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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인간혁명’ ‘신·인간혁명’
연재 7000회 기념 명장면
1965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소설 ‘인간혁명’(1509회), ‘신·인간혁명’(5491회) 연재가 세이쿄신문 2015년 2월 10일자로 통산 7000회를 맞았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초대 회장의유지를 가슴에 품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쿄에 홀로 서서 광선유포의 대원을 내건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제2대 회장. 그리고 스승의 정신 횃불을 이어받아 세계에 평화의 조류를 넓힌 애제자 야마모토 신이치. 창가(創價)의 사제불이로 빚어내는 감동적인 명장면을 소개한다. (‘인간혁명’의 삽화는 미요시 데이키치 화백, ‘신·인간혁명’은 우치다 겐이치로 화백이 작업. 그리고 본문에 인용한 부분은 발췌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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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1권 <여명>
1945년7월3일 도다 조세이 출옥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7월 3일 오후 7시.
도요타마 형무소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말라빠진 한 중년 사내가 종종걸음으로 나왔다. 손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있었는데 서두르는 걸음이 휘청거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말인가!”
분노는 더욱 불타올랐다.
‘누가 전쟁을 좋아한단 말인가. 평화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일본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을까--.’
투옥되기 전에는 체중이 75킬로그램을 넘었으나 지금은 겨우 45∼49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사내가 도다 조세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은사, 창가교육학회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이 감옥 안에서 죽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도다는 이 감옥 문을 살아서 걸어 나왔다. 사제불이(師弟不二)요, 생사불이(生死不二)기 때문에 종교혁명의 붉은 피는 맥맥이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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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1권 <홀로 서다>
1943년6월27일 정법정의를 관철하다
학회 간부는 총본산에 등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승려 한 사람이 “일단 신찰을 받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권유했다.
마키구치는 얼굴을 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신찰은 절대로 받지 않겠습니다.”
마키구치는 이렇게 대답한 다음 침통한 표정으로 하산했다. 하산하는 길에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터뜨리며 도다에게 말했다.
“내가 한탄하는 까닭은 하나의 종파가 멸망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 나라가 눈앞에서 멸망해 가는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종조 대성인께서 슬퍼하심을 나는 오로지 두려워할 따름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간효의 때가 아니겠는가. 도대체 무엇을 겁낸단 말인가? 도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대답했다.
“선생님, 이 도다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린다 해도 끝까지 선생님을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마키구치는 한두 번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날부터 한 달이 채 못 되어 두 사람 모두 검거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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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2권 <지용>
1947년8월14일 도다와 신이치의 사제의 만남
신이치가 열아홉 살이던 어느 여름날 밤. 초등학교 동창생이 권유해 가마타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했다.
도다의 <입정안국론> 강의에 감동해 ‘올바른 인생’ 등을 질문한다. 도다는 친절하고 정중하게 그리고 성실히 답한다.
신이치는 도다의 얼굴을 주시했다. 결정적 순간이 닥쳤다.
‘이 사람의 지도라면 믿을 수 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청년답게 공부하고 실천해 보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선생님을 따라서 공부하겠습니다. 조그마한 감사를 시로써 표현하고자 합니다.”
도다는 무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그네여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달은 졌노라
해는 아직 뜨지 않았으니
날이 새기 전의 혼돈에
빛을 찾아서
나는 나아간다
마음의 암운을 떨쳐 버리려고
폭풍우에 끄덕 않는 대수를 찾아서
나는 땅에서 솟아오르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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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5권 <뜨거운 태양>
1951년5월3일 75만 세대로 대전진
사업의 궁지에서 벗어난 도다는 회원의 총의에 따라 제2대 회장에 취임한다. 경사스러운 취임식에서 도다는 선언한다. 그는 말해야 할 때가 왔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자신의 자각에서 말한다면 나는 광선유포를 위해 이 몸을 버리겠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손으로 75만 세대를 절복하겠습니다. 만약 이 원을 살아 있는 동안 달성하지 못한다면 내 장례식은 하지 마십시오. 유해는 시나가와 앞바다에 던져 버리세요! 알겠습니까!”
불을 토하는 듯한 뜨거운 기백은 참석한 모든 사람의 폐부를 찌르고도 남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신이치는 본당 한복판의 청중 사이에 있었다.
‘선생님은 목숨을 건 승부로 향하셨다. 미문의 광선유포라는 진짜 무대다.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생애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드디어 역사적인 노도의 전진을 시작한다. 나도 제2기 투쟁에 들어간다.
