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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9권
29. 송종부(送終部)
[여기에는 아홉 개의 연(緣)이 있음]
29.1. 술의연(述意緣)
대체로 삼계(三界)는 멀고도 넓으며 육도(六道)는 번성하게 일어나되 모두가 다 네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서로 도우며 다섯 가지 감관에 의하여 바탕을 이루지 아니함이 없다.
그것이 모이면 몸이 되고 흩어지면 공(空)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바람과 불은 그 성질이 다르고 땅과 물도 그 바탕이 달라서 각기 그 분수에 맞추어 모두 적합한 것을 구하려고 하지만 적합한 것을 구하는 도리[理]는 이미 어려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그 조화(調和)가 무너지기는 쉽고 하나의 요소[大]가 조화를 이 루지 않으면 네 개의 요소가 다 같이 손상된다.
가령 땅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그 형체가 꺼멓게 되고 살은 푸르스름하게 멍 이 들며, 그리하여 응어리가 맺히면 쇠처럼 되거나 돌처럼 된다.
만약 땅이라는 요소가 이지러지면 곧 사지(四支)가 연약하여 대부분 반쯤 몸을 잃게 되어 편고(偏枯)하게 되거나 비틀어지고 실명하게 되며, 듣는 것을 잃게 된다.
만약 물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몸에 화색(華色)이 없으며, 온몸이 늘어지고 황달기가 돌고 얼굴이 참담[慘憺]하며, 종아리에 붉으스레하게 종기가 나고 방광(膀胱)이 팽창하여 급박하게 된다.
만약 물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몸이 말라 뼈대만 튀어나오며, 입술이 마르고 혀가 마르며, 귀가 타고 코가 막히며, 오장(五藏)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진액(津液)은 밖에서 다 없어지며, 육부(六腑)는 소모되어 스스로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불이라는 요소가 증장되면 온몸에 번열이 나서 가마솥에 삶기는 것 같고 불에 타듯이 바짝 마르고 열이 나서 옹절(癰癤)ㆍ저종(疽腫)ㆍ창이(瘡痍)가 생겨 곪고 문드러져 피고름이 줄줄 흘러 넘치고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게 된다.
만약 불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온몸이 파리하게 마르고 육부와 오장이 얼음처럼 냉랭해지며, 삼초(三焦)가 막히고 엉겨 차디 차며, 입은 마치 서리를 머금은 것 같이 되어 더운 여름에 털가죽옷을 껴입어도 아예 더운 줄을 모르며,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항상 구역 (嘔逆 : 嘔吐)이 생긴다.
또 바람이라는 요소가 증장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막히며, 장부와 위(▼(月+胃))가 막히고 손과 발이 나른하고 힘이 없으며, 온몸이 아프고 마비된다. 만약 바람이라는 요소가 크게 손상되면 몸이 파리하고 수척하며, 움직이기만 하면 피로해지고 숨을 쉬는 것이 억지로 뽑아 내는 것 같으며, 기침이 나오고 트림과 딸꾹질이 나와서 목구멍과 혀가 몹시 긴급해지며, 헛배가 부르고 퉁은 구부러지며, 심장 속은 얼음과 같아지고 목의 힘줄과 목구멍의 맥이 세차게 고통치고 팽창한다.
이와 같은 갖가지 모습은 모두 네 가지 요소가 잠시 증가했거나 줄어들면서 질병이 일어나게 한다. 이미 하나의 요소가 쇠약해지면 곧 세 가지 요소가 다 고통을 받아 점점 바뀌어져서 모두 질병이 걸리게 되어 함께 괴로움을 받게 된 다.
