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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 먼곳 산행 ☜ 스크랩 코롱산악회 삼신봉으로
이제학(백두) 추천 0 조회 62 12.06.11 00: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중산리-세석-청학동

매년 지리종주를 한번씩은 시도했다. 코롱스포츠 용인점(이규수사장)에서 지리산을 탐방 한다 하여 신청을 ?다. 중산리-천왕봉-장터목-세석대피소-음양샘-삼신봉-청학동 코스로 맛있는 탐방로를 기대 하며 참여했다.

 

삼신봉에서

 

지리산 지도

 

 

 

 

 

 

장거리 여행에는 자리가 넓은 리무진 버스가 제격이다. 1년에 한번 정도 코롱산악회 참가하는 필자는 조금은 서먹하다. 야간이라 버스종점에서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까지 3km 정도는 시간과 체력을 벌었다.

3시 탐방을 허럭받고 천왕봉 등산을 시작한다. 집떠나면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면의 희망과 기대를 담고 모두 산 깔데기 속으로 몰려 든다.

오늘 따라 켄디션이 말이 아니다. 어둠에 갇혀 이태조의 일화가 있는 칼바위도 못보고 출렁다리에 도착한다. 갈림길이다. 왼쪽은 장터목으로 직접오르는 코스지만 오르는 것보다는 하산 코스다.

오른쪽 급 경사길이 법계사, 노타리대피소 코스다. 망바위 이정표를 지나 급한경사로를 오르면 노타라대피소다. 법계사앞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후미로 낙오자 신세가되어 천천히 오른다 법계사 뒤 너럭바위에서 날이 밝아 사진을 찍어본다. 일출전에 지리를 덥은 운무는 말 그대로 흰색 구름바다다. 황홀함을 안고 더 높은 곳을 향한다. 주목과 고사목이 어울리는 포터존을 지나면 개선문이다. 앞바위에서 보는 조망이 최고인 전망대에 앉아 구름위의 태양을 보며 콘디션 조절로 푹 쉬어 본다.

 

개선문에서

 

 

 

 

계단을 지나치면 천왕샘이다. 장터목. 벽소령 등등 지리산에 케불카를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 흘리는 천왕에 눈물인지 천왕샘이 찔끔 찔끔흘러 바위를 적신다. 급경사 200m 천왕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고난의 길이다.

어느 산이든 정상을 그리 호락호락하게 오르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은 더 높은 곳을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여 결국 산위에 올랐다.

고생끝에 락이란 말 처럼 천왕봉 정상에서의 기분을 업 시켜주는 촉매제 같은 코스다. 정상에는 우리 일행 뿐이다. 수십번 만저보는 묘하고 둥글게 생긴 정상석은 언제나 마을을 보덤어준다.

 

 

 

통천문

 

제석봉

 

천왕봉(1915m)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1915m)정상 천왕봉에 올랐다. 남쪽의 산하를 내려다 보며 호연지기 하며 모두 즐거움 속에 준비한 정상주를 마시고 싶은데? 그래도 여유롭다. 아침에 볼 수 있는 “천왕일출 지리 십경”의 하나를 상상의 눈으로 보며 북쪽으로 널어져있는 “칠선계곡 지리10경” 을 내려다보며 마폭포 칠선폭포 벽송사를 회상해 본다. 동쪽 중봉 넘어로 대원사 치밭목 유평 대원사까지. 남쪽 법계사 칼바위 중산리를 봅니다. 그리고는 서쪽으로 멀리 우리가 연하봉 삼신봉 잔돌평전등 산릉을 내려다 보며 합장합니다.

“지리산 선도성모님이시여 굽여 살펴 주옵소서”

정상에 서면 내려서기 싫다 그러나 내려서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이치 앞에 고개숙인다. 인간아 기껏 100년 뿐이 못 살면서 뭘 그리 그러십니까? 오늘 우리 나를 버리고 모두를 놓고 신선이 되어 봅시다. 다시 장터목으로 향한다.

 

제석봉(1808m)

작은 봉우리를 넘으며 계단을 넘어서니 망망대해 처럼 넓은 공간이 제석봉이다.