(삽화는 제12권 <우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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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11권 <오사카>
1957년7월17일 큰비가 내린 오사카대회
신이치는 7월 3일, 선거법 위반이라는 무고한 용의로 오사카부경에 출두하고자 홋카이도에서 오사카까지 비행기로 가기로 했다. 환승하기 위해 들른 하네다공항에는 도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이치, 나는 자네 건강이 걱정일세--. 절대로 죽지 말게, 죽어서는 안 되네.
만약, 만약에라도 자네가 죽는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곧바로 달려가 자네 위에 엎어져 함께 죽겠다.”
신이치는 부경에 부당하게 체포되고, 가혹한 취조가 이어진다. 7월 17일에 구치소를 나온 신이치는 나카노시마의 공회당에서 열린 오사카대회에 참석한다.
‘참모실장이, 학회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민중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사회를 위해 일해 온 학회가 어디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밖에는 순식간에 큰비가 쏟아졌고 옆으로 들이치는 바람도 거칠게 불어왔다. 장외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누구 하나 떠나는 이가 없었다. 신이치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최후에는 신심을 끝까지 관철한 사람이, 또한 올바른 불법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해 나갑시다!”
‘모두가 결의를 새로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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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 제12권 <신·여명>
1960년5월3일 제3대 회장 취임식
그날은 밤새 내린 비도 개고 구름 한 점 없는 싱그러운 5월의 맑은 날이었다. 야마모토 신이치의 제3대 회장 취임식이 된 춘계총회가 도쿄 료코쿠에 있는 니치다이강당에서 열렸다.
그는 은사의 유영을 보며 맹세했다.
‘선생님, 신이치는 선생님 뒤를 이어서 금세 일생을 건 대법전을 개시했습니다. 생사를 초월해서 월지 나라 끝까지 세계 광포의 여로를 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은사의 얼굴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듯했다. 유영을 바라보는 신이치는 마음 탓인지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북받치는 감개를 억누르며 단상을 향해 발을 옮겼다.
‘광선유포의 대전진을 시작한다!’
사람들은 점점 높아지는 가슴속 고동을 느끼면서 신이치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젊지만 오늘부터 도다 문하생을 대표해서 화의(化儀)의 광선유포를 목표로 일보 전진하는 지휘를 하겠습니다 --”
지금 새로운 광포의 여명을 알리는 대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성난 파도와 같은 전진이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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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사제가 빚어내는 감동적인 명장면
스승은 광포서원을 위해 홀로 선다!
제자는 평화의 씨앗을 세계로!
신·인간혁명’ 제1권 <욱일>
1960년10월2일 세계광포를 위한 여정으로
평화만큼 존귀한 것은 없다. 평화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평화야말로 인류가 나아가야 할 근본의 제일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제3대 회장에 취임하고 5개월 뒤, 신이치는 하네다공항에서 하와이를 향해 세계광포의 첫 여정을 떠난다.
신이치는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의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는 은사 도다 조세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신이치는 도다가 서거 직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멕시코에 간 꿈을 꾸었다고 말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네. 불법(佛法)을 구도하면서. 가고 싶구나, 세계로. 광선유포의 여행에--. 신이치, 상대는 세계다. 자네의 진정한 무대는 세계야.”
신이치는 도다가 이불 속에서 내민 손을 말없이 꼭 쥐었다. 그러자 도다는 지그시 신이치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다.
“신이치, 살아야 한다. 오래오래 살아야 해. 그리고 세계로 나가는 거다.”
신이치는 그 말을 도다의 유언으로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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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15권 <소카대학교>
1971년4월 소카대학교 개교
4월 2일, 신이치는 은사 도다 조세이의 묘 앞에서 말을 건넸다.
‘선생님! 오늘, 염원하시던 소카(創價)대학교가 드디어 개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도다가 신이치에게 처음으로 대학설립 구상을 이야기한 것은 신이치가 스물두살이던 늦가을이다. 도다가 경영하던 신용조합이 경영부진으로 인해 학회의 이사장을 물러난 나흘 후로, 그야말로 가장 궁지에 몰려 있을 때였다. 니시칸다에 있는 회사 근처 대학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도다는 신이치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신이치, 대학을 만들자꾸나. 소카대학교다.”
