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조조는 모든 제후들에게 공문을 보내 동탁을 타도하기 위해 궐기할 것을 호소한다. 원소, 원술, 조조, 마등, 공손찬, 손견 등 제후들이 한곳에 모여 원소를 맹주로 삼은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된다. 이 소식을 들은 동탁은 낙양에 불을 질러 버리고 황제와 문무백관을 데리고 장안으로 도망한다. 반동탁 연합군의 지위부가 동탁이 버리고 간 낙양 땅을 바라보며 만족해하고 있을 때 조조는 혼자서 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가지만 동탁의 군대에게 크게 지고 만다. 게다가 손견이 찾아낸 옥쇄는 각 제후들의 야망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하고, 이로 인해 연합군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동탁이 사도 왕윤과 믿었던 심복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자 동탁의 장수였던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점령해 왕윤 등을 죽이고 여포는 패해 달아나고 만다. 황폐한 낙양으로 돌아온 임금 헌제는 조조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은 조조는 이각과 곽사를 무찌르고 이후로 가장 유력한 제후가 된다. 한편 공손찬 등을 토벌하고 하북 일대를 평정한 원소는 조조와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는데, 관도의 전투에서 2만의 조조 군사가 10만의 원소의 군대를 섬멸한다. 원소는 그 싸움 이후 얼마 못가 죽고 그의 아들들이 조조에 잠시 대항하지만 곧 평정된다. 중국대륙 북부 일대가 중국대륙 북부 일대가 모두 조조의 세력 아래 들어온다.
강동 일대는 손견이 죽고 난 뒤 그의 아들 손책이 평정한다. 손책은 '작은 항우’라는 뜻의‘소패왕’으로 불린다. 조조는 손책을 오후에 봉하고 혼인관계를 맺는다. 200년,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손책은 허도에 있던 한나라 헌제를 맞이하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 뒤를 이은 동생 손권이 바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이다.
한편 유비는 20년 넘게 공손찬, 도겸, 조조, 여포, 원소 등에게 몸을 의탁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하지만 유비는 한의 황실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을 다짐하며 도원에서 관우, 장비와 형제의 의를 맺고, 세 번이나 몸을 굽혀 찾아가 예로써 제갈량을 얻는 삼고초려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형주 땅의 유표에 몸을 의탁한 유비는 형주의 한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된다. 조조나 손책에 비해 유비의 출발은 너무 늦고 세력 또한 미비했다.
중국 북부를 장악한 조조는 전국을 통일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쳐들어간다. 유표의 뒤를 이은 유장은 조조의 대군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항복해 버리고, 유비는 강하로 도망하는데 형주의 주민이 모두 그를 따른다. 가까스로 강하로 온 유비는 강동에 제갈량을 보내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치자고 청한다. 손책의 뒤를 이은 손권은 제갈량의 말을 듣고 주유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맞서 싸우게 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수많은 계략들이 오가다 결국 조조의 100만 대군이 괴멸하고 만다.
오와 위가 싸우는 동안 유비는 제갈량의 교묘한 계책에 따라 형주 일대를 장악한다. 대승을 거두고도 얻은 게 없는 손권은 노숙을 파견해 형주를 되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제갈량은 노숙을 설득하여 익주(서촉)를 얻을 때까지 형주에 머물기로 합의를 이끌어낸다.
형주에서 착실히 기반을 다진 유비는 형주를 관우에게 맡긴 채 익주로 쳐들어가고 마침내 서촉과 한중 일대를 평정한다.
유비가 서촉을 차지하고도 형주를 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자, 손권은 조조와 긴밀히 연합해 형주를 쳐서 반으로 나누자 제안한다. 이에 응한 조조가 군사를 일으켜 형주로 향하자 그 소식을 들은 유비는 관우에게 선수를 쳐서 위를 공격할 것을 명한다. 관우는 엄청난 기세로 위의 성들을 점령하고 조조의 장수들을 사로잡는다.