전에는 많던 고사목도 적어?고 새로 갱생시키는 주목들이 새로운 지리명물 제석봉을 만들기위해 열심히 자라고 있다. 넓은 조망이 끝나는 계단아래 우리의 희망터 밥먹을 곳인 장터목이다.

 

 

장터목

 

 

장터목(1653m)

장터목에는 먼저 도착한 일행과 탐방객들의 이름 그대로 장터다. 준비해온 점심에 옆자리 산꾼 인심으로 술한잔에 멋진 안주가 산악인의 마음을 어우른다. 산화샘에서 식수를 챙기고 용변을 해결하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세석대피소를 향해 출발한다. 세석(잔돌)평전까지는 2시간 이면 충분하다. 이젠 시간이 널널하다. 여유를 부려가며 쉬엄쉬엄 세석으로 향했다. 꽃이 피지않은 모싯대를 지나 외길을 따라 오르면 오묘한 산속 멋진 바위틈이 연하봉이다. 초입 부터 만난 점잔아 뵈는 김 산우님과 동행하며 사진를 찍으며 산행의 고락도 같이 한다.

 

연하봉

 

연하봉(1730)

“지리십경중 연하선경”이다. 연하선경을 카메라에 담고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안부는 지리산에서 제일 아름다운 안부다 특히 삼신봉에서 천왕봉과 안부의 조화는 아는 종주꾼들 에게는 갑진 사진 촬영 장소다. 후에 사진을 감상 하노라면 연하봉 뒤로 천왕봉의 모습까지 압권이다. 오늘은 꽝이다.하늘이 흐려서 옆산도 안보인다. 우리가 갈 최종 목적지 산 삼신봉과 같은 이름의 삼신봉은 조망뿐이 아니라 사진찍기 지리산에 최고 좋은 포토존이다. 운무가 드나 들어 신비함은 춤만했지만 천왕봉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세석으로 향하며 발길은 바뿌지만 멋진 바위에 기대 쉬며 별에 별 공상에 망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촛대봉으로 향한다. 나무 틀로된 등산로는 촉대봉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준다.

 

 

 

촛대봉정상 바위위의 이사장

 

촛대봉(1701)

멋진바위로 이루어진 바위에서의 조망도 날씨 때문에 오늘은 접는다. 운무가 걷치니 세석대피소전경이 눈아래로 펼처진다.

 

촛대봉 거림쪽 바위굴

 

 

촛대봉에는 음양수에 얼킨 호야와 연진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세석평전 음양수 전설

옛날에 대성동 계곡에서 남자의 이름은 호야(乎也)요, 여자의 이름은 연진(蓮眞)이라고 하였다. 이 둘은 지리산의 비경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자녀를 두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하여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찾아와서 연진을 위로하며 하는 말이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은 기뻐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남편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서 기적의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평소에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여진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엿듣고는 이것을 그대로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주어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혼자서 외로이 철쭉꽃을 가꾸게 되었다.

 

 

그날부터 연진 여인은 뜻하지 않았던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니 철쭉꽃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연진여인은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서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석의 철쭉꽃은 절세가인 연진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럼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연진 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어 그처럼 애련하게 해마다 피고 진다는 것이다.

 

 

그후 연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란다. 천왕봉 산신령도 연진 여인의 가련한 희생을 보고서는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개방하였으며, 그 혜택을 받게 하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한편 연진 여인의 남편인 호야는 산과를 따러 나간 사이에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부인 연진을 찾으려 날마다 계곡과 그리고 밀림, 산령을 넘어 지리산 일대를 헤매다가 칠성봉 중턱에서 까마귀로부터 연진의 소식을 전해 듣고 단숨에 세석평원으로 달려갔으나 산신령의 저지로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세석평원 중턱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서 발돋움을 하고 세석평원을 향하여 연진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목청껏 날마다 불렀던 것이다.


그래서 칠선봉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호야봉(乎也峰)은 그때 그가 애태우며 섰던 자리라 하여 그런 이름을 부르게 되었으며 언제까지나 부르다가 지쳐서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 있는 호야의 굳어진 그대로라 한다.