네 개의 요소가 서로 배반하여 육부(六府)의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은 진실로 전생에 쌓은 악한 업인(業人) 때문에 이제 와서 괴로운 과보를 당하는 것이다. 남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은혜도 베풀 줄 모르고 의리도 없으며, 항상 네 계절[四時]에 따라 필요한 것을 자급(資給)받아 밤낮없이 기르는데도 일찍이 은혜를 갚은 적도 없었고 한편으로라도 이바지하여 받드는 것조차 상실하여 곧 질병의 고통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미 은혜를 베풀 줄 몰랐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부질없이 양육(養育)을 위해 애태우고만 있을 뿐이니, 비록 맛있는 음식과 화려한 의복을 더한다 하더라도 끝끝내 똥처럼 더러운 것만 이룩하고 말 것이다.
다만 나아가 사지의 몸을 얻어서 배고픔과 목마름만을 제거하되, 끝내 그대를 위해서 앞으로 나가며 축적(蓄積)하지 못하고 제 마음만 수고롭게 함으로써 도를 구하여 닦는 일을 폐지할 따름이다.
진실로 이 몸뚱이는 거짓되고 괴로운 그릇이요 음(陰 : 五陰)은 곧 술잔이나 병(甁) 같은 것이니, 손상하기는 쉽고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서 그 처지가 물거품과 같다.
네 가지 요소는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데도 궁극에는 서로 어기고 배반하며, 오음(五陰)은 그 인연이 임시로 이루어진 것이건만 괴로움과 걱정을 많이 자아 내게 한다.
그런 까닭에 인간 세계에 몸을 받아 이렇게 더럽고 혼탁한 때를 만나게 되었고, 색질[色]을 받아 이 몸뚱이가 되어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지경에 살게 되었나니, 깊숙하고 어두운 데는 한량없이 많고 귀신은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으며, 종족은 이보다 더더욱 많아서 풀이나 산가지[籌]로도 분별하지 못한다.
혹은 방에 의지하기도 하고 묘(廟)에 의지하기도 하며, 산악에 달라붙거나 구릉에 달라붙기도 한다. 무릇 심령(心靈)을 지닌 중생이면 모두 다 지기(地祇)의 메아리가 있게 되나니, 정신을 어둡게 만들고 의식과 사려를 혼몽하고 아득하게 하여 심지어는 자나깨나 공포만 많아진다.
바라건대 위태로운 곳에 임하여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으면 세 번의 저울질[三稱]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험난한 곳에 있으면서 편안함을 만난 격이니 어찌 천 번인들 수고롭다고 하겠는가? 원하는 것은 더욱더 신비한 도를 더하고 더 한층 위엄스런 빛을 구족하여 선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서로 괴롭히거나 해치지 말기 바란다. 이 정성스런 말을 기록하면 신험(信驗)의 정조가 있을 것이다.
29.2. 첨병연(瞻病綠)
오직 평범한 위치에 있는 사람치고 누군들 병이 없겠는가?
과보가 있는 몸이기 때문에 항상 질병에 걸리게 되나니,
혹은 세속을 버리고 출가한 이가 외롭게 다니다가 혼자서 묵을 때가 있기도 하고,
혹은 가난하고 병들고 늙고 연약한 이가 모시거나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도 한데,
그럴 때에 만약 서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목숨을 장차 어디에 의탁하겠는가?
그러므로『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이 뒤로는 마땅히 병든 사람을 간호해야 하고 병든 사람을 돌보아야 하느니라.
만약 나에게 공양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먼저 병든 사람을 공양하라.
나아가 길에서 다섯 종류 대중으로서 출가한 사람이 병든 사람을 만나면 나 부처는 일곱 대중으로 만들어서 다 그들로 하여금 머물며 간호하게 할 것이니,
만약 그들이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면 모두가 죄를 짓는 것이 되리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의 마음이란 큰 자비(慈悲)로써 본체를 삼나니, 나의 말을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승기율(僧祈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길에서 출가한 다섯 종류의 대중으로서 병든 사람을 만나거든 곧 마땅히 탈 것을 찾아서 싣고 와야 하고 법대로 공양해야 하며,
나아가 죽었을 때에도 마땅히 사유(闍維 : 火葬)하여 묻어주어야 하고 버려 두어서는 안 되느니라.
