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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32권
대반열반경_11. 사자후보살품⑥
업과 불성과 도 닦음에 관한 질문들/
항하 가의 일곱 사람/ 강을 건너지 못하는 까닭/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불성은 머무는 곳이 없다/ 불성은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다/
[업과 불성과 도 닦음에 관한 질문들]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업이 과보가 결정되어 받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면 8성도를 닦을 것인데,
무슨 인연으로 모든 중생이 대반열반을 모두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다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8성도를 닦아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이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병난 사람이 만일 의원과 약과 간병할 사람과 병에 따르는 음식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모두 병이 낫는다.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성문ㆍ벽지불ㆍ부처님ㆍ보살ㆍ선지식을 만나서 법을 듣고 성인의 도를 닦거나,
만나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성인의 도를 닦지 않거나 간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된다.
왜냐하면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자면 해와 달을 막아서 알다(頞多)산 주변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4대하의 물을 바다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일천제들을 지옥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가 없는 것처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능히 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이 도를 닦지 않더라도 불성의 힘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성인의 도를 닦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일천체나 4중금(重禁)을 범한 자나 5역죄를 지은 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도를 닦아야 할 것이니,
불성을 인하여 반드시 얻게 되는 것이고,
닦음을 인하여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자석(磁石)이 철에서 멀리 있더라도, 자석의 힘으로 철이 따라가서 붙는 것과 같이, 불성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도를 닦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항하 가의 일곱 사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야, 항하 가에 일곱 사람이 있어서 목욕하기 위하여, 혹은 도둑이 무서워서, 혹은 꽃을 따려고 물에 들어갔다.
첫째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곧 빠졌다.
왜냐하면 기운이 없고, 헤엄을 익히지 못한 탓이었다.
둘째 사람은 빠졌다가 도로 솟아오르고, 솟았다가 다시 빠졌다.
왜냐하면 기운이 세어서 능히 솟았으나, 헤엄을 익히지 못한 탓에 솟았다가 다시 빠진 것이었다.
셋째 사람은 빠졌다가 곧 솟아오르고, 솟아서는 빠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몸이 무거웠기 때문에 빠지고, 기운이 세기 때문에 솟아올랐고, 먼저 헤엄을 익혔으므로 솟아올라서, 그대로 떠 있는 것이다.
넷째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빠지고, 빠졌다가 도로 솟고 솟아서는, 그대로 떠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왜냐하면 몸이 무거워서 빠졌고, 기운이 세어서 도로 솟고 헤엄을 익혀서 떴으며, 나갈 데를 몰라서 사방을 살펴보았던 것이다.
다섯째 사람은 들어가서는 빠지고, 빠졌다가 도로 솟고 솟아서는 떠 있고, 떠서는 사방을 살펴보고 곧 나아갔다.
왜냐하면 두려워한 까닭이다.
여섯째 사람은 들어가서는, 헤엄쳐 가서 얕은 데에 머물렀다.
왜냐하면 도둑이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 살펴보려 한 까닭이었다.
일곱째 사람은 저 언덕으로 가서 산 위에 오르니, 다시 두려움이 없었으며 원수를 멀리 떠나서 매우 쾌락하였다.
[일천제]
선남자야, 생사의 큰 강도 그와 같다.
일곱 가지 사람이 번뇌의 도둑이 무서워서,
생사의 강을 건너려고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으나,
출가하고 나서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여,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삿된 법을 받는다.
이른바 중생의 몸은 5음이며 5음은 곧 5대라고 하는데,
중생이 죽으면 5대를 영원히 끊는 것이며,
5대를 끊었으므로 선업이나 악업을 닦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선업 악업과 선업 악업의 과보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이를 일러 일천체라고 한다.
일천제는 선근을 끊었다는 말이며,
선근을 끊었으므로 생사의 강에 빠져서 다시 나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쁜 업이 중한 탓이며 믿는 힘이 없는 탓이니,
항하 가에 사는 첫 번째 사람과 같다.
선남자야, 일천제들은 여섯 가지 인연이 있으므로 3악도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다.
무엇이 여섯인가?
첫째는 나쁜 마음이 성한 까닭이며,
둘째는 후세를 보지 못하는 까닭이며,
셋째는 번뇌 익히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며,
넷째는 선근을 멀리 여읜 까닭이며,
다섯째는 나쁜 업에 막힌 까닭이며,
여섯째는 나쁜 동무를 가까이한 까닭이다.