10여 분이면 내려서는 세석대피소를 바라다 보며 지리산 중간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을 느끼고 있다. 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은 지리산의 세석 평전을.

바람 따라 마음 따라 세석으로 내려선다. 왼편 세석?지를 지나면 지리산에서 제일 큰 대피소 세석대피소(산장)이다.

 

세석대피소 2층 남자실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1,915m). 1만 6천봉을 거느리고 경남을 비롯, 3도 1시 4군에 걸쳐 솟아 있다. 한이 솟아 봉우리 되고 원이 깊어 골짜기가 되었다는 지리산은 흔히들 역사의 산, 신앙의 산, 생명의 산, 사람의 산이라 한다. 예로부터 수려수발하고, 역장역엄한 산으로 바라본즉 흔연하고, 살아본즉 온연하며,올라본즉 숙연한 해동삼연지산이라 했다. 지리산의 최고봉은 천왕봉으로 삼도의 산하를 한눈으로 거두어 볼 수 있는 웅대한 조망이 뛰어나다. 다음은고산식물들이 향긋한 풀과나무향기를 간직하고 방긋웃는 꽃밭으로 봉을 이룬 학술의 보고지 반야봉. 화엄종의 범종교향곡을 쉼없이 범천세계로 메아리치고 남악사를 품고있는 노고단 등이 지리산의 3대 주봉이다. 지리산은 민족 신앙의 영지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 하여 삼신산이라고 불렀고, 백두산의 큰 줄기가 흘러들어왔다는 뜻으로 두류산(頭流山, 頭留山)이라 불렀으며 삼신산 가운데 방장산이라 하였고, 신선이 산다하여 방호산(方壺山)이라 불렀다.

또한 중국의 신비한 산 방당산에 비유하기도 하였으며 산세가 봉황의 날개와 같다하여 봉익산이라 불렀고, 이태조의 등극을 허락하지 않는 산이라 하여 불복산이라고도 했다.

 

이미 지어 버린 지리십경의 세석 철쭉을 뒤로하고 거림쪽으로 내려선다, 세석대피소에서 간식에 과일맛을 보니 발 걸음이 가볍다. 식수터를 지나 거림쪽을로 내려서는 길은 소롯길이라 조용하고호젓한 느낌의 산길이다. 도심에 있으면 아베크족이 넘칠만 한 소롯길이다. 거림과 삼신봉 갈림기에서 삼신봉으로 향한다. 넓다란 멍석바위 아래가 호야와 연진의 슬픈사연의 음양샘이다.

 

음양샘

석문

 

산죽(조릿대)꽃

 

유명한 만큼 한잔은 마셔야죠. 초행길이지만 별로 신통치 않은 9km의 산길은 장난같지 않아 보인다. 큰바위에 뚜컹이 있는 석문을 지나면서 무조건 걸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왜 걸어야 하는지 무엇을 보려는지 목표가 없이 오직 삼신봉을 통해야지만 청학동에 갈수 있다는 생각만 머리속에 꽉차있다. 먹고있어도 맛이 없고 쉬고 있어도 불안하고 갈길은 멀기만 하니 답답한 산행의 연속이다. 멀리 거창한 산릉이 삼신봉이라닌 마음만 더 무겁다. 등산은 누가 대신 걸어 주지도 않고 가만이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철도여행도 아니다. 그래서 옛말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에 김 산우님과 무조건 산신봉으로 내달렸다.

 

 

 

 

삼신봉

 

삼신봉은 작은 바위봉이다. 산신제단위에 정상석 옆에서 기념 사진찍는 것으로 마음 편하게 산행을 마치는 기분이다. 샴페인을 먼저 터트린 기분이다.

삼신봉에서 2.5km의 청학동길은 모두가 계단으로 만들었고 어제 내린비로 미끌 미끌 미끌어짐까지 겹처지는 마지막 고행길이다. 청학이 살았다는 청학동에 오시려면 그정도 갖고 왜 그래 프로들이.....

2012.6.10 백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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