병든 사람이 아홉 가지 법을 성취하면 반드시 횡사(橫死)하게 되느니라.
첫째는 요익(饒益)하지 못한 음식인 줄 알면서도 탐내어 먹는 것이요,
둘째는 양을 계산하여 알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먹은 음식이 미처 소화되기도 전에 또 먹는 것이요,
넷째는 음식이 아직 소화되지도 않았는데 들추어서 토해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이미 소화된 것은 마땅히 나와야 하는데도 억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요,
여섯째는 음식을 병세에 따라 먹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병이 들어 먹는 음식에 그 양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며,
아홉째는 지혜가 없는 것이니라.’”
[『약사경(藥師經)』같은 데에도 또한 구횡(九橫)의 내용이 있는데 그 대의 (大意)를 알 만하다.]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이로서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병이 낫지 않고 병자는 늘 평상이나 이부자리에 누워 있게 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이가 좋은 약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게으르고 용맹스런 마음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늘 성내기를 좋아하고 또한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이요,
넷째는 다만 옷과 음식만을 탐하기 때문에 병든 사람을 돌보아주는 것이며,
다섯째는 법으로써 공양하지 않기 때문에 또한 병든 사람과 더불어 함께 말을 주고 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병든 사람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병이 낫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앞의 다섯 가지 법을 뒤집으면 병은 빨리 낫게 된다.]
또 『생경(生經)』에서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마땅히 질병에 걸린 사람을 돌봐줄 때엔
모든 위험과 액난을 캐어 물어야 하나니
선과 악에는 꼭 보응(報應)이 있는 것이
마치 과일 나무를 심으면 꼭 결실을 얻는 것과 같아서이네.
세존은 곧 아버지가 되고
경법(經去)은 어머니가 되며
함께 배운 사람은 형제가 되나니
이것을 인 (因)하여 해탈할 수 있으리라.
또 『법구유경(法句喩經)』에서 말하였다.
“옛날에 어떤 나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현제(賢提)였다.
그 때 어떤 장로(長老) 비구가 오랫동안 병에 걸려 있어 몸이 매우 수척하고 야위었으며 더러운 때가 낀 초췌한 모습으로 현제의 정사(精舍) 안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부처님께서 오백 명의 비구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가셔서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다 함께 그를 돌보게 하시고 그를 위하여 미음을 쓰게 하셨다.
그런데 모든 비구들은 그 곳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다 함께 그를 천대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석(帝釋)으로 하여금 끓는 물을 가져오게 하여 부처님의 금강수(金剛手)로써 병든 비구의 신체(身體)를 씻어 주셨다.
그러자 조금 뒤에 땅이 진동하며 할연(▼(害+各)然)히 크게 밝아졌으므로 모두들 놀라 숙연해지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국왕ㆍ신하ㆍ백성ㆍ하늘ㆍ용ㆍ귀신 등 무앙수 (無央數)의 중생들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드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가장 존경받는 분이시며 삼계(三界 : 欲界ㆍ色界ㆍ無色界)에서 비교할 수 없으신 분이시며, 도덕(道德)까지 이미 갖추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생각을 굽히시어 병든 비구를 씻어 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국왕과 그 모임에 모인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신 까닭은 바로 이렇게 곤궁하고 재액이 있는데도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이니라.
병들고 수척한 사문과 도인을 공양하고 여러 가난한 이와 고독한 노인들을 공양하게 되면 그 복이 한량없어서 원하는 것이 있으면 뜻대로 되고 마침내는 도를 증득하게 되느니라.’
왕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이 비구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병에 시달리고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왕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옛날에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악행(惡行)이었습니다.
그의 치정(治政)은 너무도 가혹하고 포악하여 아주 힘센 오백을 거느린 군주(君主)를 시켜 그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매질하게 하였습니다. 이 오백을 거느린 거짓 왕은 성을 내어 위협하면서도 사사롭게 춥고 더움[寒暑 : 속과 곁이 다름]이 있었습니다.