또 다섯 가지가 있어서 3악도에 빠지는데,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비구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까닭이며,
둘째는 비구니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까닭이며,
셋째는 제멋대로 승가의 물건을 사용한 까닭이며,
넷째는 어미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까닭이며,
다섯째는 5부승[五部僧]에게 서로 시비를 일으킨 까닭이다.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3악도에 빠지는데,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없다고 항상 말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보리심을 낸 중생을 죽인 까닭이며,
셋째는 법사의 허물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며,
넷째는 법을 법 아니라 말하고, 법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는 까닭이며,
다섯째는 법의 허물을 구하기 위하여 법을 듣는 까닭이다.
또 세 가지 일이 있어서 3악도에 빠지는데,
무엇이 셋인가?
첫째는 여래가 무상하여 아주 멸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둘째는 정법이 무상하여 변천한다고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승보가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항상 3악도에 빠지는 것이다.
[두 번째 사람]
두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은 까닭에 빠져서 솟아 나오지 못한다.
솟아 나온다고 함은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는 것이니,
신심이란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믿으며,
선한 업과 선한 업의 과보를 믿으며,
악한 업과 악한 업의 과보를 믿으며,
생사의 고통과 무상하여 파괴됨을 믿는 것으로,
이것을 신심이라고 한다.
신심을 얻음으로써 깨끗한 계율을 닦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항상 즐겨 보시를 하고 지혜를 닦는 것이다.
그러나 근기가 암둔하여 다시 나쁜 동무를 만나서,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못하고 삿된 법을 받으며,
혹은 나쁜 시절을 만나거나 나쁜 나라에 있어서,
선근을 끊어 버리며 선근을 끊었으므로 항상 생사에 빠지니,
항하 가에 사는 두 번째 사람과 같다.
[세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솟아나온다고 한다.
여래는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여서 항상하고 변함이 없으며,
중생을 위하여 위없는 도를 말씀하며,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멸하는 것이 아니고, 법과 승가도 그러하여 멸하지 않으며,
일천체들은 그 법을 끊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고 멀리 여읜 뒤에야 얻을 줄을 믿는다.
믿는 마음 때문에 깨끗한 계율을 닦고 계율을 닦은 후에는,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선포하며,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가지 않으니,
항하 가에 있는 세 번째 사람과 같다.
[네 번째 사람]
네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었으니,
이것을 일러 솟아나온다고 한다.
신심을 얻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선포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고 사방을 두루 살피는데,
사방이라고 함은 네 가지 사문의 과보이며,
저 항하 가에 있는 네 번째 사람과 같다.
[다섯 번째 사람]
다섯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었으니,
이것을 일러 솟아나온다고 한다.
신심으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선포하고,
보시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으면서 곧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나아간다 함은 벽지불을 말함이며,
비록 자기는 건너갔으나 중생에게 미치지 못하므로 갔다고 이르는 것이니,
저 항하 가에 있는 다섯 번째 사람과 같다.
[여섯 번째 사람]
여섯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고,
신심을 얻었으므로 솟아나온다 이름하며,
신심이 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선포하며,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 마음이 물러나지 않고,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 얕은 곳에 이르고,
얕은 데에 이르면 머물고 가지 않는다.
머물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보살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머물러 있으면서 번뇌를 관찰하는 것이니,
저 항하 가에 있는 여섯 번째 사람과 같다.
[일곱 번째 사람]
일곱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으니,
신심을 얻은 것을 솟아나온다고 이름하며,
신심이 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선포하고,
보시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으면서 곧 앞으로 나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서는 저 언덕에 이르러 높은 산에 올라 모든 공포를 여의고 안락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선남자야, 저 언덕은 여래를 비유하고,
안락을 얻음은 부처님이 항상 머무는 데 비유하고,
높은 산은 대열반을 비유하였다.
[강을 건너지 못하는 까닭]
선남자야, 이 항하 가에 사는 여러 사람이 모두 손과 발을 구족하였지만 건너가지 못한다.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불보ㆍ법보ㆍ승보가 있고 여래가 항상 법의 중요한 이치를 말하여, 8성도와 대반열반이 있다고 하지만,
중생들이 얻지 못하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며,
성인의 도의 허물도 아니며,
중생들의 허물도 아니며,
번뇌의 허물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모든 중생들이 열반을 얻지 못한다.
