬같은 보석으로 장식된 천개를 말하며 최고의 신분을 의미한다.

수  연 : 불꽃모양을 한 것으로 공장들이 화재를 꺼리는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용  차 : 용은 곧 왕을 상징하며 최고의 자리를 의미한다.

보  주 : 더러운 것에 오염되지 않는 진다마니(振多摩尼)를 줄인 말로
           여의주 또는 마니주라고도 한다.

3. 우리나라 목탑의 구조
나무로 만든 탑으로, 중앙의 심주 초석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다. 현재까지 문헌과 발굴을 통하여 고구려 청앙리사지.상오리사지.백제의 군수리사지.금강사지.능산리사지.미륵사지.신라의 흥륜사지.사천왕사지.망덕사지.황룡사지 등에서 목탑이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목탑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법주사 팔상전이 유일하다.
목탑은 기단부-탑신부-상륜부로 구성되며 기단부는 석재를, 탑신부는 목재를, 상륜부는 청동이나 철재를 활용하여 건립된다.
일반사찰 목조건축과 세부구성에 있어서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층수가 3층에서 9층까지 높다는 점과 평면을 정방형으로 구성하며, 건물 중앙 초석에 사리장치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모심으로써 탑으로서의 상징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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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6.11.29 22:07

    첫댓글 가람순례때 스님 탑이 몇층이냐구 물어보셨지요 .다들 공부하시구요 무엇인가 다른 신도가 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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