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리
작사 반 야월 /작곡 김 부해 /노래 박 재홍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눈물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세상을 원망하랴 내 아내를 원망하랴/누이 동생 혜숙이야 행복하게 살아다오/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구비냐/유정천리 꽃이 피네 무정천리 눈이 오네』
박재홍 선생 : 1924. 4. 7. 경기도 시흥군 출생. 유정천리, 울고넘는 박달재, 물방아 도는 내력 등으로 유명. 1989. 3. 21. 66세(만 64세)로 사망.
이 노래는1959년 남홍일 감독의 영화 유정천리 주제곡으로 만들어진 작품 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주인공이 감옥을 간 사이에 아내가 정부와 달아나 버렸고, 교도소에서 출옥한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들을 만나 시골로 낙향 하는 이야기이다.
남들은 화려하고 멋지게 살려고 모두 서울 로 향하던 시절 주인공은 힘들고 무정한 서울을 버리고 아들과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줄거리다.
이러한 영화 주제가인 이 노래는 영화 <유정천리>보다 시대를 만나며 더 큰 인기로 유명해졌다.
유정천리의 발매 년도는 1959년으로, 이승만 정권이 집권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유정천리는 큰 히트를 치며 1960년도에 큰 인기를 누린다.
1960년 3월 15일은 제 4대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는 날이었다.
1959년 민주당은 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통령 후보 지명식에서 총 투표수 944명 중 민주당 구파 후보인 조병옥 후보가 민주당 신파 후보인 장면 후보를 3표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 후보 조병옥, 부통령 후보 장면을 선출해 후보 등록을 마치게 된다. 당시로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맞설 유일한 후보는 민주당의 조병옥 박사였다.
후보 등록을 마친 조병옥은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하기도 전에 갑작스런 신병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게 되고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입원 23일만에 2월 15일 숨을 거둔다.
갑작스런 대선후보의 죽음으로 부통령 선거가 대선보다 더 중요한 선거가 됐고 자유당은 어떻게 하든 이기붕이 부통령이 되게끔 술책을 써 나갔다.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한 자유당의 부정선거는 극에 달해 개표결과 이기붕의 득표율이 너무 높아지자 득표율을 낮춰서 발표하는 해프닝까지 유발한다.
4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려던 이들은 이런 사실에 절망했다.
이 당시 경상도 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은 ‘유정천리’라는 곡에 가사를 바꿔 ‘유석애도가’로 부르며 조병옥 후보의 죽음을 애도했다.
투표율이 높아지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판단 아래에 자유당은 4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일을 3월 15일로 앞당겨 치른다. 대구에서는 야당 후보의 유세가 일요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대구지역 일요일에도 강제적으로 등교조치를 내려 국민들과 야당 후보와의 거리를 멀게 만들었다.
유정천리라는 곡이 퍼지면 퍼질수록 자유당은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고, 경상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반 자유당 운동은 대구의 2. 28 학생봉기로 나타났다. 마산에서는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중고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대응한 경찰의 폭력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4.19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양심선언을 하면서 학교의 교단을 떠나는 선생님들과 공직을 버린 공무원들이 고향으로 떠나면서 개사를 해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정국에 <유정천리> 개사곡은 대구에서 만들어져 실시간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 노래 는 자유당 말기 조병옥 박사 추모곡으로 불려 지면서 금지곡으로 되기도했다. 결국 <유정천리>의 유행으로 인해 민심은 더더욱 반(反) 이승만 정권의 방향으로 돌아갔고, 3.15 부정선거를 맞이하게 된 대중은 결국 분노하여 4.19 혁명을 일으켜 이승만을 끌어 내리는데 성공한다. <유정천리>가 4.19 혁명의 발발에 큰 기여를 한 셈인가? 하지만 이후에 4.19 혁명 버전 유정천리를 발매한 음반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다.
<4.19 개사 버전>
가련다 떠나련다 해공 선생 뒤를 따라/장면 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다/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눈이 오네
세상을 원망하랴 자유당을 원망하랴/춘삼월 십오일 조기선거 왠말인가/
천리만리 박사죽음 왠 말인가/설움 어린 신문 들고 백성들이 울고 있네.
4.19 혁명으로 자유당이 몰락하고 유정천리의 가사는 다시 한 번 바뀌어서 불린다. 최초 바꿔 부른 가사에는 2절 마지막 부분의 “유정천리 꽃이피네 무정천리 눈이오네”를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 오네”로 민주당의 애달픔을 노래하다가 “민주당에 꽃이 피네 자유당에 비가 오네”로 환희의 송가로 바뀐다.
늙으막에 색소폰 연주를 하다보니 노래 연주를 하면서 담겨진 사연 탐색에도 관심이 깊어짐니다.
사실 이 노래도 어린시절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유행가랍시고 몰래 배워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첫댓글 개사했던 노래를 얼핏 들어본 기억도 나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아하...참으로 그런 뼈아픈 사연이잇었군요...그 역사는 근세에 왜이리 돌고도는지..지금도 방법과 수단만 달라졌을 뿐 상황이나 돌아가는 판세가 비슷하지않나요...결국 끝이 있을텐데...부나방처럼 불을 향해..권력을 향해 미친듯이 날라가는 군상들...민초들만 피해를 보지요...
좋은자료 감사 합니다,,, 풍요로운 명절 보내세요,,,,
아버지가 즐겨 부르시던 곡인데 이런사연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