만약 매를 맞아야 할 사람이 값진 물건을 싸가지고 와서 그 물건을 얻게 될 경우에는 매질을 가볍게 하고 뇌물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매질이 중했으므로 온 나라 백성들이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어진 사람이 남의 모함을 당하여 매를 맞게 되었는데, 그가 오백을 거느린 군주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본래 아무 죄도 허물도 없는데, 남의 모함을 받았으니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자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그가 부처님의 제자라는 말을 듣고 손으로 가볍게 스치기만 하고 그의 몸에 회초리를 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떨어져서 온갖 고문으로 온갖 고통을 당했고, 그 뒤에 죄가 소멸되자 다시 축생(畜生)의 세계에 떨어져서 오백여 생 동안 항상 매를 맞다가 죄가 다하여 사람이 되었으나 늘 중병에 걸려 그 고통이 몸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 때의 국왕은 바로 지금의 조달(調達)이요, 오백을 거느린 군주는 바로 지금의 이 비구이며, 그 때의 어진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습니다.
나는 전생에 그들에게 용서를 받아 채찍이 몸에 닫지 않았으므로 그, 때문에 세존이 되었으면서도 몸소 그들을 씻어준 것입니다.
사람이 선을 짓거나 악을 지으면 그 재앙과 복이 사람을 따르는 법이니, 비록 다시 나고 죽고 하더라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어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어질고 착한 사람을 회초리로 매질하거나
죄가 없는 이를 거짓으로 참소하면
그가 받는 재앙은 열 배나 되나니
재앙은 신속하여 용서받을 수 없느니라.
태어날 때마다 혹독한 고통을 받고
형체는 헐어지고 꺾어지게 되며
저절로 병이 들어 시달리게 되고
뜻을 잃고 황홀(恍惚)해지리라.
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비웃음당하며
혹은 관청의 액난(厄難)을 만나
재산은 소모되고 탕진하게 되며
친척들은 이별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집과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은
화재 (火災)를 당하여 모두 타버리고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리니
이것이 그 열 가지이니라.
그 때 병든 비구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게송과 전생의 일을 듣고는 마음 깊이 자책하였으므로 앓던 병이 다 낫고 아라한도(阿羅漢道)까지 증득하였으며, 현제(賢提) 국왕은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실천하다가 수다원도(須陀洹道)를 증득하였다.
또 『선생경(善生經)』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은 싫어하는 기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자신에게 물질이 없으면 밖에 나가 구해 와야 하며,
만약 물질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삼보(三寶)의 물건이라도 빌려서 간병하고 질병이 나은 뒤에는 열 배로 갚아 하느니라.”
또 『오백문사경 (五百門事經)』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의 물건을 가져다가 병든 사람만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공급해야 한다.
병든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은 물건이거나 혹은 물어보았으나 싫다는 생각을 일으킨 물건이면 모두 사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이 가져온 물건이 있으면 꼭 갚아야 하고 갚지 못하면 중죄(重罪)를 범하게 된다.”
또 『사분율(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면 다섯 가지 공덕을 얻는다.
첫째는 병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가, 먹을 수 없는가를 알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면 곧 주는 것이요,
둘째는 병든 사람의 대변과 소변ㆍ침ㆍ토해낸 것에 대하여 싫어하거나 그를 천대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서 음식이나 의복 따위를 위해서 간병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일을 처리하거나 약을 달이는 일은 병이 나을 때까지, 또는 목숨을 마칠 때까지 해야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기쁘게 해주는 것이니, 자기 자신의 착한 법도 더욱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29.3. 의료연(醫療緣)
대체로 사람에게는 사지(四支)와 오장(五藏)이 있다.
한때는 깨어 있고 한때는 잠을 자며,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정기 (精氣)가 오고 간다.
