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된 지 2주가 되어간다.
이번 학교는 나의 네 번째 학교이고 나는 3월에 부임하였다. 2월에 발령받고 매곡산 아래 위치한 학교에 첫발을 내딛은 그날 학교에 어떤 보물 같은 아이들이 숨어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갖고 교감실로 들어갔다. 교감실에 들어가니 부장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반갑게 교사들을 맞이하며 학교의 교육목표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전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요점은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로의 역할이니 열심히 생활해 보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부장 선생님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 이셨다. 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결심했다. ‘그래,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지’라고
2월에 5일간 출근하며 보건실을 정리했다. 보건실에 들어가 약장의 의약품과 보건실의 물품들을 확인했다 전임선생님께서 사용하는 약품이나 물품들 중 그동안 내가 사용해 본 경험이 없는 것들은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본 후 사용법을 익혔다. 앞으로 필요한 의약품과 응급처치 물품, 보건교육 물품 등을 파악하고 녹초가 되어 깜깜해진 학교와 매곡산을 보며 퇴근하는 것이 행복했다.
3월 4일은 사랑스런 아이들과 만나는 날이었다. 출근 전 날 학생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아 긴장되어선지 잠을 설치고 말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깨끗이 정리된 보건실에 들어가며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던 그날처럼 설렜다.
3월 첫 주부터 학교는 언제나처럼 바빴다. 아이들은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아이들의 생동감을 따라하듯이 미세먼지도 생동감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학생이 보건실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천사 같은 아이의 아픈 모습을 보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온것에 대해 감사함을 갖았다. 보건실 문을 열고 아이의 열을 체크하고 혈압과 맥박도 체크해보았다. 그리고 집에서는 괜찮았는지, 예전에도 오늘처럼 아픈일이 있는지등등 10분 넘게 문진을 지속했다. 그리고 학부모님 연락처를 물어 학부모님과 통화하여 아이의 상태를 알리고 해열제를 먹인 후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담임선생님께 학생의 상태를 알렸다. 에어 코리아에 들어가서 오늘의 미세먼지 상태를 알아보고 학교전체에 미세먼지 나쁨과 실외 생활 자제를 권고하며 미세먼지 대응 매뉴얼대로 학생들을 지도해주라고 쿨 메신저를 보냈다.
업무포탈에 접속하여 공기정화장치와 관련된 공문을 보는 순간 작년 일이 생각나 가슴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작년 공기정화장치 설치 공문이 생각났다. 한달이라는 기간을 주면서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라고 교육청에서 일방적으로 보냈던 일이. 그 일로 나는 학교내 업무정상화 회의를 가장하여 집단폭력을 당했다. 그때의 아픔이 생각나 가습이 답답하고 눈물이 나왔다.
미세먼지공문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가슴이 못으로 박는 것처럼 심한 통증을 느낀다는 아이가 왔다. 아이에 대한 건강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아이에 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를 측정한 후 하나하나 세심하게 질문을 했다. 그리고 학부모님에게 연락하여 학생의 건강상태에 대해 알아봤다. 학생에게 지금 당장 제일 필요한 것은 심리적 지원이라고 판단하고 아이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순간 교장, 교감, 행정실장님께서 공기정화장치 업무 때문에 협의회를 하자는 전화가 왔다. 보건실 상황을 설명 한 후 친구와 부딪쳐 발목이 아픈 아이, 발바닥에 가시박힌 아이, 배가 아픈 아이, 감기에 걸린아이, 열이 나는 아이, 목이 아픈 아이 등등을 치료해주고 한시간 즈음 시간이 흘렀을 때 교감실에서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 학교 사정을 설명하셨다. 교장 선생님께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었다. 교감 선생님과 행정 실장님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셨다. 교장선생님, 행정실장님, 교감선생님, 그리고 나, 우리모두 교육청의 잘못된 시책으로 인한 희생양들이다.
교육청에서는 일선학교의 업무경감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세 곳의 교육청을 제외한 타시도는 교육청은 공기청정기를 교육청에서 일괄 구매하여 설치했다고 들었다. 그 세 곳 중에 한 곳이 내가 근무하는 광주광역시 교육청이라는 것에 회의가 든다.
공기정화장치 업무를 하지 않는데도 3월 나는 바쁘다. 감염병 계획, 응급환자 계획, 건강조사, 건강검사 계획, 보건교육 계획, 흡연예방 사업계획등등. 수질검사 업무 등
오늘은 저소득층 지원이라며 보건용 마스크 구입이라는 공문이 왔다. 저소득층의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 구입을 하는 것은 100% 찬성한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청에서 미세먼지 마스크를 구입하여 각 가정에 보내는 방법 또는 교육비 지원처럼 처리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3월 보건실은 학생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며 1년의 학생건강 씨앗을 심는 곳이다. 학교보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아니 배려심이 없는 교육청이 싫다. 교사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르류 사서 택배로 배부하고 사진까지 찍은 후 정산해서 보내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올해는 건강증진 기본방향 설명회도 없었다. 이유는 3월 학생들에게 집중하라고.
보건선생님도 3월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교육청 소속 학교에 근무하고 싶다.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언제나 보건교사가 학생들에게 집중 할 수 있게 해줄까? 희망이 없다.