도다의 눈동자는 불타 빛나고 있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소카대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건재한 동안에 해내면 좋으련만 안 될지도 모른다. 신이치, 그때는 부탁한다.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최악의 사태를 맞은 가운데 스승은 제자에게 대학설립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그 실현을 맡긴 것이다.
소카대학교 창립은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도다 조세이의 염원이었으며, 사제정신(師弟精神)의 결정(結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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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16권 <대화>
1972년5월~ 토인비 박사와 대담
신이치는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와 런던에 있는 박사의 자택에서 문명과 종교론 등 2년 사이 총 40시간 대담을 나누고 마지막에 자신에게 조언을 바란다고 말하자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학문 세계의 인간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극히 중요한 조직의 책임 있는 지도자이자 불법(佛法) 실천자로서 행동하시고 있습니다. ‘행동하는 사람’에게 ‘탁상의 학자’가 충고를 한다니 주제넘은 일입니다.”
박사는 신이치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대화야말로 세계 여러 문명, 여러 민족, 여러 종교 융화(融和)에 지극히 커다란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를 결속하기 위해 젊은 당신이 이러한 대화를 더욱 펼치기 바랍니다. 러시아인과 미국인 그리고 중국인과도--.”
“약속합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 세계에 대화의 파동을 넓히겠습니다. 그리고 평생 견고한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담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로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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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20권 <신의의 유대>
1974년9월17일 코시긴 총리와 회담
중소대립은 격화해 일촉즉발의 상황을 보이는 가운데 신이치는 소련을 처음으로 방문, 코시긴 총리와 회담했다.
신이치는 3개월 전에 중국을 방문한 실제 소감을 코시긴 총리에게 전했다.
“중국 총리는 자신들이 먼저 타국을 공격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중국은 소련이 어떠한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솔직하게 여쭙겠습니다만 소련은 중국을 공격합니까.”
총리는 예리한 눈빛으로 신이치를 응시했다. 그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아니오, 소련은 중국을 공격할 의향이 없습니다. 아시아의 집단안전보장을 위해서도 중국을 고립시키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말씀을 그대로 중국 수뇌부에 전해도 되겠습니까.”
“소련은 중국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전하셔도 됩니다.”
신이치는 웃음 지었다.
“그렇다면 소련은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총리는 일순간 답변이 궁한 얼굴을 했지만 곧바로 웃음을 띠었다. 신이치는 이 회담에서 확실한 보람을 느꼈다. 대화는 막힌 상황을 뚫어 미래에 희망의 빛을 쏟는 태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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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20권 <가교>
1974년12월5일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
‘신이치는 제2차 중국방문에서 입원 중인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견했다. 의료진의 반대가 있었지만 총리의 단호한 의지로 이루어졌다.’
신이치가 오른손을 내밀자 총리는 웃음을 띠며 그 손을 잡았다. 저우 총리는 일흔여섯살이고 신이치는 마흔여섯살이었다. 총리는 신이치의 젊음이 지닌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총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는 미래를 위해 중일평화우호조약의 조기 체결을 희망합니다.
50수년 전, 저는 벚나무가 필 무렵에 일본을 떠났습니다.”
신이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벚나무가 필 무렵에 꼭 다시 일본에 와 주십시오.”
그러나 총리는 쓸쓸한 듯이 웃음지었다.
“그렇게 바라고 있지만 실현하는 건 무리일 겁니다.
20세기 마지막 25년간은 세계에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평등한 처지에서 도우며 노력해야 합니다.”
총리의 마음은 신이치의 가슴에 깊이 흘러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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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21권
1975년1월26일 SGI 결성
이날 세계 51개국·지역의 멤버 대표 158명이 괌 국제무역센터에 모여 제1회 ‘세계평화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세계 각국 멤버의 단체로 이루어진 국제적 기구로서 SGI를 결성하고 모든 참가자가 총의로 간청해 야마모토 신이치가 SGI 회장으로 취임했다.
‘생명의 세기’로 ‘평화의 세기’로 역사의 기축은 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두 결의에 불타 있었다. 신이치는 열기를 띠고 말했다.
“여러분은 부디 자신이 꽃을 피우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묘법이라는 평화의 씨앗을 뿌리고 그 존귀한 일생을 마쳐 주십시오. 나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각자의 나라를 위해, 존귀한 인간을 위해, 민중을 위해 이 일생을 상쾌하게 보내 주십시오!”
이날 괌에서 세계 동지는 신이치와 함께 그 제자라는 긍지에 불타 평화를 위해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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