기운이 흐르면 영혈(榮血)과 위기(衛氣)가 되고 밖으로 드러나면 기색(氣色)이 되며, 발산하면 음성(音聲)이 되나니 이것이 사람의 평상적인 작용이다.
양기[陽]를 쓰면 정(精)이 되고 음(陰)을 쓰면 형상이 되나니,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 동일하다. 그것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러 더워지면[蒸]열이 생겨나고 막히면 찬 기운이 생겨나며, 맺히면 혹이나 사마귀가 되고 가라앉으면 옹저(癰疽)가 되며, 치달리면 두려워 떨게 되고 다 사라지면 타게 된다.
그런 까닭에 훌륭한 의사는 그것을 침석(針石)으로 인도하고 약을 조제하여 구원하며, 성인은 지극한 덕[至德]으로써 화합하고 사람의 일로써 유익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폼에는 고칠 수 있는 질병이 있고 하늘과 땅에는 소멸시킬 수 있는 재앙이 있는 법이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풍(風)이 큰 걱정거리가 되고,
둘째는 담(痰)이 큰 걱정거리가 되며,
셋째는 냉(冷)이 큰 걱정거리가 된다.
그러나 세 가지 좋은 약이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
만약 풍에 걸린 환자라면 소(蘇)가 좋은 약이 되나니 소로써 밥을 지어 먹으면 되고,
만약 담에 걸린 환자라면 꿀이 좋은 약이 되나니 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되며,
만약 냉병에 걸린 환자라면 기름이 좋은 약이 되나니 기름으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된다.
이것을 세 가지 큰 질환을 세 가지 좋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도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나니,
첫째는 탐욕이요, 둘째는 진에(瞋恚)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이것도 세 가지 좋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첫째 만약 탐욕이 일어날 때에는 부정법(不浮法)으로써 다스리되 부정도(不浮道)를 생각하면 되고,
둘째 만약 성냄의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자심법(慈心法)으로써 다스리되 자심도(慈心道)를 생각하면 되며,
셋째 만약 어리석음의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지혜법(智慧法)으로써 다스리되 인연소기도(因緣所起道)를 생각하면 된다.
이것을 비구에게 이러한 세 가지 큰 걱정거리가 있을 적에 이러한 세 가지 약으로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능히 팔만 사천 가지 병의 근본을 제거할 수 있다. 이 팔만 사천 가지는 다 네 가지 병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첫째는 탐냄이요, 둘째는 성냄이며, 셋째는 어리석음이요, 넷째는 세 가지 독(毒)이 등분(等分)된 것이다.
이 네 가지 병은 각각 이만 일천 가지로 나뉘어진다.
부정관(不淨關)으로써 탐욕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하고
자비관(慈悲關)으로써 진에(瞋恚)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하며,
인연관(因緣關)으로써 우치(愚癡)의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시키나니,
통틀어 위의 약을 사용하여서 등분으로 만들어진 이만 일천 가지 번뇌를 제거시킨다.
비유하면 마치 보배 구슬이 깜깜하고 어둠을 제거하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세 가지 독으로 생겨나는 번뇌를 제거할 수 있다.
29.4. 안치연(安置緣)
대개 들으니 삼계의 집은 곧 사대(四大)의 그릇이요, 육진(六塵)의 경계는 바로 오음(五陰)의 거주처이다.
진실로 허망한 생각으로 헛되이 얽어져서 의혹[惑]과 뒤바뀜[倒]이 번갈아 일어나고 일만 가지 괴로움이 다투어 얽히고 일백 가지 근심이 다 모여 든다. 이제 이미 과보가 익숙해져서 목숨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되었다.
그런데도 중생들이 탐내고 집착하여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옛 곳에 있으면서 자재 (資財)를 그리워하고 애착하며 권속(眷屬)에 염착하고 있으니,
그것을 저어하여 부처님께서는 처소를 옮기라고 가르치시고 그들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여의게 하셨으며, 장차 무상함이 다가올 것을 알아서 마음에 바른 생각을 일으키게 하셨던 것이다.