관우의 기개를 너무나도 잘 아는 조조는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수도를 옮길 것을 제안하기까지 한다. 관우가 위를 공격하러 가기 전 오의 침공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놨음에도 불구하고 오의 육손은 뛰어난 계략으로 형주 일대를 모두 점령한다. 형주 점령 소식에 급히 군사를 몰아 회군하던 관우는 위와 오의 연합군에 쫓기다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 맥성으로 도주한다. 오군에게 포위당한 관우는 인근의 유봉과 맹달에게 구원병을 보내 달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무리하게 서촉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관우는 곳곳에 매복해 있던 오나라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끝내 죽임을 당한다.
한편, 조조의 뒤를 이은 조비는 헌제를 핍박하여 마침내 선위를 받아 황제가 되고, 유비도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나가야 한다는 신하들의 권고의 따라 촉(촉한)의 황제위에 오른다.
성도에서 관우의 죽음을 보고 받은 유비는 구원병을 보내주지 않은 유봉을 죽이고 맹달은 위에 투항한다. 유비는 제갈량 등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70만의 대군을 이끌고 오를 쳐들어간다. 이 때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비마저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유비는 대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 전투마다 승전을 거두고 관우를 죽인 원수들을 모두 죽인다.
유비의 연전연승에 당황한 손권이 사자를 파견하여 강화를 제의하는데, 이미 촉의 군사들이 관우의 원수들을 모두 죽인 뒤였다. 손권이 유비에게 장비를 죽이고 투항한 두 부하를 돌려 보내고 형주를 되돌려줄 테니 군사를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지만 유비는 거절한다.
마침내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해 촉군과 맞서 싸우도록 한다. 육손은 때를 기다리다가 이릉의 전투에서 화공과 야간 기습으로 대승을 거둔다. 이릉의 전투에서 군사의 대부분을 잃고 백제성으로 피신한 유비는 제갈량에게 역적 위를 쳐서 한 황실을 다시 일으키라는 당부와 함께 유선을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
유선이 촉의 황제에 오른 뒤에 제갈량은 오와 동맹을 회복하고 남만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굴욕을 겪게 함으로써 진심으로 항복시키는 등 북벌을 위한 만반의 준비해 나간다. 그러나 수차례에 걸친 북벌은 모두 실패로 끝이 나고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한편, 조비의 뒤를 이은 위의 황제 조예는 조상과 사마의를 불러 어린 태자 조방을 보위하도록 당부하고 숨을 거둔다. 황제의 친족인 조상은 곧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조상이 제갈량의 북벌을 모두 막아내어 권세가 높아진 사마의를 경계하자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두문불출 하며 조상을 안심시킨다. 조상과 어린 황제가 새해를 맞아 성묘를 하러 나간 사이에 긴밀히 조직해 두었던 군사들을 이끌고 조정을 장악해 버린 사마의는 조상의 죄를 적은 조서를 읽고 조상과 그 일족을 모두 죽여 버렸다. 정적을 죽이고 더 이상 대항할 자가 없어진 사마의는 마음껏 권세를 휘두른다.
사마의가 죽자 그의 지위가 사마 일족에게 세습되어 사마일족은 3대와 4대 황제를 폐위시킬 정도로 막강한 독재를 휘두른다. 5대 황제 조환 대에 이르러 사마소는 승상에서 진공, 진공에서 진왕으로 봉해진다.
촉과 오는 초창기 영웅호걸들은 모두 죽고 그 2세들이 집권한 상태였는데 이어지는 권력 다툼과 폭정, 환관의 횡포로 국력은 나날이 쇠퇴해 간다.
제갈량이 죽고 나자 촉의 유선은 환관들에 둘러싸여 주지육림 속을 헤맨다. 강유는 이러한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도 아홉 번이나 되는 북벌을 감행한다. 성과 없는 북벌로 촉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263년, 촉은 위 군사의 공격에 유선이 항복함으로써 멸망한다.
265년, 아버지 사마소가 죽고 진왕 직분을 이어받은 사마염은 조환을 핍박하여 그를 진류왕으로 봉하며, 낙양에서 국호를 진으로 바꾸고 제위에 오른다. 280년, 사마염은 명장 두예와 왕진을 앞세워 오나라마저 평정시키고 마침내 천하통일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