선남자야, 마치 용한 의원이 병을 잘 알고 약을 말하여 주었지만,
환자가 먹지 않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선남자야, 어떤 시주가 그에게 있는 대로 여러 사람에게 주지만,
받지 않는 것은 시주의 허물이 아니다.
선남자야, 마치 해가 떠서 어둡던 것이 모두 밝아지는데,
소경이 길을 보지 못함은 해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다.
선남자야, 항하의 물이 갈증을 없애 주지만,
목마른 이가 마시지 않음은 물의 허물이 아니다.
선남자야, 땅에서 여러 가지 과실을 내는 일이 평등하여 다르지 않지만,
농부가 씨를 심지 않음은 땅의 허물이 아니다.
선남자야, 여래가 중생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분별하여 연설하지만,
중생들이 듣지 않음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다.
선남자야, 도를 닦는 이라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있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마치 자석과 같다’고 한 말은, 잘한 말이다.
불성의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라 하여, 성인의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함은, 옳지 않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넓은 벌판을 걸어가다가 갈증이 심하던 차에 우물을 만났는데,
그 우물이 깊어서 물이 보이지 않지만, 물은 반드시 있다.
이 사람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두레박을 구하여 길어 내고서야 물을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있기는 하지만,
모름지기 무루(無漏)인 성인의 도를 닦은 뒤에야 보게 된다.
선남자야, 참깨가 있으면 기름을 짤 수 있지만,
방법을 모르고는 짜지 못하는 것처럼, 사탕수수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삼십삼천과 북울단월(北鬱單越)이 있기는 하지만,
선한 업과 신통력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땅속에 있는 풀뿌리와 땅 밑에 있는 물은 땅에 덮였으므로 중생이 보지 못한다.
불성도 그와 같아서, 성인의 도를 닦지 않으면 보지 못한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병난 사람이 간병할 이와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병에 필요한 음식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낫는다’고 한 것은,
선남자야, 내가 6주 보살을 위하여 그런 뜻을 말한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허공이 중생에 대하여 안도 아니며 밖도 아니며 안팎도 아니므로, 걸림이 없는 것과 같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어떤 사람의 재산이 다른 지방에 있으면,
비록 앞에는 없더라도 마음대로 쓰는 것이며,
사람이 물으면 내게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여기도 아니며 저기도 아니지만,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온갖 것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선남자야, 마치 중생이 모든 업을 지음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이런 업의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인이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짓고 이것이 받으며,
이것이 짓고 저것이 받으며,
저것이 짓고 저것이 받는 것도 아니며,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어서,
시절이 화합하면 과보를 받는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인연이 없음도 아니고,
모든 중생이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보살들은 시절 인연이 화합하여 보는 것이다.
시절이라 함은, 10주보살마하살이 8성도를 닦아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는 것이니,
그때 보게 되는 것은 짓는다고 이르지 않는다.
[불성은 머무는 곳이 없다]
선남자야, 그대가 말하기를,
‘자석과 같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자석은 쇠를 빨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을 말하면 마음의 작용[心業]이 없기 때문이다.
선남자야,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으므로 다른 법이 없어지는 것이며,
짓는 이가 없어 파괴하는 이도 없다.
선남자야, 마치 불길이 맹렬한 것으로 섶을 태운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불이 나고 섶이 없어짐을 섶을 태운다고 이른다.
선남자야,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서 돌지만,
해바라기는 공경하는 마음도 없고 알음알이도 없고,
업도 없으며 다른 법의 성품이므로 스스로 도는 것이다.
선남자야, 파초나무가 천둥을 인하여 자란다 하지만,
이 나무는 귀도 없고 마음도 뜻도 식도 없으며,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자라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망가진다.
선남자야, 아숙가(阿叔迦)나무를 여인이 만지면 꽃이 나오는데,
이 나무는 마음도 없고 감각도 없지만,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나오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괴된다.
선남자야, 귤나무 아래 송장을 묻으면 과실이 많이 열리는데,
귤나무는 마음도 없고 감각도 없지만,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많아지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한다.
선남자야, 안석류(安石榴)가 흙[塼]과 골분과 분뇨로 과실이 번성하지만,
안석류나무 역시 마음이나 감각이 없는 것이고,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한다.
선남자야, 자석이 철을 빨아들임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한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아들이지 못한다.
