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감영은 조선조 500백년동안 강원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정청이다.
원주감영 내에는 공무를 보던 선화당이 있는데 그 뒤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때는 고려초로 지금으로부터 900여년 전 강감찬 장군이 공무로 이곳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머물게 되면서 일어난 사연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옛날에 중앙에서 높은 분이 왔으니 이 때의 상황은 말하지 않아도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 고을의 원님은 말할 나위 없이 극진한 대접으로 강감찬 장군을 환영했다. 그래서 평소에 조용한 연못 옆 객사에서 강감찬 장군을 주무시게 했는데, 때가 후덕지근한 여름밤이라 객사 옆 바로 연못에서는 원님의 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미물인 개구리 가족들은 열심히 합창을 할 것이니 원님으로서는 딱하기 그지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강감찬 장군이 편하게 주무시게 하기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원님은 하인을 시켜 개구리의 합창소리가 나지 않도록 경비를 서게 하였다. 이 하인도 할 수없이 주워온 돌을 연못에 열심히 던져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했으나 돌을 던질 때 뿐이지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돌 때문에 개구리들은 더 악을 쓰고 울어 대니 이 하인은 적지 않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노심초사 하다 생각해 낸 것이 장대를 가져와 호롱불을 비치게 하고 개구리를 두들겨 보았으나 아무소용이 없고 애굿은 개구리의 생명만 앗아가 버리니 하인은 다음날 원님에게 "내 죄는 내가 알리였다." 하며 벌을 받을 생각하니, 어떻게 든지 개구리 울음소리를 멈추게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계속하여 돌 팔매질도 해 보고 장대도 휘들러 보았으나 개구리는 하인을 조롱이나 하듯이 더욱도 기승을 부리고 울어대는데 미칠 지경이었다.
강감찬 장군이 방안에서 큰 방 밖으로 이 광경을 보고 빙그래 웃고는 " 미련한 녀석이로군, 그런다고 개구리가 울지를 않나?" 하면서 혀를 차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책상위에 있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을 들고서는 몇 자 적었다. 말하자면 부적이었다. 강감찬 장군은 이 부적을 하인 모르게 슬며시 연못 한 모퉁이에 떨어 뜨리고 하인을 보니 그때까지도 열심히 하인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개구리 울음소리가 언제 울었느냐 싶을 정도로 울음소리가 멈추고 고요가 찾아 들어 하인의 속타는 가슴을 진정시킨 것은 물론 강감찬 장군도 아침까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원님은 강감찬 장군에게 아침 문안을 드리러 와서는, " 대감. 간밤은 편히 주무셨습니까? 워낙 연못이 가까이 있는 침실이라 혹시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라고 안부 반 걱정 반 인사를 하니, 강감찬 장군이 " 잘 잤어요. 한밤중이 되니 개구리도 원님의 마음을 알았는지 울음소리를 뚝 그치더군요." 하면서 응대를 하니까 원님이 그 말의 뒤를 이어 " 실은 하인을 세워 개구리를 쫓게 하였지요" 라며 대답하면서 자기가 성심성의껏 하였다는 것을 생색을 내는 것이었다.이것을 모를 리 없는 강감찬 장군은 "그래요.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화답을 하고는 자기가 부적을 써서 개구리 울음을 그치게 한 사연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웬일인지 강감찬 장군이 다녀간 후로는 연못에서는 다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해 오는 구전이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지도자의 심성이 얼마나 중요하며 생생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첫댓글 ^^* 의미있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