『승기율 (僧祇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 대덕(大德)이 병이 들면 마땅히 밝게 트인 처소로서 가장 좋은 방에다 모시고 도인과 속인으로 하여금 문안하여 그의 선을 본뜨게 해야 한다.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사람은 늘 꼭 향을 사르고 등불을 켜고 향즙(香汁)을 땅에 바르고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한다.
『서역기환사도(西域祈桓寺圖)』에 의하여 말한다.
“사찰의 서북쪽 모퉁이 햇빛이 없는 곳에 무상원(無常院)을 만들었다.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 곳에 안치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당호(堂號)를 무상(無常)이라고 하였다.
그곳은 대부분 싫어하고 등지게 되는 곳이었는데, 그 곳에 가는 이는 매우 많았으나 거기서 되돌아오는 이는 한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 안에는 금색으로 도금한 한 구의 입상(立像)을 안치하였는데, 얼굴이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병이 든 사람은 마땅히 불상 앞에 앉아 있게 해야 하나, 만일 기력이 없는 사람은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눕게 하되 얼굴이 서쪽을 향하게 하여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관찰하게 했다.
그 불상의 손 안에는 한 개의 오색(五色)으로 된 비단 번기를 매어 두고 병든 사람으로 하여금 손으로 번기의 끝을 잡고 정토(淨土)에 가서 태어나겠다는 뜻을 짓게 하였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비록 대변과 소변을 눈다 하더라도 세존께서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것을 근원으로 하여 이 땅에서도 본래는 잡되고 더러운 곳이었지만 오히려 신령함이 내려와 굽어 보며 하류(下類)의 중생들을 접인(接引)하는 곳으로 여겼거늘, 하물며 지금은 목숨을 가져다가 부처님께 던지고 있으니 어찌 서로 버릴 수가 있겠는가?
병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경계인가에 따라 혹은 아미타불(阿彌陀佛)ㆍ미륵불(彌勒佛)ㆍ아촉불(阿閦佛)ㆍ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등의 형상을 만들어 앞의 격식처럼 안치(安置)하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는 공양을 끊이지 않게 하면서 병이 든 사람이 착한 마음을 내게 해야 한다.”
29.5. 염념연(斂念緣)
대체로 삼계(三界)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오음(五陰)도 다 없는 것이며, 네 가지 전도四倒]와 열 가지 얽매임[十纏]이 함께 서로 화합한 것이다.
모든 것은 마치 번개와 같아서 만 겁(劫)을 잠깐 동안에 물리쳐 버리고 구렁이나 우물에 빠지기 쉬워서 백 년을 손바닥에다가 쓰는 것과 같다.
길이 헷갈려 마침내 멀어지고 길을 잃어 되돌아가지 못하며, 구구한 일곱 자의 몸에 대하여 그것이 거짓됨인 줄 알지 못한다.
귀와 눈 밖의 것은 마침내 저절로 공(空)한 이야기여서 의지할 곳도 없고 구원할 것도 없건만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생령(生靈)이 한 번 하직하면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으나, 그런 까닭에 마음을 어루만져 스스로 헤아리면서 위험에 다달아 생각을 닦도록 하라.
『십송률(十誦律)』에서 말한 것과 같다.
“간병(看病)하는 사람은 마땅히 병든 사람이 먼저 익히고 배운 바를 따라서 찬탄해 주되 그를 헐뜯거나 나무라서 본래 착했던 마음에서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또 『사분율 (四分律)』에서 말하였다.
“병이 든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그로 하여금 기뻐하게 해야 할 것이다.”
또 『비니모론(毘尼母論)』에서 말하였다.
“병든 사람이 간병(看病)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거나 간병하는 사람이 병든 사람의 뜻을 어기면 모두 죄를 얻는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 임종(臨終)할 때 병에 걸린 사람을 위하여 게송을 말하였다.