선남자야, 무명도 행(行)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행도 식을 빨아들이지 못하지만,
역시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주고, 행이 식을 반연하여 준다고 이른다.
부처님이 있거나 부처님이 없거나 법계는 항상 머문다.
선남자야, 만일 불성이 중생들 중에 머문다고 말한다면,
선남자야, 항상한 법은 머묾이 없으니,
만일 머무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다.
선남자야, 12인연은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다.
만일 머무는 곳이 있다면 항상하다고 이르지 못한다.
여래의 법신도 머무는 곳이 없고,
법의 경계[界]와, 법의 인식 대상[入]과, 법의 요소[陰]와, 허공도 모두 머무는 곳이 없다.
불성도 그러하여 머무는 데가 없다.
[불성은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다]
선남자야, 4대의 힘이 균등하지만,
굳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젖기도 하고 동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희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검기도 하지만,
4대는 업이 없으며,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각각 같지 않다.
불성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이다.
선남자야, 모든 중생의 불성이 물러가지 않으므로 있다고 이르는데,
아비발치(阿毗跋致)이기 때문이며,
마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반드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마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다.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어떤 임금이 대신에게 분부하되,
‘너는 코끼리를 한 마리 가져다가 소경들에게 보여라’ 하였다.
대신은 임금의 명령을 받고 여러 소경을 모아놓고 코끼리를 보였더니,
소경들은 제각기 손으로 만져 보았다.
대신은 돌아가서 임금에게 여쭈기를.
‘신이 코끼리를 보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여러 소경들을 불러서 각각 묻기를.
‘너희들은 코끼리를 보았느냐?’ 하였다.
소경들은 제각기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은 코끼리가 무엇과 같으냐고 물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 모양이 무[蘆菔根]와 같다 하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가 키[箕]와 같다 하고,
머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돌과 같다고 말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절굿공이[杵]와 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나무통[木臼]과 같다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평상과 같다 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독[甕]과 같다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동아줄과 같다고 하였다.
선남자야, 저 소경들은 코끼리의 전체를 말하지 못하였으나,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일 그 여러 모양이 모두 코끼리가 아니라면,
그것을 떠나서는 따로 코끼리가 없다.
선남자야, 임금은 여래ㆍ정변지에 비유하고,
대신은 방등의 대열반경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불성에 비유하고,
소경들은 모든 무명 중생에게 비유하였다.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색이 불성이라고 말하였다.
왜냐 하면 색이 비록 멸하지만,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므로 위없는 여래의 32상을 얻기 때문이다.
여래의 색은 항상하고, 여래의 색은 항상 끊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색을 말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마치 진금(眞金)이 모양은 변천하지만 빛은 달라지지 않아서,
혹은 팔찌를 만들고 비녀도 만들고 쟁반을 만들어도,
그 누런색은 처음 그대로 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바탕은 비록 무상하나 빛은 항상한 것이므로
색을 말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수(受)가 불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의 인연으로 여래의 진실한 낙(樂)을 받기 때문이다.
여래의 수는 필경(畢竟)의 수이며, 제일의(第一義)의 수이다.
중생의 수(受)의 성품은 무상하지만,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므로,
여래의 항상한 수를 얻는다.
마치 어떤 사람이 성을 교시가(憍尸迦)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비록 무상하나 성은 항상하여서, 천만 대[世]를 지내어도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수를 불성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상(想)이 불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상의 인연으로 여래의 진실한 상을 얻기 때문이다.
여래의 상은 생각이 없는 상[無想想]이며,
생각이 없는 상은 중생의 상이 아니고,
남녀의 상도 아니고,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의 상도 아니며,
상이 끊어진 상도 아니다.
중생의 상은 무상하지만,
상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므로,
여래의 항상한 상을 얻는다.
선남자야, 마치 중생의 12인연과 같아서,
중생은 멸하더라도 인연은 항상한 것이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상을 말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행(行)이 불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행을 수명이라고 하며,
수명의 인연으로 여래의 항상 머무는 수명을 얻기 때문이다.
중생의 수명은 비록 무상하나,
수명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므로,
여래의 진실하고 항상한 수명을 얻는다.
선남자야, 마치 12부경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비록 무상하지만,
이 경전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으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행을 말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식(識)이 불성이라고 한다.
식의 인연으로 여래의 평등한 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중생의 의식(意識)이 무상하지만,
식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므로,
여래의 진실하고 항상한 마음을 얻는다.
