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오진원 대호법께서는 1918년 2월 3일 전북 익산군 금마면 갈산리에서 부친 오석수 교정과 모친 채석묵 교정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농업을 계승하고자 정읍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익산 산업과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19세 되시던 해에 이타원 유춘영화 정사와 결혼하시고 슬하에 1남을 두셨습니다.
공직 정년퇴직 후, 부부의 연을 맺은 이타원 정사의 근무지인 덕진양로원에서 근무하셨던 궁타원 이경륜 정사의 권유에 힘입어 원기 61년 덕진교당에서 이타원 정사의 연원으로 입교하셨습니다.
입교 후, 교당이 없는 지역에 본인 소유의 점포에서 법회를 보다가 현재의 덕진교당 자리로 이사하고 이곳 부지와 건물을 교단에 희사하였으며, 원기 68년 교당을 새롭게 신축하여 교화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또한 완주군 상관면 신리산 14,610여평을 교단에 희사하기도 하셨습니다.
자산 대호법께서는 완주군 상관면 신리에 산지를 개간하고 각종 묘목을 생산 보급하여 산림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과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늘 관심을 가졌으며, 직업이 없는 아이들에게 농민교육의 장을 만들어 도덕과 근로정신을 실천하고 본받게 하였으며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전라북도 연합회장직을 맡아 노인복지 사업 신장에도 공헌하셨습니다.
교단적으로는 원기 69년 사랑자 ‘자산(慈山)’이라는 법호를 받으시고, 원기 76년 ‘정식법강항마위’에 승급하셨으며 그 해 ‘대호법’의 법훈을 수훈하셨습니다.
평소 근면 성실을 생활 신조를 가시셨던 자산 대호법께서는 지난해 12월 21일까지 법회에 참석하시는 신심을 보이시다가, 원기 100년 1월 7일 오전 8시 59분, 효사랑 전주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열반에 드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