또 광명을 놓으면 부처님을 뵈었다고 말하나니
그 광명을 목숨을 마치려는 이가 깨달아 알면
염불삼매(念佛三味)로 반드시 부처님을 뵙고
목숨을 마친 뒤에 부처님 앞에 태어나리라.
그로 하여금 임종할 때에 선을 생각하라고 권하고
또 존귀한 형상을 보며 우러러 공경하게 하며
또 다시 권유하여 그로 하여금 부처님께 귀의하게 하면
이로 인하여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있으리라.
또 『왕생론(往生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선남자와 선녀인들로서 다섯 가지 생각을 닦아 성취한 사람은 필경(畢竟)에는 안락국토(安樂國士)에 태어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저 아미타불을 뵙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예배하는 것이요, 둘째는 찬탄하는 것이며, 셋째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요, 넷째는 관찰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회향(廻向)하는 것이다.”
또 『수원왕생경(隨願往生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보광(普廣)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사배(四輩)의 남자나 여인이 임종하는 날에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태어나기를 서원하면,
마땅히 먼저 깨끗이 목욕하고 몸에는 깨끗하게 빤 옷을 입고 온갖 이름 있는 향을 피우며,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달고 노래를 불러 삼보를 찬양하며, 존귀한 경전을 독송해야 한다.
그리고 병든 사람을 위해서는 인연과 비유의 훌륭하고 교묘한 말솜씨로써 미묘한 경전의 뜻을 말해주며, 괴롭고 공(空)하여 진실된 것이 아니고, 사대(四大)가 임시로 화합하여 이루어진 형체는 마치 파초(芭蕉)와 같아서 그 속에 실상이 없음을 말해주어야 한다.
또 전광(電光 : 번개 빛)과 같아 오래 머물지 못함을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색질은 오래도록 선명하지 못하고 장차 무너져 없어지는 데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하였나니, 정성스레 도를 실천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 속으로 원하는 바를 따라 결과를 얻지 아니함이 없느니라.’”
[自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가르치고 난 뒤에
다시 경전과 불상을 모셔다가 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경전의 이름과 불상의 이름을 그에게 말해 주고 보여주면서 그로 하여금 눈을 떠서 보게 하고 그로 하여금 분명하게 깨닫게 하며,
겸하여 덕과 지혜가 있는 사람을 청하여 대승경전을 독송하게 하면서 찬패(讚唄)를 돕고 드날리게 하고 번기와 꽃이 어지러히 떨어지게 하여 그의 눈앞에 완전(婉轉)케 하며,
향기가 그윽하게 하여 항상 코에 맴돌게 하고 언제나 그와 더불어 착한 말만 하며 나쁜 말은 전하지 말라.
임종하려고 할 때에는 대부분 악한 업의 모습이 나타나므로 뜻을 세워 배제(排除)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병든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은 특별히 선교방펀(善巧方便)으로 유도하여 그로 하여금 마음과 마음이 상속(相續)하여 찰나(刹那) 동안이라도 머무르지 않게 하며,
이 복의 힘에 의지하여 정토에 가서 태어나야겠다는 마음을 짓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생전에 선을 지었더라도 임종 때에 악한 생각을 하면 곧 악한 세계에 가서 태어나고 생전에 악한 업을 지었더라도 임종할 때에 착한 생각을 하면 천상(天上)에 태어나게 된다.”
또 『유마경(維摩經)』에서 말하였다.
“닦았던 복을 기억하고 깨끗한 생활을 생각해야 한다.”
또 『정법념경(正法念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계를 지키는 어떤 중생이 은혜를 구하지도 않는 계율을 깨뜨린 병든 사람에 대하여 마음으로 피곤해 하거나 싫어하지도 않으면 목숨을 마친 뒤에 보관천(普觀天)에 태어나 오욕(五欲)을 마음대로 누리되 만족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