마치 불의 뜨거운 성품과 같아서,
불은 무상하지만 더운 것은 무상하지 않으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식을 말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음(陰)을 여의고 내[我]가 있으므로, 나를 불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나의 인연으로 여래의 여덟 가지 자재한 나를 얻기 때문이다.
여러 외도들이 말하기를,
가고 오고 보고 듣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말하는 것을 나라고 하는데,
이러한 나라는 것이 비록 무상하나,
여래의 나는 진실하여 항상하다.
선남자야, 5음ㆍ6입ㆍ18계가 비록 무상하지만 항상하다고 하며,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저 소경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말하는 것이,
비록 코끼리의 실상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코끼리를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불성을 말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여섯 가지 법이 곧 그것은 아니지만, 여섯 가지 법을 여의지도 않았다.
선남자야, 그러므로 나는,
중생의 불성은 색도 아니고, 색을 여의지도 않았으며,
나아가 나도 아니고, 나를 여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선남자야, 모든 외도들이 비록 내[我]가 있다고 말하나, 실로는 내가 없는 것이며,
중생의 나라는 것은 곧 5음이니, 5음을 여의고는 다시 다른 내가 없다.
선남자야, 줄기와 잎과 꽃술과 꽃판이 합하여 연꽃이 되었으므로,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연꽃이 없다.
중생의 나란 것도 그와 같다.
선남자야, 마치 담과 벽과 풀과 나무가 화합한 것을 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집이 없다.
또 가타라(佉陀羅)나무ㆍ파라사(波羅奢)나무ㆍ니구다(尼拘陀)나무ㆍ울담발(鬱曇鉢)나무들이 화합하여 숲이 되었는데,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숲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거병(車兵)ㆍ상병(象兵)ㆍ마병(馬兵)ㆍ보병(步兵)이 화합하여 군대가 되었는데,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군대가 없다.
마치 5색실이 화합하여 짜진 것을 비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비단이 없는 것과 같다.
또 4성이 화합한 것을 대중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대중이 없는 것과 같다.
중생의 나라는 것도 그러하여, 5음을 떠나고는 따로 내가 없다.
선남자야, 여래의 항상 머무는 것을 나라고 하며,
여래의 법신이 가없고 걸림이 없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음을 나라고 하지만,
중생은 참으로 이러한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 없고,
다만 반드시 필경에 제일의공(第一義空)을 얻을 것이므로, 불성이라고 이른다.
선남자야, 대자대비를 불성이라 이른다.
왜냐하면 대자대비가 항상 보살을 따르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하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은 반드시 대자대비를 얻을 것이므로,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다.
대자대비를 일러 불성이라 하고, 불성은 여래라고 이른다.
대희대사(大喜大捨)를 불성이라고 이른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만일 25유를 버리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대희대사는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은 큰 신심[大信心]이라고 이른다.
왜냐하면 신심이 있으므로 보살마하살이 능히 단바라밀과 나아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큰 신심을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큰 신심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이라고 함은 외아들의 지위라고 이른다.
왜냐하면 외아들의 지위인 인연으로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외아들의 지위를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외아들의 지위는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은 네 번째 힘[第四力]이라고 이른다.
왜냐하면 네 번째 힘의 인연으로 보살이 능히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이 반드시 네 번째 힘을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네 번째 힘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은 12인연이라고 이른다.
왜냐하면 12인연으로써 여래가 항상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이 반드시 이러한 12인연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12인연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은 4무애지(無碍智)라고 이른다.
네 가지 걸림 없는 인연으로 글자의 뜻이 걸림 없다 말하고,
글자의 뜻이 걸림 없으므로 능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네 가지 걸림 없는 것은 곧 불성이며 불성은 곧 여래이다.
불성은 정삼매(頂三昧)라고 이른다.
이와 같은 정삼매를 닦아 능히 모든 부처님 법을 통틀어 거두므로,
정삼매를 이름하여 불성이라고 한다.
10주보살은 이 삼매를 닦으나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비록 불성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며,
모든 중생들은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선남자야, 위에서 말한 가지가지 법을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선남자야, 내가 만일 색이 불성이라고 말하면,
중생들이 듣고 나서 잘못된 사견을 낼 것이며,
잘못된 사견으로써 목숨을 마치면 아비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여래가 법을 말함은 지옥을 끊으려 하는 것이므로,
색이 불성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나아가 식(識)을 말함도 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